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준 교수의 호주선교사 열전(18)
엘리스 고든 니븐 디커니스(1881-1927. 12. 10)
한국명: 니번, 예원배 목사 부인, 부산진 1905-27
엘리스 니븐은 시드니에서 태어났으나 그 가족은 곧 뉴질랜드로 이주했다. 그녀는 그곳에서 공부하여 음악교사가 되었다. 그녀의 집은 듀네딘(Dunedin)에 있었고 그녀는 뉴질랜드 장로교회의 교인이었다. 그녀의 할아버지는 웨스트 인디스 연합장로교회(United Presbyterian Church in the West Indies)의 개척선교사로 30년을 섬겼다. 그녀는 1902년 12월에 멜번에 있는 디커니스 훈련소에서 2년의 과정을 마치고 1903년 5월에 디커니스로 임직되었다. 그녀는 도르카스 거리와 몬태규 선교회((Dorcas Street and Montague Mission)를 섬기는 디커니스로 파송을 받고 1903-1904년을 그곳에서 일했다.
그녀는 1905년 10월 26일 메리 켈리와 함께 부산진에 도착했고, 그 후 2년 동안 한국어를 배우면서 순회사역을 하였고, 선배 선교사들과 함께 시골 사경회에 참석했다.
1908년부터 3년 동안 니븐은 일신여학교의 교장으로서 초등 교사들을 감독하고 가르치는 일을 하였다. 그녀는 정규교육을 받지 못한 여성과 소녀들을 위한 금요일 야간학교의 운영을 맡았다. 그녀는 보조지도자들인 양(Yang)과 매이모리(Maymoury)의 도움을 받아 재적 120명, 평균 90명의 남녀 어린이들이 출석하는 부산진교회 주일학교와 여성세례문답과 탐문자들을 위한 주일오후반의 책임을 맡았다. 그녀는 부산진에서 예배를 위해 오르간을 반주했다.
1912년부터 니븐은 학교들과 시골 사역을 연결시켰다. 그녀는 자신이 훈련을 책임지고 있는 전도부인들의 도움을 받아 여성 반에서 가르쳤다. 그해에 무어가 휴가를 떠났고 니븐은 또한 동래의 일까지 맡게 되었는데 거기서 세례 받은 30명의 여성반을 교육했다. 160명이 모이는 주일학교도 시작되었다. 그녀는 매주 한번 나환자요양소를 방문해서 여성들과 소녀들을 가르쳤고 또한 여자성경학원을 조직하는데 책임을 맡았다.
1915년 9월에 그녀는 라이트 목사(Rev. A. C. Wright)와 결혼하였으나, 여전히 시골 학급을 가르쳤고 그후 3년 동안 여자성경학원에서 가르쳤다.
그러나 1919년부터 그녀는 건강이 나빠서 활동이 제한되었고, 1927년 12월 10일 사망했다.
엘리스를 알고 있었던 마가레트 데이비스와 진 데이비스의 어머니, 데이비스 부인은 이렇게 기록을 남겼다.
“우리는 그녀가 평화의 안식처에 있음을 확신한다. 그곳은 사랑과 친절이 언제나 있는 곳이다. 우리는 그녀와 그 남편이 늘 보여준 고귀한 모범을 보았고 감사드린다 … 언어능력과 음악적 재능을 가진 그녀는 배우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음악과 영어를 가르쳤다. 그리고 많은 소녀들과 여성들은 그녀를 통해 도움과 안내를 받았다.”
정병준 교수(서울장신대학교 교회사 교수 / 멜번신학대학원 졸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