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초대석
한국 최초의 CCM가수 찬양사역자, 아워드림선교회 전용대 목사
찬양사역자 전용대 목사(아워드림선교회 대표)에게는 여러 호칭이 따른다. ‘한국 최초의 CCM가수’, ‘최장수 찬양사역자’ 등이 그것이다. 1980년 복음성가 1집 ‘탕자처럼’을 발매한 이후 지금까지 28개의 앨범을 발표했다. 그가 방문한 교회만 해도 1만여 교회에 가깝다. 이에 호주를 방문한 전용대 목사를 만나 사역의 근황과 비전을 들어본다.
35년 찬양사역, 한국 최초의 CCM가수
올해 찬양사역자 35주년을 맞았는데 한국 교회의 최초 CCM 가수로 시작했다. 1980년 복음성가 1집 ‘탕자처럼’을 발매한 이후 지금까지 28개의 앨범을 발표했다. 방문한 교회만 해도 1만여 곳에 가깝다.
처음 찬양사역을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찬양 사역을 담당한다는 인식이 한국 교회에 없었기에 돌아보면 하나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었던 시기였다. 지금은 하나님과 함께 걸어온 찬양사역의 길 위에 정말 많은 후배 동역자들이 있어 든든하다. 지금은 후배들에게 손을 내밀어 함께 하는 것에 주저함이 없다.
꿈 많은 청소년기, 서서히 다가오는 시련
불교 집안에서 5남 7녀 중 열째로 태어났다. 복음을 들을 기회가 없던 나에게 하나님은 셋째 누나를 예비해 주셨는데, 불교 집안에서 홀로 신앙을 키워 온 셋째 누나는 나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그래서 누나 손에 이끌려 어렸을 적부터 교회에 나가 말씀을 접하고, 신앙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다가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교회를 떠나게 되었다. 몸이 약했을 뿐만 아니라 다리를 절며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살아계신 하나님이 나를 치유해 주지 않으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 상처와 애달픈 삶을 성인 가요를 통해 풀었다. 10대 후반에 신인가수 선발대회에 나가게 되면서 점차 교회와는 거리가 더 멀어졌다.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기 위해 부단히 연습하던 나에게 큰 시련을 맞이하게 되었다. 수술만 하면 완치될 것이라 생각했던 다리에 극심한 통증이 밀려온 것이다. 성인 소아마비로 목발 없이는 걸을 수 없게 될 것이라는 병원의 진단은 열아홉 살 청년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 시련이었다.
가수로 본격적인 활동을 1주일 앞둔 시점이라 사실 자체를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목발을 짚어야 한다는 것 때문에 자살 시도를 두 차례나 했다. 이후에 가까스로 장애를 안고 살아간다는 운명을 받아들이고 열심히 살려고 마음을 먹었다. 그런데 지금은 물론 많이 좋아졌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장애인으로 한국 사회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여
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한걸음을 내딛는 것도 어려운 시절이었다. 사람들이 조롱하는 말들, 시선들을 감당하기 어려워 다시 두 차례 자살 시도를 했다.
고난은 위장된 하나님의 축복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었던 나날을 술로 보냈다. 술에 취해 밤거리를 헤매다가 빨간색 불이 들어와 있는 십자가를 보고 어렸을 적 다녔던 주일학교가 생각이 났다. 그냥 지나치기 일쑤였던 십자가가 그날따라 유독 따뜻하게 보였다. 그렇게 교회의 문을 열기 위해 목발을 짚고 교회를 향해 나섰던 길에 다시 한 번 씁쓸함을 맛보게 되었다. 교회 사택 집사가 내 행색을 보고 문전박대한 것이다. 길거리에서 한 할머니를 만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방황은 끝이 없을 것 같았다.
횡단보도를 건너야 했다. 걸음이 느렸던 할머니와 목발을 짚어야 했던 나는 미처 다 건너지 못하고 길 중앙에 남게 되었다. 그때 자연스럽게 할머니를 보게 되었는데, 너무 행복하고 평안해 보였다. 그런 내 마음까지도 편안해졌다. 정말 연세가 많으셨던 할머니, 길을 마저 건너지 못하는 육신을 이끌고 거리에 나오신 할머니의 얼굴에 묻어나는 행복을 보며 내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유심히 할머니를 살펴보게 되었는데, 할머니의 두 손에 꼭 껴안고 있는 성경책이 있었다. 아버지 몰래 성경을 읽어 주던 셋째 누나의 모습, 아파 울던 내 손을 잡고 함께 울며 간절히 기도해 주던 누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외형적인 교회의 모습이 아니라 성경 말씀과 그에 담기는 진심이 내 자신을 치유할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던 것이다.
네 번이나 자살을 시도했는데, 하나님은 끝까지 포기를 하지 않으시고 이끌어 주셔서 지금까지 사역하고 있다. 집회를 다니다가 어느 교회 목사님께서 나를 알아보았는데, 옛날 업소 이야기를 하기에 보니 이전에 서로 알던 사이였다. 그러나 이제는 서로 목사가 되어 가진 만남은 얼마나 감격인지 모른다.
한번은 운전을 하면서 가는데 누가 경적을 울리면서 계속 좇아오며 차를 세우라기에 너무 심해서 한마디 해주려고 쳐다봤더니 “안녕하세요?” 하면서 넙죽 인사를 하는데 자기가 교도소에 있을 때 내 집회하는 모습을 봤다고 인사를 했다. 지금은 모범수로 출소해서 백화점에 생선을 배달하는 일을 하고 있다. 참 감사했다.
“세상에서 방황할 때” 이 찬양을 부른지 35년이 됐다. 그 세월동안 부르기 싫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언제나 영성을 담아 부르는 찬양은 늘 새로운 마음을 담아 부르게 된다. 감격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이 새로운 마음이 곧 새노래라고 생각한다.
최근 묵상과 사역의 나눔
6년 전에 가슴을 열어야 하는 대 수술을 9시간이나 받았다. 중환자실에는 사람들이 금방 사망하고 나가는 분들도 많다.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 생명을 지켜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9시간도 의사에게 맡기는데 하나님께 맡기지 못할 것은 무엇인가 묵상하며 ‘처음 그 사랑’을 깊이 묵상했다.
요즘 자주 쓰는 말이 ‘하나님의 시간’이란 말이다. 우리의 시간과 하나님의 시간은 다르다.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는 살아계시는 하나님께 집중하는 것보다 더 급한 것이 무엇이겠는가!
과거 어려웠던 시절에는 성령의 역사가 강했던 것 같다. “세상에서 방황할 때”는 어른들의 찬양인데 당시에는 어린 아이들도 울면서 그 찬양을 불렀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편하고 안락한 세상에 살다보니까 조금 약해진 것 같다. 그리고 또 하나는 교회가 세상의 문화를 검증하지 않고 교회로 가지고 들어오는 것도 문제라고 생각한다. 하나님 중심의 무대가 되어야 하는데 사람들을 모으기 위해서 세상 것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문제인 것 같다. 또 더 나아가서는 저부터 찬양사역자들이 더 기도하지 못한 탓도 있다고 생각한다.
전에는 다 동역자, 사역자라는 말을 썼다. 그런데 일부이겠지만 연예인화된 모습을 본다. 요즘 성도들은 영적으로 매우 뛰어나다. 찬양 중에 하나님을 노래하는지 자신을 드러내는지 다 안다.
방송이나 음반·문서사역을 하면서 어떡하든지 겸손으로 나아가려 한다. 집회요청이 들어오면 순서대로 간다. 중간에 유력한 교회가 문의한다고 해서 바꾸지 않는다.
특히 요즘 찬양사역을 하면서 제자들에게 멘트를 줄이라고 한다. 가르치거나 명령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저 찬양
한곡 한곡을 믿음과 은혜가운데 드리면 좋겠다.
인터뷰 동행 송상구 목사(시드니예일교회), 찬양사역자 이준석 전도사(아워드림선교회 간사)
인터뷰어 = 임운규 목사(호주성산공동체교회 시무, 본지 발행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