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강의 지상중계(4)
구약에 나타난 윤리적 주제들<1>
정미연 박사(몰링 칼리지 교수_조직신학, 윤리학)
구약 윤리의 중요 부분을 설명하면서, 앞으로 몇 주 동안 구약에 나타난 여호와 하나님, 구약의 윤리 의식, 인간론 그리고 죄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특히 인간론에 있어서, 유물론에 기본을 둔 공산주의 인간관과 인본주의에 기본을 둔 자본주의의 인간관이 확연히 다른 것처럼, 구약 성서에서도 구약 성서만의 독특한 인간관이 있다. 필자는 이를 ‘하나님의 형상’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이와 관련하여 ‘죄’의 문제도 (다음 호에) 살펴볼 것이다.
창세기, 기독교 신학의 토대
창세기는 기본적으로 ‘기독교 신학의 토대’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구약의 윤리 역시 무엇보다 창세기에 가장 많은 비중을 두고 있다. 그러므로 구약의 윤리를 공부할 때, 창세기가 갖고있는 윤리적 토대를 면밀히 공부하는 것이 필요하다.
먼저 창세기 1장의 중요 부분을 살펴보자. 창세기에서 우리는 가장 먼저 ‘천지 창조’에 관한 구절들을 만난다. 그런데 이 구절들 중 우리가 쉽게 인식할 수 있는 창세기만의 독특한 부분은 무엇이 있을까 함께 생각해 보자.
우선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다. 구약에 쓰인 ‘창조하다’라는 뜻을 가진 히브리어 동사 바라(bara)는 매우 특별한 동사이다. 이 동사는 구약에서 몇 번 나오지 않지만, 우리가 매우 눈여겨 보아야할 동사이다. 그 이유는 바로 이 동사가 오직 ‘하나님’만을 주어로 취하는 동사이기 때문이다. 히브리어는 동양적 언어이다. 그래서 명사와 형용사가 발달하여 느낌이나 감정을 표현하는 데에 탁월하다. 반면에 헬라어는 동사가 발달한 언어로서 여기에는 시제가 중요하다. 히브리어 동사에서 시제는 중요하지 않지만, 능동과 수동 개념 즉, 주어가 행위의 주체인가 아니면 행위의 객체인가가 매우 중요하다. 여기에서 이 바라(bara)라는 동사는 능동으로 사용될 때, 그 행위의 주체로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취한다. 즉, 천지 만물의 창조주가 바로 여호와 하나님뿐이심을 이 ‘바라’라는 동사를 통하여 명확히 구별하여 쓰고 있는 것이다.
말, 창조의 능력, 하나님의 형상
그리고 하나님께서 천지를 ‘말씀으로’ 창조하셨다는 것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언어학자들에 따르면 언어는 창조력을 가지고 있다.
요즘 매스 미디어 등에서 빈번하게 나오는 내용들이 무엇인가? 바로 이런 내용들이다. ‘언어를 통한 학대나 폭력은 듣는 사람의 마음을 다치게 한다.’ ‘언어폭력이나 학대는 생각의 구조를 변질시킬 수 있다.’‘언어폭력과 학대는 또 다른 사람에게 같은 폭력을 행사하도록 만든다.’ ‘어려서부터 언어폭력에 노출된 사람들은 자존감이 매우 낮으며, 스스로의 장단점을 파악할 수 있는 정상적 사고가 불가능하고, 극단적 생각과 행동을 하기 쉽다.’ ‘어떤 일을 하는데 긍정적인 말을 많이 듣는 사람은 그 일을 정말 잘할 수 있다. 그 격려 또는 칭찬의 말이 창조력을 발휘하여 자신의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형성하고 자신감을 형성해 주기 때문이다.’
물론 무조건 무엇이든 잘한다는 분별력 없는 칭찬 아닌 칭찬도 문제가 되지만, 부정적인 언어 환경에서 성장한 사람은 건강한 인격으로 성장하기 어렵다고 한다.
하나님께서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반면, 인간은 ‘무에서 유’의 창조가 불가능하다. 그러나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말’을 통하여 인간 또한 창조적 행위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시, 소설, 드라마 등에서 인간은 언어를 통하여 단순히 ‘알고 있는 세계’를 표현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경험해 보지 못한 ‘상상의 세계’를 표현해 내기도 한다. 또한 인간은 언어를 사용하여 개인의 인격을 형성하기도 하고. 세상의 비전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그러므로 언어가 가지고 있는 이러한 창조력으로 말미암아, 사람은 어떤 환경 속에서, 어떤 책을 읽고, 어떤 말을 듣고 자랐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한국에서 부모가 자녀에게 ‘망할 놈’ 등등의 험악하고 부정적인 말을 많이 쓰는 것을 자주 보아 왔다. 이러한 말의 힘으로 인하여 그 자녀는 자칫 부정적 세계관을 갖게 되고, 그로 인해 사회적 적응 능력이 떨어질 수도 있다.
이에 반해 서양 사회는 동양 사회보다 비인격적 언어 표현에 관해 인지도가 비교적 높은 편이다. 이는 서양 사회가 오랜 시간 동안 기독교 문화와 가치관을 바탕으로 한 사회적 법과 제도를 정착시켜 가면서, 이러한 언어적 폭력에 대해 일찌감치 경각심을 가지고 대처해 왔기 때문이다. 우리는 ‘창조의 능력’을 가진 언어의 변화를 통하여 사람의 가치관은 물론 사회도 변화시킬 수 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언어의 창조력은 우리가 신앙 생활하는 데도 다양하게 적용할 수 있다. 특히, 기도할 때, 기도의 언어가 하나님과 소통을 통한 창조력을 가지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우리의 욕심을 담은 터무니없는 기도는 하나님과의 소통을 불가능하게 하고 창조력도 발휘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하여 천지를 창조하신 것처럼, 인간이 말을 통하여 창조력을 발휘하는 것은 곧 ‘하나님의 형상’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것이 아담을 창조하신 이후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가장 먼저 말을 하게 하신 이유이다.
창세기의 창조와 질서, 그 엄청난 차이
창세기 1장은 하나님의 창조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와 비슷하게 세계의 많은 민족들이 저마다의 창조의 신화를 가지고 있다. 한국은 곰과 호랑이가 등장하는 단군신화가 있다. 이러한 이야기는 옛 사람들이 무지하거나 미신적이어서 이같은 형태의 이야기를 만들어 낸 것이 아니다. 이는 인간 탄생에 관하여 그들이 간직하고 있는 그 무언가를 그들 나름의 신비로운 조화와 상상력을 가지고 ‘시적이고 신화적으로’ 표현해 낸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구약의 창세기가 당시 메소포타미아 문명에 있었던 다른 창세 이야기들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이다. 요컨대 구약 창세기는 상당히 질서 있고, 정리정돈이 잘되어 있다. 창세기에서 하나님께서는 빛과 어둠을 나누시는 것을 시작으로 6일 동안 하늘과 땅과 바다를 창조하시고, 차례차례 생명을 지닌 것들로 각 공간들을 채우셨다. 물론 이러한 창조 과정에 대해 과학적 관점으로 바라보려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창세 이야기의 표현들은 일차적으로 ‘문학적 표현’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창세기의 창조 이야기는 현재 우리가 경험하는 역사 이전에 일을 다루고 있으며, 고대시대 세계관의 틀 안에서 묘사되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두 가지를 배제하고는 창세기에 의한 창조의 신비를 바르게 해석하기 어렵다고 본다. 현대적 적용을 위해 역사나 과학적 해석은 본문을 해석한 다음 이차적으로 할 수 있다.
그리고 성서를 문학적 표현의 관점에서 바라본다고 하여, 이것이 하나님 말씀의 권위를 떨어뜨리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창세기가 가지고 있는 독특성을 이해하는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 무에서 유를 창조하심이며, 또한 천지와 만물을 각각 구별되고, 질서 있게, 종류대로 창조하셨다는 것이다. 특히 인간은 동물의 창조 과정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창조되었다. 따라서 인간과 동물은 분명 확연히 다른 존재이다. 인간과 침팬지의 DNA의 차이가 수치상으로 2%에 불과하다 할지라도 그 차이는 엄청난 것이다. 이것이 구약의 창세기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이며, 우리가 반드시 주목해야하는 ‘창조의 질서’이다.
분별력, 윤리적 결정의 기준
그러므로 우리는 창세기 1-2장 안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자 바, 곧 ‘하나님의 창조의 지혜’를 파악해야 한다. 따라서 창세기 1-2장은 지혜의 글이기도 하며, 모든 ‘분별’력의 시작을 일컬어 준다. 만물을 창조하시고, 통찰하시며, 알고 계시는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모든 만물을 질서 있게 구별하여 창조하셨음을 기록하도록 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창세기에서 지혜와 질서, 그리고 분별력에 관해 배울 수 있다. 잠언에서 지혜의 근본은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라고 밝힌 것처럼, 우리는 우선 하나님과 인간을 분별해야 한다. 인간은 인간일 뿐 결코 하나님이 될 수 없다. 하나님의 영역을 침범할 수도 없다. 또한 인간과 다른 피조물을 분별해야 한다. 다른 피조물이 인간과 동등하거나 인간 위에 위치할 수 없다. 그리고 이러한 ‘창조의 질서’에 대한 분별력은 우리의 많은 삶의 경험을 통하여 획득될 수 있고, 윤리적 문제의 상황 속에서 우리가 좋은 도덕적 윤리적 결정을 할 수 있는 기준이 된다.
정미연 박사 (몰링 칼리지 교수_조직신학, 윤리학)
미국 이민 1.5세 출신의 차세대 신학자. 사우스웨스턴침례신학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미국의 여러 신학교와 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대학교에서 교수생활을 했다. 2014년부터 지금까지 몰링 칼리지 전임교수로 봉직하고 있다. 여름과 겨울방학기간 동안에는 콩고, 인도, 케냐, 말레이시아, 미얀마, 네팔, 르완다. 우간다 등지의 신학교와 교회에서 사역한다. 세계침례교연맹, 아태침례교연맹, 로잔회의 세계선교글로벌 디아스포라 네트워크에서 활동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