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강의 지상중계(12)
바울윤리의 네 구조와 윤리의 패러다임
정미연 박사(몰링 칼리지 교수_조직신학, 윤리학)
하나님의 통치 관점에서 강조되는 또 하나의 부분이 바로 ‘바울의 윤리’이다. 바울 윤리의 특징은 다음 네 가지의 차원-그리스도 중심, 종말론 중심, 교회 중심, 성령 중심-에서 이해할 수 있다.
1) 그리스도 중심 : 먼저 바울은 모든 사고를 ‘그리스도 중심’으로 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완전한 계시’였고, ‘하나님의 영원하신 말씀이 성육신 하신 분’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종말론 중심’이었다. 그가 복음을 받아들인 후 하나님의 통치가 그에게 임했다. 그로 인해 그는 예수님의 천국 비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에게 천국은 미래에 이루어질 약속이지만,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인해 하나님나라는 이미 임했다. 그러므로 믿음생활 가운데 ‘천국의 실체’를 이 땅에서도 부분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
이는 마치 우리가 도시의 슬럼가에서 살고 있는 것과 같다. 그런데 상상해 보자. 그 슬럼가에 교회가 세워졌다. 그리고 그 슬럼가에 사는 사람들이 교회로 찾아온다. 이 사회의 하나님나라는 바로 이와 같이 펼쳐질 것이다.
2) 종말 중심 : 톰 라이트(N. T. Wright)는 부활절의 메시지를 희망의 메시지로 본다. 그리스도인에게 희망은 관념적, 추상적 개념이 아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 보장받은 약속이다. 또한 먼 미래에나 가능한 희망이 아니다. 지금 이 시간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가 경험하고 실행할 수 있는 실재이다. 물론 우리는 지금 이미 임한 하나님나라의 현재와 완성 사이의 ‘긴장’ 가운데 살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아무리 절망적인 환경에서도 하나님의 주권을 믿기에 개인의 삶과 사회 참여를 통해 선을 이루는 것을 포기하지 말아야 하는 사명과 능력이 있다. 이를 통해 사회가 점점 변화될 수 있다. 이로써 하나님나라는 영적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 땅의 현실 속에서 교회를 통해 꾸준히 세워 지고 있다는 것을 주장한다.
2) 교회 중심 : 바울의 윤리는 공동체 중심이었기에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표현했다. 사도행전에서 바울이 사울이었을 때 교회를 핍박하는데 앞장섰으며 그일을 더 확장시키기 위해 다메섹으로 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 길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다. 그는 환상을 본것이 아니고 실제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것이다. 여기서 예수님은 사울에게 “왜 나를 핍박하느냐?”고 물으신다. 사실상 사울이 핍박한 대상은 예수님이 아니라 교회였다. 그런데 왜 예수님은 이 같은 질문을 하신것일까?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본인과 교회를 한 지체로 여기심을 알 수 있다. 즉 예수님은 교회의 머리되시며 교회는 그의 몸이기에 본질적으로 공동체임을 알 수 있다. 기독교윤리는 개인주의적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는 함께 천천히 가는 것이 혼자서 빨리 가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 한 개인의 영웅적 행동보다 공동체를 위한 희생과 섬김이 더 요구된다.
4) 성령 중심 : 이는 교회가 하는 제일 중요한 사역이기도하다. 즉, 우리는 하나님과의 교제를 통해 힘을 받아 일해야 한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친밀한 대화를 통하여 성령의 능력을 입는 과정이다. 우리가습관적 신앙의 틀 안에 갖혀 다람쥐 체바퀴 돌듯이 살다보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소홀해 질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의 관계는 친밀하게 지속적으로 발전해 나가야 한다.
윤리적 갈등
윤리적 패러다임은 독일의 한 심리학자가 만들어낸 이론으이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하인즈의 딜레마’로 알려진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한다.
‘하인즈’라는 사람이 있다. 그의 아내는 불치의 병으로 죽어가고 있을 때였다. 마침 그때 그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신약이 개발되었다. 의사는 그 신약으로 처방하였다. 그런데 그 약을 사기 위해 하인즈가 처방전을 들고 찾아간 제약회사에서 제시한 약의 가격은 하인즈가 전재산을 팔아도 살 수 없는 가격이었다.
바로 여기에서 윤리적 문제가 발생한다. 즉, 제조원가는 싸지만, 판매가가 너무 비싸서 살릴 수 있는 생명이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하인즈는 이에 항의했다. 그러나 제약회사는 자신들에게 약을 싸게 공급할 의무는 없으며, 자신들의 노력으로 이 신약이 개발되어 하인즈의 아내를 살릴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 것이니, 그에 합당한 대가를 지불하라고 항변했다.
이러한 윤리적 상황은 그 당사자가 가난한 저소득층인지, 중산층인지, 부유한 계층인지에 따라 상대적으로 다르게 다가온다. 부유한 사람의 경우 이러한 상황은 윤리적인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하인즈가 약을 살 수 없는 가난한 형편에 처해 있었다는 것이다. 이 경우 우리는 다음과 같은 윤리적 갈등을 생각해볼 수 있다.
1) 만약 하인즈가 약을 훔쳐 아내를 살렸다면, 이는 비도덕적인 것일까? 만약 여러분이 하인즈 재판의 배심원이라면 여러분은 어떤 판단을 하겠는가?
2) 만약 하인즈가 훔치는 것이 비도덕한 일이라고 생각해서 훔치지 않았다면, 그의 아내를 향한 사랑에 문제가 있는 것일까?
3) 만약 아픈 사람이 그의 아내가 아니고 이웃이라면? 그리고 하인즈가 부자라면, 하인즈에게 이웃에게 약을 사주지 않았다고 해서 비도덕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4) 만약 하인즈의 아내가 나쁜 사람이라면 우리의 윤리적 판단에 어떤 변화가 있을까?
윤리적 패러다임
위와 같은 문제들을 고려하는데 다음과 같은 패러다임이 있다. 이는 서양사고에 근거한 도덕적 진단이기는 하나 한국 사람에게도 윤리적 실천을 위해 유익한 사고의 도구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여 간소화된 유형을 소개한다.
1) 1단계- 본능에 의한 결정 : 이는 나에게 이익이 있으면 하고, 없으면 하지 않는 선택을 말한다. 한국 드라마에서 보면 내 아들, 내 딸을 위해서는 비상식적이고 비도덕적인 일들도 서슴지 않는 부모의 모습들이 묘사되곤 한다. 바로 이 수준의 사람들이다. 설령 이들이 법을 지킨다 하더라도 이는 그들에게 이익이 있기 때문이며, 도덕적 기준을 깨달아 자의적으로 실천하는 것은 아니다.
2) 2단계– 제도나 전통에 의한 규정 : 재도나 전통에 의해 옳다고 규정된 것을 하는 것은 법과 제도에 규정된 사항을 충실히 이행하는 단계이다. 그러나 그 법과 제도가 잘못되었을 경우 이 단계의 선택은 결국 비윤리적 선택이 될 것이다. 일제 치하 미스비시 회사는 당시 법과 제도에 의해 조선인 노동자들을 합법적으로 착취한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조선시대 유교 사상에 의한 여성 차별 역시 이 단계에 해당한다. 또한 이슬람법(Sharia Law)를 지킨다는 명분 아래 소녀나 여성의 인권을 유린하는 해위도 이에 해당한다.
3) 3단계 -다른 나라와 비교 : 2단계가 법과 제도이기 때문에 그 옳고 그름을 떠나 지키는 것이라면, 3단계, 즉 내 나라의 제도나 전통을 다른 나라 비교하는 것은 그 법과 제도가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지키는 것이다. 따라서 법과 제도가 옳지 않다면 지키지 않을 수도 있다.
4) 4단계- 양심으로 결정 : 이 없는 곳에서도 내가 양심상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지키는 것은 그 사람의 양심 자체가 윤리적으로 살도록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그 양심에 따라서 선택하는 단계이다. 매우 이상적(ideal)인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패러다임을 우리의 신앙에 적용해 보자. ‘기복신앙’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1단계적 차원으로 볼 수 있다. 이들은 윤리적 기준에 의해 행동을 하기보다 오직 내가 복을 받느냐의 여부가 행위의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이들이 십일조를 드리는 이유는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 십일조로 인해 하나님께서 더 많이 복 주실 것을 기대하고 드리는 것이다.
안식일에 예수님께서 병자를 치유하신 사건을 생각해 보자. 이를 비판한 사람들이 있었다. 2단계의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율법의 문자적 해석만을 통하여 하지 말라니까 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식일에 가난 한 농부의 소가 도랑에 빠져도, 죽어가는 병자가 있어도 이들은 아무 것도 하지 않을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그 안식일이 담고 있는 뜻을 생각할 때 도와주어야 한다고 판단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3단계 차원에서 행동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율법과 상관없이 자신의 양심상 당연히 곤경에 빠진 사람들 도와야 한다고 판단하여 돕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4단계적 결정이라 볼 수 있다.
물론 이 이론들은 모든 문화권에 꼭 맞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윤리적 사고를 구체적으로 진단하는 도구로서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래서 이 패러다임에 맞추어 생각해 본다면,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율법적으로, 평면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지, 아니면 그 말씀 속에 담긴 사랑을 깨닫고 실천하고 있는지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나의 도덕적 결정으로 인해 성령님이 내 안에서 근심하시면 내가 비록 논리적으로 타당성을 주장할 수 있을지라도 내 마음이 평안할 수 없다. 사람마다 문화마다 다를 수 있다. 크리스천들은 하나님 말씀이 율법적으로 작용해서 기계적으로 순종하는 것이 아니다. 성령께서 인도하시고 역사하셔서 자원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그 말씀의 법칙에 따라 살아야 함을 이 이론들이 제시해 준다고 볼 수 있다.
정미연 박사 (몰링 칼리지 교수_조직신학, 윤리학)
미국 이민 1.5세 출신의 차세대 신학자. 사우스웨스턴침례신학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미국의 여러 신학교와 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대학교에서 교수생활을 했다. 2014년부터 지금까지 몰링 칼리지 전임교수로 봉직하고 있다. 여름과 겨울방학기간 동안에는 콩고, 인도, 케냐, 말레이시아, 미얀마, 네팔, 르완다. 우간다 등지의 신학교와 교회에서 사역한다. 세계침례교연맹, 아태침례교연맹, 로잔회의 세계선교글로벌 디아스포라 네트워크에서 활동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