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호 목사의 컬쳐 스테이지(Culture Stage)
영화 <암살>과 남자현 선생님 이야기
2월 14일은 ‘발런타인데이’ 라는 이름으로 많은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날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국적불명의 기념일로 그동안 논란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혹자는 쵸코렛 회사가 만든 상술이라고도 합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보면 이날은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하고 사형 선고를 받은 날이기도 합니다. 올해 들어 몇몇 언론매체와 유명 인사들이 이날이 안 의사 사형선고일임을 상기시키면서 분위기가 예전에 비해 크게 달라졌습니다. 동시에 안 의사의 모친 조마리아 선생이 사형 선고를 받은 안 의사에게 보냈다고 알려진 편지가 돌연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조 여사는 편지에 “네가 만약 늙은 어미보다 먼저 죽은 것을 불효라 생각한다면 이 어미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너의 죽음은 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라며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것은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짓이다. 네가 나라를 위해 이에 이른즉 딴 맘 먹지 말고 죽으라”고 썼다고 합니다.
올해는 광복 70주년입니다. 1910년 한일합방과 함께 모든 주권을 잃었던 대한제국이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이한지 7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얼마전 중국에서 열렸던 ‘동아시안 컵’ 축구대회에도 ‘오늘은 이겨야 한다’ 라는 구호를 걸고 뛰었을 만큼 큰 의미를 가지는 해이기도 합니다. 고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흩어저 사는 한국인들 뿐만 아니라, 이곳 호주에 사는 교민들도 광복 70주년을 맞이하여 특별한 행사들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런 시간적 흐름을 타고 개봉 한 달만에 1000만 관객을 눈 앞에 둔 영화가 있습니다. 영화 <암살> 입니다. 영화 <암살>은 역사적으로 실재했던 의열단의 활동기록을 모티브로 하여 만든 허구의 작품입니다. <암살>은 캐스팅부터 화제가 된 영화였습니다. 배우 전지현, 이정재, 하정우, 오달수, 조진웅, 최덕문 등 6인 6색의 배우들의 연기를 한 영화에서 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대감이 상승되었습니다. 서로 다른 선택으로 엇갈린 운명을 맞이하게 되는 과정을 놀라운 몰입 연기로 표현했다는 감독의 말은 더 큰 기대감을 갖게 하였습니다.
영화를 만든 최동훈 감독은 “우리와 다르지 않은 인간이지만 시대의 비극 속에서 자신의 신념을 위해 다르게 살아야 했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들이 그곳에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고 싶었다”면서 조국이 사라진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을 관객들과 함께 기억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암살>의 시작은 이름없는 독립군들의 사진 한 장으로부터 비롯됩니다. 최동훈 감독은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이 있고, 흔들림 없이 그 운명 속으로 걸어가는 한 사람의 이미지를 떠올렸다”고 합니다. 2006년 <타짜> 개봉 당시 처음 <암살>의 이야기를 구상했지만 그는 이 작품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기로 결심하고 1930년대 독립운동사와 역사적 사건에 대한 연구와 고민을 거듭합니다. 그리고 <도둑들>(2012)을 끝낸 후, 이야기를 구상한 지 9년 만에 비로소 <암살> 시나리오를 집필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1000만 관객을 눈앞에 둔 <암살> 이 특별한 주목을 받는 이유중 하나는 여주인공 안옥윤(전지현 분)이 실제 모델을 모티브로 했다는 의견이 나왔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독립군을 주제로 하는 작품에는 남자가 주인공이기 마련이지만 이번 영화는 여자가 주인공이기 때문입니다.
실제 모델로 알려진 인물은 항일투사 남자현(1872∼1933) 선생입니다. 남 선생은 서로군정서에서 활약하며 사이토 조선총독과 일제 만주국 전권대사 무토 노부요시 암살을 기도한 여성 무장 독립투사였습니다. 남 선생은 1933년 무토 전권대사를 암살할 무기를 조달받는 과정에서 부하의 밀고로 일본 경찰에 체포돼 6개월간 고문을 당하다 그해 하얼빈의 한 조선인 여관에서 순국했습니다.
특별히, 남 선생에게 애착이 가는 것은 독립을 위해 무장투쟁뿐 아니라, 기독교인으로서 교회를 세우고 여성계몽을 펼치는 일에도 힘을 썼기 때문입니다.
경북 영양 사대부 집안에서 태어난 남 선생은 마을에 세워진 ‘계동교회’에서 기독교 신앙을 접했습니다. 남 선생의 증손자인 김종식 연변과학기술대 교수는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1910년쯤 영양군 수비면에 전도부인 전원구씨가 수비교회를 개척했고 1년 뒤 계동교회를 세웠다”며 “증조모는 전씨의 전도로 기독교 신앙에 귀의해 계동교회가 설립될 때 앞장서서 도왔다고 한다”고 증언했습니다.
고향에서 신앙을 키운 남 선생은 1919년 2월 서울로 올라와 김씨 부인을 만납니다. 김씨 부인은 남 선생의 남편 집안인 의성 김씨 문중 사람입니다. 고향에서 을미의병 활동으로 목숨을 잃은 남편의 뜻을 따라 은밀히 독립운동가와 교류하는 남 선생의 소식을 듣고 김씨 부인이 서울로 부른 것입니다. 이때 김씨 부인의 소개로 독립운동가 손정도 목사와 만납니다.
이런 인연으로 남 선생은 손 목사와 만주 지역에서 교회개척과 여성계몽운동을 펼쳤습니다. 김 교수는 “증조모는 서울 정동교회를 담임했던 손 목사의 도움을 받아 중국 퉁화현에 교회 12곳을 세우고 10여곳에서 여성교육모임을 가졌다”며 “망명 이후 1920년쯤 증조모가 중국 지린성에서 손 목사와 다시 만나 교류하면서 교회를 개척한 게 그 증거”라고 설명했습니다. 또 “증조모가 지린성의 손 목사 댁에 빈번히 머물며 독립군 간부인 양녀와 양아들을 중매해 결혼시킨 일화를 감안할 때 증조모의 교회·여성계몽 사역이 손 목사와 긴밀하게 추진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습니다.
특별히, 남 선생에게 애착이 가는 것은 독립을 위해 무장투쟁뿐 아니라, 기독교인으로서 교회를 세우고 여성계몽을 펼치는 일에도 힘을 썼기 때문입니다.
경북 영양 사대부 집안에서 태어난 남 선생은 마을에 세워진 ‘계동교회’에서 기독교 신앙을 접했습니다. 남 선생의 증손자인 김종식 연변과학기술대 교수는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1910년쯤 영양군 수비면에 전도부인 전원구씨가 수비교회를 개척했고 1년 뒤 계동교회를 세웠다”며 “증조모는 전씨의 전도로 기독교 신앙에 귀의해 계동교회가 설립될 때 앞장서서 도왔다고 한다”고 증언했습니다.
고향에서 신앙을 키운 남 선생은 1919년 2월 서울로 올라와 김씨 부인을 만납니다. 김씨 부인은 남 선생의 남편 집안인 의성 김씨 문중 사람입니다. 고향에서 을미의병 활동으로 목숨을 잃은 남편의 뜻을 따라 은밀히 독립운동가와 교류하는 남 선생의 소식을 듣고 김씨 부인이 서울로 부른 것입니다. 이때 김씨 부인의 소개로 독립운동가 손정도 목사와 만납니다.
이런 인연으로 남 선생은 손 목사와 만주 지역에서 교회개척과 여성계몽운동을 펼쳤습니다. 김 교수는 “증조모는 서울 정동교회를 담임했던 손 목사의 도움을 받아 중국 퉁화현에 교회 12곳을 세우고 10여곳에서 여성교육모임을 가졌다”며 “망명 이후 1920년쯤 증조모가 중국 지린성에서 손 목사와 다시 만나 교류하면서 교회를 개척한 게 그 증거”라고 설명했습니다. 또 “증조모가 지린성의 손 목사 댁에 빈번히 머물며 독립군 간부인 양녀와 양아들을 중매해 결혼시킨 일화를 감안할 때 증조모의 교회·여성계몽 사역이 손 목사와 긴밀하게 추진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습니다.
남 선생처럼 일제 때 독립투쟁에 나선 사람은 남자들만이 아니었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조마리아 선생처럼 독립운동가를 뒤에서 도운 어머니나 아내도 있었고, 더러는 남 선생처럼 직접 항일투쟁 대열에 참가한 이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역사 속에서 이들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이름은 거의 지워지다시피 했거나, 빛바랜 기록으로 남아있을 뿐입니다.
보훈처에 따르면, 2013년 11월 현재 독립유공 포상자는 외국인 46명을 포함해 총 1만3403명에 달한다고 합니다. 물론 이 숫자가 전체 독립운동가 수를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광복회는 대일 항쟁기에 독립운동에 참여한 숫자를 300만 명(연인원)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 가운데 빼앗긴 나라를 되찾고자 자발적으로 독립투쟁을 벌이다 전사·옥사·병사한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는 15만 명 정도라고 공식적으로 밝힌 바 있습니다. 이는 당시 조선 전체 인구(2000만 명)의 1%에도 채 미치지 못하는 숫자입니다. 그러나 구한말 의병부터 시작해 광복군까지 합치면 그 숫자는 족히 수십만 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그러나, 현재 정부로부터 독립유공 서훈을 받은 여성 독립운동가는 모두 223명입니다. 유관순 열사 등 한두 명의 유명 인사를 빼고는 안타깝게도 이름조차도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올해는 광복 70주년인 동시에 분단 70주년입니다. 몇 일 전 비무장 지대에서 지뢰 사고로 젊은 군인들의 다리가 절단되었다는 가슴 아픈 소식을 들었습니다. 70년전에 광복을 맞았지만 아직도 온전하게 하나가 되지 못한 지구상의 유일한 민족입니다. 이번 광복절에는 아직도 하나되지 못한 우리 민족을 위해 독립군의 마음을 가지고 함께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면 어떨까 합니다.
<여호와여 내가 소리 내어 부르짖을 때에 들으시고 또한 나를 긍휼히 여기사 응답하소서> (시편 27: 7)
임기호 목사는 교회 개척과 문화 사역을 위하여 ‘메시지 크리스챤 커뮤니티’ 사역을 섬기고 있습니다.
홈페이지: www.messageschool.or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