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중심 성경강해 시리즈
제16강 율법과 하나님의 의(롬 3:19-22)
19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 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21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롬 3:19-22).
예수를 믿는 세월이 오래 될수록 더욱 성화되어 그리스도를 닮아가기 보다는 여전히 처음 믿을 때와 별로 다를바 없는 고집스럽고, 남을 정죄하기 좋아하고, 섬김을 받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율법주의에 빠진 신앙생활을 한 결과에 기인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율법주의에 빠지면, 몇가지 종교적 행위(헌금, 봉사, 주일성수 등)를 한 것으로 주님께 대한 의무는 다했다고 생각합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율법은 거룩하고 선한 하나님의 법이지만, 율법주의는 그러한 율법을 잘못 이해하고 그릇된 신앙생활에 빠지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율법주의에 빠지면 자신의 종교적 행위들을 자신의 의와 자기 공로로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율법주의는 바리새인들과 같이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와같이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율법의 근본정신은 잃어버리고, 율법에 기록된 종교적 의무만 하면 자기 할일을 다한 경건하고 의로운 신앙인이라는 착각에 빠진 상태를 말합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율법은 선하고 거룩한 하나님의 법이지만 율법주의는 악한 것입니다. 율법주의는 그리스도를 붙잡게 하지 않고 자기 의를 의지하게 함으로서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부터 멀어져 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신자들 가운데는 ‘율법’과 ‘율법주의’를 혼동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또 율법주의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와 그러한 가르침 때문에 율법 자체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신자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율법과 율법주의의 차이를 바로 이해하지 못하고 혼동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율법이 무엇입니까? 먼저 율법이라는 말은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이 다섯권의 ‘모세 오경(토라)’을 가르키는 말로서 사용됩니다. 또, 율법이라는 단어가 이제는 더 이상 지속되지 않는 구약 시대의 특정한 제사법이나 절기법 등을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지금도 변함없이 지켜야 하는10계명과 같은 하나님의 법(또는 도덕법)을 말하는 것인지 구분해서 이해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특별히 구약 성경에서 말하는 ‘율법’이란 출애굽기 19장에 나온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온 후 시내산 광야에서 하나님과 맺은 언약의 내용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이 율법을 ‘시내산 언약’이라고 말합니다(출19:5.6). 이 언약의 내용들 즉 율법의 내용들을 보면, 거기에 10계명, 절기 의식, 제사의식, 그리고 재판법 등 다양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율법을 왜 주셨을까요? 첫 번째는 구원받지 못한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음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3:20)입니다. 두 번째는, 이스라엘 민족 공동체의 질서를 유지하고 죄를 억제 하도록 주신 것입니다. 세 번째는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뜻을 알고 하나님의 거룩함을 닮아가는 삶을 살도록 주신 것입니다.
특별히 본문을 보면 “율법 아래 있는 자들”(3:19)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여기서 율법 아래 있다는 말은 인간의 절망적인 상태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본문 로마서 3장19절은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율법이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본문 앞에 나오는 9-18절의 내용처럼 구약 성경이라는 율법책을 보니까 ‘의인이 하나도 없다’는 말씀들이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구약의 율법책의 내용들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결국,이 말은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들은 말할 것도 없고 자신들이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생각하는 유대인들에게도 ‘너는 죄인이다 너도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다’고 율법이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 3장 20절은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음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라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죄를 지었어도 법을 모르면 “내가 무슨 죄를 지었느냐?”고 큰소리칩니다. ‘죄’라고 규정하는 법이 없으면, 그것이 죄 인줄 모르고 살아가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래서 율법은 인간이 하나님을 죄인임을 깨닫게 하고 그래서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죄 없다’고 변명을 못하도록 모든 인간의 입을 막는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율법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다스리는 하나님의 통치 원리로서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알려주고 하나님의 거룩함을 닮아가도록 가르치는 성화적인 목적으로 주신 선하고 거룩한 하나님의 법입니다.
다만 본문의 내용은 죄를 깨닫게 하는 기능에 대해서 바울이 설명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교도소 안에 있는 두 사람이 있었는데 한 사람이 먼저 “당신은 어떻게 해서 여기 들어왔소?” 하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다른 죄수가 말하기를 “어떤 집에서 새끼줄 하나 주워가지고 나왔는데 그 새끼줄 끝에 소 한 마리가 매달려서 따라 와서 잡혀 왔소” 하고 대답했습니다.
이번에는 상대방 죄수가 “당신은 어떻게 해서 여기 들어왔소”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상대방 죄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실은 나도 크게 잘못한 것은 없는데 내가 가게에서 물건을 옷 안에 주워 넣고 나오면서 ‘이것 외상이오’ 하는 말을 그만 잊고 나왔다가 억울하게 여기까지 왔소”하고 대답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인간은 끊임없이 자신의 죄를 합리화 시키고 변명하면서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기를 싫어합니다. 하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그 어떤 변명도 통할 수 없기에 그저 입을 다문채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율법 아래 있다는 말은 인간의 절망적인 상태를 말합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죄 없다’고 변명을 못하도록 모든 인간의 입을 막는다는 것입니다(3:19).
그런데 하나님은 인간이 율법 앞에서 자신의 죄를 깨닫고 예수님 앞에 나아가 그 죄를 해결 받도록 구원의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3장 24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 다시 말해서 율법이 하는 역할은 인간의 죄와 하나님의 심판을 알게 해주고, 그래서 인간이 그 심판을 면하기 위해서 예수님 앞에 나아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받도록 해 준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에 대해서 종교 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율법의 방망이로 실컷 얻어맞은 자만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치료가 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율법을 지키기 위해서 율법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자신을 자세히 들여다 볼수록 자신의 힘으로 율법을 온전히 지킬수 없는 죄인이라는 사실이 더 분명하게 드러나기에 더 양심의 고통을 느끼게 되고 정죄를 당하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율법의 방망이로 실컷 두들겨 맞는 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율법의 방망이로 두들겨 맞을수록 그 사람은 자신이 선하고 의롭다는 착각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심판아래 있는 자신의 죄된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러한 죄인 만이 하나님의 자비가 얼마나 필요한가를 절실히 깨닫게 되고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를 의지하게 됩니다. 그 결과 구원의 은혜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 로마서 3장 21절을 보면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의해서 증거를 받은 것이라”고 바울은 말합니다. 바울은 1장 17절에서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고 말씀 했습니다. 그리고 본문 21절에서 다시 반복해서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다고 강조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다시 말해서, 구약의 율법이 증거하고 선지자들이 예언한 구약 성경 속에 계시된 사건으로서 하나님이 보내신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는데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율법으로는 도저히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함을 받을 사람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새로운 구원의 길을 제시해주셨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기에 마땅하고 그래서 인간의 힘과 노력으로 구원의 길에 이를 수 없기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나게 하신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낸 의로움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마련해주신 것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가 받게 되는 의로움입니다.
그래서 본문 22절 하반부에 보면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는 차별이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의롭다고 인정을 받고 구원받는 것은 오직 기준뿐입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느냐, 믿지 않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우리의 죄를 용서받고 의롭다고 인정받고 구원을 얻습니다. 누구든지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덧입기만 하면 하나님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가 있고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도 두려움 없이 담대하게 설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복음안에서 참 자유를 누리면서 하나님의 거룩한 법(율법)을 사랑하고 그 법을 따라 살아가는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김곤주 목사(시드니새언약교회 담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