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소개
어머니들
케테 콜비츠 (Käthe Kollwitz) / 목판화 / 35.2cm X 40cm / 독일 쾰른 미술관 / 1922년
“이 지구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살인, 거짓말, 부패, 왜곡 즉 모든 악마적인 것들에 이제는 질려버렸다. 나는 예술가로서 이 모든 것을 감각하고, 감동하고, 밖으로 표출할 권리를 가질 뿐이다.”
이는 케테 콜비츠 (Käthe Schmidt Kollwitz, 1867년 7월 8일 ~ 1945년 4월 22일)의 삶과 예술을 함축하고 있는 말이다.
1867년 프러시아의 쾨니히스베르크에서 법관 출신의 목수 칼 슈미트의 셋째로 태어난 그녀는 ‘베를린 여자 미술학교’. ‘뮌헨 여자 예술학교’에서 수업하였다. 1891년 의사 칼 콜비츠와 결혼하여 남편과 함께 베를린 북주의 빈민가에 무료 진료소를 개설하고 의료봉사활동과 창작을 병행하였다.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프로이센 예술 아카데미’ 회원에 임명되었으나 히틀러가 집권하자 탈퇴하였다. 작품전은 당국의 불허로 무산되었으며, 1943년 노르트하우젠으로 강제 이주 당하고 1945년 모리츠부르크에서 사망하였다.

– 케테 콜비츠 (Käthe Schmidt Kollwitz)
.출생: 1867년 7월 8일, 쾨니히스베르크, 칼리닌그라드
.사망: 1945년 4월 22일, 모리츠부르크
.직업: 판화가, 데생화가, 석판화가, 포스터 디자이너, 삽화가, 조각가, 자서전 작가, 디자이너, 그래픽 예술가, 화가
.성별: 여성
.배우자: Karl Kollwitz
.학력: 줄리안느 아카데미
.스승: Ludwig von Herterich
.제자: Kate Steinitz
.사조: 표현주의
.수상: Pour le Mérite for Sciences and Arts
그녀에게 있어 가장 큰 주제는 ‘죽음’이었다. 그녀의 작품은 우연히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녀의 삶은 죽음의 공포 속에 놓여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에서 아들 페터를, 1942년 제2차 세계대전에서 큰손자 페터를 잃는다. 그
와중에 그녀는 전쟁을 영원히 몰아내기 위해 반전화 (反戰畵)를 그리기 시작하였다.
그녀는 전쟁에 관한 연작을 만들었는데 ‘전사’라는 비보에 접한 가족들의 슬픔과 한을 ‘부모’, ‘희생’, ‘어머니들’ 등의 작품에서 잘 표현해내고 있다.
유화의 화려한 색채로는 그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담아내기에 적합하지 않았는지 판화를 선택한다.
검정색 바탕 위에 하얀 칼자국으로 인간의 아픔과 슬픔, 두려움과 어둠을 표출해 내고 있다.
전쟁으로 아들을 잃은 그녀는 그녀의 방식으로 우리들에게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전쟁’ 연작은 케테 콜비츠 콜비츠의 대표작이다. 7개의 목판화 ‘전쟁’ 연작 판화의 첫 작품은 ‘희생’이다. 한 여인의 몸에서 막 태어나려는 아이를 묘사했다.
연작 중에서 ‘어머니들’은 전쟁을 겪은 참담한 어머니의 심정을 그린 작품이다.
어머니들의 품 사이로 어린아이들의 눈빛은 두려움으로 가득하다. 그리고 겁에 질린 어린 자식을 숨 막히게 끌어안고 있는 어머니들, 총알받이 역할을 마다하지 않는 모성의 눈물겨움을 생생하게 새겨 놓았다. 참담하고 상처투성이인 자신의 과거를 작품으로 세상에 외친 콜비츠. 목판 위에 새겨 놓은 칼질은 그녀의 심장을 도려내는 아픔이었다.
“우리가 전쟁에 내보내려고 아이를 낳은 건 아니다!”
“나는 전쟁을 반대한다”라고 외친 부당한 권력에 투쟁하는 예술가 케테 콜비츠는 1차 세계대전에 아들을 잃었다. 어린 자식을 가슴에 묻고 그녀는 붓 대신 칼을 잡았다. 목판 위에 아들의 영생을 새기고, 전쟁의 참담함을 기록했다.
1919년 프로이센 예술아카데미 회원이 되었으나, 히틀러의 집권으로 그녀의 모든 것이 박탈당했고, 그녀의 많은 작품들은 소실되고 말았다.
그러나 그녀의 비극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2차 세계대전에서 손자마저 잃으므로 그녀의 삶은 견디기 힘든 비극의 연속이었다. 자신이 죽는 것이 차라리 나을 것 같다는 그녀의 한마디는 세월호나 이태원 참사의 비극으로 아이를 잃은 어머니들의 울부짖음과 맞물려 사무친 아픔으로 다가오는 요즘이다.
지구 어디선가 전쟁은 계속되고, 어머니들의 자식 잃은 아픔은 끊일 날이 없다. 그러나 그 비극의 언저리에는 언제나 심금을 울리는 예술가의 힘이 있었다.
세상의 빛을 본 1천700여 페이지에 달하는 콜비츠의 일기와 작품에 담은 정직한 발언은 시간을 넘어선 명작임에는 틀림없다.
전쟁은 예술가에게도 비극이다. 케테 콜비츠 (Kathe Kollwitz, 1867 ~ 1945)는 전쟁으로 아들을 잃은 이 세상 모든 어머니들의 대변가인 동시에 노동자의 암울한 현실, 농민의 역사적 항쟁 등을 그려내는 ‘사회 참여적 여성 예술가’였다.
초기 유화를 그리다가 에칭, 석판화, 목판화 등을 제작했다.
클링거, 뭉크 등 표현주의 영향을 받았으며, 가난한 노동자들과 함께 생활하며 ‘직공들의 반란’, ‘농민전쟁’, ‘죽음’ 등의 작품을 남겼다.
민중의 서늘한 슬픔과 뜨거운 분노가 그대로 전해진 그녀의 작품은 역사와 현실 앞에 정직했던 한 예술가가 생애를 통틀어 이루어낼 수 있는 예술적 성취가 어떠한 것인지 보여주고 있다.

○ 콜비츠의 ‘어머니들’ 그리고 “NO MORE WAR!”의 외침
무엇인가를 빼앗길까 봐 두려운 시선의 여성들이 서로 감싸 안은 채 바깥을 응시한다. 그들의 손은 아이의 머리를 소중하게 감싸고 있다. 그 사이로 여성의 옷자락을 부여잡은 아이의 눈동자가 보인다.
독일 작가 케테 콜비츠는 사회참여적 차원에서 자신의 경험과 전쟁의 참상, 급변하는 시대상 등을 판화로 표현했다.
콜비츠의 ‘전쟁’ 연작 중 ‘어머니들’은 작가의 삶과 작품세계를 잘 보여주는 작품 가운데 하나다.
전쟁 연작은 제1차 세계대전을 겪고 전쟁으로 아들을 잃은 슬픔 등을 표현한 작품이다.
또다른 연작 ‘농민전쟁’은 제목 ‘밭가는 사람’으로 시작해 ‘능욕’ ‘날을 세우고’ ‘무기를 들고’ ‘폭발’ ‘전투’로 이어진다.
케테 콜비츠의 작품 성격은 전쟁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전쟁 이전에는 빈민, 노동자 계층의 억압받는 삶을 표현한 작품들로 분류되고 제1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전쟁의 참상으로 가난, 죽음, 어머니의 사랑 등을 그린 작품들이 눈에 띈다.
콜비츠의 작품에선 여성 노동자, 어머니, 소녀 등의 모습도 자주 보인다.
특히 작품에 등장하는 어머니와 아이의 표정은 허탈하고 퀭하며 무엇인가를 상실한 듯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콜비츠는 격동의 시기에 전쟁, 죽음, 노동, 빈곤, 슬픔의 소외된 사람들과 함께 마음을 나누었고 ‘아름다움’이 예술적 감동의 전부다 아님을 그녀의 생애를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그녀의 작품이 우리에게 감동을 이끌어 내는 것은 ‘민중’에 대한 그녀의 사랑을 우리도 느끼기 때문이 아닐까?
‘역사의 수레바퀴 아래 깔려 신음하는 민중의 증언자’, ‘죽음을 영접하는 여인’ 등으로 불리는 케테 콜비츠의 작품 속에는 우리들의 어머니가 있다.
일제 강점기에 그들의 총알받이로, 월남의 용병으로,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하다가 목숨을 잃은 아들을 품에 안고 절규하는 우리들의 어머니가 있다.
오늘은 우크라이나에서 주검으로 돌아온 아들 앞에서 통곡하고 있는 어머니가 있다.
좀 못살면 어떠랴.
좀 더디 가면 어떠랴.
어떤 명분에서건 전쟁, 테러, 폭력 앞에 자식을 내놓을 어머니는 없다.
케테 콜비츠는 지금도 외치고 있다. “NO MORE WAR!”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