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오 박사의 또박또박 준비하고 가는 유학과 해외체험(36)
앞으로 여러 회에 나뉘어 나가는 이 연재는 옆 이름의 책(도서출판 엠-에드, 2006)에서 저자의 양해를 얻어 발췌한 것입니다. 저자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편집자 주
제6장 해외유학 공부 – 박사 따기 그렇게 어려운가?
4. 이런 지도교수는 곤란하다
(라) 연구제목과 방향의 설정 단계
어느 지역 어느 제도든 박사학위는 최종적으로는 논문의 평가로 결정된다. 따라서 지도교수의 책임은 결국 원하는 논문을 만들어 내도록 지도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논문 지도는 교실 강의와는 달라 교수는 대개 자기 방이 아니면 형편에 따라 편리한 곳에서 만나 개인적으로 한다. 코스워크부터 시작하는 북미식에서는 연구분야와 논문제목의 결정은 강의를 들으면서 시간을 두고 하게 된다. 영국, 호주식 과정에서는 강의가 없고 바로 리서치로 들어가므로, 준비가 되어 있다면 학생은 곧바로 논문의 제목과 연구의 방향설정 작업에 들어 갈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교수는 외국학생을 학점과는 관계없이 대학 학부나 석사과정의 강의를 듣게 하는 일이 흔한데, 이때 한국학생의 경우 몇 가지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 그 한 가지는 한국의 박사과정 유학생들은 대개 나이가 많은데, 나이 어린 현지 학생들 속에 섞여 앉아 수동적으로 강의를 듣는 게 쉽지는 않다. 사기가 저하될 수 있다.
이미 지적한 대로, 이 단계에서 교수는 학생으로 하여금 학위논문을 과연 어느 정도 수준으로 써야 하는가에 대한 현실적이고 정확한 감각을 빨리 갖게 하는 일이 중요하다. 그게 잘 됐다면 학생은 곧 궤도를 잘 달려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처음 얼마 동안은 이런 궤도를 찾는 기간이라고 할 수 있다면 처음 교수의 역할이 자명해진다.
일반적으로 연구를 해 보지 않은 초보자는 거창한 연구를 꿈꾸는 경향이 있다. 교수 자신도 하기 어려운 이상적인 연구를 자꾸 암시하면 학생은 혼란에 빠지기 시작한다. 가령 교수가 박사논문의 수준에 대해 “석사논문과 박사논문은 아주 현저한 차이가 있어야 한다” “웬만한 수준의 논문으로 박사가 되지 못 한다”와 같은 말은 금물이다. 연구경험이 없는 학생은 실현 불가능한 논문을 구상하는 실수를 할 수 있다.
남부 호주 플린더스대학의 두 교수가 박사과정 세미나에서 발표된 [박사과정 성공을 위한 비법 7가지/Seven Secrets of Highly Successful PhD Students] 제안에도 [박사 논문 수준에 대한 현실감/being realistic on the quality of the PhD]이란 말이 들어 있다. “박사 논문은 노벨상 감이어야 하는 게 아니다. [완전/perfect]해야 한다는 강박감은 금물이다”라고도.
여기 초점은 연구와 논문 내용의 실현 가능성이다. 학위논문은 높은 수준일수록 좋겠지만, 학생은 여러 가지 제한된 여건에서 공부한다는 사실도 감안해야 한다. 너무 크거나 많은 과제를 다루려 한다면 일정 [기간/time frame] 안에 끝내지 못한다. 이는 [분량/workload, volume] 또는 [범위/scope]로 본 [처리 가능성/manageability]의 문제이다. 과학적 분석을 주로 하는 연구에서라면 자료의 수집, 분석, 논문작성에 걸리는 시간을 고려해 포함시킬 변수를 한정해야 하는 문제가 그것이다.
연구 가운데는 아이디어가 재미있고 기발하지만 기술적으로 불가능한 것이 많다. 이것은 기술적으로 [실현 가능 또는 불가능/feasibility]의 문제다. 원하는 자료를 사실상 입수할 수 없는 경우가 한 가지 예다. 어떤 경우는 연구비를 얼마고 쓴다면 가능한 일이지만, 현실적으로는 학생이 그럴 수가 없다.
많은 연구가 실증적 분석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가령 ‘민주주의와 국민성’ 같은 제목은 어느 정도 범위를 정해 기존의 지식과 개인의 통찰력을 바탕으로 기술적으로 다룰 수는 있으나, 실증적으로 증명하고자 한다면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연구하고 싶은 제목/research question]과 [연구할 수 있는 제목/researchable question]은 구별되어야 한다.
어떤 수준의 논문은 써야 할 것인가에 대한 감각은 알려면 잘된 남의 논문을 많이 읽어야 한다. 이 단계에서 교수는 학생으로 하여금 해당 분야의 모범적인 박사논문 몇 개를 비교하면서 자세히 읽게 한다면 말로 하는 것보다 몇 갑절 효과적이다. 이때 많은 논문보다 잘된 논문이어야 한다. 학생은 그런 논문을 읽음으로써 써야 할 논문의 수준뿐만 아니라 [형식과 구성/format]을 파악하게 된다. 특히 논문 안에 있는 가설, 연구설계, 연구결과 등은 서로 내부적으로 통일성을 유지해야 하는데, 모범적인 논문을 읽고 이런 지식과 지혜를 얻게 된다.
영미국가의 대학 도서관은 매년 국가별로 나오는 박사논문집, 각 분야의 최신 학술잡지와 관련 자료를 광범위하게 구비하고 있다. 다른 사람의 논문을 탐색할 이유는 논문 쓰기 요령을 습득하기 위한 것만이 아니다. 자기 분야에서 최근 발표된 논문들을 읽어봄으로써 그 분야의 전체적인 상황과 거기에서 자기가 하려는 연구가 어디쯤에 위치하고 있고,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는가를 알게 된다. 그런 감각 없이 자신의 연구방향과 영역을 구체화해 나갈 수 없다.
지도교수는 유학생이 학업을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외국인이라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돌아갈 유학생에게 현지 사회에서만 실용성 있는 연구제목을 고집하거나 권장하는 것도 현명한 일이 아니다. 교수와 학생은 이런 문제에 대해 사전에 충분히 의견을 나눌 수 있어야 한다.
교수는 학생이 갖고 있는 기존의 지식, 경험, 적성 등 강점을 살려 그에 맞는 논문제목과 연구방법을 택하도록 지도해야 한다. 하지만 교수는 대개 연구제목을 자기 전공은 물론, 그 가운데서도 자기가 평소 관심을 가져온 영역으로 유도하고 싶어 한다. 그래야 지도하기 쉽기 때문이다. 유능한 교수는 자신이 하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던 연구제목, 자기 연구의 연장으로서 할 만한 제목을 학생에게 떼어 줄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학생은 연구제목을 찾는 데 보내는 시간을 크게 절약하게 되지만, 이때도 역시 그게 학생의강점을 살릴 수 있는 분야인가를 따져 볼 필요가 있다.
교수는 학생이 어느 정도 준비가 되면 빨리 일차 내용을 종이에 옮겨 쓰도록 지도해야 한다. 박사 공부 실패의 원인들 가운데 [뒤로 미루기/procrastination]와 [집중을 어렵게 하는 여건/distractions]이 있다. 몇 년이 걸리는 박사과정은 마라톤에 비유할 수 있지만 쓰는 일을 멀리 뒤로 미루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 진척이 안 되고 자꾸 지연될 수 있다. 크리텐던 교수는 박사과정이 마라톤이 아니라 800미터 중거리 경기라고 말한다.
학업은 생업이 아니며 외롭고 고달픈 길이다. 초기단계를 지나면서 수시로 잡념과 슬럼프에 빠져들 수 있는 학생에게 교수는 경고와 함께 용기와 힘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지적 및 정신적 자극/intellectual stimulation]이 필요하다. 영어로 [good days, bad days]가 있기 마련이다. 어떤 날은 공부할 맛이 나고 어떤 날은 아주 하기 싫어진다. 한 교수는 이것을 [롤러코스터 패턴/rollercoaster pattern]이라고 말했다.
공부는 또 자기가 잘한다고 느낄 때 더 잘 하게 된다. 좋은 지도교수를 만나서 칭찬을 듣는다면 자신감과 의욕이 생기지만, 반대로 늘 핀잔을 들으면 의기소침해지는 것이다. 그럴 때 [당신은 능히 해낼 수 있다/you can do it]는 신념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을 교수의 공식적인 책임으로 볼 수 있을지는 이론의 여지가 있겠지만, 교수가 학생의 공부를 도와야 한다면 이것도 중요한 책임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해서 라트로브대학의 논문 지도지침은, 교수는 [학문적 반려자로서 건설적인 비판과 함께 격려/intellectual companionship, constructive criticism and stimulating encouragement]로 힘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적절하게 지적하고 있다.
교수 가운데는 성격상 남을 격려할 줄 모르고 필요 이상으로 어렵게 대하는 사람이 있다. 유학생으로서 그만하면 영어를 잘 하는데도 타박을 주는 균형 감각이 없는 교수, 읽어 달라고 써서 제출한 것을 얼마고 미루는 교수를 만나면 학생은 맥이 빠질 수밖에 없다.<다음호에 계속>
김삼오 박사(커뮤니케이션학 박사)
고려대학교 정외과 졸업 (BA)
컬럼비아대학교 언론대학원 졸업 (MS)
매콰리대학교 박사과정 졸업 (PhD)
전 파이스턴 이코노믹 리뷰 서울특파원
전 호주국립한국학연구소 수석연구원
E-mail: karckim@optusnet.com.au
Blog: blog.daum.net/samokim3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