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호 목사의 컬쳐 스테이지(Culture Stage)
그리움은 새로운 도전의 밑거름입니다.
– ‘응답하라 1988’을 보내며…
드라마는 끝이 났지만 tvN의 <응답하라 1988>이 남긴 열기는 아직도 뜨겁습니다.
<응답하라>라는 제목에 시청자들이 대답한 것을까요? 마지막회인 20회의 시청률이 19.6%, 순간 최고 시청률 21.6% 를 기록하며 케이블 사상 최고의 시청률을 경신했습니다. 이 기록은 전날 19화의 시청률인 18.6%, 순간 최고 시청률 21.7%를 넘어선 기록입니다.
출연한 배우들의 근황과 차기작은 뜨거운 관심을 받으며 시청자들에게 새로운 기대감을 불어넣고 있습니다. 또한 배우들의 CF 촬영도 부쩍 늘어났다고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 등장한 11곡의 OST들이 아직도 수많은 사람들의 귀를 사로잡고 있습니다.
<응답하라> 시리즈는 매 번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 때문에 이번 <응답하라 1988 – 응팔>에 대해서 기대만큼이나 부정적인 예측도 있었습니다. <응답하라 1997 – 응칠>의 인기로 인하여 <응답하라 1994 – 응사>의 캐스팅부터 관심이 쏠렸던 것처럼, 이번 <응팔>도 대중으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았습니다.
이런 관심에 부흥하듯 <응팔>은 최선을 다했고 특별한 의미를 남긴 드라마가 되었습니다.
첫째는 스타들을 모시고(?) 시작하는 ‘스타 마켓팅’이 없이 성공한 드라마가 되었습니다. 드라마는 시작 전부터 <응칠>의 정은지와 <응사>의 고아라를 잇는 여자주인공으로 누가 캐스팅될지가 최고의 관심사가 되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MBC 예능 <진짜사나이>에서 애교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걸스데이’ 혜리의 캐스팅이 된 것입니다. ‘아이돌’ 캐스팅은 또 한 번의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러나 1회 방송이 나간 이후 모든 우려는 사라지고 새로운 스타들의 등극을 알렸습니다.
아이돌을 내려놓고 쌍문여고 ‘성덕선’을 열연한 혜리는 연일 연기돌로 이름을 올리며 호평을 받았습니다. 걸스데이 혜리뿐만 아니라, 쌍문동 소꿉친구들인 류준열, 이동휘 등도 흡입력 있는 연기로 많은 관심을 받으며 이름을 알리는 계기를 마련했습니다. 류준열은 김정환 역을 완벽하게 소화하며 많은 여자 시청자들에게 관심을 받고 있으며 이름을 몰랐던 배우들의 열연은 완성도 높은 드라마를 만들었습니다.
둘째는 조연이 없는 출연 배우 모두가 주연인 드라마였습니다. 배우들의 열연은 단역들에서도 감탄을 자아낼 정도였습니다. 5화 초반부에 시위대에서 도망쳐 성동일의 도움으로 겅찰서에 잡혀가는 위기를 모면한 한 남학생의 연기나 선우의 어머니인 김선영의 시어머니로 나온 연기자와 친정 어머니로 나온 연기자, 심지어 구멍가게 아주머니조차도 모두가 주연인 것 같은 착각을 갖게 하였습니다.
이들의 연기는 지금 쌍문동 골목길에 앉아 그들을 지켜보는 느낌을 갖게 하였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사실적이며 감동적인 연기는 시청자들을 쌍문동 골목길에 있는 것 같게 하였습니다.
셋째는 종합 드라마였다는 것입니다. 어려운 환경 가운데에도 서울대 수학교육과에 다니는 딸의 시위대 가담 소식을 들은 성동일(성동일 분)의 호통을 보노라면 시대극을 보는 것 같지만, 정환(류준열 분)네를 보고 있노라면 정봉(안재홍 분)의 활약으로 시트콤을 보는듯 합니다. 특히 정확한 타이밍에 나오는 ‘음메헤헤’ 소리는 나도 모르게 따라서 하기도 합니다. 그러다가도 새벽 2시가 넘도록 돌아오지 않은 ‘덕선'(혜리 분)을 걱정하다가 결국 갑자기 쏟아지는 폭우에 우산을 챙겨 기다리던 정환(류준열 분)이 덕선에게 ‘일찍 다녀’라고 툭 던지는 한 마디를 들으면 청춘 맬로를 보는 것 같습니다.
넷째는 잊고 지냈던 향수를 되찾게 합니다. 다른 시리즈에서는 1세대 아이돌이나 농구 등 그 시대의 한 부분을 대변하는 아이템을 중심으로 추억들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러나 <응팔>은 한 발자국 더 나갔습니다. 시청자들에게 그 시대의 사람들과 그 시대의 정서를 그리워하게 만들었습니다.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산업화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전국 각지로부터 부푼 꿈을 안고 서울로 상경합니다. 고향에선 늘 가까운 사촌들이 가까이에 살았습니다. 서울로 올라온 이들은 현지의 이웃들을 고향의 사촌들처럼 의지하게 되었고 ‘이웃 사촌’이라는 말이 만들어질 만큼 이웃과 많은 것을 공유했습니다.
엄마의 심부름으로 그릇을 들고 골목을 왔다 갔다 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빈 그릇으로 돌려주면 안 된다며 뭐라도 채워서 돌려주던 그때의 문화는 “이럴 거면 같이 먹어”라며 즐거운 비명이 나오기에 충분 했습니다. 골목집의 반찬들이 홀로 택이를 키우고 있는 금은방 ‘봉황당’ 최무성(최무성 분)네의 식탁을 가득 채우는 장면은 이제는 볼 수 없는 장면일 것입니다.
다섯째는 이웃과의 특별한 신뢰입니다. 지금은 홀로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현금 몇 만원이 필요하면 신용카드를 이용하면 됩니다. 집에 밥이 똑 떨어지면 편의점에서 즉석 밥을 사면 됩니다. 웬만한 것은 서비스 센터를 불러 고치면 됩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부족하던 그 시절에는 달랐습니다. 당장 급할 땐 이웃의 도움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삿날 이웃에게 떡을 돌리며 인사를 했던 것입니다. 언제 어떤 도움 요청을 할지 몰라서 이웃과 친하게 지냈던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것들이 필요없게 되었습니다. 이웃과의 관계가 불필요한 관계가 된 것입니다. 오히려 주변 사람이 관심을 두면 부담스러워 합니다. 남의 일에 쓸데없이 참견한다며 ‘오지라퍼'(‘오지랖’을 떠는 사람을 일컫는 신조어)라며 비아냥 거립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과거보다 더 독립적인 사람이라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인터넷 사이트를 뒤지며 필요한 정보를 얻습니다. 정보를 공유하고 자기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보며 반가워 합니다. SNS에 올린 자신의 글에 다른 사람이 ‘좋아요’, ‘하트’에 달아 주면 기뻐합니다.
<응팔>을 보는 동안 말 할 수 없는 그리움에 빠져 들었습니다. 쌍문동 골목과 비슷했던 공항동의 골목이 생각났습니다. 하루 종일 함께 모여 놀던 그 골목에 서 있는 것 같았습니다. 매일 저녁 함께 모였던 교회의 교육관이 생각 났으며 12시까지 있다가 헤어지던 독서실도 생각났습니다. <응팔>의 주인공들과 나는 같은 또래입니다. 그들의 부모들과 우리의 부모들이 같은 모습으로 살았었다는 것도 다시금 깨닫게 되었습니다.
옆집의 숟가락 개수까지 알고 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이제는 SNS로 실시간으로 나의 생활이 공유되는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끼리 인터넷상에서 댓글과 공감 ‘좋아요’로 공유되는 정보와 생각들. 이러한 소통이 당시에는 옆집 사람들과 공유됐었습니다.
이젠 <응팔>을 보내야 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2016년도 지나간 추억이 될 것입니다. 지금의 모습이 아름다운 추억이 될 것입니다. 그리움은 새로운 힘이 됩니다. 새로운 일에 도전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주어진 순간순간은 하나님의 특별한 선물입니다. 아름다운 순간들을 주신 하나님께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립니다.
<여호와를 찬송할 것은 극히 아름다운 일을 하셨음이니 이를 온 땅에 알게 할지어다> (이사야서 12:5)
임기호 목사는 다음세대와 문화사역을 위하여 ‘메시지 커뮤니티 교회’와 ‘메시지 스쿨’을 섬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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