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소개
로마를 약탈하는 가이세리쿠스를 설득하는 교황 성 레오 1세
Maitre Francois, 15세기 예술가
‘로마를 약탈하는 가이세리쿠스를 설득하는 교황 성 레오 1세’를 그린 Maitre Francois는 1462년에서 1480년 사이에 파리에서 활동한 익명의 예술가이다. 그는 1455년에서 1472년까지 기록된 François Le Barbier라는 예술가와 동일시되었다.
이 예술가의 이름은 Robert Gaguin이 1473년부터 현재 국립 도서관에 보존되어 있는 City of God 원고의 저자임을 나타내는 독특한 언급(“프랑수아 화가”)에 기인한다. 프랑스의 미술사학자 Paul Durrieu는 이 문서를 발견한 후 전체 원고를 그에게 귀속시켰다. 미국 미술사학자 Eleanor P. Spencer는 그녀의 전임자인 Jean Rolin과 그의 후계자의 손을 구별하여 이 선택 범위를 좁혔다.
그에게 귀속된 원고는 그가 1460년에서 1480년 사이에 많은 영주와 파리의 명사들에게 작품을 공급하는 예술가였음을 보여준다. 이 원고 중 일부는 유사한 스타일을 유지하는 협력자들에게 부분적으로 위임되었다.
이 아티스트의 스타일은 Bedford 마스터의 예술과 혼합된 Flemish 원시인의 그림에서 직접 가져온 Jean Rolin의 모델을 재개한 것이다. 그러나 그는 보다 단호한 캐릭터 모델로 구별되며 그의 구성은 건축 요소와 연속적으로 구성된다. 매우 선명한 색상을 사용한다.
Maître François는 때때로 Jean Fouquet의 아들 중 한 명과 동일시되었지만 이 가설은 여러 견해에 의해 거부되었다.
○ 교황 레오 1세 (Papa Leone I)와 반달족의 왕 가이세리크 (Geisericus, 389 ~ 477) 회담
455년 반달족이 쳐들어오자, 교황 레오 1세는 또 다시 반달족의 왕 가이세리크와 회담을 벌였다.
이때에도 레오 1세가 홀로 가이세리크와 담판을 벌였는데, 로마에 대한 약탈을 막지는 못했지만 로마인을 죽이거나 로마의 건물을 파괴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가톨릭의 최고 성직자라는 위치와 죽음을 무서워하지 않는 용기가 적에게도 경외의 마음을 갖게 만든 것이다.
그리하여 로마 시내의 약탈은 막지 못했지만, 로마의 파괴와 시민들의 살육만큼은 막아 내었다.
이때 레오 1세가 반달족의 가이세리크와 맺은 합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그리스도교 교회와 관련 시설ㆍ사람은 죽이지 않는다.
2. 저항하지 않는 사람은 죽이지 않는다.
3. 포로를 고문하지 않는다.
이리하여 로마는 그 옛날 자신이 박해하던 그리스도인에게 아틸라와 가이세리쿠스의 침공에서 구원을 받은 셈이 되었다.
이 덕분에 로마 시민들은 레오 1세에게 무한한 애정과 충성을 바쳐서, 사실상 로마의 수호자로 받아들여졌고, 이후부터 로마 교황들이 아비뇽 유수 이전까지 정치 영역에 손을 뻗치면서 영향력을 크게 행사할 수 있었다.
레오 1세는 반달족의 로마 약탈 이후인 461년 선종했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