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오 박사의 또박또박 준비하고 가는 유학과 해외체험(43)
앞으로 여러 회에 나뉘어 나가는 이 연재는 옆 이름의 책(도서출판 엠-에드, 2006)에서 저자의 양해를 얻어 발췌한 것입니다. 저자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편집자 주
제7장 바다를 건너면 맥 못 추는 영어 – 언어충격
3. 말하기 영어로만은 안돼
청소년기에 일본으로 가 일제 말기인 1945년까지 약 20여년을 산 한인들의 대부분이 일본말을 원어민처럼 잘했다. 한국전쟁 종료후 미국과 캐나다 등으로 이주해간 한인들은 대부분 거기에서 20-30년 살았어도 영어는 거의 예외 없이 서툴다. 왜 그런가를 우리가 잘 안다. 한국말은 구조적으로 일본말과 매우 가깝고 영어와는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 발음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어려서부터 영어사용 국가에서 자란 경우가 아니라면 영어를 두루 잘 할 수 없는 이유다. 비영어권에서 사는 사람이 영어를 배우자면 먼저 양 언어간의 차이를 잘 알아야 한다.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사람은 영어의 특징을 모른다. 문법을 모르고도 말을 잘 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언어구조가 크게 다른 문화권에서 자란 사람(특히 아시아인)은 영어를 어느 정도 분석적으로 배워야 한다. 그런 분석을 가능케 하는 것이 영문법이고 구문론이다. 영문법을 체계적으로 발전시킨 대표적인 사람들은 거의 모두가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언어학자(예컨대 네덜란드 태생 O. Jespersen)라는 사실은 이런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박명석 교수는 저서 [Communication Styles in Two Different Cultures: Korean and American 1994]에서 한국인이 영어를 잘 할 수 없는 이유인 몇 가지 영어와 한국어간의 구조적 차이를 잘 요약하고 있다.
박교수는 그 차이를 크게 7개 분야로 나눠 설명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 두 가지는 발음과 음조상의 차이다. 나머지 다섯 가지는 어순, 문맥에 따른 의미의 변화, 같은 단어가 서로 다른 품사 역할과 의미를 갖는 문제 [lexical differences], 관용어의 사용, 각 단어 속에 숨어 있는 서로 다른 [의미/connotation] 등이다.
영어의 자음에는 한국어에 없는 발음하기 어려운 [음소/phonemes]가 여러 가지 있다. 한글의 경우 약간의 예를 빼고는 같은 글자는 같은 음을 낸다. 영어는 단어에 따라 발음이 달라진다. 단어에 따라 어떤 글자는 소리를 전혀 내지 않는 것도 있다. 모음의 발음법도 일정치 않다.
음조는 단어의 악센트와 말하기에 있어 [리듬 또는 억양/rhythm]의 문제다. 우리말 단어에는 악센트가 없다.
영어의 어순은 동사가 주어의 뒤로 먼저 오는 등 우리말과 다른데, 그나마 같은 단어가 명사, 동사, 형용사 등으로 서로 다른 역할을 하면서 문장 가운데 위치도 달라지고, 서로 다른 뜻으로도 사용된다. 예컨대 [charge]는 문맥에 따라 명사와 동사로 쓰이면서 기소, 담당할 책임, 돌격, 요금부과 등 여러 가지 뜻으로 쓰인다. 몇 개 비슷한 예를 들면, [drive/동사=운전하다/명사=운전], [rise/동사=상승하다/명사=명사), [graft/물, 접목], [bar/변호사직, 봉 (棒), 술집], [squash/운동경기 이름, 눌러 부스다, 짜내다], [fault/실수, 지진층], [pale/울타리, 창백한], [trip/여행, 줄에 걸려 넘어지다, trip over]등이다. 이런 사례는 영어 단어 대부분에 적용된다.
같은 뜻인 단어의 경우에도 [활용, 용례/usage]는 우리말과 다르다. 예컨대 [wear는 /옷을 입다/wear clothes)]로 쓰지만, [모자를 쓴다/wears a hat)]때나 [안경을 낀다/wears glasses]때 혹은 [반지나 장갑을 낀다/wears a ring and gloves]때, [신발 또는 양말을 신는다/wears shoes and socks?때, [시계나 귀고리를 찬다/wears a watch or earrings]때도 그대로 쓰인다. [see/본다]라는 동사는 문맥에 따라 육안으로 [본다]와 [진찰을 받으러 의사를 찾아간다] [의사를 만나다]의 뜻으로 서로 달리 쓰인다. 영미인들 농담조로 쓰는 [I will see you when I see you]의 처음 [see]는 [만난다, 접견한다], 후자의 [see]는 글자 그대로 [본다]의 뜻이다.
영어에는 문법으로 설명되지 않는 [관용구/idioms]가 많다. 복합동사의 구성, 전치사의 사용법도 변화무상하다.
호주에서는 브래들리가 영어와 타이어, 인도네시아어, 말레이시아 어의 차이점을 개관하고, 이들 국가의 유학생들이 언어적 차이 때문에 겪는 어려움을 실증적으로 조사한 적이 있다. 브래들리의 조사는 발음, 단어 그리고 구문의 세 분야로 나눠 이들 학생들이 영어를 구사할 때 어려워하는 사항들을 조사해 본 것인데, 단어로서는 불규칙 동사의 변화, 조동사, 시제, 완료형, 수, 관사 등 대개 한국인이 영어를 배우면서 주로 실수하는 것들과 같았다.
영어사용 국가에서 보면 유럽계 이민자와 유학생들은 아시아계에 비해 교육 배경과는 관계없이 일반적으로 영어를 빨리 익혀 잘한다. 독일, 네덜란드 등 비영어사용 유럽 국가에 가보면 영어를 잘한다. 그들의 언어구조가 영어와 유사하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그런데도 간혹 영미국가에서 오래 산 일부 유럽계 가운데 영어 동사의 과거분사에 왜 [have 동사]를 붙이는지 이해 못하는 사례를 보게 된다.
이런 사람들의 영어는 아무리 거기에 살아도 [문법에 안맞는 영어/Broken English]일 수밖에 없다. [영어구문/English syntax]에 대한 체계적 지식 없이 영어를 배운 탓이다. 구문론의 기초는 문법이다. 한국에서 한창 일고 있는 영어공부 붐은 과거 한국의 문법 중심 영어교육에 대한 반성론에 따른 [말할 수 있는] 영어를 지향하고 있다. 물론 충분히 이해가 가는 일이지만, 한국에서 말로만 영어를 완전히 배울 수 없을뿐만 아니라, 문법 지식을 소홀이한다면 위와 같은 이유로 그 영어는 얼마 안가 한계에 부닥치게 된다.
영어에 지름길은 없다
언어학습은 [hearing/듣기], [speaking/말하기], [writing/쓰기], [reading/ 읽기]의 네 가지 분야로 나눌 수 있는데, 대개 들을 수 있으면 말할 수 있다는 게 필자의 확신이다. 어린아이가 처음 말을 배우는 과정이 바로 그러하다.
해외에 나와 사는 한국인들이 영어를 듣기는 해도 말하기가 어렵다고 말하는 수가 있으나 실은 그 반대다. 잘 알아듣지 못하기 때문에 영어가 잘 늘지 않는 것이다. 상대방의 말을 모두 알아듣는다면 말은 곧 배우게 된다.
어른이 된 한국인이 잘 듣지 못하는 이유 하나는 영어 특유의 발음과 그나마 또박또박 발음하지 않는 원어민 때문이다. 그러나 그게 전부는 아니다. 대화 내용이 “밥 먹고 놀러 가자” 등 아주 기초적인 의사소통 단계를 넘어 복잡해지면 그 속에서 써야 할 논리와 단어와 개념 또한 복잡하고 차원이 높아진다. 그럴 때는 언어구조에 대한 이해와 함께 영어 단어와 표현력이 풍부해야 한다. 듣기와 말하기만으로 될 일이 아니다. 단어를 몰라 독해를 못하는 내용을 [히어링/hearing]할 수는 없다. 책을 읽고 공부를 해야 한다.
이 문제는 특히 유학생에게 중요하다. 학교 과제를 주로 에세이로 제출해야 하는 유학생의 경우는 듣고 말하기보다 더 중요한 게 어려운 제목을 글로 다루는 읽고 쓰는 영어 [written English] 실력이다. 유학을 준비하는 한국 학생들이 해외 영어연수로 나가 배우는 주요 영어 과목 하나를 검토해 보면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학술영어라고 불리는 이 영어는 영어로 에세이를 쓰는 능력을 길러주는 것인데, 영어 구문과 문장 스타일에 대한 지식을 빼놓고 할 수 없다
해외 영어학교의 주요 과목인 [일반영어/General English, English for General Purposes] 수준을 넘어 [학술을 위한 영어/English for Academic Purposes, English Writing course], [비즈니스 영어/Business English, English for Business Purposes], [전문영어/Professional English], [관광영어/Tourism English], [비행영어/Aviation English] 등은 각 분야별 전문 및 기능영어이므로 말보다 책과 교재를 중심으로 공부를 해야 한다. 어느 정도는 한국에서 더 잘 배울 수 있는 영어다.
유학을 위한 영어공부를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또 한 가지 충고는 한국에서 폭발적 수요 증가에 힘입어 우후죽순격으로 나온 영어학원과 영어 학습서들이 몇 주 또는 몇 달 내에 영어를 끝내준다고 떠드는 광고에 현혹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영어는 모든 단계에 걸쳐 노력하고 연습한 만큼 실력이 는다고 봐야 한다. 어디에서 공부를 하든 오래 시간을 거쳐 천천히 변하는 과정이다. 노력한 시간의 함수일 뿐이다.
상업성을 추구하는 영어 사용국 영어학원들도 영어를 체계적으로 가르친다는 점을 강조한다. 또 영어를 사용하는 나라에서 생활하며 영어를 체계적으로 배우게 한다는 점을 강조하지, 몇 주 또는 몇 달 내에 영어를 정복할 수 있게 해 준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영미지역으로 나가는 한국 유학생의 70-80%가 영어연수생이다. 이들은 연수를 마치고 돌아가거나 정규 학교로 진학한다. 많은 영어연수생들이 6개월 또는 1년 과정의 연수 코스를 마치고 나서도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고 실망하는 것은 속성으로 하는 영어공부에 대한 잘못된 기대 때문이다.
모처럼 큰 기대를 가지고 들어온 연수생들은 학교의 시설미비와 교사의 자격미달 (일부 그런 학교가 있긴 하다), 해외에서 만나게 되는 너무 많은 한인 등을 탓하기도 하지만, 어떤 우수한 시설과 교수법과 여건으로도 단시일 내에 큰 변화를 가져올 수는 없다. 이것은 현지에 나와 원어민만이 있는 클래스에서 공부를 해도 마찬가지다.
한국에서 영어학원과 영어 학습서가 [말하는 영어] 혹은 [생활 속에서 재미있게 배우는 영어]니 하면서 재미있지만 사용빈도가 적은 이상한 영어표현을 골라 가르치는 풍조도 경계할 일이다. 한국인 해외에 가서 그런 특이한 표현을 무리 없이 구사할 정도가 되려면, 다른 일반영어가 거기에 걸맞게 고급이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절름발이 영어가 되고 만다.<다음호에 계속>
김삼오 박사(커뮤니케이션학 박사)
고려대학교 정외과 졸업 (BA)
컬럼비아대학교 언론대학원 졸업 (MS)
매콰리대학교 박사과정 졸업 (PhD)
전 파이스턴 이코노믹 리뷰 서울특파원
전 호주국립한국학연구소 수석연구원
E-mail: karckim@optusnet.com.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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