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곤주 목사의 원문중심 성경강해 시리즈
제3강 복음안에서 누리는 은혜(롬 1:8-11)
8먼저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 모든 사람에 관하여 내 하나님께 감사함은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9내가 그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시거니와 항상 내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하며10어떻게 하든지 이제 하나님의 뜻 안에서 너희에게로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하노라11내가 너희 보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은 어떤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누어 주어 너희를 견고하게 하려 함이니(롬 1:8-11).
사도 바울을 인사(1:1-7)를 마친후에 로마에 있는 신자들의 칭찬할 만한 점에 대해 감사를 표시함으로서 그의 서신을 시작합니다 (1:8). 이렇게 감사와 기도의 내용으로 시작하는 것은 바울서신들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사도 바울은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된데 대해 감사드리고 있는데 이것은 당시에 지중해 지역을 중심으로 ‘온 세상’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 ‘내가 그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 항상 내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한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1:9).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복음안에서 너희를 위하여 쉬지 않고 기도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실 로마에 있는 교회들은 사도 바울이 시작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마의 교회들(가정교회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참조, 고후 11:28). 당시에는 로마에 하나의 교회 건물이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다시말해서, 로마의 도시에 여러 가정교회들이 흩어져 있었고, 이 편지는 그러한 로마의 가정 교회들에게 보내는 것입니다 (롬 16장 참조). 이처럼 교회는 크든 작든 간에 모두가 그리스도의 한 몸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경쟁 의식을 가지고 숫자 증가에 여념이 없다면 그것은 이미 교회의 참 모습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교회의 본질은 복음안에서 이루어지는 사랑과 섬김의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로마의 가정 교회들을 방문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11절 말씀을 보면,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누어 주어 너희의 신앙을 견고하게 하기 위해서 내가 너희를 간절히 보기 원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신령한 은사’란 영어로 ‘spiritual gift’ 즉 ‘영적인 선물’이라고 하는데 그 의미에 대하여 다른 해석들이 있습니다.
첫째는 이 신령한 은사가 ‘신령한 영적 은사들’이라고 이해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방언과 예언의 은사, 구제와 섬기의 은사, 가르치는 은사와 지도력의 은사등, 로마서 12장과 고린도 전서 12장, 그리고 에베소서 4장에 나오는 모든 종류의 은사들을 의미한다고 해석하는 것입니다. 두번째는 이러한 신령한 영적인 은사들은 아닐 지라도 어떤 영적 축복(blessing)의 의미에서 사용되었다고 이해하는 것입니다 (15:27). 세번째 해석은 여기서 말하는 신령한 은사가 ‘복음의 은혜’을 의미한다고 이해하는 것입니다. 이 가운데 세번째 해석이 문맥의 의미상 가장 바람직한 것으로 여겨 집니다. 그러나 첫번째와 두번째 해석도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다고 여겨집니다.
이렇게 신령한 은사(영적 은혜)를 복음의 은혜라고 이해하는 것은 “은사”라는 단어의 본래 의미를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 할수 있습니다. ‘은사’라고 번역한 이 단어는 헬라어로 ‘카리스마’ (χάρισμα)입니다. ‘카리스마’라는 이 단어는 ‘선물, 은사, 은혜’ 라는 기본적인 뜻이 있습니다. 따라서 ‘은사’라고 번역된 ‘카리스마’를 ‘은혜’라고 번역하는 것이 합당합니다. 그래서 ‘신령한 은사’라는 표현은 ‘복음의 은혜’라고 이해하는것이 더 합당합니다.
물론 ‘신령한 은사’를 더 넓은 의미로 생각해 본다면, 다양한 영적인 은사나 은혜들을 포함하는 의미일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교회는 다양한 은혜와 은사들이 필요합니다 (롬 12: 고전 12장; 엡 4장 참조). 그래서 본문 말씀에서 사도 바울은 로마 교회의 성도들을 만나기 원하는 이유가 그들에게 신령한 은사 혹은 신령한 은혜를 나누어 주기 위해서라고 이해 할수 있습니다.
하지만 본문의 문맥안에서 살펴볼때, 여기서 표현한 ‘신령한 은사’란 곧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복음과 그로 인한 은혜를 의미한다고 이해하는 것이 가장 합당합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1 장 15절에 나오는 ‘내가 너희에게 복음 전하기를 원한다’는 말씀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의 간절한 바람은 말씀 사역을 통해서 로마에 있는 성도들의 영적 성장을 돕고 그결과 말씀안에서 그들의 믿음이 더욱 견고해지고 영적인 은혜를 누리도록 하는데 있다고 이해 할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로마에 있는 성도들이 복음을 다시 들어야 하는지 이유는 분명해 집니다. 복음은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들만 들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앞에서 복음이란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말씀 드렸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복음 (헬, ‘유앙겔리온’) 이란 영어로 ‘좋은 소식’ 혹은 ‘좋은 메세지’라는 뜻입니다. 그 복음의 핵심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는 메세지가 복음이고, 그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진리의 말씀 (즉, 하나님의 말씀)이 기쁜 소식이요 복음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이라는 말을 지나치게 좁은 의미로만 이해 해서 ‘죄-십자가-구원-영생’ 이라는 하나의 도식으로만 이해하면 곤란합니다. 그것이 복음의 핵심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복음의 전부는 아닙니다. 복음은 ‘죄-십자가-구원-영생’ 이라는 가장 단순한 도식에서 출발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진리의 말씀들 (하나님의 말씀)을 포함합니다.
그러므로 복음의 내용은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특별히, 복음은 신앙의 뿌리와 같다고 말할수 있습니다. 뿌리가 튼튼한 나무는 잘 자라고 좋은 열매들을 맺기 마련입니다. 마찬가지로 신앙이 쉽게 흔들리는 신자들은 복음이라는 신앙의 뿌리가 약하기 때문입니다. 신앙 생활을 아무리 오래 해도 신앙의 변화가 없고 신앙의 열매가 없는 것은 뿌리에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뿌리가 건강하고 튼튼한 나무와 그렇지 못한 나무는 그 열매를 보면 알수 있듯이 복음을 믿는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특별히 교회안에 있는 어떤 신자들은 자신들이 더 이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반복해서 듣는 것이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종종 있습니다.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될까요? 복음을 지식으로만 알고 있을뿐 가슴으로 느끼지 못하고 경험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다시말해서, 십자가의 복음이 무엇인지는 많이 들었고, 그래서 지식적으로 잘 알고 있지만 실제로 삶속에서는 그 복음(말씀)의 능력을 누리는 못하는 신앙 생활을 하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단순한 지식이 아닙니다. 복음은 생명입니다.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이 단지 지식과 정보에 불과할 수 있지만, 그 십자가의 사건과 부활의 사건이 가슴으로 느껴지고 영혼으로 부딪쳐서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고 성령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복음은 생명이고 능력의 근원이 됩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복음을 가슴으로 경험하지 못했다면 복음을 다시 들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을때 복음의 감격을 경험했지만 지금은 그런 은혜와 감동이 없다면 복음을 다시 들어야합니다.
삶의 진정한 의미, 삶의 원동력이 복음안에 있습니다. 그래서 복음의 감격이 살아있는 사람은 어떤 어려움과 고난앞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복음안에서 살아갈때 우리의 신앙은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은혜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자라가고 견고해져 가는 것입니다.
일본 동경에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제국호텔 (Imperial Hotel)이 있는데 이 호텔은 당대 최고의 건축가인 미국인 프랭크( Frank L. Wright)씨의 의해서 세워졌다고 합니다. 당시에 기초공사를 하는데 2년이 소요되었고 그로 인해 늘어난 공사 기간 때문에 비용도 처음 예상 보다 두 배나 더 들어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동경에 대 지진이 일어났을 때, 수 많은 건물들이 붕괴되고, 도로마저 유실되었지만 제국호텔만은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견고한 기초공사 때문에 대 지진을 견딜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복음의 뿌리가 깊이 내리는 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래서 복음을 붙들고 복음에 감격하는 신앙 생활이 되어야 하고 복음안에서 그 신앙이 성장하면서 어떠한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는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그 복음을 전하지 않고는 견딜수 없는 빚진 자의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우리의 신앙 생활은 복음 안에서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는 성도의 교제안에서 우리의 신앙은 자라고 견고해지는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11 -12절에서 내가 너희 보기 원하는 것은 첫째로 신령한 은사와 은혜를 나누어 주기 위해서요, 두번째는 너희와 함께 있으면서 서로가 위로 받고 서로 힘을 얻는 성도의 교제를 위해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2-15절 강해는 다음 편에서 이어 집니다).
여러분의 가슴이 십자가의 복음을 깊이 경험하고 진리의 복음안에서 깊은 믿음의 뿌리를 내리고 복음의 은혜안에서 자라가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삶이 복음의 신령한 은혜를 누리면서, 그 안에서 성도의 교제를 나누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신앙 생활이 되시길 바랍니다.
김곤주 목사(시드니새언약교회 담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