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준 교수의 호주선교사 열전(27)
마가레트 알렉산더 디커니스 (1886-1967. 4. 5)
한국명: 안진주(安珍珠), 부산 1911-18, 1921-33; 통영 1918-20, 1934-39, 1940-41; 동래 1939-40
마가레트 알렉산더는 목사의 딸로서 대학교 분위기 안에서 자라났고, 어린 시절부터 선교사들과 가깝게 접촉하였다. 그녀는 일찍 자신을 그리스도에게 드렸고, 그리스도를 섬기는 일에 자신의 삶을 헌신했다. 그녀는 이러한 목적을 위해 공부의 방향을 결정했고, 뛰어난 학생이 되었다. 그녀는 대학에서 1년 동안 언어를 공부했고, 그 후 전공을 변경하여 유치원 교육에서 디플로마를 취득했고 멜번 북쪽에서 유치원을 운영의 책임을 맡았다. 그 후 그녀는 디커니스 훈련소에서 훈련을 받았고 그리스도에게 여성 자매들을 회심시키는데 자신의 삶을 헌신했다.
그녀는 1911년 2월 21일에 부산에 도착했다. 1911년 말 마가레트 데이비스가 진주로 배속되자, 알렉산더는 최소한의 한국어 교육을 받은 상태에서 일신여학교 운영에 대한 책임을 맡게 되었다. 그녀는 처음에 학교에 출근에서 매주 교사 모임을 가지면서 학교 운영을 논의했다. 그러나 1912년 4월부터는 하루에 한 두 시간씩 수업을 시작하였다. 1913-16년 중반까지 그녀는 학교사역의 비중을 점차 늘려갔다. 교사들을 위해 주간 준비 수업을 마련했고, 여학생 주일학교를 발전시켰다. 그녀는 또한 순회전도를 시작하여 장기간 지속하였고, 시골여성들의 공부반과 경남여자성경학원에서 가르쳤다. 그녀는 나환자 요양소의 여자환자들을 방문했다. 그녀는 예리한 관찰력이 있었고, 사람들에 대해 광범위한 기억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1916년 중반 휴가를 받아 호주에 도착했을 때 건강이 악화되어 있었고 그녀의 휴가 기간은 건강이 회복 될 때까지 8개월로 연장되었다.
1918년 그녀는 부산에서 다시 일을 시작했으나 통영의 왓슨 부부가 휴가를 떠난 후, 그녀는 그해 통영으로 배치되어서 그 곳의 학교를 보살펴야 했다. 그 외에도 그녀는 순회전도, 지역심방, 공부방 교육을 하면서 주일학교와 전도부인을 감독했다.
1921년 알렉산더는 부산으로 돌아와서 그 이후 12년 동안 시골 지역의 여성들의 복음화와 교육에 대해 대부분의 책임을 감당했다. 그녀는 언양, 울산, 거창, 동래, 밀양, 김해 지역들을 일년에 3회 혹은 그 이상 순회하였고 여자성경학원을 조직하고 여성 지도자들을 교육하였다. 또한 그녀는 확장주일학교에 대한 책임도 지고 있었고, 오랜 시기동안 나환자 요양소의 여성들을 가르쳤다. 한때 그녀는 부산진에 새롭게 유치원을 설립하는 책임을 맡았고 유치원 교육을 위해 어린 여성들을 훈련시켰다.
알렉산더는 1934-39년까지 그후 1941년에 다시 통영에서 사역했다. 사역의 내용은 위에서 언급한 것들과 같았다. 다만 1939-40년에는 에디스 커(Miss Edith Kerr)가 휴가를 떠났기 때문에 그녀는 동래로 배속되어서 “농업실수학교”(Women’s Vocational Farm School)를 보살폈다(농업실수학교의 출발은 통영지부를 개척한 왓슨 부인이 1914년 18명의 소녀들을 데리고 야간학교와 산업부를 시작하면서 시작되었다. 그 목적은 가난해서 배우지 못한 소녀들, 그리고 윤락생활에서 도망쳐 나왔으나 일자리를 찾지 못했던 소녀들에게 교육과 직업을 주기 위한 것이었다. 1929년 커는 학교운영의 책임을 맡았고, 1935년에 동래로 이전하였다. 교육내용은 오전에는 초등학교 교육을 시켰고 오후에는 동물사역, 원예, 목공, 제본술, 수예, 옷 만들기 등 직업교육을 시켰다. 원생들은 장애인, 윤락여성, 남편으로부터 버림받은 여성, 과부, 고아 등 가부정적 사회에서 가장 소외된 여성들이었다. 1938년 커는 신사참배를 피하기 위해 학교명을 “자비원”이라고 변경했다).
그녀는 1941년 호주로 돌아와서 전쟁 기간 동안 위알라(Whyalla)에서 디커니스로 섬겼고, 종종 에나벨라 선교회(Ernabella Mission)와 뉴헤브리데스에서 교체 선교사(relief)로 일했다. 그녀는 말년에 공립학교에서 어린이들에게 신앙을 가르쳤고 또한 이주자 숙소들 안에서 복지사로서 일했다. 미혼의 알렉산더는 1967년 4월 5일, 81세의 나이로, 멜번에서 자동차 사고로 사망했다.
정병준 교수(서울장신대학교 교회사 교수 / 멜번신학대학원 졸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