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곤주 칼럼
진정성 있는 회개와 용서에 관하여
얼마 전에 어느 분이 저의 페이스북에 ‘진정성 있는 회개’가 무엇인지 질문을 하셨습니다.
사실 그게 한두 마디로 정의할 수 있는 사안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 문제에 대해서 회개와 용서의 관계속에서 두 가지로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첫째로 진정성 있는 회개란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로 끝나는 회개가 아니라 죄로 인해 깨어진 관계의 회복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을 말하지만 동시에 인간(당사자들간)의 관계회복을 의미합니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영화 밀양에 나오는 스토리와 같이 ‘내가 하나님께 용서 받았으니 네가 상관할 바가 아니다’ 하는 뻔뻔한 인간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밀양의 내용을 보면, 감옥에 있는 유괴범(박도섭)은 아들을 잃은 피해자 (신애)에게 ‘당신이 날 찾아오기 전에 하나님이 나를 만나서 용서해 주셔서 나는 항상 기쁘게 살아가고 있다’ 는 고백을 다음과 같이 표현합니다. “…하나님이 이 죄 많은 놈한테 손 내밀어 지은 죄를 회개하게 하시고 저의 죄를 용서해주셨습니다. 눈물로 회개하고 용서받았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기도하고 하루하루가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하나님께 회개하고 용서받으니 이렇게 편합니다.…(영화 <밀양> 중에서)” 이 말을 들은 신애는 교도소 밖을 나서자마자 충격을 받고 쓰러지고 맙니다. 유괴범 박도섭은 신애의 유일한 아들을 죽이고, 그녀의 인생을 망쳐놓았지만 자신이 신에게 용서를 받았다고 죄책감을 느끼지 않은 뻔뻔한 인간이 된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인가 하는 충격이 신애를 더 고통스럽게 했습니다.
이것은 성경이 말하는 기독교의 용서를 심각하게 왜곡시킨 내용입니다. 성경은 결코 인간에게 죄를 짓고 하나님께 회개하면 끝난다고 가르친 적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도 ‘하나님께 예물(예배)을 드리러 가다가도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으면 먼저 가서 용서를 구하고 화해를 한 후에 와서 제단에 예물을 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5:23). 용서란 하나님의 관계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인 상대방에게 진정으로 받아들여 졌을때 진정한 용서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둘째로 진정성 있는 회개란 뉘우치고 반성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맺는 있는 것입니다. 그럴 때 당사자(혹은 당사자들)간에 진정한 관계 회복이 이뤄집니다.
구약의 다윗(시편 32편)의 경우와 신약의 삭개오의 경우가 좋은 예가 될수 있습니다. 특별히 삭개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누가복음 19:8).
그러니까 만약 누군가가 더 이상 변명의 여지를 할수 없는 상황에 이르러서야 ‘잘못했습니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이 진정성있는 회개인가에 대해서 아주 신중하게 생각해 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구약성경을 보면 회개는 단순히 ‘회개하다’라는 직접적인 어휘인 ‘슈브’나 ‘니함’만으로 표현하지 않고, 다양한 회개의 모습들을 표현하는 ‘자카르’, ‘쿠트’, ‘보쉬’, ‘칼람’ 등의 여러 어휘들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회개는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아주 구체적이고 실제적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의 가르침은 진정한 회개가 없이는 진정한 용서가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물론 반대로 진정한 회개가 이루어 졌다면, 그래서 당사자 간에 진정한 관계회복이 이루어져 간다면,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를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사랑과 은혜가 너무 충만해서 ‘어차피 너도 죄 짓고 살고 나도 죄 짓고 살아가는 죄인들이니까 서로 적당히 덮어두고 넘어가자’ 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또 ‘죄 없는 자가 돌로 치라’는 성경구절을 인용하면 죄를 적당히 덮어주자는 말도 옳지 않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용서는 죄의 문제를 분명히 처리(회개)했을 때 그 결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성경이 말하는 사랑과 용서에 대한 심각한 왜곡입니다. 이것이 바로 회개와 용서와 관계에 있어서 종종 나타나는 오해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생각과 태도는 결국 ‘너도 죄짓고 나도 죄짓고 살아가는 허물 많은 죄인들이니 서로 죄를 덮어두고 살자’는 말이요, 그래서 함께 죄의 길로 타락의 길로 가자는 말밖에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 그리고 이웃에게 참된 용서를 받는 것은 진정성 있는 회개로만 가능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회개의 행위를 통해서 관계회복을 위해 노력하는 과정을 포함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과 평화(샬롬)를 누리고 이웃과 평화(샬롬)을 누리는 평화의 사도로 이 세상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