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하의 생명과학 이야기
프란치스코 교황의 회칙, “찬미받으소서”의 메시지(3)
생태 교육과 정신[Ecological and Spirituality]
“찬미받으소서”의 마지막장인, 제6장은 ‘생태 교육과 정신’[Ecological and Spirituality]이다.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의 번역문은 “생태교육과 영성”으로 되어 있다. 환경과 관련된 문제 제기와 해결책에 이어 앞으로 삶에 대한 교육과 인간과 환경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찬미받으소서”는 신자들에게 권유하는 지구를 살리자는 실천의 강령이며 인류에게 던지는 평화의 메시지다. 평화를 기원하는 것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작은 일부터 실천해야 지구가 평화로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교황은 성경이 “자연환경은 모두가 함께 사용하는 것으로 모든 인류의 유산이며 모든 이가 책임져야 하는 것이라는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고 환기시킨 후 “성경의 창세기는 인류와 다른 피조물들과의 관계를 살펴보고 죄가 창조 질서 전체의 균형을 어떻게 깨뜨렸는지를 성찰하는 데 핵심이 있다”고 지적했다. 인간의 삶은 근본적으로 하느님과의 관계와 이웃과의 관계, 지구와의 관계에 기초를 두고 있지만 세상에 사는 인간에 의해 깨졌고 이러한 관계의 불화가 바로 죄라는 것이다. 따라서 교황은 인류가 생태 문제의 포괄적인 해결책을 찾기 위해서는 ‘온전한 생태학’이라는 관점 아래 생태문제에 관한 대화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나아가 신자들에게 ‘생태적 회개’를 권유했다. 생태적 회개는 학교와 가정, 매체, 교회에서 환경에 대한 교육을 통해 일상생활과 습관을 변화시키는 데서 비롯된다. 환경을 위해 생활과 소비의 방식을 바꾸면 결국 정치·경제·사회 분야에서 권력을 행사하는 이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칠 수 있고 이것이 인류의 생태적 회개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새로운 생활양식을 향하여[towards a new lifestyle]
제6장 “생태 교육과 정신”[Ecological and Spirituality]은 9 parts로 나누어 서술하고 있다. 그 중에 3parts를 요약해 본다. 첫 번째 part는 “새로운 생활양식을 향하여”[towards a new lifestyle]이다. 제목에서 암시하듯 기후변화의 기본적으로 lifestyle[생활양식]에서부터 출발하자는 것이다. 시장[市場]은 상품 판매를 위하여 강박적 소비주의를 촉진하고 있기에 사람들은 과잉구매와 불필요한 지출의 소용돌이의 함정에 빠져 살아가는 것을 경계하자는 것이다. 불필요한 집착적 소비주의는 기업이 생태와는 관계없이 무한 소비심리를 자극하며 생태계에 치명적인 쓰레기 형태의 유해물질을 지구에 축적시키고 있는 것을 상기시키고 있다. 소비생활 속에 이와 같은 근원적인 환경의 해악요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소비의 자유를 누리는 것으로 유유자적[悠悠自適] 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자기중심적이고 자기 의식안에 머물 때 탐욕은 커지게 마련이며, 그 결과는 엄청난 기상이변으로 나타나게 마련인 것이다. 개개인의 자기중심적 의식에서 출발한 원인은 살피지 않고 자연재해의 위협에만 관심을 갖고 있음을 자각하라는 것이다. 생활 양식을 바꾸면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힘을 발휘하고 있는 이들에게 건전한 압력을 행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런 점에서 소비자의 사회적 책임이 있다는 것을 일깨울 필요가 있다고 보는 것이며 “구매가 단순히 경제적인 행위가 아니라 언제나 도덕적인 행위이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교황은 ‘자연환경은 모두가 함께 사용하는 것으로 모든 인류의 유산이며 모든 이가 책임져야 하는 것’이라는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성경의 창세기에는 인류와 다른 피조물들과의 관계를 살펴보고 죄가 창조 질서 전체의 균형을 어떻게 깨뜨렸는지를 성찰하는 데 핵심이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인류와 환경이 맺은 약속에 대한 교육[Educating for the Covenant between Humanity and the Environment]
두 번째 part는 “인류와 환경이 맺은 약속에 대한 교육”[Educating for the Covenant between Humanity and the Environment]이다. 오늘날 문화와 생태 위기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은 새로운 생활 습관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불필요한 물건을 쌓아 놓고 재미만을 늘리는 것을 발전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으며, 이는 인간의 마음이나 기쁨을 주기에는 충분하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젊은이들이 새로운 생태감각과 관용의 정신을 지니도록 하는 환경교육이 확대되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생태 시민의식의 형성을 목표로 하는 교육이 종종 정보 제공에만 머무르고 습관의 형성에 이르지 못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교육이 학교, 가정, 커뮤니케이션 매체, 교리 교육 등 다양한 영역에서 이루어 질 수 있지만 가장 중요한 교육현장은 가정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가정은 “하느님의 선물인 생명을 적합하게 받아들일 수 있고 당면한 많은 침해로 부터 보호 받을 수 있고 진정한 인간 성장이 이루어는 장소”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생태적 회개[Ecological Conversion]
세 번째 part는 “생태적 회개”[Ecological Conversion]인데 제목부터가 생소하다. 생태를 짓밟은 것에 대한 회개를 하자는 것인데 이해는 되지만 회개까지는 대중들이 선듯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밖에 없는 개념이다. 교황 프란치스코 만이 할 수 있는 권면의 말씀이며 과학이 주장할 수 없는 논리다. 그리스도교의 영성의 풍요로운 유산은 이천년에 걸쳐 개인과 공동체 체험의 결실로 인류를 쇄신하는데 값진 도움이 있었음을 확인시키고 있다. 복음의 가르침이 우리가 생각하고 느끼고 살아가는 방식에 직접적 영향을 주는 것을 일깨우고 있다. 이념이 아니라 환경보호에 대한 열정을 불어 넣어 주는 근거를 영성에서 찾아야 하고 우리의 개인적 공동체적 활동에 자극과 동기와 용기와 의지를 주는 내적인 힘으로 작용하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교리만 가지고는 이 위대한 일에 투신하기는 불가능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교회 안에서 영성은 인간의 몸이나 자연, 또는 세상 현실에서 분리되지 않고, 오히려 그 안에서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과 일치를 이루며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신심이 깊고 기도하는 그리스도인들 가운데도 일부는 현실주의와 실용주의를 내세워 환경에 대한 관심을 우습게 여기고 있음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또 일부는 수동적이어서 자신의 습관을 바꾸려는 결심을 하지 않고 일관성도 없다는 것도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개인이 더 좋은 사람이 되는 것만으로는 현대 세계가 직면한 매우 복잡한 상황의 해결에 충분하지 않으며 사회와 환경에 대한 의식없이 소비주의에 빠지게 되어 있다. 그러기 위해서 개인의 회개는 물론 공동체의 회개가 이루어지도록 힘을 합쳐야 한다고 보고 있다. 하느님께서 세상을 사랑으로 선물하셨기에 우리도 대가를 바라지 않으면서 포기하고 누가 보거나 인정하지 않더라도 관대한 행위를 하듯 실천할 것을 권면하고 있다. 거듭해서 언급 되는 것이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은 기후변화 등 지구 환경문제가 경제, 과학기술, 정치, 사회, 문화, 생활양식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만들어진 것임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고 있다.
“찬미받으소서”와 관련된 대담
격월간 잡지인 “공동선”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회칙 “찬미받으소서”와 관련된 대담에서 나온 전문가들의 발언들을 인용해 보면, 오늘날의 환경문제의 상황은 단순하게 한 분야만 떼어서 접근하는 것은 환원주의로 그것은 오히려 문제를 가리거나 왜곡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하며 ‘사회회칙’이라는 표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전혀 새로운 차원의 생태[ecology]라고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생태론, 생태주의 그런 식으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분석이다. 교황께서는 지식의 파편화라든지 학문영역들의 개별화가 사실 지난 2세기 동안에 우리에게 안겨준 폐해에 대해서 우려하면서 통합적인, 새로운 종합이 필요하다고 보니까 환경이라는 요소가 우리에게는 natural environment로 만이 각인되어 있으며 human environment, social environment를 다 포함하는 넓은 의미로 쓰는 점에서 환경회칙이라고 하게 되면 자연의 환경만을 생각하니까 회칙의 비전을 너무 축소시키는 우려가 있다. 세계가 사실상 하나의 시장이 된 상황으로 돈의 힘이 아무런 거침없이 전 지구를 지배하는 그런 상황이다. 그리고 자연을 좀 덜 훼손하는 그런 질서를 만들었다면 모르겠지만 지금 지구는 그 반대로 가고 있고 이런 상황을 교황께서 지적하신 건데 돈은 규제받지 않는 권력인거다. 적어도 왕이나 정부일 경우에는 규제가 제도적으로 쉬웠었는데 지금은 형태가 보이지 않는 돈이라는 존재다. 요즘은 종이로 되어있지도 않고 정말 아무 제한 없이 전 지구를 돌아다니면서 다른 사람의 삶을 지배하는 질서를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은 이 돈을 얼마만큼 평등하게 분배하느냐가 중요하다. 그런데 지금은 돈의 힘을 규제하는, 우리 인류들이 다 같이 동의할 수 있는 국제적인 시스템을 만들어내지는 못했기 때문에 돈이 소수에게 집중되고 많은 이들이 뺏기는 상황이 진행된거다. 이런 과정에서 굉장히 과학기술이 발달하고 수탈의 기술도 굉장히 효율적이게 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연을 수탈하게 된다. 그래서 굉장히 많은 문제들이 발생했는데 지난 200년 동안 정말 우리 인간이 만들어보지 못한, 만나보지도 못한 그런 새로운 물질들이 많이 발생하게 될 수밖에 없게 되어 있다. 국제적인 제도나 협력으로는 도저히 풀어 낼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찬미받으소서”의 구구절절이 지구를 사랑하고 살리는 방안을 제시하고 작은 것에서부터 실천할 것을 호소하고 있다. “찬미받으소서” 후미에 “우리의 지구를 위한 기도문”[A prayer for our earth]의 일부를 소개 한다. … 저희 삶을 치유해 주시어 저희가 이 세상을 훼손하지 않고 보호하게 하시며 오염과 파괴가 아닌 아름다움의 씨앗을 뿌리게 하소서…
박광하(전 여주대신고 교감, 전 수원계명고 교장)
필자 박광하 선생은 고려대학교 생물학과를 마친 후에 평생을 생물과학 강의와 교육에 헌신하여 왔다. 20여년 전 호주로 이주하여 시드니에 거주하며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