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바르 뭉크 : 세기말 영혼의 초상
수 프리도 / 을유문화사 / 2008.10.15
[절규]로 유명한 화가 뭉크의 전기. 노르웨이 태생의 뭉크는 세기의 전환기를 살면서 고독과 공포, 절망과 같은 감정을 형상화한 그림들로 표현주의 사조의 생성과 20세기 현대 미술의 진로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미술사가이자 작가인 수 프리도는 노르웨이어로 된 원자료들을 상세하게 검토하며 복잡한 정신 세계의 소유자였던 뭉크의 인간상을 치밀하게, 동시에 문학적 감수성을 가지고 그려내고 있다. 한편 컬러 도판 26점, 흑백 도판 46점을 수록하여 독자들이 뭉크의 예술을 파악하는 데 부족함이 없도록 구성 하였다.
○ 목차
오슬로 지도
노르웨이 부분 지도
옮긴이의 말
머리말
제목과 연대기상의 문제들
뭉크가 사용한 물감과 재료
제1부 흔들리는 생명
- 수줍은 영혼들, 1863년 이전
- 다시는 헤어지지 않으리, 1864~1868
- 크리스티아니아에서의 성장기, 1869~1875
- 핏빛 깃발, 1876~1877
- 신앙심의 상실, 1878~1881사치를 맛보다
제2부 영혼의 미술
- 나는 미술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1879~1881
- 갈색 소스는 이제 그만, 1882~1885
- 계산된 유혹, 1885
- 아침 식전의 몇 잔 술, 1883~1886
- 비누 미술과 영혼의 미술, 1886
제3부 위대한 시기
- 미덕은 사기다, 1886~1889
- 생클루 선언, 1889~1890
- 괴짜, 1890~1892
- 신은 죽었다. 베를린, 1892~1894
- 메멘토 모리, 1894~1896
제4부 삶의 프리즈
- 마법의 암살자, 1896~1900
- 삶의 춤, 1897~1899
- 죽음과 소녀, 1899~1901
- 총격, 1902
- 지옥의 자화상, 1903~1908
제5부 이루어지지 못한 바람
- 소름끼치는 광기의 얼굴, 1907~1909
- 태양, 태양, 1909~1916
- 내 영혼은 어디로 갈 것인가? 1914~1922
- 퇴폐미술, 1922~1940
- 죽음이 나를 인도하다, 1940~1944
지은이 주
에드바르 뭉크 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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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소개 : 수 프리도 (Sue Prideaux)
수 프리도는 소설가이자 전기 작가이다. 영국에서 태어나 노르웨이에서 세례를 받았고 두 나라를 오가며 유년 시절을 보냈다. 피렌체, 파리, 런던에서 미술사를 공부했다. 그녀의 할머니 키스 베넷은 위대한 탐험가 로알 아문센과 플라토닉한 연인 사이였고, 덴마크 왕실 부부, 노르웨이 왕 하콘 7세와 올라프 5세와 사교계에서 교류했다. 그녀의 대모 헨리에테 올센은 노르웨이의 대표적인 선박 기업 프레드 올센 그룹의 창립자 페테르 올센의 손자였던 토마스 올센의 아내였다. 헨리에테는 남편 토마스와 함께 오랫동안 뭉크의 주요 후원자였으며, 뭉크는 감사의 뜻으로 직접 헨리에테의 초상화를 그려주기도 했다. 이러한 환경 덕분에 수 프리도는 노르웨이의 대표적인 예술가 뭉크의 삶과 작품을 영미권에 전달하기에 적합했다. 2005년에 펴낸 《에드바르 뭉크: 세기말 영혼의 초상 – Edvard Munch: Behind the Scream》는 〈뉴욕 타임스〉로부터 “평전을 문학 작품의 경지로 승화시켰다”는 격찬을 받았으며, 영국의 가장 오래된 문학상인 ‘제임스 테이트 블랙 기념상 : James Tait Black Memorial Prize’ 전기 부문을 수상했다. 또한 2012년에는 스웨덴의 극작가이자 소설가인 아우구스트 스트린드베리의 삶을 조명한 《스트린드베리의 삶 – Strindberg: A Life》을 펴내어 “매혹적인 전기”라는 평을 받으며 ‘더프 쿠퍼상 : Duff Cooper Prize’을 수상했다. 사무엘 존슨 상 ‘Samuel Johnson Prize’의 최종 후보로도 꼽혔다. 이 책 《니체의 삶》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철학자에 관한 색다른 전기이다. 수 프리도는 누구보다 뛰어난 통찰력과 냉철한 시각을 지니고도 누구보다 고독하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던 니체의 세계로 파고들어 그동안 잘못 알려진 사실들을 철저히 바로잡고, 그의 삶과 글을 형성한 사건과 사람들을 집중 조명하여 그의 철학을, 그의 자전적 이야기를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생생하게 그려냈다. 《니체의 삶》은 타임스가 뽑은 2018 올해의 전기, 뉴욕 타임스 에디터가 선정한 올해의 책 등에 이름을 올렸으며, 2019년에 100주년을 맞이한 영국의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인 호손덴상 (Hawthornden Prize)을 수상했다. 이 책에 대해 호손덴상 심사위원 전원이 니체라는 복잡하고 어려운 인물의 삶을 명료하게 잘 써냈다고 동의했으며 심사위원장이었던 옥스퍼드 대학교 영문학 명예교수 허마이오니 리 (Dame Hermione Lee)는 “이 책은 니체에 대한 기존의 관점을 완전히 바꾸어놓는 훌륭한 문학 작품”이라고 평했다.
역자 : 채운 (본명 : 윤세진)
1970년에 태어났다. 십대에는 잠깐 ‘훌륭한 화가’가 되고 싶었던 적도 있었다. 물론, 오래지 않아 알게 됐다. 별 재능도 없을뿐더러, 내가 직접 하는 것보다는 누군가가 해놓은 걸 요리조리 살피고 글로 풀어내는 일을 더 흥미로워 한다는 걸. 그러다 시간이 흐르고 공부가 깊어질수록 알게 된 사실 또 하나. 모든 고귀하고 훌륭한 것은 ‘예술적’이라는 것! 비예술의 지대를 공부하는 과정에서 비로소 ‘예술적인 것’의 의미를 새롭게 터득한 셈이다.
마흔이 넘고 나니, 이제껏 공부해 온 것들이 이렇게 저렇게 조금씩 짜이기 시작하는 느낌이 든다. 그러다가 또 어느 틈엔가 구멍에 빠지겠지만, 뭐 그런대도 별 두려움은 없다. 지금은 그저 지금으로 충분하다. 공부할 것들이 산더미처럼 많고, 함께 공부할 벗들이 곁에 있으니. 2013년 여름, 몇몇 벗들과 작은 공간을 열었다. ‘고전비평공간 규문 (奎文)’ (http://qmun.org) 이 그것. 다른 욕심은 없다. 나와 나의 벗들이 공부의 참맛을 알게 되었으면. 그 힘으로 무소의 뿔처럼 씩씩하게 살아갈 수 있었으면. 한 가지 더. 능력이 된다면, 우리의 말과 글로 미지의 벗들에게 공부의 기쁨을 전염시킬 수 있었으면!
글쓰고 강의하는 것을 업으로 삼고 있다. 사람들이 종종 묻는다. 공부를 해서 뭘 할 수 있냐, 공부를 하면 뭐가 좋으냐고. 이제 알 것 같다. 공부는 뭘 하기 위한 조건이 아니라 그 자체로 모든 것임을. 공부를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능력이고 기쁨이다. 공부를 시작했을 때는 근대가 화두였다. 근대를 좀더 멀리서 조망해 보고 싶다는 생각에 동서양 고전을 읽기 시작했다. 신천지를 만난 듯했다. 이 공부를 언제 다 하나 싶은 막막함과, 평생을 공부해도 지루하지 않겠다는 안도감이 동시에 들었다. 이때부터가 내 공부의 황금시대라 할 수 있겠다. 천지가 공부할 것들로 가득함을 보았기 때문이다. 적어도, 공부할 게 없어서 지치는 일은 없지 않겠는가. 앞으로는, 고대부터 현대까지의 동서양 담론들을 횡단하면서 텍스트를 재독해하고, 개념과 사유를 현재적으로 재해석하는 작업을 하고 싶다. 어렵고 힘들 것이다. 그래도 함께 공부하는 스승과 벗들이 있으니, 다행이다.
서울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미술’ 개념의 탄생과 근대적 미술인식」을 비롯한 근대미술 관련 논문을 다수 발표했다. 대학 시절, 문학은 평생 공부할 만한 것이 못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요즘 들어 문득, 문학이 내 글쓰기와 사고방식에 톡톡한 영향을 미쳤음을 깨닫는다. 남산강학원에서 하는 공부는 잡다한 편이다. ‘횡단적 공부’쯤으로 미화할 수 있겠다. 동서양 철학을 횡단하면서 문제들을 새롭게 구성하고, 다른 글쓰기를 시도하려 분투 중이다. 이후의 작업은 이 좌충우돌 고군분투의 산물이 될 듯하다.
지은 책으로는 『언어의 달인, 호모 로퀜스』(2007), 『예술의 달인, 호모 아르텍스』(2007), 『근대와 만난 미술과 도시』(공저, 2008),『재현이란 무엇인가』, 『느낀다는 것』, 『글쓰기와 반시대성, 이옥을 읽는다』이 있고, 남산강학원 친구들과 함께 『고전 톡톡』과 『인물 톡톡』을 기획하고 썼다. 옮긴 책으로는 『에드바르 뭉크·세기말 영혼의 초상』(2008)이 있다. 현재 서울대와 강원대에서 강사로 활동하면서 연구 공간 수유+너머에 연구원으로 있다.
○ 책 속으로
《카를 요한 거리의 저녁》을 보면, 군중의 얼굴에서는 개성이 제거된 반면 세부 의상(모자의 리본 등)은 꼼꼼하게 묘사되었기 때문에 더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흡사 해골처럼 단순하게 그려진 얼굴은 타인과 절대로 나눠 가질 수 없는 인간의 보편적인 고독을, 그리고 “심판에 대한 고뇌와 죽음의 고통”을 표현한다. 《고뇌》는 마침내 《절규》로 이어진다. 우리를 향해 다가오는 군중은 군중 속의 개인뿐 아니라 전체 군중을 대표하는 하나의 얼굴로 수렴된다. 절규하는 해골이 오랫동안 기다리던 크리스티안의 얼굴인지, 레우라의 얼굴인지, 뭉크 자신의 얼굴인지, 아니면 거울에 비친 우리 자신의 얼굴인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것은 우리 모두의 얼굴이기 때문에 굳이 하나만 따로 언급할 수 없다. — p.43~44
에드바르는 소피의 죽음이 가져온 정신적 충격에서 완전하게 벗어나지 못했다. 그녀에 대한 스산한 그리움은 평생토록 가시지 않았다. 또다시 어머니를 잃은 것이다. 신은 그의 약속을 저버렸다. 아버지는 그녀의 목숨을 구할 수 없었다. 아버지의 신앙은 결국 그의 의술만큼이나 무능력했다. 병과 죽음이라는 잔혹한 부조리 앞에서 신의 무용함과 아버지의 무능함이 폭로되고 만 것이다. 하지만 에드바르는 소리 지르고 욕하는 대신 묵묵히 자신의 신을 부정하고 자신의 피를 저주했다. 내적인 삶과 외적인 삶 사이의 간극은 더 넓어지고, 더 영구적으로 고착되었다. 뭉크는 착실한 아들이자 다정한 형제, 성실한 학생으로서 묵묵히 자신이 할 일을 해나갔다. 그는 소피가 숨을 거둔 그 의자를 평생 간직했다. 지금도 뭉크 박물관에 가면 그 의자를 볼 수 있다. — p.78~79
이에 대한 뭉크의 대답이 바로 《사춘기》였다. 잊히지 않을 만큼 강렬한 내면풍경을 보여 주는 이 작품에는, 이제 곧 여자가 되려는 한 소녀가 침대 모서리에 앉아 있고, 침대 시트는 그녀의 첫 생리혈 자국으로 얼룩져 있다. …(중략)… 《사춘기》는 불안을 표현한 첫 번째 작품이자, 더 넓은 미술사적 견지에서 보면 여성 누드화로서는 선구자적인 작품이다. 사춘기의 공포라는 주제는 완전히 현대적이다. 뿐만 아니라 스물세 살의 남성이 그리겠다고 생각하기에는 평범하지 않은 주제이기도 하다.
뭉크의 아버지는 전시회에 가겠다는 의사를 밝힘으로써 그를 놀라게 했는데, 거기에 《사춘기》가 걸려 있었던 것이다. 뭉크는 아버지를 당혹스럽게 하지 않으려고 그 커다란 캔버스 위에 덮개를 씌웠다. 그도 그럴 것이, 미술사 교수가 성경 위에 손을 얹고서 누드는 순수하고 아름다운 것이며, 때문에 누드의 ‘예술적’ 재현을 보는 것은 죄를 짓는 게 아니라고 공적으로 맹세한 게 미술관이 개관하기 불과 3년 전 일이었으니 말이다. — p.187
모든 자화상이 얼마간은 영혼의 초상이라고 한다면, 《절규》는 가시적인 것들을 최대한 벗겨낸 영혼의 초상이다. 다시 말해 그것은 가시적인 것 이면(裏面)의 이미지요, 자신을 응시하는 눈의 뒷면이었다. ‘우리는 영혼을 그린다.’ 《절규》는 현대인의 딜레마에 대한 그림으로, 즉 “신은 죽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그를 대신할 아무것도 없다”라는 니체의 외침에 대한 시각화한 것으로 여겨졌다. …(중략)… 분명한 건, 《절규》가 하나의 상징으로서 뭉크의 요구조건을 충족시켰다는 사실이다. 물론 상징주의자들의 요구조건을 충족시킨 건 아니었지만, 그것은 복수적인, 거의 무한한 해석의 가능성을 갖고 있다. 하지만 최후의 변(辯)은 결국 뭉크의 몫이다. “몇 년 동안 나는 거의 미쳐 있었다. 광기에 대한 공포가 비틀린 고개를 쳐들던 시기였다. 내 그림 《절규》를 아는가? 나는 극도로 긴장된 상태였다. 내 피 속에서 자연이 절규하고 있었다. 나는 한계점에 와 있었다. … 당신은 내 그림을, 그 전부를 알고 있다. 난 그 모든 걸 느꼈다. 그 후로 나는 다시 사랑할 수 있으리란 희망을 버렸다.” — p.279
○ 출판사 서평
- 불안과 죽음에 잠식된 뭉크의 예술을 문학적 감수성과 엄밀한 고증으로 밝혀낸 걸작 전기
대표작 《절규》와 마찬가지로 뭉크의 삶에도 불길한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 있었다. 어릴 때부터 죽음과 질병에 대한 공포는 뭉크의 삶을 짓눌렀다. 뭉크 자신이 몸이 약했을 뿐 아니라 다섯 살 때부터 서른두 살이 되기까지 어머니를 시작으로, 누나, 아버지, 남동생의 죽음을 차례로 감당해야 했다. 기혼자였던 첫 번째 연인으로부터 받은 상처와 또 다른 연인에게 총격을 입은 사건은 그로 하여금 정상적인 여성상을 형성하는 데 장애가 되었다.
이미 어릴 때부터 그림으로써 마음속의 상처를 위로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에게 예술은 벼랑 끝의 자기 구원이자 신앙이었다. 그는 보이는 대로 그리기보다 인간 영혼의 보편성을 포착해내기를 원했으며 19세기 말의 허무주의, 무정부주의, 악마주의를 배경으로 한 그의 예술은 베를린 분리파와 표현주의의 태동에 영향을 미쳤다.
그는 엄청난 분량의 일기와 서한을 남겼는데, 현재 오슬로의 뭉크 미술관에서 많은 자료를 소장하고 있다. 이 책에서 저자 수 프리도는 그 자료들을 성실하게 고증하는 한편, 등장인물들의 심리에 대한 탁월한 묘사로 독자들의 생생한 감정이입을 이끌어내고 있다.
이 책은 화가의 전기이기도 하지만, 용광로처럼 들끓었던 세기말 세기초의 문화적 정신적 풍경을 알려주는 한 권의 문화사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내면의 화가였던 뭉크의 정신적 삶을 묘사하기 위해 저자는 당대를 휩쓴 다윈주의, 공산주의, 과학주의, 악마주의와 같은 사조들을 비롯하여, 뭉크가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했고 결코 피상적인 관계를 맺지 않았던 도스토옙스키와 니체의 영향에 대해서도 많은 시사를 던지고 있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