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4년 9월 6일, 프리기두스 전투 (Battle of the Frigidus)에서 로마의 왕위 찬탈자 유게니우스 (Flavius Eugenius, ? ~ 394)가 테오도시우스 1세 (Flavius Theodosius, 347 ~ 395)에 패해 사망

유게니우스 (Flavius Eugenius, ? ~ 394년 9월 6일)는 황제 테오도시우스 1세 (Flavius Theodosius, 347년 1월 11일 ~ 395년 1월 17일)에 대항한 서로마 제국 (392 ~ 394년)의 찬탈자였다.
392년 발렌티니아누스 (Flavius Valentinianus, 371년 ~ 392년)가 의문의 죽음을 당하고 갈리아의 섭정이던 아르보가스트가 유게니우스를 새로운 서방 황제로 추대하자 테오도시우스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유게니우스는 기독교인이면서도 이교도를 대상으로 한 테오도시우스의 종교 정책으로 인해 야기된 서방의 불만을 이용했다.

그는 로마 원로원의 지속적인 청원 끝에 이교도인 비너스와 로마의 사원을 복원하고 승리의 제단을 복원했다.
유게니우스는 테오도시우스의 행정관을 이교도를 포함하여 그에게 충성스러운 사람들로 교체했다. 이것은 이교의 원인을 되살렸다.
유게니우스는 비록 기독교인이었지만 로마와 이탈리아에서의 자신의 입지 강화를 위해 전통적인 로마 종교에 대한 관용을 보여 지지를 끌어냈다.
이에 테오도시우스는 유게니우스에 대한 전쟁을 준비하면서 황제 권력 쟁취 뿐 아니라 종교적 신앙의 문제라고 하였다.
테오도시우스는 394년 당시 이미 로마화되어있던 2만 명의 고트족 병사들을 이끌고 유게니우스와 맞서기 위해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출발했다.

당시 테오도시우스의 토벌군에는 서고트족 지도자 알라리크가 있었고 반달족 출신의 로마 군단장 스틸리코도 있었다.
양측은 394년 9월 5일 프리기두스강에서 처음 맞붙었다.
첫날 전투에는 테오도시우스의 군대가 패했으나 다음날인 9월 6일 전세가 호전되어 테오도시우스는 승리할 수 있었다.
유게니우스는 처형당했고 아르보가스트는 도망다니다가 자살했다.
이로써 테오도시우스는 로마 제국의 유일한 황제로 제국의 동방과 서방 모두를 다스리게 되었다.
이 승리는 또한 비기독교 신앙에 대한 완전한 단절을 의미한다.

- 프리기두스 전투
‘프리지드 강 전투’라고도 불리는 ‘프리기두스 전투’는 394년 9월 5일과 6일 사이에 테오도시우스 대왕의 군대와 반란군 유게니우스의 군대 사이에 벌어진 전투였다.
테오도시우스는 전투에서 승리하여 유게니우스와 아르보가스트의 유렵을 격파하여 로마 제국에 대한 단결을 회복하였다.
알라리크와 게이나스가 이끄는 고트족 중 테오도시우스의 동맹군들 사이에서, 그리고 이베리아인 바쿠리우스로부터 지원군을 받아 테오도시우스의 군대가 유게니우스의 군대를 격파했다.
이 싸움으로 테오도시우스의 3차 내전을 종식시켰다.
교회 역사에서 이 전투는 사실 유게니우스는 이교도가 아니었지만 로마 이교도의 마지막 전투로 기억되었다.



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