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준 교수의 호주선교사 열전(40)
테일러 의사(1877. 6. 14-1938. 9. 23)
한국명: 위대인(魏大淵) 의사, 통영 1913-1921; 진주 1921-1938
윌리엄 테일러(Dr <Rev> William Taylor LRCP & S <Edinburgh>)는 1887년 6월 북아일랜드의 밸리메나(Ballymena)에서 태어났고, 에든버러에서 의학을 공부했다. 그는 처음에 뉴헤브리데스에서 선교사 의사로 섬겼고 그곳에서 부인이 죽었다. 그는 1913년 9월에 한국에 도착했고, 12월에 상해로 가서 뉴헤브리데스 시절에 알고 지내던 간호선교사 앨리스 매인(Alice Main)과 결혼했다. 그들은 1921년까지 통영에서 사역했고 그 후 진주의 배돈병원으로 이전해서 테일러 의사가 1938년 사망할 때까지 그곳에서 일했다. 그의 지도력에 힘입어 진주병원은 크게 발전했다.
그들이 통영에서 7년 동안 있는 동안, 태일러는 시약소(dispensary)를 운영하면서 그의 도움이 필요해서 찾아오는 많은 사람들을 치료했다. 동시에 그는 고성과 배둔 지역에 있는 많은 마을 교회들과 또한 그가 통영시 남쪽에 세운 작은 전도처를 보살피는 책임을 맡았다. 그는 전도자이며 치료자였다. 그는 이 둘 사이에 아무런 갈등을 느끼지 않았다. 그의 치료사역은 사람들에게 위대한 치료자를 가르쳐주었다.
1922년 진주로 옮겨온 후에 테일러는 병원의 원장으로 섬겼으나 동시에 그는 진주와 인근 마을에서 복음을 설교하는 일에 많은 시간을 보냈다.
윌리엄 테일러는 겸손해서 자신을 나타내지 않았지만 상쾌하고 친절한 사람이었다. 그는 늘 희망적이었고 큰 유머감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진주에서 섬기는 동안 그곳의 나환자 공동체는 그의 친절에 대한 감사를 세긴 기념비를 병원 앞에 세웠다. 그는 환자들과 병원의 동료들에게 깊은 사랑을 받았다.
테일러 의사는 또한 안수 받은 목사였다. 진주에 있는 많은 교회들이 테일러의 노력과 또한 그가 이끈 병원 전도 팀의 노력으로 시작되었다. 저녁이 되면 그는 신문을 읽으면서 파이프 담배를 피며 긴장을 푸는 것을 좋아했다. 그는 또한 병원의 재정을 기록하는 것을 즐거워했고 어떤 순간에도 그는 병원의 재정을 정확하게 말할 수 있었다.
테일러는 1938년 9월 23일 61세의 나이로 요코하마에서 갑자기 사망했다.
그의 동료 찰스 매클라렌 의사는 테일러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좋은 동료, 친절한 아이리시, 농담을 잘하는 친구, 그대는 우리를 떠나 천상의 친구들에게로 갔구려. 한 시대의 일은 끝이 났고 그대의 사역은 당신을 따라갔소. 나는 그대가 평화스러운 깊은 만족의 파이프를 태우고 있다고 생각하오.. 그 뉴스는 좋은 소식- 기쁜소식, 희망과 승리의 소식이오. 그 인생의 셈은 정확하고 그 회계는 무한한 -우리 주님의 공로였소. 그대는 앞서간 사람들과, 이곳에서 당신의 사랑이 사랑했던 아내와 딸과, 그대와 우리가 사랑했던 삶과 사역을 한 동안 더 지속해 가야할 우리들과 달콤한 교제를 나누고 있소.”
정병준 교수(서울장신대학교 교회사 교수 / 멜번신학대학원 졸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