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선지서 해석(9)
지금은 절개 (節槪)를 구할 때: 호세아서<9>
앤더슨과 프리드만의 주석을 보면 (1981; 31-9쪽) 기원전 8세기가 어땠는지 대략 알 수 있다. 8세기 전반기만해도 결코 못살던 때가 아니었다. 남왕국의 웃시야, 북왕국의 여로보암 2세가 다스리던 때는 영토가 확장되고 국민소득이 최고조에 이르던 때였다. 주변 나라들도 압도하였다. 나라가 안정되고 번성을 누렸다.
우리가 예상하기로는 이런 때는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잘 했겠거니 생각한다. 말씀 안에 거하고 바르고 정직하며 사랑이 많은 사회였겠거니 생각한다. 그러나 실상은 이와 정반대였다. 참(에메트)도 없었고 인애 (헤세드; lovingkindness)도 없었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 (다아트 엘로힘)도 없었다. 위로는 하나님을 떠나 이기심을 챙겨주는 우상들에게 음란하듯 절을 하였고 수평적으로는 서로 저주하고 거짓말하고 훔치고 혼외 정사를 벌이고 또 서로의 피를 흘렸다 (참. 호 4:1-2). 돈이 많아지니 욕심이 더 생긴 것이다.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다가 급기야는 선지자 호세아를 보내셔서 심판을 선언하신다. 곧 아람 (시리아) 사람들의 압박이 있었고, 앗수르 왕들, 디글랏 빌레셀 3세 (‘불’ Pul이라고 함), 살만에셀 5세, 사르곤 2세의 공격이 계속되었다. 결국 팔레스틴은 초토화되고 북왕국 이스라엘은 완전히 멸망하고 만다 (722/1년). 하나님께 돌아와 참된 사랑의 사회를 이루라 했으나 이스라엘은 돌아오지 않았다. 호세아가 전한 말씀처럼 그들은 그들이 의지하던 먼 나라로 오히려 포로되어 끌려가고 말았다. 호세아가 이스라엘에게 원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예루살렘 (2015. 12)에서 우리가 묵은 호텔은 ‘믹달’이었다. 히브리어로는 망대 (tower)인데 이름처럼 길죽하게 솟아있다. 믹달이 서 있는 곳은 ‘힐렐’ 거리(Hillel Street)였다. 그 유명한 두 바리새파 중 하나의 이름이다. 힐렐 거리가 있으면 그와 쌍벽을 이루었던 ‘샴마이’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과연 가까이에 그 거리가 있었다 (Shamai Street). 우리가 아는대로는 이 샴마이 파가 율법에 대하여 더 엄격했는데 바로 사도 바울이 회심 전에 속했던 파다.
예루살렘이 위험하므로 저녁 산책은 무리를 지어 다니라고 하였다. 힐렐가에서 예루살렘 성쪽으로 조금 걸어가다 왼쪽을 보면 요셉 리블린 거리가 나온다. 거기서 곧장 요엘 모쉐 살로몬가 (Yoel Moshe Salomon Street)를 진행하면 야포가 (Yafo Street)와 만나는데 그 왼쪽에는 ‘시온 광장’ (Zion Square)이 있고, 그 오른쪽에는 함마슈비르 (Hamashbir) 백화점이 있다. 이 시온 광장은 벤 예후다 거리와도 연결되었고 안식일을 제외하면 유대인들과 관광객들로 붐빈다. 트램이 다니고 이스라엘적인 기념품도 많이 판매한다.
좀 둘러볼까 하고 일행과 함마슈비르 백화점에 들어갔다 (백화점이래봤자 호주의 웨스트필드에 비하면 10분의 1도 안된다). 구경을 하는데 누군가가 4개에 40세겔하는 사기로 된 밥공기를 발견하였다. 호주달러로 10불 정도가 되는데 값은 싸고 품질은 좋아 보였다. 발견자가 그릇 안쪽면에 붙은 표를 보고 프랑스제인 것을 확인하였다. 잘 팔리지 않던 품목인지 가격표가 다운되고 또 다운되어 여러 개 겹쳐 붙어있었다. 다들 내게 사라고 권하였다. 사모님이 정말 좋아하실 것이라고 하였다. 한 사람은 깨지지 않도록 한 개씩 종이로 튼튼히 싸서 포개어 벌써 포장까지 하고 있었다. 엉겁결에 ‘이스라엘’에서 ‘프랑스’ 밥그릇 4개를 사고 말았다 (나중에 집에 와서 아내에게 주니 왜 사왔냐고 하였다).
그때가 12월 초라 예루살렘의 저녁 공기는 꽤 쌀쌀했다. 바람이 한 번 불면 털 스웨터를 입었어도 몸이 떨렸다. 목요일 저녁이 되자 그 백화점 앞 광장 (말이 광장이지 작은 공간)에는 벼룩시장이 섰다. 행상들은 목걸이와 귀고리, 올리브 나무를 가로로 잘라 그 위에 그림을 그리고 히브리어로 시편을 적은 장식품, 오래된 메노라 등 온갖 수제품과 골동품 등을 가판대에 벌여 놓았다. 한 유대인 중년 남자는 아내와 함께 장식품 벽시계들을 가지고 나왔다. 노끈으로 나무를 엮고 조개나 인형 같은 것을 붙여 장식한 벽시계들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여느날보더 더 추워서 그런지 사람의 발걸음이 뜸하였다. 이제 곧 접을 시간인데 그는 시계 하나도 못팔고 있었다. 그가 화장실을 간 동안 나는 부인과 몇 마디를 나누었다. 어디서 왔냐 하니 필리핀에서 왔다고 한다. 옆에는 10-11살 돼보이는 딸이 있었다. 엄마아빠를 따라 나왔다가 저녁을 걸렀는지,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찬 바람을 쐬며 식은 피자 한쪽을 먹고 있었다. 물건 하나 못팔아 부모 마음은 무거웠는데 딸아이는 옆에서 놀면서 엄마에게 귀여운 짓을 했다. 나는 얼른 시계 두 개를 달라 했다. 이스라엘과는 별 상관도 없는 물건을 순간적으로 또 산 것이다.
엔게디에서와는 다른 앵글로 하나님은 내게 또 하나를 보여주셨다. 그것은 가난한 엄마 아빠와 함께 예루살렘에 뛰놀며 올라오는 12살백이 소년 예수의 모습이었다. 갈릴리 시골에서 예루살렘에 간다니까 마음이 들떠서 예루살렘에 대해 이것 저것 물어보고 아빠 엄마에게 귀여운 짓을 했을 소년의 모습이었다. 가난한 가족은 예루살렘에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다시 시골로 내려가고 있었다. 엄마 아빠는 아들이 일행 중에 없는 것을 알았다. ‘도대체 얘가 어디로 간 거야’ 찾다가 없으니 부랴부랴 근심하며 예루살렘으로 다시 올라왔다. 성전으로 와서 이마에 땀을 훔치다 보니 아들이 거기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꾸짖으려는 마음이 다 없어져버렸다. ‘아이고 찾았구나. 잃어버린 줄 알았네’ 내가 요셉이었으면 속으로 이런 말을 했을 것이다. 시온 스퀘어는 가난한 현장이었다. 쌀쌀한 밤, 가판대를 놓고 장사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틈에 엄마 아빠를 따라와 노는 딸아이가 있었다. 부인은 장식용 시계 둘을 공기 방울이 든 비닐로 정성껏 쌌다. 화장실에 갔다 돌아오던 남편이 멀찍이서 알아차리고 재빨리 와서 부인을 도왔다. 그녀가 남편에게 눈웃음을 지었다. ‘두 개나 팔았어요.’ 아이를 찾은 마리아, 요셉 부부의 행복해 하는 모습이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해요.’ BC 8세기, 호세아가 바라던 이스라엘의 모습이다.
최영헌 교수 (알파크루시스 신학대학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