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national Holocaust Remembrance Day
살아있는 역사 잊지 말아야
지난 1월 27일은 ‘국제 홀로코스트 희생자 추모의 날’(International Holocaust Remembrance Day)이다. 유엔은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과 같은 인류 역사상 끔찍한 일을 잊지 않기 위해 과거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의 해방일(1945년 1월 27일)에 맞추어 ‘국제 홀로코스트희생자 추모의 날’을 지정하게 되었다. 2005년 유엔총회 결의문(60/A/7)을 통해 제정된 ‘국제 홀로코스트 희생자 추모의 날’에는 유엔본부와 전 세계 유엔정보센터에서 추모기념식, 관련 영화 상영, 라운드테이블 토론, 관련 도서 사인회, 음악회, 학교교육행사 개최 등을 진행해 홀로코스트를 포함한 역사속 참혹한 학살사건들의 희생자를 추모하며 평화의 메시지를 전 세계에 강조하고 있다. ‘홀로코스트’(Holocaust)란 좁게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이 ‘인종청소’라는 이름 아래 600만명이 넘는 유대인을 희생시킨 대학살을 의미하나, 유엔은 전 세계적으로 자행된 참혹한 학살 등도 포함하여 ‘학살 없는 미래’를 위한 전 세계적 인식제고에 나서고 있다.
빌리 브란트 한 사람의 무릎 끓는 사죄가 독일 일으켜
빌리 브란트는 제4대 총리를 지낸 독일 정치인이다. 그는 노벨평화상을 수상했고 독일 국민들의 가슴에 바르고 진실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다. 그가 죽어서까지 추앙을 받고 그의 이름이 회자되는 이유는 뭘까? 빌리 브란트는 1913년 독일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릴 때부터 정치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17살에 사회민주당에 입당했다. 히틀러가 권력을 장악하자 그는 반(反)나치 운동가로 활약을 했다. 그리고 나중에는 정계에 진출해 서독 수상의 자리까지 오르게 되었다. 수상이 된 후, 그는 분열과 전쟁의 시대를 종식시키고 통합의 시대를 열고자 하였다. 1970년 그는 폴란드 방문길에 올랐다. 그러나 폴란드 국민들은 그의 방문을 반기지 않았다. 그 이유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했기 때문이다. 폴란드 국민들은 독일에 대해 반감이 강했다. 그는 가장 먼저 바르샤바 국립묘지를 찾았다. 그곳은 나치에 의해 40여만 명이 희생된 유대인 게토지구에 세워진 추모의 묘역이었다. 그는 꽃 한 송이를 들고 다소 무거운 표정을 지으며 추모비 앞으로 나갔다. 그리고 눈을 감고 묵념을 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그는 차디찬 콘크리트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그는 쓰러진 게 아니라 참회의 눈물을 흘리며 무릎을 꿇은 것이다. 전쟁 희생자들에게 나치의 만행에 대해서 진심으로 사죄를 하고자 했던 것이다. 다음 날, 신문을 접한 폴란드인들과 유럽인들은 빌리 브란트의 진심이 담긴 사과와 참회를 받아들이고 감동까지 받았다. 그리고 언론은 이렇게 평했다. “무릎을 꿇은 건 한 사람이었지만, 일어선 것은 독일 전체였다.”
빌리 브란트의 사죄로 인해 폴란드와 유럽, 그리고 전 세계는 독일을 용서하고 협력의 파트너로 받아들였다. 1973년 빌리 브란트는 이스라엘을 방문해 역시 나치가 유대인에게 저지른 만행을 진심으로 사과했고 용서를 구했다. 이스라엘 수상은 그의 진심을 받아들이며 이렇게 말했다. “당신의 진심을 받아들이겠습니다. 용서하겠습니다. 그러나 잊지는 않겠습니다.” 지금도 폴란드 아우슈비츠에는 역사를 잊지 않으려는 추모객들이 끊이지 않는다.
한국의 역사전쟁은 진행형
역시 전쟁의 아픔을 경험했고 또 역사바로세우기가 꾸준히 현재진행중인 조국 대한민국에 주목해야겠다. 최근 중국이 개관한 ‘안중근 의사 기념관’을 생각해 본다. 그리고 또 올해 처음 미국에 세워진 ‘위안부 결의안 기림비’를 생각한다. 그리고 이에 곧바로 항의하고 나선 일본의 염치없는 태도를 볼 때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의 역사교과서문제(日本歷史敎科書問題)는 일본과 주변의 이웃 국가(중국, 러시아, 그리고 대한민국 등) 사이에서 겪고 있는 일본의 역사교과서의 기술을 둘러싼 문제이다. 일본의 교과서 기술에서 드러나는 과거사 인식은 한국과 중국 등 주변국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았다고 종종 지적되어 왔다. 특히, 고대사와 근현대사와 관련한 한일관계에 대한 서술과 제국주의 일본에 대한 미화와 왜곡은 주변국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1990년대 후반에 결성된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을 중심으로 이러한 경향이 두드러져 논란이 되었다. 영토 문제와 관련, 독도에 대한 일방적인 주장도 문제가 되었다. 2001년 4월과 2005년 4월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의 주도로 중학교 역사교과서 다수가 수정된 후에, 검정합격하였다. 중국 정부는 이것을 역사의 왜곡이라고 비판하였으나, 일본정부는 기술에 명백한 오류가 있다고 할 수 없어, 제도상 정정할 수 없다는 입장에 있다. 수 차례 교과서 기술이나 강연회, 정치인의 발언 등에서 일본의 과거사 인식이 문제가 되었다. 1980년대 중반에는 일본의 역사교과서의 내용에 대한 반발로 시정을 요구하기도 했으며, 2001년에는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를 조직하여 2010년에 그 결과를 발표하는 등 양국의 시각차를 줄이려는 노력이 있었으나, 교과서에 대한 논란은 현재도 진행 중이다.
한편 최근에는 대한민국 내에서 모 출판사가 제작한 교과서 채택에 있어 근현대사 역사기술 및 편집진의 역사 인식에 대한 논란도 적지 않은 것을 볼 때 안타깝기 그지없다. 올해로 제9회 ‘국제 홀로코스트 희생자 추모의 날’을 보내며 내 민족의 아픔과 세계의 민족, 남녀노소, 피부색, 성, 종교를 뛰어 넘어, 최악의 상황에서 위험이 큰 취약 계층을 보호해야 할 것이다. 과거를 되새김과 동시에 추모하며 앞으로 기억해야 할 부분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