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통독 길라잡이-성경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룻기-텅빔에서 채워짐으로
흔히 룻기를 가르켜 “딱딱한 조개껍질 사이에 끼인 진주”라든가, “어둠속에 빛나는 태양빛”같다고 표현한다. 룻기는 딱딱한 사사기와 사무엘서 사이에 등장하는 진주같이 아름다운 사랑의 이야기로 채워져있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는 사사시대의 중앙에서 발생한다. 사사시대는 어떠한 때였는가? 사람들이 언약을 줄줄이 깨뜨리면서 자기의 소견대로 살아감으로 인해 ‘죄-징계-회개-구원’의 싸이클이 7번이나 반복되고 급기야는 참혹한 내전으로 마무리된 처절한 시기가 아닌가? 그런면에서 이 사사기의 바로 뒤에 룻기가 등장한다는 것은 큰 위안거리이다. 또한 사사기는 전체 85절 가운데 45절이 대화체인 마치 연극같은 멋진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에서 중심인물은 물론 하나님이시다. 짧은 4장안에 하나님의 이름이 23번이나 언급된다. 보이지 않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이 단연 돋보인다. 그러나 룻기에는 이런 하나님의 섭리인 씨줄과 함께 날줄로 아름다운 이야기를 엮어가는 인간 주인공들이 있다. “나오미와 룻, 그리고 보아스”이다. 이 사람들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나오미를 중심으로 전개한다.
서론에서는 나오미의 텅빈 상태가 집중적으로 조명된다. 베들레헴에 기근이 들어서 엘리멜렉의 식구들이 모압으로 이주한다. 얼마후 나오미의 남편인 엘리멜렉이 죽게되고 두 아들인 말론과 기룐도 10년쯤되어 죽는다. 이렇게 이 세상에서 자녀가 없는 과부가 된다는 것은 나오미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이 모두 사라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대 이스라엘에서 최악의 상황이고 가부장적인 고대사회에서 죽음과 같은 상황이 되었다는 것이다. 세 사람과 사별한 나오미는 절박하게 헤세드(인애-도움받을 곳이 없는 자들에 대한 끝없는 긍휼)가 필요한 상황에 내던지게 된다. 철저히 텅빈 상태이다. 이렇게 시작된 나오미의 텅빈 삶이(1:21) 룻기의 마지막에 가서는 가득한 삶으로 바뀌게 됨을 발견한다. 나오미가 룻으로 인해 자녀를 품에 안았기 때문이다.(4:14-16)
그렇다면 어떻게 텅빈 나오미의 삶이 가득차게 되었는가? 하나님의 어떤 기적이 나타났는가? 성경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모압과부인 룻과 유대의 경건한 남자인 보아스의 따뜻한 마음 때문이라고 전한다. 이들은 사회적으로 양극단에 처해있지만 자신들이 가능한 방법으로 곤란에 처한 사람인 나오미를 위해서 행동한다. 자신의 유익을 생각하지 않고 모든 손해를 감수하면서 나오미에게 인애를 베푼다. 우리는 룻기를 통해서 하나님의 섭리적 행동과 인간의 헌신적 사랑과 돌봄이 함께 씨줄과 날줄처럼 얽히면서 한 사람과 한 시대를 회복시켜감을 목도하게 된다.
1.룻의 인애
룻은 이스라엘편에서 하챦게 생각하는 민족인 모압족의 여인이다. 그러나 이 룻의 국제적인 인애와 충성 때문에 나오미의 삶이 텅비고 피폐한 상태에서 가득찬 상태로 바뀐다. 룻은 젊은 과부이기에 시모인 나오미의 권고대로 자기의 친정으로 돌아가서 개가하면 평범한 삶을 살 수 있었다. 그렇게해도 누구도 비방하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그렇게 하는 것이 동서인 오르바의 경우처럼 이 세상에서 지극히 정상적인 길일 것이다. 그러나 룻은 넓은 길이 아니라 좁은 길을 택했다. 그는 더 곤란에 빠져있는 나오미를 따라가서 그 시모의 텅빈 삶을 채워주는 존재가 되기를 원한다. 거기에는 필시 엄청난 고생과 희생이 따른다. 이방땅에서 과부로 산다는 것은 이중고의 삶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룻은 그러한 인애를 실천하기 위해서 심지어 자신의 민족과 자신의 신까지도 포기하는 충성된 마음을 내비친다.(1:15-17) 그녀는 나오미가 죽는 곳에서 죽고 시모인 나오미가 묻히는 곳에 묻히겠다고까지 다짐한다. 이것은 과장법이 아니다. 고고학적 발굴에 의하면 가족은 공동무덤을 사용해서 처음에 몸을 썩을 때까지 홀로 놓았다가 나중에 뼈만 남으면 그 옆의 공간에서 가족들의 뼈와 함께 놓는다. 죽어서도 함께 묻힌다. 룻은 이렇게 하겠다는 것이다. 국경을 초월하는 충성이다. 우리는 룻기를 통해서 꽁꽁 얼어붙었던 이웃나라의 관계가 한 여인의 헌신적 사랑으로 인해 눈 녹듯 녹아짐을 바라본다. 이제 요단강을 사이에 두고 있는 유다와 모압이라는 두 지역이 이제 한 여인을 통해 국제적 연대와 우정으로 묶인다. 이방인도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보편적인 열린 선민주의를 이방여인인 룻의 따뜻한 마음속에 깊이 감지한다. 그리고 그들은 함께 베들레헴으로 돌아온다. 베들레헴이란 “떡집”이라는 의미이다. 이 떡집인 베들레헴에서 룻의 가문인 다윗이 태어나서 이 성군 다윗이 이스라엘을 먹이는 이야기가 전개될 것이다. 또한 이 떡집 베들레헴에 오신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열방은 자신을 생명의 떡으로 내어주시는 예수님의 우주적 사역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이 아름답고 광대한 구원과 섬김과 회복의 역사가 바로 한 이방여인 룻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결코 간과할 수 없는 값진 교훈이 된다. 이렇듯, 룻기는 나눔과 화해와 살림(살리심)의 신앙을 보여준다. 보잘것 없는 한 사람의 인애와 자비의 정신이 흘러 넘치는 소박한 삶의 이야기가 분열과 박탈의 상처를 치유하는 복음의 시발점이 된 것이다. 이렇듯 하나님께서는 섭리적으로 부족하고 결점있는 이방여인 룻을 세우셔서 무너진 사사시대, 무너진 한 가정을 세워 나아가기를 원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눈에 띄는 기적으로 사사시대의 흐름을 역류하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나타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품은 한 사람의 인애를 통해 어둡고 살벌한 사사시대에 하늘의 밝은 햇빛과 같은 빛줄기를 비춰주시기를 원하셨던 것이다. 룻기를 살피면서 이 시대를 살릴 사람은 과연 누구인지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바로 룻과 같은 인내의 마음으로 살기를 결단하고 나오미 같은 텅빈 삶을 살아가는 이 시대 사람들을 섬기는 사람이 진정한 하나님의 일꾼이요 동역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대에 부름받은 성도야말로 이 시대를 인애로 섬기는 이 땅의 룻과 같은 존재가 된다.
2. 보아스의 인애
이제 룻의 이러한 인애(헤세드)에 의해서 나오미는 룻과 함께 모압땅에서 베들레헴으로 돌아왔다. 그렇다면 이제 이 두여인의 삶은 어떠할 것인가?상황이 바뀌었는가? 이 두 절박한 과부들은 누군가가 돕지 않는다면 빈곤과 외로움의 삶을 지속할 수 밖에 없는 처지가 아닌가? 이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상상할 수 없는 방법으로 그들의 삶에 개입하신다. 율법에서 나타나는 인애의 현장, 즉 부자들의 땅에서 추수할 때 가난한 자들을 위해 이삭을 남겨 놓으라는 하나님의 계명에 의해서 보아스라는 유다의 유력자를 준비시키신다. 이 보아스 역시 인애가 넘치는 인물이다.
그는 기업무를 자 중의 한명이었다. 이스라엘 사회에서 모든 부동산은 궁극적으로 여호와 하나님께 속했다. 다른 가족의 땅을 법적으로 살 수 없었다. 어려울때 기존의 기업을 팔려고 내놓으면 가장 가까운 친족이 기업무를 책임을 갖고 가문을위해 사야만 한다. 절대로 씨족외에 다른 사람들에게 팔아서는 안된다.(레25:23-28) 그래서 보아스는 나오미의 땅을 가장 가까운 친족인 “아무개씨”가 사기를 권한다. 이 사람이 1번 순위의 기업무를 자이다. 가장 가까운 친족은 기업을 무르기위해 나오미의 땅을 사기를 원한다. 왜냐하면 그 소산으로 땅값을 변제한다면 다른 방법으로 땅을 불릴 수 없는 당시 사회에서 소유를 확장하는 기회를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늙은 과부를 먹이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보아스가 그 가까운 친족이 그 죽은 자의 자식을 낳아줄 책임이 있다고 설명하자 그 사람은 기업무르기를 거절한다.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는 엘리멜렉과 말론의 이름을 보존하고 그 땅은 그의 가문의 것이 되기 때문이다. 결국 더 가까운 그 친족은 손해날까봐 물러난다. 그리고 보아스가 이것까지도 담당하면서 인애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두 여인을 위해 룻과 결혼하고 기업무를 자의 자리에 서기를 결정한다. 그리고 보아스와 룻 사이에 낳은 아이(오벳)가 다윗왕의 조부가 된다. 여기서 우리는 룻기의 중심 주제 중의 하나가 기업무름임을 발견한다.
성경에서 기업무를 자의 역할은 세가지이다. 첫째로, 한 친족이 파산하여 자신에게 속한 가족 소유의 땅을 다른 사람에게 팔았을때 그 땅을 다시 사들여 가족 공동체 소유의 땅으로 보존시켜주는 의리있고 책임감 넘치는 행위이다. 둘째로, 거대한 빚을 져서 인신이 노예로 팔릴 경우 인신회복을 위해 빚을 갚아주는 행위이다. 셋째로 피붙이 복수자로 부당한 원수의 공격으로부터 이스라엘 공동체를 보호해주는 역할이다. 이와같이 보아스는 기업무를 자의 착한 사명을 잘 감당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보아스는 나오미와 룻의 삶을 치료해준다. 룻이 나오미의 삶을 치유해주었고, 보아스가 나오미와 룻의 삶을 치유해주었다. 룻과 보아스는 우리에게 살림(살게함)과 치료의 신앙을 가르쳐준다. 이렇듯 향기를 발산하는 인격과 인애 깊은 동정심이 많은 사람이 진정 이 세상을 치료하는 의사이다.
사사시대에 기업무를 자의 사명을 제대로 인식하고 시행하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은 그 시대에도 소망이 있음을 보여준다. 모든 일을 “자신의 소견대로 행하는 사사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을 존중히 여기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샘이 말라버린 사막같은 도시에서 열 두 샘물같은 존재를 만나는 것과 다름이 없다.이 것은 결국 궁국적으로 예수님의 사역을 예표한다. 예수님은 사탄에 팔려 넘어간 우리의 영혼을 되무르기 위해 십자가 위에서 하나님께 그 댓가를 지불하신 분이시다. 예수님은 우리의 텅빈 인생을 가득 채워주시는 궁극적인 보아스이시다. 주님은 사랑과 인애의 정신으로 기꺼이 우리를 회복시키셨다. 따라서 멀리 보아서 룻기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인애를 베푸시는 예수님의 이야기이며 하나님께서 써가시는 이야기임에 분명하다.
이렇듯 룻기에서 발견하는 교훈은 무엇인가?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훌륭한 성품을 본받고 있는 이들을 통해서 일하신다는 것이다. 인간사이에 베풀어지는 인애(헤세드)가 하나님의 인애를 작동케 하는 계기가 되었음을 선포하신다. 다시말해 하나님께서는 기적적인 방법으로 무슨 일을 이루시기 보다는 인간 파트너인 우리가 베푸는 인애를 하나님의 인애를 체험하는 통로로 사용하신다는 점이 극히 중요하다.
고독한 시어머니에 대한 효도(인애)를 다하려는 마음에 모압에 남아 새 가정을 이룰 생각을 버리고 이무 소망없어 보이는 늙은 시어머니를 따르는 룻의 마음과, 전혀 가능성이 없는 삶의 조건으로 돌아간 두 과부를 살피려고 혼신을 다한 보아스의 마음으로부터 딱딱한 사사시대를 뚫고 나오는 진정한 소망을 보게된다. 나오미의 한 가정이 회복되고, 이스라엘이 회복되고 다윗왕의 혜성같은 출현을 예고할 뿐 아니라 온 인류를 회복시키는 예수 그리스도를 멀리서 바라보게 하는 심오한 책이 룻기이다. 그러나 그곳에는 어떤 기적의 이야기도 내포되어 있지 않다. 오히려 그 시대와 삶을 변화시키는 참된 기적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그 기적이 한 사람, 한 가정, 한 민족, 온 인류의 삶을 채워 세워나아간다. 무엇을 통해서인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우리의 삶이 채워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에 의해서 우리가 충만해질때, 그리고 우리 또한 예수님을 통해 받은 감화력을 통해 누군가의 텅빈 삶의 잔을 채워주는 도구가 될때 이 땅은 진정한 기적을 체험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이 것이 이 시대에 갈망하는 진짜 기적이 아니겠는가?
룻기는 단순히 사사시대에 한 가정에서 일어난 비극과 회복을 그린 이야기가 아니다. 사사시대의 텅빈 이스라엘의 삶이 다윗시대에 채움으로 바뀌는 가장 결정적인 동인이 무엇인지를 드러내는 조개껍질 속의 진주이다. 그리고 텅빈 인류를 향해 자신의 삶과 인격을 통해 채우시려는 예수님의 분투가 그 이후의 성경속에그려진다. 그리고 그분이 이제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우리가 주님과 함께 텅빈 이 시대를 채우는 값진 향기가 되어주기를…..
이연재 목사(라이드예수마음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