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토론모임 시드니시나브로, 2022년 2월 온라인 모임에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와 ‘탐욕의 시대 : 누가 세계를 더 가난하게 만드는가?’ 나눠
3월 모임은 3월 9일과 23일 (수, 오후 5시), 중고서적 기증과 구입도 환영 [2월 23일 발제 전문 포함]
매월 둘째, 넷째 주 수요일 모임을 갖는 독서토론모임 ‘시드니 시나브로’ (지도 구본영 교수)가 방학을 마치고 2022년 2월 모임을 지난 2월 9일(수)과 23일(수) 임운규 회원의 온라인 발제로 가졌다.
2월 9일 모임에는 다치바나 다카시의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 (다치바나 다카시 저, 청어람미디어 출판, 2001년), 23일 모임에는 장 지글러의 ‘탐욕의 시대 : 누가 세계를 더 가난하게 만드는가?’ (장 지글러 저 / 갈라파고스 출판 / 2008년) 발제로 나눴다.

9일 임운규 회원은 서두에 “본서는 지난해 (2021년) 4월 30일 별세한 일본 최고의 저널리스트 겸 평론가인 다치바나 다카시 (Takashi Tachibana, 1940년 5월 28일 ~ 2021년 4월 30일)의 독서론, 독서술, 서재론 등이 기술되어 있다. 보통 본서의 저자인 다치바나 다카시를 ‘지 (知)의 거장’이라 칭한다. 다치바나 다카시도 유명하지만 그의 서재 ‘고양이 빌딩’은 매우 유명하다. … 그는 한 사람을 취재하기 위해 대담료보다 더 많은 책을 사보고, 학생들을 가르치며 번 돈으로 페르시아 가정교사를 고용하던 시절 이야기, 정말 원하는 책 골라보는 법, 고양이빌딩을 짓기까지 서가 제작과 건축에 대한 저자 나름의 독특한 기준, 넘쳐나는 책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 공모하게 된 비서모집 체험기, 현재 일본 출판 시장의 상세한 현황과 미래에 대한 조망 까지 지 (知)의 거장답게 깔끔하면서도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라고 언급한 후 목차순으로 요약했으며, 느낀점으로 “다카시의 책읽기는 대부분 글쓰기를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독서와는 구별이 되고, 본서가 출판된 2001년 시대적 정황 및 각각의 개인적 상황이 다르겠지만 능동적이고 구체적이며 동시에 아주 실용적인 독서의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고 했다. 또한 본서에서 다카시가 강조한 14가지 독서법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1) 책을 사는 데 돈을 아끼지 말라. 2) 하나의 테마에 대해 책 한 권으로 다 알려고 하지 말고, 반드시 비슷한 관련서를 몇 권이든 찾아 읽어라. 3) 책 선택에 대한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 실패없이는 선택 능력을 익힐 수 없다. 4) 자신의 수준에 맞지 않는 책은 무리해서 읽지 말라. 수준이 너무 낮은 책이든, 너무 높은 책이든 그것을 읽는 것은 시간 낭비이다. 5) 읽다가 중단하기로 결심한 책이라도 일단 마지막 쪽까지 한 장 한 장 넘겨 보아라. 의외의 발견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6) 속독법을 몸에 익혀라. 가능한 한 짧은 시간 안에 가능한 한 많은 자료를 섭렵하기 위해서는 속독법밖에 없다. 7) 책을 읽는 도중에 메모하지 말라. 8) 남의 의견이나 북 가이드 같은 것에 현혹되지 말라. 9) 주석을 빠뜨리지 말고 읽어라. 주석에는 때때로 본문 이상의 정보가 실려 있기도 하다. 10) 책을 읽을 때는 끊임없이 의심하라. 활자로 된 것은 모두 그럴듯하게 보이는 경우가 많지만, 좋은 평가를 받은 책이라도 거짓이나 엉터리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11) ‘아니, 어떻게?’라고 생각되는 부분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을 발견하게 되면 저자가 어떻게 그런 정보를 얻었는지, 또 저자의 판단 근거는 어디에 있는지 숙고해 보라. 12) 왠지 의심이 들면 언제나 원본 자료 혹은 사실로 확인될 때까지 의심을 풀지 말라. 13) 번역서는 오역이나 나쁜 번역이 생각 이상으로 많다. 번역서를 읽다가 이해가 잘 되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머리가 나쁘다고 자책하지 말고 우선 오역이 아닌지 의심해 보라. 14) 대학에서 얻은 지식은 대단한 것이 아니다. 사회인이 되어서 축적한 지식의 양과 질, 특히 20, 30대의 지식은 앞으로의 인생을 살아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중요한 것이다. 젊은 시절에 다른 것은 몰라도 책 읽을 시간만은 꼭 만들어라.”는 14가지를 요약했다.

이어 23일(수)에는 ‘탐욕의 시대 : 누가 세계를 더 가난하게 만드는가?’ (장 지글러 저 / 갈라파고스 출판 / 2008년)을 발제하며 서두에 “실천적인 사회학자이며, 기아문제에 관한 저명한 연구자로서 오랜 기간 유엔 인권위원회 식량특별조사관으로 활동해온 저자 장 지글러는 누가 이 세계의 빈곤화를 주도하고 있는지, 부의 재편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는지, 기아와 부채가 가난한 자들의 발목을 어떻게 옭아매고 있는지 등의 내용을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 ‘신흥 봉건제후들’이라 불리는 거대 민간 다국적 기업들과, IMF, IBRD, WTO 등 시장원리주의와 세계화를 맹신하는 신자유주의적 국제기구들, 무기를 팔아 돈을 벌고 희귀재와 자원을 이용해 전쟁과 폭력의 조직을 일삼는 ‘제국’들, 사적 자본의 축적을 위해 국가의 미래는 나 몰라라 하는 일부 부패한 권력층의 실체를 고발하고, 그에 대항한 전 세계 시민들의 즉각적인 연대를 촉구하고 있다.”고 언급한 후 “본서는 저자 지글러는 객관적인 통계자료, 구체적인 현실 사례, 냉철하고도 논리적인 분석, 지글러 특유의 거침없는 언변을 담아 ‘누가 세계를 더 가난하게 만드는가?’란 부제처럼 누가 이 세계의 빈곤화를 주도하고 있는지, 부의 재편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는지, 기아와 부채가 가난한 자들의 발목을 어떻게 옭아매고 있는지 등의 내용을 심도 있게 다룬다. 오늘날 인류가 처한 비참함의 정도는 인류 역사상 그 어느 시대에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참담하다. 지글러에 의하면 5세 미만의 어린아이들 중에서 1천만 명 이상이 해마다 영양 결핍이나 각종 전염병, 오염된 식수, 비위생적인 환경 때문에 목숨을 잃는다. 이 희생자들의 50퍼센트는 지구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6개국에서 발생하며, 이 수치의 90퍼센트가 남반구 국가들 42퍼센트에 집중되어 있다. 그리고 이같은 현실을 만들어 낸 자들은 “제조업, 은행업, 서비스업, 상거래에 종사하는 거대 다국적 민간 기업들” (신흥 봉건제후들)이라 지목한다. 이들이 ‘부채’를 통해 한 나라를 쥐락펴락하며 빈곤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이같은 현실에 대해 저자가 내어놓는 희망은 바로 ‘연대’이다. 부채의 멍에에서 벗어나기 위해 제3세계 국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전략적 수단으로 채무국끼리의 동맹체 구성을 제시하고 있으며, 인간답게 살 권리의 가장 기본인 ‘먹고 살 권리’를 모두가 누릴 수 있도록 강력한 연대를 요청하고 있다. 이에 본서는 ‘탐욕의 시대’에 바로 인권을 호소하는 ‘인권선언문’과도 같다.”고 했다. 이어 요약으로 “1장 ‘인간은 누구나 행복할 권리가 있다’에서는 프랑스 혁명을 주도했던 일부 혁명가들의 사회정의를 위한 투쟁을 살펴보고, ‘인간의 행복’을 열망한 그들 투쟁의 역사가 200년이 지난 현 시점에도 여전히 유효함을 생각해본다. 더불어 거대 다국적 민간 기업에 의해 주도되고 있는 세계의 봉건화 추세와 이들에 의해 철저히 구조화되고 있는 전쟁과 폭력의 사례들을 들여다본다. 2장 ‘무엇이 가난한 자들을 더 가난하게 만드는가?’에서는 가진 것 없는 약자들의 삶을 가공할 위력으로 파괴하고 있는 부채와 기아의 원인과 배경, 그 심각성을 살펴본다. 3장 ‘에티오피아, 희망의 불씨는 꺼지지 않았다’와 4장 ‘브라질, 혁명은 계속된다’에서는 다국적 기업이 주도하는 커피 가격의 폭락 정책으로 나라의 온 경제가 파탄나버린 에티오피아의 상황과, 천문학적인 외채로 인해 국민의 대다수가 빈민으로 전락한 브라질의 현재를 돌아본다. 동시에 이들 나라에서 모색되고 있는 새로운 연대의 움직임을 알아본다. 5장 ‘탐욕의 시대는 어떻게 봉건화되는가?’에서는 첨단기술과 막대한 자본, 강력한 연구소들로 무장한 민간 다국적 기업들이 약육강식의 세계질서를 어떻게 고착화하고 있는지 해당 기업의 실명과 실제사례를 통해, 자본에 눈 먼 자들의 이중성을 낱낱이 해부한다.”며 느낀점으로 “유엔 특별식량조사관을 역임한 기아전문가 장 지글러가 목도한 21세기 민주주의 시대의 ‘신흥 봉건제후들’은 IMF, IBRD, WTO, 거대 다국적 민간 기업 등이다. 지글러는 이들 자본의 전제군주들의 만행을 고발한다. 시장원리주의와 세계화를 맹신하는 신자유주의적 국제기구들, 무기를 팔아 돈을 벌고 희귀재와 자원을 이용해 전쟁과 폭력의 조직을 일삼는 ‘제국’들, 사적 자본의 축적을 위해 국가의 미래는 나 몰라라 하는 일부 부패한 권력층의 실체를 고발하고, 그에 대항한 전 세계 시민들의 즉각적인 연대를 촉구하고 있다. 지글러는 노동조합 지도자가 아니며, 인민해방전선을 이끄는 리더도 아니다. 그저 제한적인 영향력을 가진 한 명의 지식인일 뿐이다. 돌아다니며 목격한 세계에 대한 진단을 제시한다. 현재 이 세계를 지배하는 약육강식의 질서에 대응하는 것은 시민들의 몫이다.”라며 발제를 마쳤다.
한편 시드니시나브로 다음모임은 3월 9일(수)과 23일(수) 오후 5시 온라인으로 모인다.
독서토론모임 시드니시나브로는 독서에 관심있는 분 누구나 환영한다. ‘시드니 시나브로’의 목적은 “독서를 통하여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해외생활의 무료함을 달래주기 위함”이며, 목표는 “창의적 사고와 합리적 사고, 그리고 융합적 사고를 통하여 삶의 비전을 구체화시키기 위함”이다. 운영방식은 독서안내자가 책을 선정하여 소개하면 독서회원 각자가 주1회 장별로 읽고 요약하여 발표한 후 상호의견을 교환하는데, 모임은 매월 2, 4주째 수요일 오후 5시에 모인다.
구본영 교수와 함께하는 독서토론모임에 관심있는 분들은 전화 (0415 706 784)나 이메일(kbymb@hanmail.net)로 문의하면 된다.
‘시드니 시나브로’는 도서기증을 환영한다. 또한 중고책방 (이스트우드 하모니센터)도 운영해 해외에서 구입하기 어려운 고가의 책자를 저가에 구입하도록 돕는다. 도서기증이나 중고서적 구입을 원하는 분들은 아래의 문의처로 연락하면 된다.

– 독서토론모임 시드니시나브로, 2022년 3월 모임 안내
.모임: 매월 2, 4주째 수요일 오후 5시
.3월 9일과 3월 23일
.아래 문의처로 연락주시면 온라인 모임에 합류됩니다.
지도 구본영 교수 (0415 706 784, kbymb@hanmail.net)
총무 임기호 목사 (0414 228 660, kiholim72@gmail.com, 중고서적 기증·구입 문의)
간사 임운규 목사 (0425 050 013, woon153@daum.net)
독서토론모임 시드니시나브로 2월 23일 발제전문
탐욕의 시대 : 누가 세계를 더 가난하게 만드는가?
원제 : L’EMPIRE DE LA HONTE (2005)
장 지글러 저 / 갈라파고스 출판 / 2008.12.15

실천적인 사회학자이며, 기아문제에 관한 저명한 연구자로서 오랜 기간 유엔 인권위원회 식량특별조사관으로 활동해온 저자 장 지글러는 누가 이 세계의 빈곤화를 주도하고 있는지, 부의 재편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는지, 기아와 부채가 가난한 자들의 발목을 어떻게 옭아매고 있는지 등의 내용을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
‘신흥 봉건제후들’이라 불리는 거대 민간 다국적 기업들과, IMF, IBRD, WTO 등 시장원리주의와 세계화를 맹신하는 신자유주의적 국제기구들, 무기를 팔아 돈을 벌고 희귀재와 자원을 이용해 전쟁과 폭력의 조직을 일삼는 ‘제국’들, 사적 자본의 축적을 위해 국가의 미래는 나 몰라라 하는 일부 부패한 권력층의 실체를 고발하고, 그에 대항한 전 세계 시민들의 즉각적인 연대를 촉구하고 있다.
본서는 저자 지글러는 객관적인 통계자료, 구체적인 현실 사례, 냉철하고도 논리적인 분석, 지글러 특유의 거침없는 언변을 담아 ‘누가 세계를 더 가난하게 만드는가?’란 부제처럼 누가 이 세계의 빈곤화를 주도하고 있는지, 부의 재편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는지, 기아와 부채가 가난한 자들의 발목을 어떻게 옭아매고 있는지 등의 내용을 심도 있게 다룬다.
오늘날 인류가 처한 비참함의 정도는 인류 역사상 그 어느 시대에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참담하다. 지글러에 의하면 5세 미만의 어린아이들 중에서 1천만 명 이상이 해마다 영양 결핍이나 각종 전염병, 오염된 식수, 비위생적인 환경 때문에 목숨을 잃는다. 이 희생자들의 50퍼센트는 지구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6개국에서 발생하며, 이 수치의 90퍼센트가 남반구 국가들 42퍼센트에 집중되어 있다. 그리고 이같은 현실을 만들어 낸 자들은 “제조업, 은행업, 서비스업, 상거래에 종사하는 거대 다국적 민간 기업들” (신흥 봉건제후들)이라 지목한다. 이들이 ‘부채’를 통해 한 나라를 쥐락펴락하며 빈곤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이같은 현실에 대해 저자가 내어놓는 희망은 바로 ‘연대’이다. 부채의 멍에에서 벗어나기 위해 제3세계 국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전략적 수단으로 채무국끼리의 동맹체 구성을 제시하고 있으며, 인간답게 살 권리의 가장 기본인 ‘먹고 살 권리’를 모두가 누릴 수 있도록 강력한 연대를 요청하고 있다. 이에 본서는 ‘탐욕의 시대’에 바로 인권을 호소하는 ‘인권선언문’과도 같다.

○ 목차
들어가는 말 – 다시 연대만이 희망이다
1. 인간은 누구나 행복할 권리가 있다
유토피아를 꿈꾼 사람들
인위적으로 만들어지는 가난
제국의 존재 이유, 전쟁과 폭력
죽음으로 내몰린 국제법
제국과 성전주의자들의 야만성
2. 무엇이 가난한 자들을 더 가난하게 만드는가?
부채, 그 추악한 악성 종양의 실체
기아, 부조리와 파렴치의 극치
3. 에티오피아, 희망의 불씨는 꺼지지 않았다
‘부유한’ 전쟁 과부, 알렘 체하이에
커피 가격의 폭락, 시다모의 부조리한 녹색 기아
연대, 저항의 또 다른 이름

4. 브라질, 혁명은 계속된다
룰라, 가난한 노동자에서 혁명의 지휘관으로!
민주 혁명의 핵심 사업, 기아 제로 프로그램
외채와의 전쟁
5. 탐욕의 시대는 어떻게 봉건화되는가?
신흥 봉건제후, 거대 다국적 기업들의 횡포
유전무죄 무전유죄, 가진 자가 이기는 세상
유전자 변형 생물, 불공쟁 경쟁의 대표주자
베베이의 파렴치한 문어, 네슬레 왕국
노동조합은 안 돼!
돈 없으면 마실 수 없어요!
후안무치한 제후들
인권도 좋지만, 시장이 더 좋아!
끝맺는 말 – 다시 시작하자
저자 후기 / 옮긴이의 말 / 주
○ 저자소개 : 장 지글러 (Jean Ziegler)
스위스의 사회학자이자 유엔 인권이사회 자문위원. 프랑스 소르본대학교와 스위스 제네바대학교 사회학과에서 강의를 했으며, 제네바대학교 제3세계연구소 소장을 지냈다.
1981년부터 스위스 연방의회 사회민주당 의원직을 맡았고 2000년부터 2008년까지는 유엔 인권위원회 최초 식량특별조사관으로 활동하면서 전 세계 기아의 실태를 파헤치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실천적인 사회학자로 유명하며, 사회 구조 속에서 발생하는 빈곤과 불평등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글을 썼다.
쓴 책으로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굶주리는 세계, 어떻게 구할 것인가?’, ‘유엔을 말하다’, ‘인간의 길을 가다’ 등이 있다.
– 역자 : 양영란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파리 제3대학에서 불문학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코리아 헤럴드] 기자와 [시사저널] 파리 통신원을 지냈다. 옮긴 책으로 ‘철학자의 식탁’, ‘작가들의 비밀스러운 삶’, ‘혼자가 아니야’ 등이 있으며, 또한 김훈의 ‘칼의 노래’를 프랑스어로 옮겼다.
○ 내용 요약

1장 ‘인간은 누구나 행복할 권리가 있다’에서는 프랑스 혁명을 주도했던 일부 혁명가들의 사회정의를 위한 투쟁을 살펴보고, ‘인간의 행복’을 열망한 그들 투쟁의 역사가 200년이 지난 현 시점에도 여전히 유효함을 생각해본다. 더불어 거대 다국적 민간 기업에 의해 주도되고 있는 세계의 봉건화 추세와 이들에 의해 철저히 구조화되고 있는 전쟁과 폭력의 사례들을 들여다본다.
2장 ‘무엇이 가난한 자들을 더 가난하게 만드는가?’에서는 가진 것 없는 약자들의 삶을 가공할 위력으로 파괴하고 있는 부채와 기아의 원인과 배경, 그 심각성을 살펴본다.
3장 ‘에티오피아, 희망의 불씨는 꺼지지 않았다’와 4장 ‘브라질, 혁명은 계속된다’에서는 다국적 기업이 주도하는 커피 가격의 폭락 정책으로 나라의 온 경제가 파탄나버린 에티오피아의 상황과, 천문학적인 외채로 인해 국민의 대다수가 빈민으로 전락한 브라질의 현재를 돌아본다. 동시에 이들 나라에서 모색되고 있는 새로운 연대의 움직임을 알아본다.
5장 ‘탐욕의 시대는 어떻게 봉건화되는가?’에서는 첨단기술과 막대한 자본, 강력한 연구소들로 무장한 민간 다국적 기업들이 약육강식의 세계질서를 어떻게 고착화하고 있는지 해당 기업의 실명과 실제사례를 통해, 자본에 눈 먼 자들의 이중성을 낱낱이 해부한다.

들어가는 말 – 다시 연대만이 희망이다
우리는 오늘날 다시금 세계가 봉건체제로 변하는 시대를 맞고 있다. 전제군주적 (專制君主的) 지배자들이 다시 돌아온 것이다. 새롭게 진행되는 자본주의적 봉건사회는 지금까지 그 어떤 왕이나 교황도 누리지 못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한다. 세계에서 가장 막강한 500대 거대 민간 다국적기업들이 2006년 현재 전 세계 총 생산량의 52%를 좌우하고 있다.
2001년 9.11 테러를 계기로 새로운 봉건제후들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자원들을 독점했으며 민주주의를 파괴했다. 문명의 마지막 보루마저도 쓰러질 위험에 처해 있다. 국제법은 죽어가고 있으며, UN의 위상은 흔들리고 공격의 대상이 되고 있다. 세계화 지상주의를 표방하는 관료들이 전면에 나서고 있다. 이 책은 이같은 새로운 상황에 대한 현실인식에서 비롯되었다.
그들은 경쟁이라는 경제전쟁을 도구로 인간에게 공통으로 적용되는 도덕을 비껴 갈 수 있는 예외적인 체제를 마련했다. 적잖은 사람들이 현재 세계를 지배하는 약육강식의 질서를 움직일 수 없는 불변의 진리로 받아들인다.
경제는 자연적인 현상이 아니다. 경제란 그저 도구에 불과하며, 인류 공동의 행복이라는 단 하나의 목적을 위해 봉사하도록 해야 한다. 인류의 첨단기술과 막대한 자본, 강력한 연구소들로 무장한 민간 다국적기업들이 정의롭지 못한 질서를 고착시키는 주역이다.
투쟁은 아는 것에서 출발하며, 투쟁을 통해서만 자유와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물질적인 조건을 획득할 수 있다. 약육강식 체제를 파괴시키는 일이 세계 시민들에게 주어진 과제다.
1. 인간은 누구나 행복할 권리가 있다
– 유토피아를 꿈꾼 사람들
1792년 프랑스 혁명기 시위 동참자들은 궁 안에 남아있던 가구, 침구, 그릇 등 값비싼 물건들을 닥치는 대로 집어 갔다. 제일 먼저 노략한 물건을 등에 짊어지고 센 강 부두까지 걸어갔을 무렵, 그 지역을 지키던 민병대원들(자코뱅당)이 이들을 죽였다. 개인이 재산을 약탈하는 행위는, 비록 그 개인이 그토록 증오의 대상이던 국왕이라고 할지라도 가차없이 극형으로 다스렸다.
질서유지에 관한 이 일화는 새롭게 부상하는 계급, 즉 부르주아 상인과 산업혁명의 주역이 될 부르주아 제조업자들이 추구하던 사유재산 절대 불가침이라는 가치를 확실히 드러냈다. 이 가치로 말미암아 대혁명의 정신은 몰수되고 만다.
프랑스대혁명의 혁명주의자들 중 전 세계에서 사회정의를 실현하며 인간의 행복해질 권리를 최우선으로 여긴 사람들을 특별히 이상주의자라 불렀다. 이들은 모두 젊은 나이에 과격한 방식으로 목숨을 잃었다. 생쥐스트는 27세, 바뵈프는 37세의 나이에 단두대에서 처형당했다. 자크 루는 혁명정부가 사형을 선고하자 자결했다. 마라는 암살당했다.
– 인위적으로 만들어지는 가난
오늘날 과거보다 훨씬 강력하고 냉소적이며, 한결 야만적이고 교활한 새로운 봉건지배세력이 등장했다. 이들은 바로 제조업, 은행업, 서비스업, 상거래에 종사하는 거대 민간 다국적기업들이다. 이 새로운 봉건제후들은 자크 루, 생쥐스트, 바뵈프 등이 투쟁의 대상으로 삼았던 주식투기업자, 곡물거래업자, 아시냐 지폐 밀거래업자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들은 지구 전체를 대상으로 권력을 휘두른다. 이들은 세계화 지상주의자들이다.
아주 오래 전부터 힘 있는 자들은 부채라는 올가미로 약한 자들을 장악했다. 임금노동의 부채로 특징 지어지는 봉건사회에서는 영주들이 농노들을 빚으로 묶어 놓았다.
오늘날 지구는 재화와 부가 넘친다. 현대의 기아는 객관적인 결핍과는 아무런 상관관계도 없다. 새로운 봉건제후들은 철저하게 의도적으로 희귀재를 만들어 나간다. 이들이 만들어 내는 휘귀재는 순전히 이익극대화라는 논리에만 복종할 뿐이다. 재화가 희귀할수록 값은 올라간다. 풍요와 무료라는 개념은 세계화 지상주의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악몽이다. 이들은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백방으로 노력한다. 오직 희귀성만이 이익을 보장한다. 그러니 희귀성을 만들어 내야 한다.
세계화 지상주의자들은 특히 자연이 선사한 무상성이라면 질색이다. 자연의 무상성을 일종의 불공정 경쟁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이를 견디지 못한다. 유전자를 변형한 식물이나 동물에 대한 특허권, 수자원의 사유화 등은 참을 수 없는 이같은 무상성에 종지부를 찍으려는 안간힘의 결과다. 그러므로 서비스, 금융, 재화의 분야에 있어서 희귀성을 조직하는 것이야말로 이들이 최우선으로 삼는 임무다. 이러한 조직화된 희귀성으로 인해 지구상에 사는 수많은 인간들의 삶이 파괴되고 있다.
독점과 다국적화는 자본주의 생산방식의 기본이 되는 매개체다. 신봉건주의화, 자본의 자율화, 세계적 규모를 자랑하며 국익이나 국가의 규범에 감히 도전장을 내밀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강력한 금융그룹의 탄생 등이 프랑스대혁명 와중에도 이미 부상하기 시작했음을 수많은 역사학자들은 지적한다.
막시밀리앙 로베스피에르는 대혁명의 문화적이고 규범적인 성격을 강화하는 활동을 장려하면서 사유자본만은 예외로 삼았다. 그렇기 때문에 자크 루, 그라쿠스 바뵈프, 장 폴 마라 등은 로베스피에르를 강력하게 비난했다. 하지만 결국 로베스피에르가 승리를 거둔 셈이다.
1793년 4월 입법회의에서 로베스피에르는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재산의 평등은 한낱 허구에 불과하다.”
회의장에 앉아 있던 투기꾼, 신흥부자, 민중의 비참함을 이용해 대혁명 기간에 적잖은 금융이익을 챙긴 사람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로베스피에르는 이들에게 “나는 당신들의 재산에 손을 댈 마음은 추호도 없다.”고 말했던 것이다. 이 선언을 통해 로베스피에르는 의도야 어찌 됐든 사유자본에 세계지배의 길을 열어 준 셈이다.
세계화된 자본주의는 이제 자크 루, 생쥐베르, 바뵈프 등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단계, 즉 새로운 일자리 창출이나 노동자들의 근로조건 향상, 소비자들의 구매력 증가 등이 없는 빠른 지속 성장 단계에 도달했다.
“가난은 지옥이다.” – 찰스 디킨스.
– 제국의 존재 이유, 전쟁과 폭력
상호성의 단절은 재앙을 낳는다. 구조적인 폭력은 결코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자원의 배분체계에서 여지없이 드러난다.
세계화 지상주의자들은 UN 헌장에 명시되어 있는 집단안전, 인권, 국제법의 원칙보다 자신들의 주관성, 즉 그들의 사적 이익을 훨씬 선호한다. 이들은 입으로는 세계의 정의와 평화를 위해 싸운다고 주장하면서, 사실은 자신들의 사적 이익을 확대시켜 나가고 있다. 그럴듯한 위선이다. 미국의 대형 TV 방송국들의 상당수가 무기 제조회사를 소유하고 있다. 가령 NBC는 전자군수산업체인 GE의 계열사다.
– 죽음으로 내몰린 국제법
로베스피에르는 “법은 자유의 공존을 위해 존재한다.”는 멋진 말을 남겼다. 그런데 이제 이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국제법은 임종 직전에 놓여 있다. 국제법은 강대국의 임의적인 폭력을 길들이고 문명화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현대판 신흥 봉건제후들은 최단 기간에 최대한의 이익을 내기 위해서라면 국가도 UN 따위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WTO, IMF, EU 같은 기구들만 있으면 그것으로 족하다. 이같은 기구들을 자신들의 야심을 실현하려는 전략의 유순한 실행자로 이용하면 그만이다.
국제법이 유명무실해지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세계화 지상주의자들의 오른팔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하는 미국이라는 국가 내부의 변동이다.
– 제국과 성전주의자들의 야만성
이슬람 무장세력들은 민중을 꿈꾸게 만드는가? 그들에게 희망을 주는가? 절대 그렇지 않다.
그들은 무엇을 제안하는가?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 뿐이다. 그것은 지적, 사회적, 종교적 퇴행을 강요하는 가증스러운 족쇄나 다름없다.
샤리아란 절도범의 손을 자르고, 간통 의심을 받는 여인을 돌로 쳐죽이며, 여성들을 하류 인간의 굴레 속에 옭아매고, 민주주의를 거부한다. 종교적 원리주의자들이 권력을 잡게 된다면 다종교, 다민족으로 구성된 사회는 끔찍한 종교 원리주의의 지옥으로 떨어지게 될 것이다.
우리는 18세기 말 미국과 프랑스의 혁명주의자들로부터 속박에서 해방되는 무기를 물려받았다. 인간으로서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권리, 보통선거, 민의에 의해 언제든지 소환 가능한 대리정치 등이 바로 우리가 물려받은 무기다. 연대의식과 전복가능성이라는 개념으로 이 세계를 이해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지체하지 말고 이 무기를 손에 들어야 한다. 여기에는 하나의 절대적인 도덕적 요청이 따른다.
“매 순간 너 자신의 의지에 따라, 이 세계를 지배하는 보편적인 법칙이 되기를 소망하는 원칙에 따라 행동하라.” – 칸트.
2. 무엇이 가난한 자들을 더 가난하게 만드는가?

– 부채, 그 추악한 악성 종양의 실체
가난한 나라의 국민들은 부자 나라의 발전에 필요한 비용을 대기 위해 죽도록 일을 해야 한다.
남반구가 북반구의 지배계층을 위해 돈을 댄다. 오늘날 북반구가 남반구를 지배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은 부채를 제공하고 받는 대가다. 남반구에서 북반구로 흘러가는 자본의 양은 북반구에서 남반구로 흘러가는 자본의 양을 초과한다.
한 나라의 국민들을 노예상태로 만들어 복종시키기 위해 기관총, 네이팜탄, 탱크 따위는 필요없다. 부채가 그 모든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한다. 부채가 지배하는 교묘한 폭력구조는 식민지 시대의 본토 정부가 지니고 있던 노골적인 가혹성의 대체물이다.
부채는 두 부류의 인간들에게 이득을 가져다 준다. 외국 채권자들과 해당국가의 지배계층 구성원들이다. 해당국가의 지배계층은 자기들을 낳아 준 민족이 아닌 남의 나라 출신 봉건제후들의 이익을 위해 일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국민들을 상대로 말할 때마다 누구보다 애국심에 불타는 연설을 늘어놓는다. WTO 온두라스 대표는 온두라스 바나나 수출쿼터에 대해 신성한 권리라고 말하기를 좋아한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온두라스의 바나나 농사는 온전히 북미 기업인 치키타 (前유나이티드프루트)의 손에 들어가 있으며, 온두라스 대표는 그저 이 회사의 홍보부에서 써준 원고를 읽는 꼭두각시에 불과하다. 피지배 나라의 지배계층에게 국가의 부채는 많은 이권을 보장한다.
자이레의 독재자 조제프 데지레 모부투의 개인재산은 80억 달러에 이른다. 그런데 2006년 이 나라의 외채는 150억 달러였다.
아이티의 독재자 뒤발리에 일가가 국고에서 횡령한 돈은 9억2천만 달러나 된다. 2006년 아이티의 외채 수준과 거의 맞먹은 액수다.
제3세계에서 활동하는 거대 다국적기업의 대다수는 지주회사들이 보유하는 특허들을 활용해, 로열티를 부풀려 달러를 빼낸다.
원칙적으로 외채를 요청한 나라는 외채를 얻어서 자국에 투자를 함으로써 생산력을 향상시킬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해서 순조롭게 진행되면 차츰 빌려 쓴 돈을 갚을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이같은 논리가 파행으로 치닫고 있다.
오늘날 제3세계 국가들은 점점 더 높은 이자를 물어야 하고, 원금은 원금대로 갚느라 점점 더 가난해진다.
한 나라가 이자나 원금 상환을 거부하면 어떤 사태가 발생하는가? 20년 전 외채 부담에 짓눌려 페루 정부는 외채 중 30%만 상환하기로 결정했다.
어육 분을 싣고 항해하던 페루 선박 한 척이 함부르크 항구에서 독일 은행들로 구성된 채권단의 요청으로 독일사법당국이 억류했다. 세계 주요 공항에 착륙하는 페루 소속 비행기들은 해당 채권자들의 요청에 따라 발이 묶였다.
국제통화기금은 외국 투기자본가들에게 이익을 보장하는 보증인이기도 하다.
부채를 얻고, 이자를 지불하고 원금을 상환하는 일련의 과정은 봉건시대 유행하던 충성 서약의 가시화된 표현과 다르지 않다.
노예는 국제통화기금으로부터 협정서 혹은 구조조정 합의서를 받을 때마다 무릎을 꿇는다.
주권을 소유한 국가라면, 외국인들의 이익만을 위해 광산계약, 영토양도조약, 무기판매, 공공기업 헐값 민영화 따위를 할 수가 없다.
세계화 지상주의자들은 한마디로 힘없는 아랫사람들을 계속해서 힘없는 아랫사람으로 붙들어 놓으려 하는 것이다. 체제를 유지하고 지속적으로 천문학적인 이익을 실현하는 길이 거기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부채의 멍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제3세계 국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세 가지 전략적인 수단이 있다. 1) 노예화된 민중들이 중심이 된 사회단체 지도자들은 연대의식을 내세우는 북반구의 강력한 시민단체들과 연합한다. 2) 부채 내역에 대한 철저한 감사. 3) ‘채무자 카르텔’의 구성.
– 기아, 부조리와 파렴치의 극치
3. 에티오피아, 희망의 불씨는 꺼지지 않았다.
본장에서는 다국적 기업이 주도하는 커피 가격의 폭락 정책으로 나라의 온 경제가 파탄나버린 에티오피아의 상황을 살펴본다.
– ‘부유한’ 전쟁 과부, 알렘 체하이에
– 커피 가격의 폭락, 시다모의 부조리한 녹색 기아
– 연대, 저항의 또 다른 이름
4. 브라질, 혁명은 계속된다.
– 룰라, 가난한 노동자에서 혁명의 지휘관으로!
브라질에서는 민주주의적, 자본주의적 평화 혁명이 진행중이다. 이 혁명이 어떻게 마무리 되느냐에 따라 브라질과 남미대륙 전체의 미래가 결정될 것이다. 보다 광범위하게는 민주주의적, 대중적, 반자본주의적인 운동의 미래가 달려있다고 할 수 있다.
브라질은 거대 다국적 민간기업들의 과도한 영향력 때문에 신음하는 나라다. 브라질 국부의 절반 이상을 북반구 신흥 봉건제후들이 장악하고 있다. 현재 브라질에서 진행되는 혁명은 유럽에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고 있다. 게다가 결말조차 불확실하다.
– 민주 혁명의 핵심 사업, 기아 제로 프로그램
브라질은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농산물 수출국이다. 하지만 이러한 수출은 전적으로 농가공 식품 트러스트에 의해 통제되고 있으며, 이 트러스트는 대부분 외국 그룹에 의해 좌우되고 있다.
서류상으로 브라질은 식량 자급자족이 가능한 나라이지만, 실제로는 수백만 명의 남녀노소가 만성적 영양실조와 각조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
– 외채와의 전쟁
저자는 ‘시장의 신뢰’라는 표현을 혐오한다. 국가 또는 국민은 세계화된 자본의 공격으로 초토화되지 않기 위해서, 자본 앞에서 굴복하지 않기 위해서, 태도를 통해 시장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
그런데 이 신뢰란 어떻게 해야 얻어지는 걸까? 몸과 마음과 정신 모두를 바쳐 세계화 지상주의자들의 지시에 따르기만 하면 된다. 오로지 그렇게 할 경우에만 새로운 봉건제후들은 프롤레타리아들을 도와주는 은혜를 베푼다.
살바도르 아옌데는 이를 거부했기 때문에 자신의 집무실에서 머리에 총을 맞은 채로 숨졌다. 그는 시장의 신뢰를 얻지 못했다. 부채는 사회 전반에 무거운 짐이 된다. 부채로 인해 야기될 수 있는 결과 또한 매우 다양한 양상으로 전개된다. 1) 한 나라가 대외적으로 허약해지며, 경제의 대외의존도가 높아진다. 2) 외화로 갚아야 할 돈의 액수가 점점 증가하며, 원금 또한 점점 불어난다. 3) 따라서 한 국가의 젊은 세대들의 발전을 저해한다. 4) 주권을 상실하게 되며 국제금융시장의 전략과 세계 열강의 위력에 복종해야 한다. 5) 부채로 인한 경제성장 시기엔 아무 혜택도 받지 못하다가 상환의 무거운 의무만 짊어지는 무방비 소시민들에게 희생을 강요한다.
5. 탐욕의 시대는 어떻게 봉건화되는가?
– 신흥 봉건제후, 거대 다국적기업들의 횡포

우리는 이 세계가 다시 봉건화 되어가는 참상을 목격하고 있는 중이다. 이처럼 새로 등장한 봉건세력은 거대 민간 다국적기업의 얼굴을 하고 있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비중이 큰 500개의 거대 다국적기업들이 지구 전체 생산의 52%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 500개 기업 중에서 50%는 미국에서 출발한 기업들이다. 이들 500개 기업은 모두 합해도 전 세계 노동자의 1.8%만을 고용하고 있다. 물론 이들이 생산한 제품/서비스는 이를 사용할 수 있는 사람들에겐 커다란 도움이 된다. 하지만 인류 공동의 자산이 되어야 할 생산이나 학문적 발견을 사유화 또는 독점하는 방식은 재앙에 가까운 결과를 초래한다.
이들 신흥 봉건주의자들이 추구하는 유일한 목표는 최소한의 시간에 최대한의 이익을 창출해 자신들의 권력확대를 가속화시키는 것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정한 규칙에 반대하는 모든 장애물은 제거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남반구 국가들의 부채가 끊임없이 증가하는 가장 큰 이유는 거대 다국적기업들의 이익, 주식투기 수익, 로얄티의 유출이다.
1789년 이전에 군림했던 자신들의 선배들과 마찬가지로 이들 신흥 봉건제후들은 공짜 인생을 즐긴다. 궁전 같은 집, 화려한 사교파티, 호사스러운 식사, 여행 등에 들어가는 경비는 얼마가 되든 마술같은 법인카드로 지불되기 때문이다.
다국적기업들은 자기 나름대로의 홍보부처를 두고 있다. 이들은 신흥 봉건제후들이 여론에 주입시키고자 하는 세계관을 심고 정당화한다.
– 유전무죄 무전유죄, 가진 자가 이기는 세상
신흥 봉건제후들이 남반구에서 공통적으로 즐겨 쓰는 수법 중 하나는 관리들을 부패시키는 것이다.
이들 나라에는 장관, 판사, 공무원, 정치가들의 봉급수준이 매우 낮다. 세계화 지상주의자들이 중개인을 통해 은밀하게 주는 선물은 매우 요긴하다.
– 유전자 변형생물, 불공정 경쟁의 대표주자
세계화 지상주의자들이 보기에 유전자 변형생물은 천문학적 이윤을 보장해줄 확실한 수단이다. 특허권으로 보장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농부에게 번식이 불가능한 종자라면 농부는 해마다 종자를 사들여야 한다.
유전자 변형 유기체의 생산/보급은 자본주의 추종자들의 오랜 숙원이었다. 자연과의 불공정 경쟁을 근원부터 차단하려는 꿈이 이루어진 셈이다.
자연은 생명, 인간, 먹거리, 공기, 물, 빛 등을 무료로 생산하고 얼마든지 재생산한다.
자본주의자들에게 무료로 무엇인가를 생산하고 제공한다는 건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일이다.
그들에게는 엄밀한 의미에서의 공공재산이란 존재할 수 없다. 자본주의자들은 무료라는 것을 끔찍하게 혐오한다.
신흥 봉건제후들은 유전자 변형물질이 기아를 퇴치할 수 있는 절대적인 방편이 된다는 억지 논리를 편다.
기아로 인한 떼죽음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유전자변형에 적극 동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의 주장은 엄청난 진실 왜곡이다. 그럼에도 이같은 주장은 세계와 지상주의자들의 앵무새 노릇을 하는 각국 관계 부처에서 매일 흘러나온다.
이와 같은 말이 나오기까지 수십억 달러가 오고 갔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한 가지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자.
UN 식량농업기구의 2006년 세계 식량불안에 관한 보고서는 현재 세계농업은 120억 명까지는 별 문제 없이 먹여 살릴 수 있으리라고 전망했다.
그런데 현재 지구상에는 62억 명이 살 뿐이다. 유전자 변형 없이도 별 문제가 없다. 유전자 변형은 기아 문제와는 전혀 다른 문제다.
유전자 변형이 이루어진 식물은 특허권을 통해 독점을 보호받는다. 바로 이 점이 유전자 변형식물의 매력이다.
캐나다의 73세 농부인 슈마이저는 몇몇 유전자 변형 품종이 자신의 밭에서 자라고 있음을 부인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품종의 씨앗을 실어다 준 것은 어디까지나 바람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몬산토 캐나다는 유전자 변형된 유채 종자를 불법으로 슈마이저가 사용했다고 40만 달러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대법원까지 상소했지만 2004년 6년간의 소송 끝에 슈마이저는 패소했다.
“50년 동안이나 나는 내 밭에서 수확한 곡식 중에서 이듬해에 뿌릴 낟알을 미리 남겼습니다. 모름지기 농부는 자기 밭에서 얻은 낟알을 다시 심을 수 있는 권리를 빼앗겨서는 안 됩니다. 그 낟알들은 수천 년 동안 전 세계 농부들이 좋은 것을 추려서 보존한 결과로 얻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법원은 이제 수백 년 동안 이어져 내려온 농부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를 빼앗았습니다.”
유전자 변형생물에 관한 갈등은 어마어마한 액수의 돈이 걸려 있는 절박한 문제다.
미국 농가공 식품업계는 다른 나라에 자신들이 보유한 종자들과 자신들이 새로 개발한 제품들을 파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들은 많은 나라에서 유전자 변형 생산품 금지조항을 피해가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덤비고 있다. 몬산토가 선두주자다. 미국이 나서서 식량을 지원할 때 그 틈을 타서 유전자 변형 종자의 수입을 금지하는 나라를 파고드는 것이 몬산토의 전략이었다.
잠비아는 미국의 잉여 유전자 변형 곡물 원조 수혜를 중단했다. 대신 옥수수를 빻아서 지급하는 방법을 썼다. 따라서 유전자 변형 옥수수 종자는 잠비아 시장을 점령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여기서 그칠 몬산토가 아니다. 생물에 관한 특허는 농가공 식품업계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세계 제약업계 또한 같은 방법을 쓰고 있다.
– 베베이의 파렴치한 문어, 네슬레 왕국
– 노동조합은 안 돼!
브라질에서 거대한 농장을 소유하고 있는 네슬레는 수출중심 농업의 성공 모델로 여겨진다.
그런데 네슬레가 선도적으로 이끄는 수출지향 농업은 중소 규모의 가족 농장들을 모두 고사시키며, 국가 식량주권을 말살시키고 있다. 또한 수출을 위한 집약적 농업은 환경을 파괴하기도 한다. 대단한 이중성이다.
브라질에선 인간이 먹는 식품을 팔아서 얻을 수 있는 이익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규제가 적용된다. 하지만 동물 사료의 경우 이같은 제한이 없다. 네슬레는 애완용 동물 사료에 관한 연구,제조, 상용화에 엄청난 자본을 투자했다.
– 돈 없으면 마실 수 없어요!
부채가 많은 제3세계 국가에 불어 닥치는 식수 생산 공기업의 민영화 열풍은 천문학적 이윤창출에 큰 도움을 준다.
점점 더 많은 나라에서 빚더미에 올라 앉은 지방자치단체들이 민간기업에게 상수도 망을 팔아 넘기고 있다.
볼리비아 사람들은 식품비보다 훨씬 비싼 물 값을 내야만 했다. 공동우물의 물조차 마음대로 쓸 수 없게 되었다. 자기 땅에서 빗물을 받아 쓰는 것조차 불가능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허가증을 사야만 했다. 에티오피아에서는 5년 전부터 수십만의 농부 가족들이 커피 원두 가격 폭락으로 고통 속에서 살고 있다.
이같은 현실은 농가공 식품업계가 생산원가를 조정하기 위해 투기를 조장했기 때문이다.
냉전시대에는 갑작스러운 가격하락을 막고, 가격하락으로 인해 생산자들이 공산주의 쪽으로 경도되는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 생산자와 구매자 사이에 협약이 이루어져 있었다. 공산주의 체제가 와해된 오늘날에는 WTO가 과거의 협약을 하나하나 무효화시키고 있다.
– 후안무치한 제후들
한 나라와 그 나라의 법 앞에서 신흥 봉건제후들은 더할 나위 없이 냉랭할 정도로 거만함을 드러낸다. 북반구 지역의 선진국가에서라면 이들은 공장이전이라는 으름장을 들이댄다. 공장이전 위협은 특히 효과가 좋다.
전자기계들의 발전과 더불어 기술혁명이 가능해진 덕분에 점점 더 적은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고용시장에 직접 영향력을 행사할 비장의 무기다.
– 인권도 좋지만, 시장이 더 좋아!
세계화 지상주의자들에게 UN 헌장에 명시된 원칙들을 존중하도록 권유하는 일이 가능할까?
코피 아난은 이들과 타협하기로 결심했다. 1999년 다보스 포럼에서 그는 신흥 봉건제후들에게 자신이 제안하는 일반협약을 준수하라고 요청했다. 포식자들은 무려 5분 동안 기립박수를 보냈다. 일반협약은 신흥 봉건제후들에게는 축복이나 다름없었다.
협약 내용을 실제로 실행에 옮기는지를 감시하는 기관은 어디에도 없었다. 봉건제후들은 서명만 하면 그것으로 족했다.
기업 이미지 제고 측면에서 수지맞는 장사였다. 덕분에 이들은 수천만 달러의 광고비용을 절약할 수 있게 되었다.
협약에 서명한 기업들은 일반협약에 서명했음을 광고에서 강조했고, UN 로고까지 가져다 쓸 수 있는 굉장한 덤을 얻었다.
2004년 UN 본부에서 코피 아난은 다국적 기업 대표들과 5년 동안의 성과를 알아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비정부비구들의 압력에 따라 코피 아난은 서명자들의 협약내용 준수를 감시하는 기관을 창설할 것을 제안했다. 즉각 반대가 빗발쳤고 장내는 요란스러운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만장일치로 부결되었다.
세계화 지상주의자들은 인간들을 착취하는 일에 방해가 되지 않는 한도 내에서만 인권을 좋아한다.
끝맺는 말 – 다시 시작하자

현재 우리는 수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끔찍한 공격을 받고 있다. 그 어떤 나라도, 그 어떤 초국가적 기구도, 그 어떤 민주주의로도 이 공격에 저항할 수 없다.
경제전쟁을 벌이는 신흥 봉건제후들은 온 지구를 거덜내고 있다. 이들은 국가공권력을 공격하며, 주권재민을 무시하며, 민주주의를 전복시키고, 자연을 망가뜨리고, 인간과 인간의 자유를 말살시키고 있다. 출생의 우연이라는 요소를 제외한다면, 나와 고통받는 사람들을 갈라 놓는 다른 요소들이란 전혀 없다.
아프리카 대부분의 국가들은 농업이 주요 산업이다. 긴 노동에 시달리며 농부들이 시장에 갖고 온 농작물은 보조금 혜택을 받는 유럽에서 수입된 농산물보다 2~3배 가격이 높다. 하루 15시간을 일해도 최저생계비조차 벌 수 있는 가능성이 거의 없다. 유럽연합의 농업 덤핑 정책은 아프리카 사람들의 삶을 완전히 파괴해 버린다.
신흥 봉건제후들은 경제를 일종의 자연현상으로 만들어 버리고,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에 맹종하는 것이야말로 우주생성 이론이라 주장한다. 나는 이들이 신봉하는 이같은 우주관과 실천방식을 구조적 폭력이라고 부른다.
부채와 기아는 봉건제후들이 민중을 노예화시키며, 그들이 지닌 힘과 자원, 즉 꿈을 빼앗기 위해 사용하는 두 개의 강력한 대량살상무기다.
○ 인상깊은 구절들
수치심은 도덕을 구성하는 기본 요소 중의 하나다. 수치심은 인간으로서의 자각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상처를 받거나 배가 고프거나 궁핍함으로 인한 모욕감 때문에 심신이 괴롭다면, 나는 고통을 느낀다. 나 아닌 다른 인간에게 가해진 고통을 바라볼 때도 나는 나의 의식 속에서 얼마간 그 사람의 고통을 함께 느끼며, 그로 말미암아 내 안에 연민의 감정이 생겨나고, 도와주고 싶은 연대감이 발동하며, 동시에 수치심을 느낀다. 이렇게 되면 내 안에서는 행동하라는 부추김이 일어나게 된다.
나는 직관적으로 이성의 작용에 의해서 혹은 도덕적인 의무감에서 모든 인간은 일할 권리, 먹을 권리, 건강을 돌볼 권리, 배울 권리, 자유를 누릴 권리, 행복해질 권리를 가지고 있음을 안다.
인간 정체성에 대한 자각이 세계화 지상주의를 표방하는 자들을 포함한 인간들에게 깃들어 있다면, 이들은 도대체 어떻게 그처럼 인류를 황폐하게 만드는 행위를 서슴지 않고 행할 수 있단 말인가? 그자들은 도대체 어떻게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행복 추구 욕구마저도 그토록 냉소적이고 잔인하며 교활한 방식으로 깔아뭉갤 수 있단 말인가?
(그들은 한 인간이면서 동시에 부자가 되고 싶고, 시장을 지배하고 싶으며,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거나 세계의 주인이 되고 싶다는 모순적인 욕망에 사로잡혀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잠재적인 경쟁자들을 상대로 경제전쟁이라는 이름의 계엄령을 내렸다. 인간 누구에게나 공통으로 적용되는 도덕을 비껴갈 수 있는 예외적인 체제를 마련했다는 말이다. 새로운 체제 안에서 그들은 기본적인 인권을 외면하고 (하지만 지구상의 모든 나라가 인권 보장을 지지한다), 도덕적인 원칙을 무시하며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도덕적인 원칙이 보장된다), 평범하고 상식적인 감정 (이들은 자신의 가족이나 친구들한테만 이 같은 감정을 허용한다)을 억누른다.
내가 타인에게 연민의 감정을 표하거나 연대감을 보인다면, 나의 경쟁 상대는 그 즉시 이를 나의 약점으로 여겨서 이용하려 들 것이다. 나의 경쟁 상대는 나를 무너뜨리려고 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나는 수치심 (이런 경우 억눌러야 한다)을 느끼는 나의 마음에도 불구하고, 하루 24시간 밤이든 낮이든 어떤 대가를 치러서라도 최대의 이익을 추구해야 하며, 그 이익을 축적하고 최단 시간에 최저 비용으로 가장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해내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한다.
이른바 경제전쟁은, 다른 모든 전쟁들이 그렇듯 전쟁이 지속되는 한 영원토록 희생을 강요할 것이다. 게다가 불행하게도 이 전쟁은 끝없이 계속되도록 프로그래밍된 듯하다. —-p.13-14
견디기 어려운 열등감과 무력감으로 똘똘 뭉쳐 수치심을 안고 살아가는 제3세계의 주민들은 그들이 끌어안고 있는 기아나 부채가 불가피한 것이 아님을 아는 순간 새로운 의식에 눈을 뜨게 될 것이며, 제 힘으로 일어설 수 있게 될 것이다. 불명예로 괴로워하던 굶주린 자, 실업자들은 자신들이 처한 상황이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 한 수치심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 그러나 희망이 조금이라도 보이고 벗어날 수 없는 운명으로 알았던 굴레가 벗겨질 수도 있음을 알게 되면 투쟁 의지를 불태우는 반항자, 봉기 세력으로 변신 가능해진다. 수동적인 희생자로 치부되었던 자들이 자신들의 운명을 개척해나가는 적극적인 행동가로 변모하게 되는 것이다. 이 책은 이러한 변모를 실현시키는 데 일조하고자 한다. — p.15-16
“지식인의 의무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증언하는 것이다. 지식인의 임무는 민중을 현혹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들을 무장시키는 것이다.” (레지 드브레-프랑스 출신 철학자, 교수, 기자, 볼리비아에서 체 게바라의 혁명 동지) —p.17
특정 계급에 속하는 사람들이 아무런 죄의식도 없이 다른 계급에 속하는 사람들을 기아에 허덕이게 만들 때, 자유란 한낱 허울뿐인 유령에 불과하다. 부자가 독점을 통해서 동시대인들의 생사여탈권을 장악할 때, 평등이란 한낱 허울 좋은 유령에 불과하다. 혁명의 반동 세력이 나날이 곡식의 가격을 쥐고 흔들어 시민들의 4분의 3이 눈물 없이는 식량을 조달할 수 없을 때, 공화국은 한낱 유령에 불과하다. (자크 루) — p.24
“자유란 먹고살 걱정이 없는 사람들이나 행사할 수 있는 것이다.”(루이 드 생쥐스트)—p.25
유토피아는 다른 것에 대한 욕망을 의미한다. 유토피아는 지상에서의 짧은 생애 동안 우리가 손에 넣을 수 없는 것을 의미한다. 유토피아는 요구 가능한 정의까지도 내포한다. 유토피아는 인간의 의식이 미리 예견할 수 있는 자유와 연대의식, 나누어 갖는 행복의 도래를 표현한다. 유토피아는 결핍인 동시에 욕구로서 전 세계적인 사회정의를 위한 인간들의 모든 행동의 가장 내밀한 원천이 된다. 이러한 정의 없이는 우리들 그 누구에게도 행복이란 불가능하다. —p.28
“죽음의 순간에 우리들 각자는 생을 마감하기 위해서 더 많은 생을 필요로 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임종의 고통 속에 놓인 순간에, 우리는 원하건 원하지 않건 우리 자신, 즉 우리의 자아를 다른 사람, 즉 우리보다 뒤에 살 수입억 명의 사람들에게 넘겨주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만이 미완성으로 끝나는 우리의 삶을 완성시켜줄 것이기 때문이다.” (에른스트 블로흐)—p.29
“자기 눈앞에 펼쳐진 지평선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눈에 보이는 것만 보는 사람들, 다시 말해서 실용주의만 고집하며 일단 손에 쥔 것만 가지고 무언가를 하려는 사람들은 절대로 세상을 바꿀 수 없습니다. 오직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사람들, 지평선 너머로 펼쳐져 있을 세계를 보는 사람들만이 실재론자들입니다. 이 사람들만이 세상을 바꾸는 행운을 거머쥘 수 있습니다. 유토피아는 지평선 너머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분석적인 이성으로는 우리가 원하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가 바꾸고 싶어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간파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다음에 도래할 것, 우리가 원하는 것, 지금과는 전혀 다른 세상은 내면의 눈, 즉 우리 안에 깃들어 있는 유토피아를 통해서만 볼 수 있습니다.”
“나는 나를 이루고 있으면서 당신들 앞에서 말을 하는 이 먼지 덩어리를 경멸합니다. 당신들은 나를 처형하여 이 먼지 덩어리의 입은 막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앞으로 몇 세기가 지난 다음, 아니면 하늘나라에서라도 나한테서 나만의 독자적인 삶을 앗아갈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얼마든지 그렇게 해보십시오.” (생쥐스트가 판정관들인 파리 공안위원회 위원들 앞에서 한 말)—p.30-31
오늘날 인류가 처한 비참함의 정도는 인류 역사상 그 어느 시대에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참당하다. 5세 미만의 어린아이들 중에서 1천만 명 이상이 해마다 영양 결핍이나 각종 전염병, 오염된 식수, 비위생적인 환경 때문에 목숨을 잃는다. 이들 중에서 50퍼센트는 지구에서 가장 가난한 6개국에서 발생한다. 희생자들의 90퍼센트가 남반구 국가들의 42퍼센트에 집중되어 있다. —p.35
원칙적으로 외채를 요청한 나라는 외채를 얻어서 자국에 투자를 함으로써, 다시 말해서 자국 내 사회기반 시설을 확충하고 제반 생산력을 향상시킬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해서 개발이 순조롭게 진행되면 차츰 빌려 쓴 돈을 갚을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이와 같은 논리가 파행으로 치닫고 있다. 오늘날 제3세계 국가들은 점점 더 높은 이자를 물어야 하고, 원금은 원금대로 갚아가느라 점점 더 가난해진다.
외채는 마치 치료하지 않고 방치한 종양과 같다. 끊임없이 자라나는 것이다. 돌이킬 수 없이 불어난다. 이러한 악성 종양은 제3세계 국가의 주민들이 가난한 비참함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방해한다. 아니, 오히려 이들을 죽음으로 몰아간다. — p.93
국제통화기금은 부채에 대한 이자수입을 꼬박꼬박 챙기기 위해 설립된 기관이다. 국제통화기금은 협정서나 구조조정 계획서, 차관연장, 지불유예, 재정재편성 등을 통해 부채에만 관여하는 것이 아니다. 국제 통화기금은 외국투기자본가들에게 이익을 보장하는 보증인이기도 하다.—p.98
지난 10년간 제3세계의 122개국에서 부채에 대한 이자 및 원금 상환을 위해 북반국 국가와 이들 나라의 은행으로 송금한 돈의 총액은 채권국 전체의 국민총생산을 합한 액수의 2%에 약간 못 미친다.
200년부터 2002년까지 전 세계 증권거래소에 몰아친 강력한 충격으로 수천억 달러의 자산이 증발하면서 거의 모든 지역의 금융업계가 위기 상황에 빠졌다. 불과 2년 사이에 증권거래소에 등록된 대부분 주식의 가치가 65% 이상 하락한 것이다. 나스닥에 등록된 첨단기술주의 경우엔 하락폭이 80%에 이르기도 했다. 이 기간 동안 증권거래소에서 증발한 가치는 제3세계 122개국의 외채를 모두 합한 액수보다 무려 70배나 큰 액수였다.
하지만 2000 ~ 2002년의 증권거래소 위기는 이토록 어마어마한 액수의 자산이 증발해버렸음에도, 전 세계 은행 체제의 붕괴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비교적 단시일 내에 금융업계는 정상을 회복했다. 북반구 국가 전체의 경제, 고용, 저축의 대대적인 추락을 가져올 것이라는 막연한 추론에도 불구하고 세계 경제체제는 완벽하게 위기 상황을 넘긴 것이다. 북반구의 그 어느 나라도(전 세계 경제 전체라고 말해도 달라질 건 없다) 난관에 봉착하지 않았다. 새로운 위기가 2007년 8월 초에 전 세계의 증권거래소를 위협했다. 무려 3조 달러가 증발했지만, 이때에도 전 세계 금융시장은 별문제 없이 위기를 넘겼다.—p.102
부채를 얻고, 그 부채를 갚기 위해 이자를 지불하고 원금을 상환하는 일련의 과정은 봉건시대에 유행하던 충성 서약의 가시화된 표현과 다르지 않다.
노예는 국제통과기금으로부터 협정서 혹은 구조조정 합의서를 받을 때마다 무릎을 꿇는다. 무릎을 꿇지 않고 서 있는 노예는 비록 목이나 손목, 발목에 무거운 쇠사슬을 칭칭 동여매고 있더라도 위한한 노예다. —p.104
기아는 부채가 낳은 직접적인 산물이다. 왜냐하면 가난한 나라들은 부채 때문에 농업이나 사회기반시설, 운송과 유통 등을 위한 설비건설에 투자할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기아는 신체에 가해지는 끔찍한 고통, 정신적 신체적 기능약화, 미래에 대한 불안, 경제적인 독립성의 상실 등을 동반한다. 그리고 죽음으로 이어진다.—p.115-116
심각하고 만성적인 영양실조는 천천히 우리 몸을 망가뜨린다. 영양실조는 우리 몸을 허약하게 만들고 활력을 빼앗아간다. 그 결과 아주 사소한 질병에라도 걸리는 날엔 이겨내지 못하고 쓰러지고 만다. 공복감이 내내 떠나지 않는다. 하지만 영양실조로 인한 가장 큰 고통은 뭐니뭐니해도 불안과 굴욕감이다. 허기진 사람은 자신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항상 승산이라고는 없는 절망적인 투쟁을 벌여야 한다. 기아는 수치심을 유발한다. 한 가정의 아버지가 가족들을 먹이지 못하고, 어머니는 배가 고프다고 우는 아이 앞에서 빈손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p.124
영양결핍으로 출산 중 사망하는 수십만 명의 산모들,뇌를 비롯한 신경기관 장애를 안고 태어나는 수백만 명의 신생아들,노동력을 상실하게 되는 수천만 명의 성인 남자들, 이 모두는 우리 사회에 무거운 짐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더구나 어린 시절부터 줄곧 영양결핍에 시달려온 이들 성인 남녀들은 자손들에게도 빈혈을 비롯한 영양결핍으로 인한 질병을 동반하는 ‘나쁜피’를 물려주기 때문에 더욱 심각한 사회 문제가 아닐 수 없다.—p.131
“계급에 대한 편견은 심지어 노동자들 자신의 마음과 정신으로도 파고들어, 우리 스스로에게 역사의 주체로서 행동할 수 있는 역량이 있는지 의심하게 만든다.”
“우리는 정부를 구성하고 있을 뿐 권력을 장악한 것이 아니다. 한 나라의 사회구조를 바꾸기 위해서는 대통령 한 사람이나 의회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민중들이 나서야 한다.” (룰라-브라질 대통령)—p.208-209
부채로 인해서 야기될 수 있는 결과 또한 매우 다양한 양상으로 전개된다. 첫째, 한 나라가 대외적으로 허약해지며, 경제의 대외 의존도가 높아진다. 둘째, 외화로 갚아야 할 돈의 액수가 점점 증가하며(오늘보다 내일 갚아야 할 돈이 많아진다), 따라서 한 국가의 젊은 세대들의 발전을 저해한다. […] 넷째, 주권을 상실하게 되며 국제금융 시장의 전략과 세계열강의 위력에 복종해야 한다. 다섯째, 부채를 들여와 경제가 성장하는 시기에는 아무런 혜택도 받지 못하다가 상환을 해야 하는 무거운 의무만 짊어진 무방비 상태의 소시민들에게 희생을 강요한다. —p.239
부채와 기아, 기아와 부채. 악순환을 거듭하는 이 두 가지의 조합에는 출구가 없어 보인다. 도대체 누가 이와 같은 살인적인 조합을 만들어냈는가? 누가 이와 같은 상황을 유지하려 하는가? 이와 같은 교착 상태를 이용해서 천문학적인 득을 보는 사람은 누구인가? 이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은 망설일 것도 없이 자본주의가 낳은 봉건주의자들이다. 오늘날 자크 루와 마라, 생쥐스트가 목청껏 타도를 주장하던 투기꾼과 사기꾼, 국민을 굶주리게 하는 모리배들이 다시 돌아왔다. 그라쿠스 바뵈프가 뿌리 뽑아야 한다고 주장하던 파렴치한 독점꾼들이 다시 활개를 치고 다닌다. 우리는 이 세계가 다시 봉건화되어가는 참상을 목격하고 있는 중이다. — p.247
우리는 현재 수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끔찍한 공격을 받고 있다. 그 어떤 나라도, 그 어떤 초국가적인 기구도, 그 어떤 민주주의로도 이 공격에 저항할 수 없다. 경제 전쟁을 벌이는 신흥 봉건제후들은 온 지구를 거덜내고 있다. 이들은 국가와 국가가 지닌 규범적인 권력을 공격하며, 주권재민 사상을 무시할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를 전복시키며 자연을 망가뜨리고 인간과 인간의 자유를 말살시키고 있다. — p.328
내가 이 책을 쓰고 있는 올해에만 해도 아직 연말이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기아나 기아와 직접적으로 상관관계를 지닌 질병 등으로 고통을 당하면서 죽어간 사람이 3,600명에 달한다. … 그들은 그렇게 사는데, 나는 왜 편안하게 살 수 있는가? 이들 우연의 희생자 한 명 한 명은 나의 아내, 나의 아들, 나의 어머니, 나의 친구 혹은 나의 삶을 구성하며 내가 사랑하는 그 누군가가 될 수도 있었을 사람들이다. … 출생의 우연이라는 요소를 제외한다면, 나와 이 고통받는 사람들을 갈라놓을 다른 요소들이란 전혀 없다.
“인간에 대한 사랑은 정의에 대한 사랑의 토대를 이룬다. 정의감이란 이성에 의해서만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감정에 의해서도 형성되기 때문이다.”— p.330-331
나는 노동조합 지도자가 아니며, 인민해방전선을 이끄는 리더도 아니다. 그저 제한적인 영향력을 가진 한 명의 지식인일 뿐이다. 나의 책은 내가 돌아다니며 목격한 세계에 대한 나의 진단을 제시한다. 현재 이 세계를 지배하는 약육강식의 질서를 파괴하는 것은 시민들의 몫이다. 전 지구적인 사회정의를 위한 투쟁은 이제 시작될 것이다! … “그렇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모든 환부는 이제 곪을 대로 곪았으므로 더 이상 나빠지려고 해야 나빠질 것도 없다. 모든 것을 완전히 전복시키는 것만이 환부를 치료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p.332-333
희망은 어디에 있는가?
소수, 즉 대체로 별다른 의식 없이 사는 백인들의 편의를 위해 언제까지고 대다수가 가난과 절망, 착취, 기아 속에서 신음해야 하는 세상을 거부하는 인간의 이성 속에 희망은 깃들어 있다. 우리들 각자의 마음속에는 도덕적인 요청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러니 그것을 흔들어 깨우고, 저항하겠다는 의지를 북돋우며, 투쟁을 조직해야 한다.
나는 타인이며 동시에 타인은 나다. 타인에게 가하는 비인간적인 행동은 내 안에 깃들어 있는 인간성을 말살시킨다.
카를 마르크스는 “혁명가는 한 포기 풀이 자라나는 소리도 들을 줄 알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p.342-343
“당신들은 구호를 받는 가난한 자들을 원하지만, 나는 가난이 없어지기를 바란다.”(빅토르 위고)
“그들은 꽃이란 꽃은 모조리 꺾어버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해도 결코 봄의 주인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파블로 네루다)—p.344
얼마 전, 아프리카에서 상당히 오랜 동안 일을 한 경력이 있는 지인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그이와 같이 일하던 현지 직원 한 명이 어느 날 눈물을 펑펑 쏟고 있기에 이유를 물었더니, 뇌염 예방주사를 맞히지 못해 자녀가 죽었다고 하더라는 것이다. … 가난과 부채가 빚어내는 비극을 멀리 떨어진 다른 나라만의 이야기를 듣지 말자. 내 직장 동료, 내 이웃이 겪는 아픔에 가슴 한구석이 찡해지는 보통 사람들이라면, 앞으로 더 이상 이런 비극이 일어나선 안 된다고 분명하게 말해보자. 혁명은 거창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혁명가이고, 또 혁명가이고 싶다. —p.348
○ 느낀점

유엔 특별식량조사관을 역임한 기아전문가 장 지글러가 목도한 21세기 민주주의 시대의 ‘신흥 봉건제후들’은 IMF, IBRD, WTO, 거대 다국적 민간 기업 등이다. 지글러는 이들 자본의 전제군주들의 만행을 고발한다.
시장원리주의와 세계화를 맹신하는 신자유주의적 국제기구들, 무기를 팔아 돈을 벌고 희귀재와 자원을 이용해 전쟁과 폭력의 조직을 일삼는 ‘제국’들, 사적 자본의 축적을 위해 국가의 미래는 나 몰라라 하는 일부 부패한 권력층의 실체를 고발하고, 그에 대항한 전 세계 시민들의 즉각적인 연대를 촉구하고 있다.
지글러는 노동조합 지도자가 아니며, 인민해방전선을 이끄는 리더도 아니다. 그저 제한적인 영향력을 가진 한 명의 지식인일 뿐이다. 돌아다니며 목격한 세계에 대한 진단을 제시한다. 현재 이 세계를 지배하는 약육강식의 질서에 대응하는 것은 시민들의 몫이다.
– 다시 봉건화되는 세계에 대응
오늘날 인류가 처한 비참함의 정도는 인류 역사상 그 어느 시대에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참담하다. 지글러에 의하면 “5세 미만의 어린아이들 중에서 1천만 명 이상이 해마다 영양 결핍이나 각종 전염병, 오염된 식수, 비위생적인 환경 때문에 목숨을 잃는다. 이 희생자들의 50퍼센트는 지구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6개국에서 발생하며, 이 수치의 90퍼센트가 남반구 국가들 42퍼센트에 집중되어 있다.” 중요한 것은 이 같은 희생이 “재화의 객관적인 결핍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 재화의 공평하지 못한 분배, 다시 말해 인위적으로 조작되는 가난”에 의한 것이라는 데 있다. 이를 관장하는 자는 누구인가? 그들은 바로 “과거보다 훨씬 강력하고 냉소적이며, 예전에 비해 한결 야만적이고 교활한 새로운 봉건 지배 세력”인 “?조업, 은행업, 서비스업, 상거래에 종사하는 거대 다국적 민간 기업들”이다. ‘탐욕의 시대’를 지배하는 이들 봉건 군주들은 이익의 극대화라는 논리에만 복종함으로써, 의도적으로 희귀재를 조작해나간다. 이렇게 “조직화된 재화의 희귀성으로 말미암아 해마다 지구상에 사는 수많은 인간들의 삶”은 무참히 파괴되고 있다.
제국이 주도하는 전쟁과 폭력은 또 어떠한가? 지글러는 “재화의 희귀성이 지배하는 제국에서는 전쟁이 간헐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영구적으로 계속된다”고 말했다. “전쟁은 하나의 특이한 현상이 아니라 정상적인 일상”이며, “일시적인 이성의 부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 “제국의 존재 이유”라는 것이다. 이들 제국은 무기를 팔아 돈을 벌고, 자원과 공공재의 사유화를 통해 구조적인 폭력을 생산해낸다. 지글러는 ‘전 세계적인 테러와의 전쟁’에 들어가는 비용의 극히 일부만 투자하더라도 “버림받은 지구상의 주민들을 절망으로 몰아가는 ?해를 뿌리 뽑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2000년을 기준으로 1년 동안 전 세계가 군비로 지출하는 금액은 약 7,800억 달러에 이른다. 이 금액은 매해 증가일로에 있다. 하지만 “해마다 850억 달러씩 10년 동안 투자를 한다면, 지구상의 모든 사람이 기초적인 교육과 기초적인 의료, 적절한 영양, 식수, 기본적인 위생 시스템 등을 보장받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여성들은 적절한 산부인과 치료”도 받을 수 있다니. 참으로 씁쓸한 현실이다.
이렇듯 ‘탐욕의 시대’를 정의하는 일부의 통계들은 우리 사회의 빗나간 가치관을 상기시키는 동시에 우리들 자신 스스로를 몹시 무력하게 만든다. 유엔은 백악관의 대변인으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제법은 유명무실해졌으며, 전쟁을 ‘예방’하기 위한 전쟁이라는 ‘전 세계의 테러와의 전쟁’은 끝없이 지속될 것처럼 보인다. 신흥 봉건제후들이 조직하는 구조적 빈곤의 희생양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있으며, 한 줌의 희망마저 잿더미로 녹아버린 현실은 암담함 그 자체이다. 이쯤에서 묻고 싶어진다. 희망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정녕 우리 곁에 존재하는가? 천문학적인 부채에 시달리고 있는 브라질의 상황을 잠시 살펴보자.
– 희망의 모색
“가난한 나라의 국민들은 부자 나라의 발전에 필요한 비용을 대기 위해서 죽도록 일을 해야 한다. 남반구가 북반구, 특히 북반구의 지배계층을 위해 돈을 댄다. 오늘날 북반구가 남반구를 지배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은 부채를 제공하고 그에 대해서 받는 대가”이다.
지글러는 위의 상황을 역설적인 한마디로 요약한다. “한 나라의 국민들을 노예 상태로 만들어 복종시키기 위해서는 기관총 네이팜탄, 탱크 따위는 필요 없다. 부채가 그 모든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하기 때문이다. “부채에 따르는 원리금 지불 업무(이자와 일부 원금의 상환)는 채무국 국민총생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때문에 공립학교나 공공병원, 사회보험 등의 사회투자에 소요되어야 할 예산은 거의 남아나지 않는다.” 부채의 멍에는 “가난한 사람들의 어깨에 떨어지고, 오직 이들만이 그 멍에를 짊어”진다. 부채는 “마치 치료하지 않고 방치한 종양”과 같아서 끊임없이 자라나고 돌이킬 수 없이 불어난”다. 이 “악성 종양은 제3세계 국가의 주민들이 가난과 비참함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방해한다. 아니, 오히려 이들을 죽음으로” 내몬다. 따라서 상당수의 기아는 부채가 낳은 직접적 산물이다. 그리고 지글러의 말처럼 “영양 결핍과 기아로 목숨을 잃는 사람이 수백만 명에 달한다는 사실은 21세기 최대의 비극”이다. 기아는 어떤 이유나 변명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부조리와 파렴치의 극한 상태이며 나아가 “끝없이 되풀이되어온 반인류 범죄”이다. 현재 지구상에서는 5초마다 10세 미만의 어린이 한 명이 기아 또는 영양 결핍으로 인한 질병으로 죽어가고 있다. 2007년 기아로 사망한 사람의 수가 같은 해 일어난 모든 전쟁의 사망자를 더한 수보다 많다는 것은 자못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그리고 이러한 부채와 기아의 악순환에 멍들어가는 대표적인 나라가 바로 라틴아메리카에 위치한 세계 10위의 경제대국 브라질이다.
브라질은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곡물 수출 국가이자 서류상으로만 보면 식량 면에서 자급자족이 가능한 나라로 분류된다. 그러나 실상은 이와 전연 다르다. 브라질 내부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수천만 명에 달하는 국민들이 심각한 만성 영양 결핍에 시달리고 있다. 브라질의 농산물 수출이 대부분 외국 기업들에 통제되고 좌지우지되고 있으며, “과거 군사 독재정권과 이와 결탁한 허수아비 대통령들이 수출입은행이나 국제통화기금, 유럽이나 일본, 북미 지역 민간은행들로부터 돈을 마구 끌어다 쓴” 덕분에 “천문학적인 액수의 부채를 갚아야 하는” 대다수의 국민들이 빈민으로 전락한 까닭이다. “군사 독재정권 이후에 들어선 대통령들은 부패를 조장했으며, 수익성이 높은 공공기업을 외국 자본에게 유리하도록 민영화”해버렸다. 그 결과 도시엔 실업자들과 거지들이 득실거리고, 쓰레기 하치장은 먹을 것을 찾아 헤매는 아이들로 가득하다. 이것이 오늘 브라질이 처한 현실이다. 그러나 희망의 불씨는 아직 꺼지지 않은 듯 보인다. 이 절망의 땅 위 한편에선 노동자 출신의 대통령 룰라를 필두로, 민주주의적, 반자본주의적 평화 혁명이 멋지게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룰라는 “제3세계의 그 어느 국가도 부채를 온전히 상환할 능력이 없다”고 고백하며 “제3세계 국가들의 발전 전략과 부채 상환은 결코 양립할 수 없”으며, 따라서 “즉각적으로 부채 상환을 중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부채 상환을 거부”하고 “절약하게 되는 돈”을 “기술 개발을 위한 연구발전 기금, 교육이나 공중보건, 농업개혁 등 요컨대 제3세계 국가들의 진보를 위해 필요한 발전 기금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움직임은 채권국 및 IMF 같은 국제기구의 격렬한 저항을 받고 있다. 하지만 룰라는 굴하지 않는다. 그는 새로운 방식을 모색해냈다. 그것은 바로 “채무국끼리의 연합전선을 형성하는 것”이다.
룰라는 “어떤 나라도 혼자만의 힘으로는 부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말하며, 외채 문제에 관한 토의는 은행과 정부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정부와 정부 사이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장 지글러 역시 부채의 멍에에서 벗어나기 위해 제3세계 국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전략적 수단으로 채무국끼리의 동맹체 구성을 제시하고 있다. 거기에 “노예화된 민중들이 중심이 되는 사회단체 지도자들”이 “연대의식을 내세우는 북반구의 강력한 시민단체들과 연합”할 것을 적극 권장하고 있다. 영국과 독일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쥐빌레2000’ 같은 단체가 IMF를 비롯한 채권 기관으로부터 부채 경감에 대한 최소한의 양보를 받아내는 데 성공했다는 사실은 연대의 힘이 지닌 놀라운 가능성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현재 브라질 내부에서도 이러한 시민사회의 활발한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거기에 채무내역에 대한 연합 감시체제 구축 역시 새로운 희망의 동력으로 떠오르고 있다. 룰라는 “이 혁명이 어떻게 마무리되느냐에 따라 브라질 인구 1억 8천만 명의 운명이 결정되는 것은 물론, 남미 대륙 전체의 운명이 결정될 것이다. 보다 광범위한 관점에서 본다면 민주주의적, 대중적, 반자본주의적 운동의 미래가 달려 있다”라고 이야기했다. 물론 결말은 “언제나 그렇듯, 불확실하다.” 하지만 저들 연대의 힘이 ‘불확실한’ 미래를 보다 선명한 희망의 전망으로 하나씩 바꿔가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 연대 : 다함께 일어서기 위하여
브라질의 사례에서 보았듯, 우리는 결국 ‘연대’하는 수밖에 없다. 우리는 함께 달려야 하고 함께 나눠야 하고 함께 행복해야 한다. 연대는 그 시작은 비록 누군가의 미미한 몸짓이었을지언정 끝내는 거대한 움직임으로 그 생명을 이어갈 것이다. 이것이 연대가 품은 희망과 믿음의 본질이자 우리가 지난 5월 거리에서 뜨거운 촛불을 함께 든 이유이다.
지글러는 이 책의 서두를 프랑스 혁명의 격변기를 온 몸으로 살아냈던 급진적 혁명가들의 외침에 아낌없이 내주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이는 많은 혁명가들이 스스로의 영혼을 팔아서라도 그토록 손에 쥐고자 했던 이데아가 지글러 자신이 끊임없이 굶주림의 문제에 천착하는 이유와 일맥상통하기 때문이다. 생쥐스트가, 장 폴 마라가, 그리고 자크 루가, 단두대에 오르고, 암살을 당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까지 단 한 순간도 포기할 수 없었던 것. 그것은 바로 혁명의 영원한 화두이자 모든 꿈꾸는 자들의 열망인 ‘인간의 행복할 권리’였다. 그렇다면 이 행복할 권리를 기초하는 가장 주된 요소는 무엇인가? 그것은 먹고살기. 다름 아닌 ‘생존’이다.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존엄도 누릴 수 없는 부조리의 극치인 기아와 절대적 빈곤은 결단코 인류의 고려대상이 아니다. 따라서 이 책 『탐욕의 시대』가 지향하는 바는 아주 뚜렷하다. 이 책은 결국 인간이 누구나 인간답게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음을 천명하는 책이다. 이 책은 저 스스로의 분명한 목표와 소신을 지닌 오만한 책이다. 책상머리에서만 읽혀지고 금세 잊히기를 원치 않는 책이다.
지글러는 “투쟁은 아는 것에서 출발하며, 투쟁을 통해서만이 자유와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물질적인 조건을 획득할 수 있다”라고 했다. 그리고 프랑스의 철학자 레지 드브레는 “지식인의 의무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증언하는 것이다. 지식인의 의무는 민중을 현혹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들을 무장시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책은 지글러 자신이 얘기한, 그리고 그가 인용한 레지 드브레의 명제를 그대로 실천하고자 한 결과물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결코 쉽지 않므 그 실천의 여정은 나눔과 연대라는 희망의 움직임을 통해 새로운 역사를 일굴 것이다. 그렇기에 이 책은 오늘 ‘탐욕의 시대’에 새로 쓰는 또 하나의 인권선언문이자, “다른 사람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느낄 줄 아는 유일한 생명체인 인간”의 의식변화를 향한 애절한 기도문이며, 다함께 행동할 것을 촉구하는 지성의 대자보이다. 그리고 이 모두를 가능케 하는 것이 바로 장 지글러의 힘임을 두말할 필요는 없으리라.

발제: 임운규 회원

![독서토론모임 시드니시나브로, 2022년 2월 온라인 모임에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와 ‘탐욕의 시대’ 나눠 – 3월 모임은 3월 9일·23일, 중고서적 기증과 구입 환영 [2월 23일 발제전문 포함]](https://chedulife.com.au/wp-content/uploads/나는-이런-책을-탐욕의-시대-1024x494.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