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하의 생명과학 이야기
거미의 생명과학

출입문의 거미 한 마리
몇 주 전부터 출입문에 그리 크지 않은 거미 한 마리가 거미줄을 쳐 놓는데 출입할 때 마다 머리와 안면에 엉켜 붙어서 떼어 내지만 찜찜하다. 생존수단으로 고된 작업을 통해 구축한 구조물을 훼손하는 것이 미안하지만 불가피한 상황이다. 지난해에는 7-8m 높이는 되는 전선에 대형[大形] 거미줄을 구축하는 놈이 있었다. 그 높은 곳을 올라가기 위한 수단으로 5m거리에 있는 전주를 타고 올라 간게 틀림없다고 생각하였다. 날개도 없는 거미가 날라 갔을 리도 없고 그 높은 곳에 전선을 이용하겠다는 구상 자체가 경이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미는 거미줄의 기점에서 첫 번째 씨줄을 바람에 날려서 그 끝이 접착되면 줄을 팽팽하게 당겨 고정한 후에 세로줄과 가로줄을 만들어 간다고 한다. 거미가 쳐놓은 거미줄에 잠자리며, 메뚜기나 나방 등이 거미줄의 접착성에 꼼짝 못하고 포획 될 수밖에 없는데, 당사자인 거미는 유연하게 거미줄 위를 활보하는 mechanism에 관해서 과학자들은 궁금증을 가지고 있었다. 어린 시절에 거미줄로 잠자리채를 만들어서 잠자리나 매미를 잡았는데 이웃 마을의 친구들이 잠자리채보다 훨씬 진화된 방법으로 거미줄을 이용하는 것을 보고 놀라워 한일이 있다. 거미줄로 채를 만들어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거미줄을 잔뜩 뭉쳐, 입안에서 넣고 잘근잘근 씹어서 콩 톨 만하게 뭉치를 만들면 본드 같은 강력접착제가 되는데 이것을 호밀짚 끝에다 매달아서 앉아 있는 잠자리나 매미의 날개에 갖다 대면 거의 백발백중이다. 매미채와는 비교할 수 없는 능률적이고 혁명적인 방법이었다.
거미줄의 첨단과학
과학자들의 호기심도 거미줄을 비켜갈 수가 없는 것이었다. 100여년 전에 장앙리 파브르[Jean-Henri Fabre 1823-1915]는 <거미의 삶>이란 책에서 거미가 제 거미줄에 걸리지 않는 까닭은 입에 달려 있는 분비 샘에서 접착을 방지하는 기름을 분비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였으나 과학자들의 후속 연구로 파브르의 생각과는 다른 mechanism을 밝혀냈다. 코스타리카에 있는 스미스 소니언 열대연구소 과학자들은 비디오카메라를 이용한 면밀한 관찰과 실험을 통해 거미줄에 들러붙지 않는 비결은 무엇보다 발에 빽빽하게 난 가늘고 빳빳한 강모(센 털)라는 털 덕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강모는 점액과 마찰 면적을 최소한으로 줄여 끈끈이가 다리에 묻는 것을 막아 주는데, 강모에는 기발하게도 털 중간에 가지가 나 있어 점액이 흘러내리는 것을 방지하도록 돼 있다. 이런 장치 이외에도 거미는 강모에 붙은 끈끈이가 떨어지도록 거미줄에서 발을 조심스럽게 빼는가 하면, 거미의 몸 표면에는 점착을 막는 화학물질 층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와 같은 과학의 비밀을 파헤칠 수 있는 것은 전자현미경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실험실에서 사용하는 광학현미경이 수 천 배인데 반해 광학현미경은 나노미터[nm, 1nm=10억분의 1m]로 관찰하게 되니 과거에 상상하지 못했던 물체를 관찰하게 되는 것이다. 몇 일전에 호주의 한 방송에서 연[蓮] 잎 표면의 특수한 구조로 물방울이 굴러다니는 현상을 설명하고 있었다. 육안[肉眼]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지만 연 잎 표면에 있는 무수한 미세 돌기 덕분이라는 것이다. 연 잎 바닥 면의 미세 돌기는 물방울이 연 잎 표면과 접촉하는 각도를 커지게 만들며, 이 큰 각도는 물방울이 연 잎 바닥에 달라붙을 수 없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마치 공을 바늘 끝 위에 올려놓는 격이 되기 때문이다. 흔히 물과 친하게 잘 섞이는 성질을 친수성[親水性], 반대로 물과 친하지 않은 성질을 소수성[疏水性]이라고 한다. 접촉하는 각도가 60도보다 크면 소수성, 30도 이하이면 친수성을 띤다고 말한다. 그런데 연 잎 바닥 면이 물방울과 접촉하는 각도는 150도 이상이라 ‘초소수성’을 갖는다는 뜻이다. 거미의 다리에는 연 잎의 돌기 모양의 강모[剛毛]가 무수하게 돋아 있어서 거미줄과의 마찰 면적을 극 최소로 축소되었기 때문에 거미줄에 달라붙을 수가 없다는 설명이다. 거미는 연 잎의 소수성과 유사한mechanism으로 그들이 구축한 거미줄 위를 유연하게 활보할 수 있는 것이다.
거미의 계보[系譜]
거미를 곤충류[昆蟲類]로 잘 못 알고 있는 분들이 종종 있다. 촌수를 따지면 곤충과 8촌쯤 된다고 할까? 다리가 관절[마디]로 되여 있는 동물을 절지동물이라고 하는데 거미와 곤충은 절지동물 가문[家門]의 후손들 이라고 할 수 있다. 다리가 3쌍인 곤충과 다리가 4쌍인 거미 류, 다리가 5쌍인 가재 등이 절지동물이다. 현존하는 생물 종의 80퍼센트 이상이 절지동물 문[門]에 포함된다. 현재까지 알려진 절지동물의 수는 약 90만 종으로 동물계 전체의 3/4 이상을 차지한다. 이중에서 거미는 다른 절지동물이 다 가지고 있는 더듬이[feeler]가 없다. 거미는 종류도 많고 생활방식도 가지가지다. 거미줄을 쳐서 먹이를 사냥하는 종류는 소수에 속한다. 주택 주변에서 거미줄을 많이 보이기 때문에 거미는 모두 거미줄을 치는 것으로 생각하게 된다. 거미줄도 땅굴을 파서 함정을 만들어 놓는다던지 거미줄 없이 꽃처럼 위장하고 있다가 재빠른 속도로 먹이를 덮치는 등 먹이 사냥법도 거미종류에 따라 다양하다. 생활형으로 보아 정주성(定住性), ·방랑성(배회성), ·조망성(造網性) 등 3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정주성 거미에는 땅거미 등이 있으나 수중생활을 하는 물 거미도 있다. 방랑성 거미는 사는 곳이 일정하지 않고 둥지를 가지지 않으며 땅 위 ·풀뿌리 근처나 잎 위 등을 돌아다니다가 먹을 것을 발견하면 잡아먹는다. 공중에 거미줄을 치는 거미를 조망성 거미라고 하는 것이며 먹이가 걸리기를 기다렸다가 잡아 먹는다. 거미의 크기는 몸길이 1mm 정도의 미세한 것에서 약 5cm에 이르는 거미까지 있으나 5∼15mm가 보통이다. 날개가 없고2∼4쌍의 거미줄을 뽑아내는 방적돌기(紡績突起)를 가지고 있으며 곤충처럼 변태를 하지 않는다. 거미의 입은 먹이를 씹을 수 없고 이빨로 먹이를 찌른 다음 소화액 주입시켜 용해시킨 후에 빨아 먹는다. 배는 대체로 난형이며 부화된 애 거미는 배에도 몸 마디가 있는 것으로 보아서 거미의 조상은 배에 몸 마디가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암수는 구별하기 힘들지만 일반적으로 수컷이 작고, 다리는 길며 촉 지의 끝 마디가 퍼져 있다.
거미줄의 다양성
거미의 그물 모양은 다양하다. 둥근 그물은 공중에 치는 규칙적인 바퀴 모양의 그물이다(왕거미류 ·호랑거미 ·먼지거미). 조각그물은 완성된 둥근 그물이 아니고 3가닥의 세로 실에 둘러싸인 2구획(區劃)에 가로 실이 없으므로 초승달 같은 모양이 된다(조각그물거미 왕 거미류). 3각그물은 부채그물이라고도 하며 둥근 그물이 변형된 그물이다. 접시그물은 거미줄이 불규칙하게 펼쳐져 접시 모양 또는 사발 모양으로 된다(접시 거미류). 선반그물은 거미줄이 불규칙한 선반 모양으로, 담장이나 가구류 사이에 친다(참 집 가게거미 ·들풀거미). 이 밖에도 줄 그물, 바구니그물(꼬마 거미류), 천막그물 등이 있다. 거미줄은 뱃속에 실의 본바탕이 되는 액체가 들어 있으며, 이 액이 방적돌기에 있는 무수한 토사 관과 가는 관으로부터 나오는 찰나, 공기에 접촉되어 굳어져 실이 된다. 한 마리의 거미가 내는 실에도 여러 가지가 있는데 테실·발판실·세로실 등은 점착성이 없고 가로 실은 점착성이 있다. 거미는 지구상에서 곤충에 이어 가장 종류가 많은 생물이다. 4만종의 대 집단으로 번성한 거미는 해충을 잡는 기막힌 거미줄 묘기로 인간에게 큰 도움을 준다. 하지만 거미가 번지점프, 사냥, 먹이 포박, 고치 만들기, 비행 등을 위해 무려 9가지나 되는 거미줄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최근 단국대 문명진 교수(생물학)는 왕거미의 몸을 전자현미경으로 정밀 분석해, 거미가 어떻게 해서 이처럼 다양한 거미줄을 만들어내는지 밝힌 논문을 한국곤충학회지, 한국생물과학회지에 발표했다. 문 교수가 연구한 왕거미는 매일 체중의 10%에 이르는 거미줄을 뱃속 실 샘에서 액체로 만들어낸다.
거미가 이 액체를 배의 꽁무니에 있는 3쌍의 실 젖을 통해 뿜어내면 고체 상태가 되는데 이것이 바로 거미줄이다. 거미는 매일 새 그물을 친다. 먼저 나무나 풀 위에 올라가 번지점프를 하면서 자전거 바퀴살 모양의 골격을 만들고 그 위를 뱅글뱅글 돌면서 동심원 모양의 포획사[捕獲絲]를 친다. 그리고 하루가 지나면 거미줄을 싹 먹어 치워 알뜰살뜰 재활용까지 한다. 문 교수는 “번지점프용줄”은 병상선[病床腺]이라는 실[絲] 샘에서 나오는 데 “단위 굵기로 비교한다면 강철은 물론 인류가 만든 가장 강한 섬유인 케블라 섬유보다도 훨씬 강도가 높다”고 말한다. 거미는 암컷과 짝짓기를 위해서 선물도 바치고, 사기[詐欺]도 친다고 한다.
거미줄의 응용
케블라 섬유는 미국의 듀폰사가 개발한 것으로 같은 무게의 강철보다 약 5배정도 튼튼하다. 5mm의 가느다란 실이지만 2톤의 자동차를 들어 올릴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고 총알도 막을 수 있다고 해서 방탄복이나 낙하산 줄을 만드는데도 사용하는 섬유다. 현재까지 인간이 만든 가장 강력한 섬유로 인정받지만, 미국 해군은 낙하산 케블라 섬유보다 더 강력한 섬유를 만들기 위해 거미줄을 연구 중이며, 몸 속에서 분해되는 수술용 봉합사를 만드는 연구도 진행 중이다. 거미는 먹이를 먹은 뒤 불과 20분이면 거미줄에 필요한 단백질을 합성해낸다. 그 비결은 거미가 먹이의 몸 속에 소화효소를 주입해 완전히 녹인 액체상태로 빨아먹고 매우 효율적으로 단백질을 합성하기 때문이다. 거미는 자기영역에 들어오면 목숨을 걸고 싸우는 습성 때문에 누에나방의 실크처럼 대량 사육에 의한 생산이 불가능한 것이 산업화되지 못하는 이유이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거미의 유전자를 누에나 대장균에 넣어서 거미줄을 만들려고 하고 있다.
거미의 생식방법
거미의 생식방법도 특이하다. 수놈 거미의 머리에 붙어있는 두 번째 다리를 제2부속지[附屬肢]라고 하는데 각수[脚鬚, 다리수염]가 변형된 것으로 일종의 교미기[交尾器]다. 짝짓기 때가 가까워 오면 수놈은 특수한 거미줄로 ‘정자집’을 만든다. 이렇게 만들어진 정자집에 정액을 한 방울 떨어뜨리고 이것을 각수로 잡아당겨서 암놈의 질(膣)에 집어넣는 행위를 하는데 이것이 거미의 교미다. 마치 T스푼 같은 각수로 정액을 떠서 질[膣]에다 흘려 넣는 형국이다. 거미 수컷은 파리 등 먹이를 잡은 뒤 거미줄로 포장해서 암컷에게 선물로 주는 습성이 있다. 암컷은 선물에 하도 익숙해져 있어 선물을 내놓지 않는 수컷과는 거의 짝짓기를 하지 않는다. 선물을 거미줄로 단단히 묵는 것은 암컷이 일을 치르다 말고 달아나는 수가 있기 때문에 포장을 푸는 시간을 이용해서 일을 치르겠다는 의도가 숨겨 있다는 것이다. 수컷은 종종 먹잇감이 될 수 없는 솜 뭉치나, 속을 다 빨아 먹은 곤충 껍질 등을 똘똘 뭉쳐서 암컷에게 바치며 야욕을 달성하고 줄 행낭을 치는 사기[詐欺]꾼 거미도 있다. 덩치가 큰 암컷은 종종 사기꾼 수컷을 잡아 먹는 수가 있다.
독거미
호주 사람들이 독거미 이야기로 호들갑을 떤다고 생각했다. 호주 학교에서 종종 독거미를 소개하며 경각심을 일깨우는 수업을 받은 일이 있다. 호주에서 인간에게 치명적인 공격을 할 수 있는 11종의 동물을 꼽는데 그 중에 2종류의 독거미가 들어 있다. 뉴스에 등장하는 것으로 봐서는 상어의 피해가 가장 많은 것 같고, 두 번째로 악어에게 물리는 뉴스가 종종 있으며, 해파리의 피해도 뒤를 따른다. 골프공 만한, 파란고리문어(Blue-ringed Octopus)가 바다 생물 중에서 가장 강력한 독을 가지고 있다면 믿을 수 있을지? 이 문어에게 물리면 1시간이내에 사망하고 해독제도 없다고 한다. 그 밖에 박테리아를 매개하는 곰쥐(Black Rat), 딩고, 악어, 불독개미(Bulldog Ant)와 2종류의 독사가 호주정부가 선정한 치명적인 11종의 동물이다. 끈적거리는 그물로 함정을 만들고 가운데 홀에 숨어서 먹이를 기다리는 깔대기그물거미(Funnel web Spider)가 있고, 색깔이 검고, 짝짓기 후에 수컷을 잡아먹는 습성 때문에 이름이 된 검은과부거미(Black widow Spider)가 가장 흔한 독거미다. 선생님들이 주의 시키는 이들 독거미를 보지 못했다. 어느 생명체나 다 그러하지만 거미도 “과학의 스승”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거미는 첨단 과학 연구분야에서 빼 놓을 수 없는 고마운 동물입니다. 거미의 독[毒]만 해도 발기부전[勃起不全]치료제로 유망하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브라질에서 서식하는 브라질방황거미[phoneutriangriventer]로 부터 추출한 독으로 고혈압과 당뇨병으로 발기가 안 되는 들쥐에게 주사하였더니 노화와 관련된 발기부전이 현저하게 개선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것이며, 이 연구의 동기는 독거미에 물렸다가 생존한 남자중에 발기가 지속되는 것을 보고 힌트를 얻었다고 한다. 현재 시판 중인 비아그라, 시알리스, 레비트라 등의 발기부전 치료제는 약 30%의 사람에게는 효과가 없거나 부작용이 있지만 거미 독으로 만든 미래의 발기부전치료제는 이런 단점이 거의 없을 것이라고 한다. 거미 독을 이용한 발기부전 치료제의 시판[市販]을 학수고대할 소비자는 많을 것 같다. 이 밖에도 거미에 관한 연구와 개발은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강력한 소화력
거미가 생산하는 효소는 강력한 소화력을 가지고 있으며, 그래서 특별히 ‘아라자임(Arazyme)’이라 이름 붙여졌다. ‘아라’(Ara)는 라틴어로 거미라는 뜻이고, ‘자임’은 영어로 엔자임(Enzyme) 효소라는 뜻이다. 무당거미에서 추출한 아라자임은 각질을 제거하는 화장품에 주요 성분으로 활용되고 있다. 거미는 눈과 귀가 퇴화 되었어도 포식자나 먹이를 인식해야 하기 때문에 이러한 감각기관이 잘 발달돼 있는 점에 착안해서 국내연구진은 미세한 균열이 있는 거미의 기관을 본떠 초 고감도 센서를 만드는데 성공하였다고 한다. 얇은 백금 박막에 균열을 낸 뒤 잘 휘어지는 기판 위에 붙여 보니 기존의 센서보다 최고 천 배까지 민감한 센서를 만들 수 있었다고 한다. 짧은 지면에 거미에 관한 정보를 소개할 수 없지만 거들떠보지 않았던 거미에게 너무나 많은 생체비밀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는 것이다.

박광하(전 여주대신고 교감, 전 수원계명고 교장)
38khpark@hanmail.net
필자 박광하 선생은 고려대학교 생물학과를 마친 후에 평생을 생물과학 강의와 교육에 헌신하여 왔다. 30여년 전 호주로 이주하여 시드니에 거주하며 민주화 실천과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 ‘생명과학이야기’ (북랩)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