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소개
프랑스의 화가•조각가 에드가르 드가 (Edgar Degas, 1834 ~ 1917)의 ‘발레 교습소’ (The Ballet Class)
에드가르 드가 / 유화 / 1871~74 / 오르세 미술관
에드가 드가 (Edgar Degas, 1834년 7월 19일 ~ 1917년 9월 29일)는 프랑스의 유명한 화가이자 조각가이다.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데생화가 중 한 명인 에드가 드가는 고전주의 미술과 근대 미술 사이의 연결고리 역할을 한 화가이다.
인상주의의 창시자 중 한 사람으로 평가 받고 있다.

– 에드가 드가 (Edgar Degas)
.본명: 일레르-제르맹-에드가 드가 (Hilaire-Germain-Edgar De Gas)
.출생: 1834년년 7월 19일, 프랑스 파리
.사망: 1917년 9월 27일 (83세), 프랑스 파리
.국적: 프랑스
.부모: 부) 셀레스틴 무손 드 가스, 모) 아우구스틴 드 가스
.형제자매: 마거리트 데가스, 아킬레 데가스, 테레즈 데가스, 르네 데가스
.분야: 회화, 조각, 소묘
.사조: 인상주의
.주요 작품: Count Lepic and His Daughters, After a Bath. Woman Drying the Back of her Neck., Young Spartans Exercising, 발레 교습소
.영향: 메리 카사트, 장 루이 포랭, 월터 시커트, 앙리 드 툴루즈로트레크
파리에서 태어난 드가는 주로 발레 무용수와 경주마를 작품 소재로 삼았다.
우아한 모습 보다는 수면 아래 분주히 움직이는 백조의 발같은 면모를 보여주는 화가들이 있는데 대표적으로 에드가 드가 (Edgar Degas)가 그렇다.
주로 인상주의로 분류되기는 하지만 그의 작품들 중에는 고전주의와 사실주의 색채를 띠고 낭만주의의 영향을 받은 것들도 있다.
주요 작품으로 <발레 교습소> <국화 옆의 여인> 등이 있다.
당시 드가의 이런 소재 선택은 꽤 파격적인 편인데, 당시만 해도 무용수들의 처우는 그리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드가는 무용수들의 모습을 모델로 하였을 뿐만 아니라, 무용수들의 처우 개선에 대해서도 직접 노력하는 등 깊은 관심을 보였다.

– 발레 교습소 (The Ballet Class)
.작가: 에드가 드가 (Hilaire Germain Edgar DeGas)
.재료: 유성페인트
.위치: 오르세 미술관 (1986년–)
.제작 시기: 1871 ~ 1874년
.시대: 인상주의, 근대 미술
.장르: 역사화
에드가는 8번의 인상파 전시회 중 7번이나 참여했을 정도로 인상파에 지분이 많은 화가였다.
그러나 그는 주로 야외에서 풍경화를 그렸던 대부분의 인상파 작가들과는 결이 달랐다.
관찰하고 기록하는 습관이 있던 그는 사람들의 일상을 치밀하고 계산적으로 그렸다.
마치 찰나의 순간을 담는 사진기처럼 말이다.
그는 자신이 정한 주제의 그림이 마음에 들 때까지 대상을 끊임없이 관찰해 그렸다.
대표적인 주제는 ‘발레’다. 20년간 무려 1500점에 가까운 발레 관련 그림을 그렸을 정도다.
그에게 ‘무희의 화가’, ‘발레 화가’라는 별명이 붙는 이유는 수많은 발레 그림 작품 수와 발레리나의 일상을 담았기 때문이다.
그가 그린 수많은 발레 그림 중 대표작을 꼽자면 1871년과 1874년 사이 완성된 ‘발레 교습소 (The Ballet Class)’와 1878년 ‘무대위의 무희 (Dancer on Stage)’다.
‘발레 교습소’는 발레를 교육하는 교습소의 전경을 보여주고 있다.
그림을 통해 당시 발레의 유행 정도를 알 수 있다.
정 가운데 나이가 지긋해보이는 남자 발레 교사와 그를 둘러싼 수많은 어린 발레리나들이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모습이다.
에드가는 휴식 시간 동안의 발레리나 표정, 움직임 전체적인 분위기 등 찰나의 순간을 아주 섬세하게 그려냈다.
드가의 <발레 교습소> 에서는 급격한 대각선 구도를 발견 할 수 있다.
우리의 시선을 왼쪽 코너에서 오른쪽으로 단숨에 인도하기 때문에 앞쪽 댄서를 훑고 나서 뒤 벽면 쪽에 있는 어머니들과 아이들의 모습이 바로 눈에 들어온다.
자신들의 자녀들이 잘 하고 있는지 관찰하며 담소를 나누는 모습이다.
왼쪽 벽면에 붙어 있는 큰 거울은 발레 연습실 공간을 한 층 깊고 넓게 확장시키는 역할을 한다.
파리 도심의 모습이 거울에 비춰지니 답답한 코너 공간을 트이게 해주고 그림 가운데 춤추는 소녀의 활동성을 더 널찍하게 도와준다.
오른쪽에는 회색 양복에 지팡이를 짚고 있는 남성이 댄서들의 모습을 살피는데 이 남성은 당시 유명한 댄서이자 발레 마스터인 쥘 페로다.

그림에서 봤듯이 당시 프랑스를 넘어 전 유럽에서 러시아산 무용 ‘발레’의 유행이 대단했다.
발레는 아름다운 춤 동작과 우아한 포즈 등 여성성을 상징했다.
그러나 우아하고 아름다운 스포츠라는 발레는 점차 그 본질과 다르게 유행하기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젊은 여성들이 부유한 남성들과의 결혼을 통한 신분상승의 수단이 되어 버린 것이다.
발레리나의 공연장에는 검은 정장의 남성들이 꽤나 많이 보였다.
그들은 10대 발레리나들의 후원을 자처한 사람들이다.
자신이 원하는 발레리나를 후원하면 그들의 공연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후원이라는 것이 긍정적인 부분만 있지 않았다.
당시 후원자가 어느 발레리나를 후원하며 후원자가 결혼을 요구하기도 했다.
산업화 시대에 가난한 노동자의 자녀로 태어난 어린 일부 발레리나들에게는 후원자가 부와 명성을 동시에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발레 대유행의 원인을 무조건 신분 상승의 수단만으로 볼 수는 없겠지만, 당시 그런 부정적인 목적이 저변에 깔려있었던 것만은 사실이다.
에드가는 발레 유행에 대해 그렇게 긍정적으로 보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는 자신의 그림을 통해 사회의 어두운 면을 비추려고 했다.
에드가는 발레를 너무나 자주 관찰한 나머지 ‘관음증 환자’로 오해 받기도 했다.
그에 대한 오해는 진실을 가릴 순 없지만, 미술적으로 그의 관찰력은 아주 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