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하인리히 뵐 / 민음사 / 2018.10.24
-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하인리히 뵐의 문제작 : 황색 언론에 의해 처참하게 유린당한 한 개인의 명예에 관한 보고서, 소박한 그녀 카타리나 블룸은 어쩌다 살인까지 저지르게 되었는가
1974년 2월 24일 일요일, 한 일간지 기자가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살인범은 카타리나 블룸이라는 27세의 평범한 여인. 그녀는 제 발로 경찰을 찾아와 자신이 그를 총으로 쏘아 죽였다고 자백한다. 어려운 환경에서 자라 가정관리사로 일하면서도 자기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고 늘 성실하고 진실한 태도로 주위의 호감을 사던 총명한 여인 카타리나가, 도대체 왜 살인을 저질렀을까.
이 살인 사건의 진실을 알아내기 위해 화자는, 2월 20일 수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닷새간의 그녀의 행적을 재구성하여 이를 보고한다. 경찰의 심문 조서와 검사, 변호사로부터 들은 정보 그리고 여러 참고인의 진술 들이 그 토대가 된다.
발표한 지 6주 만에 15만 부가 팔리고 뉴저먼시네마의 기수 폴커 슐렌도르프에 의해 영화화되어 크게 흥행했던 하인리히 뵐의 소설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80번으로 출간되었다.
뵐은 전후 독일의 정신적 폐허를 직시하고 언제나 학대받는 사람 편에 서서 폭력적인 권력에 대해 가차 없는 비판을 가했던 작가로 1972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 목차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10년 후 – 하인리히 뵐의 후기
작품 해설
작가 연보
○ 저자소개 : 하인리히 뵐 (Heinrich Boll)
1917년 독일 쾰른에서 목공예 가문의 여섯째 아들로 태어났다. 1937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서점에서 견습 생활을 하며 다양한 책을 섭렵했고, 이듬해 쾰른 대학에 입학해 독문학과 고전문헌학을 공부했다.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나치 군에 징집되어 6년간 프랑스, 소련, 헝가리 등 여러 전선에서 복무하였으며, 전쟁이 끝난 후 미군 포로수용소에서 풀려나 쾰른에 정착했다.
이후 본격적인 창작 활동을 시작하여, 1949년 병사들의 절망적인 삶을 묘사한 『기차는 정확했다』를 시작으로, 참혹한 참전 경험과 전후 독일의 참상을 그린 작품들을 주로 발표했다. 1951년 ’47그룹 문학상’을 받으면서 문인으로서의 위치를 다졌고, 1953년에 출간한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로 비평가와 독자들 모두로부터 찬사를 받으며 작가로서의 대성공을 거두었다.
이외에도 사회적으로 엄청난 반향을 일으킨 문제작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를 비롯해 『9시 반의 당구』, 『어느 광대의 견해』, 『신변 보호』 등의 작품을 집필했다. 1967년에는 독일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게오르크 뷔히너 상’을 수상했고, 1971년에 독일인으로는 최초로 국제펜클럽 회장으로 선출된 바 있다. 이 작품들로 언어의 힘으로 사회에 참여하는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유머가 소설을 살아남게 한다고 믿으며, 작품 속 유머를 통해 인간다움의 미학을 그려낸 뵐은 1967년 독일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인 게오르크 뷔히너상을 수상했으며, 1971년 국제적 문학가 단체인 국제펜클럽의 회장으로 선출되어 세계 곳곳에서 탄압받는 작가와 지식인들의 자유를 위해 노력했다. 1972년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전후 독일을 대표하는 작가를 넘어, 행동하는 지성이자 ‘국가의 양심’이라는 칭송을 받았다. 1958년 동맥경화로 세상을 떠났다.
– 역자: 김연수
이화여자대학교 독어독문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독일 쾰른 대학교 독문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이화인문과학원에서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박사 논문 「현대 서사 카테고리로서의 양태성 -허구와 역사 사이의 담론에서 본 우베 욘존의 역사 소설 『기념일들』 연구」를 비롯해 「상호문화적 문학 작품에 나타난 문화번역의 문제」, 「유럽의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카프카의 문학적 유희」 등 상호문화적 문학 연구에 중점을 둔 논문들을 발표했으며 유럽 근대화 시기의 문학 작품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옮긴 책으로 『내쫓긴 아이들』, 『체스 이야기·낯선 여인의 편지』 등이 있다.
○ 책 속으로
그사이 아파트 주민들이 조사를 받았지만, 그들 중 대다수는 카타리나 블룸에 대해 거의 혹은 전혀 진술을 할 수 없었다. 사람들은 그녀와 엘리베이터 안에서 만나면 서로 인사를 나누는 정도고, 빨간색 폴크스바겐이 그녀의 차라는 것 정도밖에 모른다고 했다. 어떤 이는 그녀가 사장 비서라고 생각했고, 어떤 이는 백화점의 한 부서장인 줄 알았다고 했다. 그녀는 항상 말쑥한 차림이었고, 차가운 인상이었지만 깔끔하고 친절했다고 했다. – 본문 32쪽에서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일은 많다. 그러나 우리는 그 배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전혀 모른다. 이 녹음을 한번 들어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마침내 뭔가를 들어 보기 위해서 말이다. 예컨대 엘제 볼터스하임 부인과 콘라트 바이터스가 얼마나 친밀한 사이인지, 아니면 도대체 그런 사이이기나 한 건지 들어보기 위해서 말이다. 이 두 사람의 관계가 무제가 된다면 친구라는 말은 무슨 의미인가? 그녀가 그를 자기 또는 여보라고 부르는지, 아니면 그냥 콘라트 혹은 코니라고 부르는지, 그들이 서로 애정 표현을 한다면, 어떤 종류의 애정 표현을 언어로 주고받는지? 콘서트를 열어도 될 만큼, 아니면 최소한 합창에 적합한 바리톤 성량을 가지고 있다고 알려져 있는 그가 혹 전화로 그녀에게 노래를, 세레나데나 대중가요, 아리아를 불러 주지는 않는지? 아니면 과거에 경험했거나 계획하고 있는 성적인 친밀함을 노골적으로 이야기하는지? 그것을 기꺼이 알고자 한다. – 본문 104쪽에서
○ 출판사 서평
- 전후 독일의 정신적 폐허를 직시한 작가 하인리히 뵐의 문제작 : 황색 언론에 처참하게 유린당한 개인의 명예에 관한 보고서, 소박한 그녀 카타리나 블룸은 어쩌다 살인까지 저지르게 되었는가
“그는 ‘이 쓰레기를, 한 사람을 세상 끝까지 추적하는 이 빌어먹을 쓰레기를’ 읽고 또 읽었지만, 읽을수록 집중할 수가 없었다.”
1974년 2월 24일 일요일, 한 일간지 기자가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살인범은 카타리나 블룸이라는 27세의 평범한 여인. 그녀는 제 발로 경찰을 찾아가 자백한다. 늘 성실하고 진실한 태도로 주위의 호감을 사던 총명한 여인이 도대체 왜 살인을 저질렀을까. 수요일 저녁 카타리나 블룸은 어느 댄스파티에서 괴텐이라는 남자를 만나 함께 밤을 보냈다. 그는 그녀가 기다리던, 보기 드물게 진실하고 다정한 남자였다. 그런데 이튿날 경찰이 그녀 집에 들이 닥쳐 수색을 벌이더니, 급기야 그녀를 연행하기에 이른다. 괴텐은 은행 강도에 살인 혐의까지
있는 인물로, 그동안 계속 언론과 경찰에 쫓기고 있었다는 것. 카타리나가 경찰 조사를 받고
있으며 묵비권을 행사 중이라는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그녀는 호기심의 대상이 된다.
하인리히 뵐이 1975년에 발표한 이 작품은, 독자들의 저속한 호기심을 자극하는 선정적인 언론이 어떻게 한 개인의 명예와 인생을 파괴해 가는가를 처절하게 보여 준다. 그저 근면하게 살며 차곡차곡 삶의 기반을 일구어 왔을 뿐인 한 여인의 진술은 왜곡, 허위 보도를 일삼는 언론의 언어, 그리고 그에 폭발적으로 호응하는 군중의 욕설과 극명하게 대조되며 강력한 효과를 발휘한다. 평범한 개인이 “살인범의 정부”가 되고 “테러리스트의 공조자”, “음탕한 공산주의자”가 되고 마는 과정은 오늘날의 시각에서 보아도 결코 낯설지 않은 장면이다.
우리 눈에 비치는 현실이 폐허라면, 그것을 냉철히 응시하고 묘사하는 것이 작가의 의무다. ─ 하인리히 뵐
동시대를 두루 포괄하는 광범위한 시각과 인물의 성격을 세밀하게 묘사하는 능숙함이 훌륭하게 조화된 글쓰기. ─ 스웨덴 한림원, 노벨 문학상 선정 이유
뵐은 작가 그 이상의 인물이다. ─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
- 근면하고 소박하게 살았을 뿐인 한 평범한 여인의 진술 Vs. 왜곡, 허위 기사를 남발하는 언론의 보도
뵐은 이 작품에서, 대중의 저속한 호기심을 자극하는 선정적인 언론이 어떻게 한 개인의 명예와 인생을 파괴해 가는가를 처절하게 보여 주고 있다.
다시 작품의 내용으로 돌아가, 사건이 일어나기 전 2월 20일 수요일, 카타리나 블룸은 한 댄스파티에서 괴텐이라는 남자를 만나 함께 밤을 보낸다. 그는 그녀가 기다리던, 보기 드물게 진실하고 다정한 남자였다. 그런데 그 이튿날 경찰이 그녀의 집에 들이닥치고 가택 수색을 벌이더니, 급기야 그녀를 연행해 가기에 이른다. 괴텐은 은행 강도에 살인 혐의까지 있는 질 나쁜 인물로, 그동안 계속 언론과 경찰이 그의 뒤를 쫓고 있었다는 것. 카타리나가 경찰의 조사를 받고 있으며 묵비권을 행사 중이라는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그녀는 세간의 호기심의 대상이 된다.
카타리나는 시골 마을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어렵사리 학교를 마치고, 도시로 와서 식당 서빙 일에서부터 가정부 노릇까지 해 가며 돈을 모아 작은 아파트와 중고차를 마련한 소박하고 근면한 여인이다. 남에게 빚지고 살지 않으려 노력하고 맡은 바 일을 완벽하게 수행하며, 또한 인심도 넉넉한 그녀는 주위 사람들의 무조건적인 신뢰를 받고 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던 어느 날, 하룻밤 사랑을 나눈 운명적인 남자가 경찰에 쫓기고 있음을 알고 그에게 도주로를 알려 주었다는 사실만으로 그녀는 경찰에 연행, 심문을 받게 된다. 그리고 그 소식은 하이에나처럼 특종을 찾아 헤매는 일간지 기자 퇴트게스의 시야에 포착된다.
끈질긴 특종 사냥꾼 퇴트게스의 사냥감이 된 그녀는 순식간에 “살인범의 정부”가 되고 “테러리스트의 공조자”, “음탕한 공산주의자”가 되고 만다.
그녀의 아파트가 모의의 본부였나, 아니면 도당들의 아지트, 혹은 무기를 거래하는 장소였나? 이제 겨우 스물일곱 살인 가정부가 어림잡아도 110,000마르크나 나가는 아파트를 어떻게 소유하게 되었나? 은행에서 강탈한 돈의 분배에 관여했나?
- 살인범 양혼녀 여전히 완강! 괴텐의 소재에 대한 언급 회피! 경찰 초비상!
퇴트게스의 소설 쓰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의 기사 속에서 그녀의 아버지는 위장한 공산주의자가 되고, 그녀의 어머니는 교회 재산을 절도한 파렴치범이 되고, 그녀 자신은 타고나길 “얼음처럼 차갑고 타산적”이며 범죄자와의 정사도 마다하지 않는 “창녀”와 같은 인물이 된다. 그러나 카타리나에게는 이러한 날조된 기사에 반박할 아무런 힘이 없고, 그녀의 명예와 존엄은 처참하게 짓밟힌다. 그리고 그 절망의 낭떠러지에서 그녀가 선택한 것은, 살인이었다.
허무맹랑한 날조와 왜곡을 남발하는 언론의 보도가 잇따른 가운데, 카타리나는 경찰의 심문에 응해 차분히 진술을 이어 간다. 그녀는 정확하지 않은 표현이 조서에 기재되는 것을 거부하며, 최대한 사실에 가깝게 표현할 수 있는 단어를 찾고자 심문 과정 내내 민감한 태도를 유지한다.
블로르나 부부를 가리킨 “선량한”이라는 단어를 놓고도 이와 유사한 논쟁이 벌어졌다. 조서에는 “나에게 친절한”이라고 쓰여 있었는데, 블룸은 “선량한”이라는 단어를 고집했다. “선량한”이라는 단어가 유행에 뒤진 것처럼 들린다는 이유로, 이 단어 대신 “호의적인”이라는 단어를 제시하자, 그녀는 화를 냈으며, 친절과 호의는 선과는 아무 관련이 없고 자신에게 보여 준 블로르나 부부의 행동을 선함으로 느꼈다고 주장했다.
진실이 아닌 것을 진술하지 않는 카타리나의 언어는 조작적인 언론의 언어와 극명하게 대비되며 강렬한 효과를 발휘한다. 오늘날의 시각에서 보아도 결코 낯설지 않은 장면이다. 언론의 폭력은 어디까지 가능한 것인가? 그래서 이 책의 부제는 “혹은 폭력은 어떻게 발생하고 어떤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가”이다.
- 주변 사람들의 외면 그리고 불특정 다수로부터 쏟아지는 욕설과 비난
퇴트게스의 얼토당토않은 기사 내용보다 더 카타리나를 좌절케 한 것은, 세상 사람들의 반응이다. 한때 그녀와 가깝게 지냈던 “선량한” 지인들은 이렇게 증언한다.
게멜스브로이히의 신부는 다음과 같이 진술했다. “나는 그녀가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위장한 공산주의자였고 어머니는 내가 측은한 마음에서 한동안 청소부로 일하게 해 주었더니 미사용 포도주를 훔쳐 제의실에서 정부와 술판을 벌인 적이 있지요.”
고의로 떠난 블룸 탓에 이혼한 전남편, 우직한 방직공인 빌헬름 브레틀로는 더욱 흔쾌히 정보를 주었다. 그는 애써 눈물을 삼키며 말했다. “이제야 알겠습니다. 그녀가 왜 내게서 몰래 떠났는지. … 그녀는 출세하고 싶었던 겁니다. 어떻게 올곧고 소박한 노동자가 포르셰를 탈 수 있겠습니까? …그녀를 좋아하는 나의 복잡하지 않은 애정보다는 살인범이자 강도인 한 남자의 다정한 애무를 그녀가 더 좋아했다는 것을 듣는 마당에, 그래도 난 그녀에게 호소하고 싶군요. 나의 귀여운 카타리나, 당신이 내 곁에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겠소.”
나이 든 농부 메펠스가 말했듯이, 다른 회원들도 소름 끼쳐 하며 카타리나를 외면했다. 그녀는 항상 기이했고 항상 새침하게 굴었노라고 했다.
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누군가들이 전화로, 익명의 편지로 그녀에게 모멸감을 주는 말들을 쏟아 붓고, 그녀를 옹호하는 몇 안 되는 사람들까지 싸잡아 ‘공산주의자’라며 몰아댄다. 대중의 저속한 호기심을 자극하려는 언론이 왜곡, 날조한 기사 내용는 그 대중이 심심풀이로 입방아를 찧기에 안성맞춤인 소재였고, 그렇게 카타리나는 세상 사람들의 먹잇감이 된다.
무소불위의 힘을 휘두르는 언론보다 더 무서운 것이 세간의 가십거리가 되는 것임을 보여 주는 이 장면은, 오늘날과 같이 신뢰할 수 없는 정보들이 인터넷을 타고 순식간에 유포, 확산되는 시대에 더더욱 시사하는 바가 크다. 루머와 그 루머를 둘러싼 댓글의 홍수. 익명성을 업고 개인을 매장시키는 군중심리의 무서운 특성은 시대가 바뀌어도 달라지지 않는 것이다.
- 사건의 진상을 추적하는 건조하고 담담한 보고서
작품에 실린 후기에서 그리고 표지의 제목 아래에서 하인리히 뵐은 이 작품이 ‘소설’이 아닌 ‘이야기’라고 특별히 강조한다. 이에 대해 옮긴이 김연수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이야기’는 화자가 자신의 삶의 경험을 내용으로 삼고, 청자 역시 그 이야기를 자신의 경험으로 가질 수 있게 한다. 그러나 산업과 인쇄술이 발달하면서 널리 보급된 소설은 더 이상 타인으로부터 조언을 구하지 못하는 고립된 작가가 골방에서 쓴 고독한 개인의 이야기로서 타인과 그 경험을 나누지도, 타인에게 조언을 해 주지도 못한다…. 뵐은 이 작품이 세상사와 무관하게 생산된 텍스트가 아니라는 점, 어떤 현실적인 사태에 대해 독자들과 경험을 나누면서 그 진실에 보다 가깝게 접근하고자 쓰인 것이라는 점에서, ‘소설’이라는 장르를 거부하고 ‘이야기’로 수용되기를 바라고, 또 그런 의도에 적합한 작품 형식을 취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현실적인 사태에 대해 독자들과 경험을 나누기 위해”, 뵐은 이 작품에서 독특한 서술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익명의 화자가 등장해 자신이 조사한 자료와 여러 증인의 진술들을 토대로 살인 사건을 재구성하는 보고 형식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소설의 시작 부분에서 사건의 결말인 카타리나의 기자 살인 사건이 드러나니, 이 작품을 읽는 독자는 화자의 보고서를 읽으며 살인의 동기와 배경을 함께 추적해 가면서 현실의 처참한 일면을 차츰차츰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 언론의 폐해를 다룰 때 언제나 인용되는 고전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는 출간 당시 즉시 세간의 주목을 받아 베스트셀러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독일 영화계의 거장 폴커 슐렌도르프에 의해 영화화되고, 현재까지도 언론의 폐해를 다룰 때 언제나 인용되는 고전이다.
이 작품이 독자들의 주목을 끈 까닭은, 역시 동시대 현실의 담론과 밀접하게 얽혀 있는 뵐 문학 세계의 특성과 관련이 있다. 패전 독일이 민주•복지국가로 변모하는 1970년대에도 뵐의 작가적 관심은 여전히 사회로부터 소외되거나 굴욕 및 모욕을 당한 사람들에게로 향해 있었고 사회의 억압과 인권 침해에 대해 그는 깨어 있는 양심의 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이러한 작가적 관심에서 1970년대 독일 사회 전체를 뜨겁게 달구었던 테러리즘에 대한 논쟁과 언론의 폭력에 대해서도 뵐은 함구하지 않았다.
그 어느 권력보다도 강력한 파급력을 지닌 구조화된 폭력, 언론의 폭력을 문제 삼은 하인리히 뵐의 이 작품은 당대의 가장 진보적이고 비판적인 문제작이었을 뿐 아니라, 현재에도 시청률과 판매 부수에 죽고 사는 상업주의 언론의 실상을 폭로하는 데 매우 큰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