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호 목사의 컬쳐 스테이지(Culture Stage)
“잊혀지는 것이 가장 슬픈 일이다.”
– 설특집 ‘미래일기’ 를 보며 –
얼마전 설날을 보냈습니다. 설날이 되면 각기 다른 방송사에서 설날 특집 방송을 준비합니다. 많은 방송들이 있지만 ‘어떻게 예능이 이렇게 우기면서 슬플수 있을까? 라는 평가를 받은 프로가 있습니다. MBC에서 설특집으로 선보인 ‘미래일기’ 입니다.
‘미래일기’는 시간 여행자가 된 연예인이 자신이 원하는 미래의 특별한 하루를 정해 살아보는 ‘시간 여행 버라이어티’ 입니다. 최근 각종 영화나 드라마에서 많이 등장하는 ‘타임워프’라는 소재를 예능에 접목시킨 리얼리티 프로그램입니다. 이번 ‘미래일기’는 성공적입니다. 시청률 조사회사인 닐슨 코리아에 따르면 2월 8일 시청률이 7.8% 를 기록하여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기록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미래로 간 시간 여행자들은 자신의 모습에 할 말을 잊어 버렸습니다. 안정환, 제시, 강성연-김가온 부부가 미래로 떠나는 여행을 시작합니다. 각자 바라는 미래를 그리며 나이 든 자신과 마주하게 됩니다. 모두가 처음에는 ‘멘붕’이 왔지만 이내 이들은 현실을 받아들이며 보다 뜻깊은 추억을 남기게 됩니다.
요즘 예능에서 최고의 인기를 달리고 있는 안정환은 39년 뒤인 80세의 자신을 만나게 됩니다. 하얀 머리에 흰 수염까지 영락없는 할아버지였습니다. 짙은 주름만 남고 사라진 젊음에 잠시동안 할말을 잃었습니다. 당연하게 여겼던 젊음이 사라지고 이젠 노인이 된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했던 첫 마디는 “되게 슬프네” 였습니다. 그 모습은 누구나 이렇게 된다는 메시지를 던지는 것 같았습니다.
전철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 수 있도록 힌트를 주지만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시민들 사이 고독함은 더해 집니다. 초등학생들과 간단한 축구로 몸을 푼 뒤 혼자 사는 집으로 들어 온 그는 80세의 독거노인이었습니다. 혼자 사는 집에서 가족사진을 둘러 본 뒤 괜시리 가슴 한 켠이 저려오는 걸 느끼는 것 같았습니다. 즉석 어묵을 먹으면서도 아내를 떠올렸습니다. “혼자 밥 먹는 게 얼마나 외로운 건데”라며 고독을 씹었습니다.
생각이 많아진 그는 “젊었을 때 아무리 인기가 많고 날고 기어도 소용없다. 잊혀지는 게 가장 무섭다. 나중에 진짜 80세가 됐을 때 어떻게 살아야 할지 진짜 생각해 둬야겠다. 이력서를 넣어야겠다. 이렇게 살다가는 안 되겠다”고 다짐을 하기도 했습니다.
제시는 늙어버린 자신의 모습을 보는 순간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와 같은 ‘오 마이 갓’을 외치며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더니 이건 진짜 아닌 것 같다고 하면서 스스로 긴급 복구을 하기도 합니다.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인 큼직한 링 귀걸이를 하고 스스로 다시 화장을 합니다.
그리고는 2045년 2월 17일 미국에 사시는 어머니가 한국에 오는 날이었다. 서둘러 인천국제공항으로 엄마를 만나러 가라는 미션을 받게 됩니다.
제시는 29년 뒤 58살이 됐고 그 만큼 나이 든 엄마 호선화를 만났습니다. 모녀는 서로의 늙은 얼굴을 보며 울컥했지만 특유의 힙합 느낌을 뽐내며 패셔니스타 58세 딸과 87세 엄마로 돌아왔습니다.
분장을 끝내고 미국에서 온 엄마를 만나러 가는 제시의 마음은 복잡했습니다. 엄마가 나를 못 알아보면 어쩌지라는 염려가 가득하였습니다. 공항에서 엄마를 만나는 순간 87세의 엄마는 너무나도 늙어 있었습니다. 다가가지도 못하고 망설이고 있을 때, 58세의 딸을 알아본 엄마는 늘 그랬던 것처럼 먼저 다가와 주었습니다. 잠시 포옹을 했지만 왠지 모를 속상함에 멀쩍이 도망가는 제시는 우리 할머니 같다는 말로 마음을 추스렸습니다. 센 언니가 왜 이렇게 늙었냐는 엄마의 농담에 분위기는 다시 살아났습니다.
제시는 할머니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를 합니다. 엄마의 나이가 되어 나란히 소파에 앉은 제시 모녀 3대는 처음의 어색함을 벗어 던지고 즐거운 시간을 갖습니다. ‘엄마’의 의미를 되새기며 또 다른 감동을 선물합니다.
강성연-김가온 부부는 77세 동갑내기가 되어서 만났습니다. 시간의 문이 열리고 77세가 되어서 만난 부부는 서로의 늙은 얼굴을 본후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강성연은 너무 늙은 것 아니냐며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였고 결국 울음을 떠뜨리고 말았습니다. 세월의 야속함에 흐르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애써 아내를 다독이는 남편과 걱정하던 대로 이마가 넓어졌다는 아내의 말은 웃음과 슬픔을 함께 전달해 주었습니다.
자기는 이제 곧 가실 것 같다는 강성연의 말은 누구나 마지막을 준비해야 한다 메시지를 전하는 것 같았습니다.
김가온은 강성연에게 곱게 늙었다며 마지막 영정사진을 남겨주겠다고 하며 사이좋게 서로의 마지막 사진을 찍어주며 뭉클한 추억을 남겼습니다. 두 사람은 미래여행 종료 1시간 전 특별한 장소로 향했습니다. 재즈피아니스트인 김가온의 은퇴 공연을 콘셉트로 마련된 곳에서 또다시 눈물을 흘렸습니다. 김가온은 강성연을 위해 프러포즈했던 즉흥 연주곡으로 추억을 되살렸으며 평생을 동반자로 살아온 성연에게만 바치는 연주가 시작되었습니다.
77세의 모습이었지만 실력은 여전했습니다. 77세 남편의 연주가 정말정말 멋졌다는 아내는 결혼전에 받았던 프로포즈보다 더 멋졌다고 말을 합니다. 자신만의 카메라에 담을 만큼 평생 잊지 못할 시간이었다고 말하며 감동에 젖었습니다. 서로 바라만 봐도 흐뭇한 노부부의 모습은 아내를 향한 사랑이 가득 담긴 연주와 같이 아름다웠습니다. 아내는 결혼 40주년이 되는 날에 영정 사진을 찍고 미래 일기를 기록하며 서로의 미래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던 감사의 하루였다고 고백합니다. 남편은 77세의 아내가 여전히 이쁘다며 죽을 때까지 이쁠 것이다라는 말로 아내를 위로합니다. 지금까지 같이 살아줘서 너무 고맙고 남은 여생도 행복하게 함께 하자는 또 하나의 프로포즈는 감동 그 자체였습니다.
“가는 세월 그 누구가 잡을 수가 있나요!” 라는 오래된 노래 가사가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도 부정할 수 없는 진리를 담은 노래 가사입니다. 돈도 명예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말과 언젠가는 나도 엄마의 나이가 될 것이라는 사실 그리고,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서 감사하다는 교훈을 남긴 설특집 ‘미래 일기’는 꼭 한 번 찾아 볼만한 프로인 것 같습니다.
이번 설날은 유난히 고국에 계신 부모님이 그리워지는 것을 보니 이제 부모님의 나이가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잊혀지는 것이 두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어떻게 기억되는지는 더 중요할 것 같습니다. 누구나 가야하는 길이라면 잘 준비해서 가는 것이 축복일지 모릅니다. 주어진 시간에 감사하며 맡겨주신 일에 최선을 다하는 인생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나는 지난 세월과 하나님이 나를 보호하시던 때가 다시 오기를 원하노라> (욥기 29: 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