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0년 3월 6일, 독일의 기업가 고트리브 다임러 (Gottlieb Daimler, 1834 ~ 1900) 별세
고틀리프 다임러 (독: Gottlieb Daimler, 1834년 3월 17일 ~ 1900년 3월 6일)는 독일의 엔지니어, 산업 디자이너, 기업가였다. 그는 내연 기관과 자동차 개발의 선구자였다. 또한 고속도 가솔린 기관과 처음으로 네바퀴 자동차 등을 개발했다.
고트리브 다임러는 내연기관이 장착된 최초의 4륜구동 자동차를 개발했다. 다임러가 설립한 다임러모터회사는 벤츠와 합병하여 최초의 메르세데스-벤츠 차동차를 생산하게 된다. 다임러는 1834년 숀도르프에서 출생했고, 1900년 슈트트가르트에서 생을 마감했다.

– 고틀리프 다임러 (Gottlieb Daimler)
.출생: 1834년 3월 17일, 독일 Schorndorf
.사망: 1900년 3월 6일, 독일 슈투트가르트
.국적: 독일
.형제자매: 크리스찬 알브레히트 다임러, 칼 빌헬름 다임러, 요하네스 다임러
.배우자: 리나 하트만 (1893년–1900년), 엠마 쿤츠 (1867년–1889년)
.자녀: 파울 다임러, 아돌프 다임러
.학력: 슈투트가르트 대학교
고틀리프 다임러 (Gottlieb Wilhelm Daimler)는 독일의 컴팩트 고속 내연기관 (가솔린엔진) 발명가이고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자동차 제조기업 다임러 (Daimler AG)의 창시자이다.
1883년에 다임러와 그의 평생 파트너인 빌헬름 마이바흐 (Wilhelm Maybach)는 다임러의 드림 (Daimler’s Dream)이라 불리는 실린더 수평배치식 압축주입 액화석유 엔진 (horizontal cylinder layout compressed charge liquid petroleum engine)을 개발하여 고속가동을 실현하였으며 운송분야의 응용에 가능하게 하였다. 1885년에 실린더수직배치식 버전을 개발한 뒤 Petroleum Reitwagen이라 불리우는 세계 최초의 2륜 내연기 모터싸이클 (two-wheeler, internal combustion motorcycle)에 적용하고 이듬해에는 사륜 승객 수송 차량과 배에 적용하였다. 1890년에 다임러 모터 코퍼레이션 (Daimler Motoren Gesellschaft; DMG, 영어 Daimler Motors Corporation)을 설립하고 1892년에 첫 번째 자동차를 출시하였다.

○ 생애 및 활동
고틀리프 다임러는 1834년 3월 17일에 제빵사 요하네스 다임러 (Johannes Däumler)와 프레데리카 (Frederika)의 아들로 뷔르템베르그 (Wurttemberg) 슈투트가르트 (Stuttgart)의 근처에 있는 쇼른도르프 (Schorndorf)에서 출생하였다.
1852년에 중학교를 졸업하고 슈투트가르트로 건너가 슈투트가르트 고등기술학교에서 고급 기술을 배웠으며 1853년에 그라펜스타덴 (Grafenstaden)에 위치한 홀레 운트 쉬빌케 (Rollé und Schwilque, R&S)라는 공장에 취직하였다.
다임러는 고교 졸업 후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하며 내연기관에 관심을 갖게 된다.
일을 잘한 덕에 1856년에 회사가 철로 기관차를 제작할 때 22세의 젊은 나이에 감독으로 임명되었으며 후에 슈투트가르트 공과대학(Stuttgart’s Polytechnic Institute)에 진학하여 2년간 기술을 연마하였다. 증기엔진에 관한 이해가 깊어지면서 다임러는 증기엔진이 대체될거라는 확신을 가졌으며 그 시대에 개발 된 가스엔진의 영향으로 값싸고 간단한 소형엔진을 개발할 생각을 가졌다.
1861년에 다임러는 R&S를 그만두고 파리를 방문하였으며 그 뒤에 잉글랜드로 건너가 그 해 겨울부터 맨체스터(Manchester) 고튼(Gorton)에 있는 정상급 엔지니어링 회사 베어 피콕 앤 컴퍼니(Beyer, Peacock and Company)에서 1863년 여름까지 근무하면서 공작기계에 관한 지식들을 쌓았다.
독일로 돌아온 다임러는 바덴뷔르템베르크(Baden-Württemberg)주 괴핑겐(Göppingen)의 Geislingen an der Steige에 있는 다니엘 스트라유비 기계공장(Maschinenfabrik Daniel Straub)에서 툴, 제분소와 터빈 등의 디자인을 하다가 1863년에 공구제조업체 Bruderhaus Reutlingen에 취직하여 검사자로 일하였으며 후에 주관으로 되었다. 그 시절에 다임러는 15세의 고아 빌헬름 마이바흐(Wilhelm Maybach)을 알게 되었다. 다임러의 노력으로 회사는 수익을 보게 되었으며 그러다가 1869년 7월에 회사를 떠나 철도 기관차와 바곤 제조업체 Maschinenbau Gesellschaft Karlsruhe로 취직하였다.
1872년에는 가솔발동기 회사 도이츠 아게 (Deutz AG)에서 일하게 되는데, 회사 사장이 바로 니콜라우스 오토였다. 오토 역시 후에 4행정 내연기관을 개발하는 등의 업적으로 역사에 이름을 새기게 된다.
다임러의 본격적인 내연기관 개발은 칸슈타트에서 시작한다.
1882년 다임러는 오토와 다툰 이후 도이츠 아게를 떠난다. 이후 칸슈타트에 작업실을 마련하고 내연기관 개발에 몰두하게 된다. 다임러와 함께 도이츠 아게를 떠난 빌헬름 마이바흐가 다임러에 합류하는데, 둘의 목표는 모든 종류의 탈 것에 적용 가능한 내연기관을 만드는 것이었다.
1년 후 둘은 기존보다 훨씬 개선된 4행정 내연기관 개발에 성공하고, 3년 뒤인 1885년에는 다임러바겐이라 불리는 최초의 오토바이를 만들게 된다.

이어서 1886년에는 4륜 마차에 엔진을 장착해 최초의 4륜 자동차를 완성하게 된다.
뿐만 아니다. 1888년에는 V형 엔진이 장착된 트럭과 레일바이크 개발에도 성공한다.
다임러는 지상의 탈 것에만 관심이 있었던 것이 아니다. 모든 탈 것에 엔진을 달기위한 시도를 계속해 나갔다.
1887년 칸슈타트에 하나의 회사를 세우고 기존 비행선에 자신이 개발한 엔진을 더한다. 이렇게 탄생한 비행선은 엔진이 장착된 비행선 중 초창기 모델로 꼽힌다.
1888년 8월 10일 다임러의 동료 한 명이 이 비행선을 타고 비행에 성공한다.
1889년에 다임러와 마이바흐는 기존의 마차차체에 모터를 탑재하는 방식을 개변하여 현재의 휠체어와 유사한 스틸 휠 자동차를 개발하였으며 스틸휠웨건(Stahlradwagen)으로 명명하였다.
1890년부터 프랑스의 푸조에서 이에 기반한 스틸휠웨건을 생산하였다.
1890년 회사가 어려움에 빠지자 다임러는 경영 개선을 이유로 다임러모터회사 (DMG)를 설립한다. 이 DMG가 바로 현재 다임러벤츠 AG의 모태가 된다. 마이바흐도 다임러를 따라 DMG에 몸담게 되고, 둘은 계속해서 함께 엔진 개발을 해나간다.
모터보트에서 궤토차에 이르는 여러 분야에서의 엔진소요량의 증대에 비추어 다임러와 마이바흐는 사업을 확장하기로 하였으며 화약제조상인 막스 두텐호퍼 (Max Duttenhofer), 공업가이자 은행가인 킬리언 본 슈타이너(Kilian von Steiner), 탄약 제조상인 빌헬름 로렌츠(Wilhelm Lorenz) 등의 투자를 접수하고 1890년 11월 28일에 다임러-모토론-게샬프트 (Daimler-Motoren-Gesellschaft, DMG)을 설립하였다.

주식회사의 사업구도를 꺼려하는 다임러는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에서 물러나고 마이바흐 역시 1891년 2월에 회사에서 이직하였다.
1892년에 DMG는 첫 번째 자동차의 판매를 달성하였으며 그 해에 다임러는 심장병으로 휴양을 시작하였다.
1893년에 귀환한 다임러는 DMG의 돌아가 통제권을 가질려고 시도하였으나 실패하고 마이바흐와 손을 잡아 엔진개발을 지속하였다. 개발에는 아들인 폴(Paul)도 참여시켰다.
1894년에 이들은 3 번째 엔진 포이닉스 (Phoenix)를 개발하였으며 그 뒤에 마이바흐가 개발한 스프레이 노즐 카뷰레이트 (spray nozzle carburetor)를 적용한 4기통 엔진을 개발하여 파리에서 루벤까지 달리는 역사 최초의 경주대회에서 DMG엔진을 탑재한 자동차들을 압도하였다. DMG의 주가는 폭락하였으며 파산의 위기에 몰린 DMG는 협의를 추진한 뒤 다임러와 마이바흐를 복직시키고 다임러와 마이바흐가 개발한 엔진을 생산하였다.
다임러는 1899년 마이바흐에게 경주용 차량을 만들게 한다. 에밀 옐리넥의 주문으로 생산된 이 차량은 35마력의 4실린더 엔진이 장착됐었다. 바로 이 자동차가 최초로 메르세데스 이름을 달고 세상에 나오게 되는데, 에밀 옐리넥은 자신의 딸 메르세데스의 이름을 차량에 붙이길 원했다.
1900년 다임러는 칸슈타트에서 생을 마감한다.
이후 DMG는 1926년 칼 벤츠의 회사와 합병하게 되는데, 이 회사가 바로 현재 다임러-벤츠 AG의 모태가 된다.


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