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오 박사의 또박또박 준비하고 가는 유학과 해외체험(27)
앞으로 여러 회에 나뉘어 나가는 이 연재는 옆 이름의 책(도서출판 엠-에드, 2006)에서 저자의 양해를 얻어 발췌한 것입니다. 저자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편집자 주
제5장 해외유학 공부, 어떻게 할 것인가? 공부충격
4. 에세이를 어떻게 잘 쓸 것인가
에세이는 지식의 나열이 아니다
서론을 잘 썼으면 그 다음은 쉽다. 모든 부분이 서론에 밝힌 목적과 방향에 맞게 나머지 부분을 써나가면 된다. 말하자면, 논리적 일관성이다. 이 목적과 방향을 가장 잘 뒷받침하는 부분은 부각시키고 연관성이 없거나 적은 부분은 과감하게 삭제해야 한다.
에세이 본론 부분은 [새로운 사상과 아이디어/new thoughts, new ideas], [비판 및 비평/critical thinking], 제안, 새로운 가능성의 제시 등이 되는 게 보통이다. 기존의 지식과 정보는 이를 뒷받침하기 위하여 필요한 최소한이 되어야 한다. 어느 쪽에 무게를 두느냐는 앞서 언급한 세 가지 유형의 공부태도와 관계가 있다. 다만 탐구적 연구 결과를 에세이 형식으로 발표하는 예는 적을 것이다. 어떤 가정을 검증하고 새로운 이론을 제시하는 연구는 대개 에세이 정도 길이의 논문에서는 다룰 수 없기 때문이다. 굳이 에세이로 한다면 새로운 연구방향이나 추세, 연구결과를 간략하게 소개하거나 평하는 정도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에세이는 앞서 소개한 세 가지 공부방식 가운데 두 번째에 해당하는 분석적 연구의 일부분 소개 또는 요약 형식을 취할 것이다. 그것은 기존의 지식에 대한 [찬반 논의/arguments]를 하거나 [비판적 개관/critical review, criticism], [새로운 해석/new interpretations], [자기 생각과 의견/thoughts and opinions], [새로운 연구방향/research directions]의 제시 등이 될 것이다. 에세이를 읽는 교수의 관심도 여기에 있다. 에세이 과제로서 [논하라/discuss, examine, explain, analyze, evaluate] 또는 [비교하라/compare] 등의 주문은 바로 그런 일을 해 달라는 것이다.
여기서 재차 더 강조해야 할 것은 에세이가 그런 것이라면, 재생산식 지식의 나열로 일관된 에세이는 우수할 수 없다는 점이다. 영미 대학에서 오래 지내다가 은퇴한 한 한인 교수는 학생들의 에세이 평가에 대하여 이렇게 말한다. “아시아 학생들은 논문에서 아는 사실을 백과사전식으로 잘 정리한다. 그런 논문은 같은 고생을 하고도 좋은 점수를 받지 못한다. 아시아 학생들은 사실을 많이 알고 있고 정리하는 데는 우수하나 논평에서는 서양 학생들에게 뒤진다. 자기 생각이 없는 논문에 좋은 점수를 줄 수는 없지 않은가.”
사례 하나를 더 들어 보겠다. 고려가 망한 이유를 논하라는 에세이 과제다. 재생산방식에서는 국사책에 적혀 있는 이유 몇 가지를 잘 정리하면 된다. 분석적 방식에서는 여러 자료를 통해 정보를 얻어 종합적으로 분석한 다음, 적어도 자신의 견해와 비판을 보태면 된다.
탐구적이라면 이와 다르다. 고려가 망한 이유에 대한 기존의 자료와 지식을 바탕 위에 새로운 문제를 제기하고, 그에 대한 결과를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에세이로서 그 정도까지 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한국의 대학에도 영미권에서 교육받은 교수들이 많아져서 영미식 공부가 이루어지고 있으나 아직도 평가방법은 재래식이라는 여러 가지 증거가 있다. 가령 대학에 입학만 하면 거의 자동적으로 졸업을 할 수 있는 것은 학생들이 시험 때 배운 것을 잘 정리하면 되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한국에서 흔히 에세이를 논술과 거의 동일시하는 것도 아마도 그런 이유에서 일 것 같다.
현재 필자는 학문적 연구보다 시사성 있는 사회 이슈들에 관심이 커 신문의 사설, 논평, 시론 등을 찾아 읽는 편이다. 그 안에서 다뤄지는 찬반 의견, 비판과 비평, 방향 제시를 약간 확대하고 약간의 형식와 뼈대를 갖춘다면 훌륭한 에세이가 될 수 있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더러 발견한다. 대학입시 과목으로서의 논술은 내용으로 봐 신문 사설, 논평, 시론, 수상에 가까운데 텀 페이퍼로서 에세이를 대치할 수 없다고 보는 이유는 학문적 관심과 접근보다는 시사성과 사실의 기술에 무게가 더 가 있어 그렇다.
순서를 바꿔 쓰는 것도 한 가지 방법
좋은 글을 쓰는 첩경은 쓰고자 하는 내용을 잘 정리하는 일이다. 영어로는 [organize/structure]한다는 말을 쓴다. 필자는 이 과정을 옷장 정리에 비유한다. 일정한 크기의 옷장에 여러 가지 많은 옷을 넣어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필요 없는 옷은 일부 버려야 한다. 또 옷을 잘 개서 넣어야 한다. 그래야 공간을 아낄 수 있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내용을 잘 정리하려면 글의 목적에 가장 기여하는 내용은 키우고, 덜 기여하는 내용은 과감히 빼거나 줄여야 한다. 그리고 같은 문제를 다룬 내용, 서로 관련된 내용과 설명은 여기저기 흩어 지지 않게 한 군데 모아서 다뤄야 한다. 뒤에서 다룰 사항을 앞에서 다루거나, 반대로 앞에서 다룰 사항이 뒤로 가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글쓰기를 지도하는 교수는 [This does not belong here/여기에 속하지 않는다/이 자리는 그게 와있을 자리가 아니다]와 같은 말을 잘 하는데 그런 뜻이다.
그런데 그렇게 조직적으로 쓴다는 일이 쉽지 않다. 옷장에 옷을 정리하여 넣는 일과는 비교가 안 된다. 글쓰기가 어려운 이유다. 인간의 머리가 우수하다고는 하지만 3,000자의 내용을 한꺼번에 머리 속에 떠올릴 수는 없으므로 생각이 흐트러지기 쉽다. 글쓰기 훈련이 따로 필요한 이유다.
필자가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쓰는 작은 요령 하나를 소개해 보겠다. 약간 변칙이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필자는 글을 언제나 처음부터 끝까지 순서에 따라 한 번에 쓰려고 하지 않는다. 몇 개로 토막을 미리 내서 – 예컨대 머리 부분, 쟁점 부분과 마지막 부분 등 – 앞부분을 끝내기 전에 뒤를 먼저 쓰기도 하고, 중간 부분을 먼저 써 놓기도 한다. 그러는 과정에서 전체의 윤곽을 빨리 잡을 수도 있고, 앞을 쓰는 동안 뒤에 쓸 만한 좋은 생각을 놓쳐버리는 우를 막을 수 있다. 또 뒷부분을 먼저 써 본다면 앞에서 미리 그것을 장황하게 쓰는 실수(중복)를 막을 수 있다.
이런 방법을 활용해 보면 쓰다가 막히거나 제목에서 벗어나 삼천포로 빠지는 잘못을 줄일 수 있고, 또 중간 부분 또는 뒷부분을 먼저 써서 어느 정도 완성해 놓으면, 심리적으로도 안심이 되어 일이 뜻밖에 순조로워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신문 기사라면 역피라미드 기법을
에세이 쓰기와 [기사 쓰기/new writing, story writing]는 다르지만, 어떤 문제를 제한된 길이 안에서 전체적으로 논리가 일관되고 짜임새 있게 다뤄야 한다는 점에서는 유사하다. 미국 신문에서는 기자가 글을 쓰기 전에 편집자가 [Where are you going to peg your story?]라고 묻는 수가 많다. [Peg]는 말뚝이다. 소는 말뚝에 매어 놓지 않으면 아무데로나 다니면서 풀을 뜯어먹게 될 것이다. 에세이도 마찬가지다. 에세이를 어떤 쪽으로 쓸 것인지 미리 말뚝을 박아 놓아야 여기저기로 헤매지 않을 것이다. [Where are you going to peg your essay/또는 report?]란 질문이 가능하다.
글의 각 부분은 전체 흐름에 [일관성/coherence/consistency]이 있어야 한다. 앞뒤가 고르게 맞아야 한다는 말이다. 글의 논리다. 에세이보다 더 지면을 아껴야 하는 신문 문장의 경우는 이때 이른바 [역피라미드/inverted pyramid] 기법을 잘 쓴다. 서론 없이 중요한 대목부터 시작하여 더 중요한 내용 순서로 풀어 나가는 식이다. 지면 제약으로 길이를 줄여야 할 때 바쁜 편집장은 뒤에서부터 자르면 되는 이점이 있다. 짧은 에세이라면 이 기법을 이용해도 될 것이다. 큰 것에서부터 작은 것, 가장 중요한 것부터 덜 중요한 것으로 논리의 일관성을 유지하여 전개해 나가는 것이다. 특히 분석보다 사실을 서술하겠다면 그렇다.<다음호에 계속>
김삼오 박사(커뮤니케이션학 박사)
고려대학교 정외과 졸업 (MA)
컬럼비아대학교 언론대학원 졸업 (MS)
매콰리대학교 박사과정 졸업 (PhD)
전 파이스턴 이코노믹 리뷰 서울특파원
전 호주국립한국학연구소 수석연구원
E-mail: karckim@optusnet.com.au
Blog: blog.daum.net/samokim3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