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8년 5월 3일, 스페인의 해적에서 유명한 상인이 된 아마로 파고 (Amaro Pargo, 1678 ~ 1747) 출생
아마로 로드리게스 펠리페 (스: Amaro Rodríguez Felipe, 1678년 5월 3일 ~ 1747년 10월 4일)는 아마로 파고 (스: Amaro Pargo)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스페인의 해적이다.

– 아마로 파고 (Amaro Pargo)
.본명: 아마로 로드리게스 펠리페 (Amaro Rodríguez Felipe)
.출생: 1678년 5월 3일, 스페인 산 크리스또발 데 라 라구나
.사망: 1747년 10월 4일, 스페인 산 크리스또발 데 라 라구나
.묘지: 스페인 산 크리스또발 데 라 라구나 Iglesia de Santo Domingo de Guzmán
.직업: 해적, 상인
.수상: 스페인 이달고 (1725), 연대기와 훈장 하사 (1731)
.종교: 로마 가톨릭교회
아마로 파르고라고 더 잘 알려진 스페인의 해적 아마로 로드리게스 펠리페는 스페인 왕실과 적대적인 측에 속한 선박들을 약탈했고, 노획물들은 마드리드로 다시 보내졌다. 아마고 파르고는 다른 해적들과 싸울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고, 한때 검은 수염과의 접전에서도 살아남았다. 또한 그는 자신이 태어나고 사망한 카나리아 제도에서 터키 해적과도 싸웠다. 그의 무덤은 테네리페의 산토 도밍고 성당에 있다.

○ 생애 및 활동
스페인 카나리아 제도 테네리페섬에 위치한 산크리스토발데라라구나에서 태어났으며 청년 시절에는 노예 무역에서 뛰어난 활약을 기록했다.
아마로 파고는 카리브 제도의 플랜테이션 농업, 카나리아 제도의 설탕 농장으로 파견된 노예를 수송하는 역할을 했고 노예 무역을 통해 막대한 수익을 벌어들이게 된다.
또한 카디스와 카리브 제도 간의 항로를 위협하던 해적선을 여러 차례 공격했다.
독실한 로마 가톨릭교회 신자였던 아마로 파고는 마리아 데 레온 수녀와의 우정을 계기로 빈곤 퇴치를 위한 자선 활동을 시작했다.

특히 교회, 종교 기관에서 자선 사업을 전개했고 산크리스토발데라라구나에 가톨릭교회 대성당을 건립하게 된다.
1725년 1월 25일에는 스페인 왕실로부터 이달고 계급을 받으면서 귀족 신분에 올랐고 1727년 1월 9일에는 마드리드에서 스페인의 펠리페 5세 국왕의 연대기와 훈장을 하사받았다.
1731년에 마리아 데 레온 수녀가 사망한 이후에는 부패하지 않은 신비주의자들의 유해가 안치된 석관을 구입해서 자신의 이름을 새겼다.
아마로 파고는 스페인에서 영국의 프랜시스 드레이크와 같은 명성과 인기를 얻었으며 스페인과 적대 관계에 있던 영국, 네덜란드 등의 국가에 맞서 싸운 국민적인 영웅으로 추앙받았다.
1747년 10월 4일에 산크리스토발데라라구나에서 사망했으며 그의 유해는 산크리스토발데라라구나에 위치한 산토도밍고 수도원에 안치되었다.

- 생애 및 주요 경력
아마로 파고 (Amaro Pargo, 1678 ~ 1747)는 스페인 카나리아 제도 테네리페섬 출신의 유명한 사략해적 (Corsair)이자 상인이다. 18세기 스페인 왕실을 위해 카리브해에서 활약하며 많은 부를 쌓았고, 이 재산을 고향의 교회 및 자선 사업에 투자하여 ‘전설적인 사략해적’이라는 복합적인 평판을 남긴 인물이다.
본명: 아마로 로드리게스 펠리페 (Amaro Rodríguez Felipe)
생몰: 1678년 5월 3일 ~ 1747년 10월 4일
출생지: 스페인 카나리아 제도 테네리페섬 산크리스토발데라라구나
주요 경력: 스페인 국왕의 인가를 받은 사략해적 (Corsair)으로, 주로 카리브해 일대에서 활동하며 스페인과 적대국 (영국 등)의 선박을 공격하여 부를 획득
특징: 해적 활동 외에 무역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두었으며, 번 돈으로 고향의 종교 활동과 빈민 구제에 기여하여 사회적 지위도 얻음
사망 및 묘지: 1747년 사망하여 테네리페의 산토 도밍고 데 구즈만 (Santo Domingo de Guzmán) 교구에 묻힘
아마로 파고는 스페인 역사에서 대항해 시대의 사략해적 문화와 상업적 성공을 동시에 보여주는 상징적인 인물이다.


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