661년 1월 29일, 초대 시아파 이맘 ‘알리’의 죽음으로 정통 칼리파 시대 종료
알리 이븐 아비 탈리브 (Alī ibn Abī Ṭālib, 601년 9월 15일 ~ 661년 1월 29일)은 무함마드의 사촌동생으로, 무함마드의 보호자 아부 탈리브의 아들이다. 또한 그는 무함마드의 딸 파티마의 남편이었다.

– 알리 이븐 아비 탈리브 (Alī ibn Abī Ṭālib)
.출생: 601년 9월 15일, 아라비아 반도 메카
.사망: 661년 1월 29일, 정통 칼리파국 쿠파
.능묘: 이라크 나자프 이맘 알리 모스크
.왕조: 정통 칼리파조
.부모: 아부 탈리브 이븐 압드 알무탈리브, 파티마 빈트 아사드
.배우자: 파티마 빈트 무함마드, 우마마 빈트 자이나브, 움므 울바닌, 레일라 빈트 마수드, 아스마 빈트 우마이스, 카울라 빈트 자파르, 알 샤흐바 빈트 라비아흐
.자녀: 하산 이븐 알리, 후사인 이븐 알리, 자이나브 빈트 알리, 움므 쿨툼 빈트 알리, 무흐신 이븐 알리
.종교: 시아파 이슬람교
*정통 칼리파
.재위: 656년 ~ 661년
.전임: 우스만 이븐 아판 / 후임: 하산 이븐 알리, 무아위야 이븐 아비 수프얀

○ 생애 및 활동
이슬람의 초기 지도자이자 4대 칼리파. 수니파에서는 그를 이슬람의 4대이자 마지막 정통 칼리파로 여기고, 시아파는 초대 이맘 (아랍어로 ‘지도자’, ‘모범이 되어야 할 것’을 의미)이자 유일한 정통 칼리파로 간주한다.
알리 이븐 아비 탈리브 (Alī ibn Abī Ṭālib)는 601년 9월 15일, 아라비아 반도 메카에서 출생했다.
그는 가장 빨리 무함마드의 가르침에 귀의하여 예언자의 최대 협력자가 되었다.
제3대 칼리파 우스만이 살해되자 칼리파에 선출되었는데, 메카의 유력자나 우마이야가의 무아위야와의 대립으로 수도를 메디나에서 쿠파로 옮겼다.
그 후 알리는 국가 통일을 위하여 무아위야와 항쟁과 타협을 했으나, 661년 정정 (政情) 불안을 개탄하는 이슬람교도에게 암살을 당하여 쿠파의 이슬람교 사원에서 쓰러졌다.
알리 및 그의 자손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시아파라고 하며, 이슬람교의 일대 분파를 형성했다.
알리를 초대 이맘으로 추종하는 ‘시아파’는 ‘수니파’와 함께 이슬람교의 일대 분파 중 하나로서, 그 이름은 ‘시아트 알리’에서 유래한다.

시아파는 알리를 무함마드의 정식 후계자로 하여 다른 칼리프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알라 이외에 신은 없고 무함마드는 그의 사도이다’라는 신조에 ‘또한 알리는 신의 벗이다’라는 말을 부가한다.
알리 및 그의 자손은 이맘이라고 불리고, 그 지위는 신에 의해서 선택된 것이라고 한다.
시아파에게 있어서는 알리와 그 자손만이 신자 공동체의 정통적인 장 (長), 즉 ‘이맘’인 것이다.
이맘은 기도를 주재하는 사람이고, 예언자의 말의 참된 의미를 전하는 사람이다.
시아파의 결성으로 이슬람 세계는 정치적, 종교적으로 분열되고, 이 현상은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다.
이란 국민의 대다수가 시아파로 사실상 시아파의 본산이다.
이라크 국민의 약 60%에 해당하는 인구 다수가 시아파이다.
시리아에서는 소수 시아파가 다수의 수니파를 지배하고 있으며, 바레인에서는 소수의 수니파가 다수의 시아파를 지배하고 있다.

- 주요 역할
초기 이슬람 수용: 알리는 어린 시절부터 무함마드의 집안에서 성장했으며, 이슬람을 받아들인 최초의 남성 중 한 명리다.
무함마드의 보호자: 무함마드가 메카에서 메디나로 이주할 당시, 자신을 노리는 암살자들을 피할 수 있도록 무함마드의 침대에 대신 누워 위험을 자처했다.
전투에서의 활약: 바드르, 카이바르 등 초기 이슬람 공동체의 주요 전투에서 뛰어난 용맹함과 리더십을 발휘하여 공동체를 수호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칼리프 재위: 제3대 칼리파 우스만 이븐 아판이 암살된 후, 656년에 네 번째 칼리파로 선출되어 661년 암살될 때까지 통치했다. 그의 재위 기간은 이슬람 제국의 첫 번째 내전인 ‘제1차 피트나’로 인해 혼란스러웠다.
- 수니파와 시아파의 분열
알리 이븐 아비 탈리브는 이슬람 세계의 주요 종파인 수니파와 시아파의 분열에 있어 중심적인 인물이다.
수니파: 무함마드의 후계자는 공동체의 합의에 의해 선출되어야 한다고 보며, 알리를 포함한 아부 바크르, 우마르, 우스만 네 명의 칼리파를 모두 ‘정통 칼리파’로 인정한다.
시아파: 무함마드가 자신의 후계자로 알리를 직접 지명했다고 믿으며, 오직 알리와 그의 후손만이 정당한 종교적, 정치적 지도자 (이맘)라고 주장한다.
알리는 661년 이라크 쿠파에서 암살당했으며, 그의 죽음은 수니파와 시아파 간의 돌이킬 수 없는 갈등을 심화시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 가족 관계
무함마드의 딸인 파티마와 결혼하여, 하산, 후세인 등 무함마드의 외손자들을 두었다.

참고 = 위키백과, 나무위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