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하의 생명과학 이야기
보리농사(2)
농가월령가는 조선 후기 실학파의 대가인 정약용의 둘째 아들, 정학유의 작품이다. ‘학식과 교양이 높은 양반의 입장에서 어리석은 농부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훈적인 내용이므로 명령형 어미(-하라, -하소)를 번갈아가며 사용하고 있다. 농촌 생활과 관련된 구체적 어휘가 풍부하게 나타난다는 점과 농촌생활의 부지런한 활동을 실감있게 표현한 가사[歌詞]로서 조선후기의 농부들의 삶을 눈으로 보는 듯 하게 표현하고 있다. 보리농사는 한국의 농민들에게 필수적인 종목이라, 정월령[丁月令]에 보리밭에 거름주기를 재촉하고 있다. “일 년의 계획은 봄에 하는 것이니 모든 일을 미리 하라, 만약 봄에 때를 놓치면 해를 마칠 때까지 일이 낭패 되네. 농지를 다스리고 농우를 잘 보살펴서, 재거름을 재워 놓고 한편으로 실어내어, 보리밭에 오줌 주기를 새해가 되기 전보다 힘써 하소. 늙으니 기운이 없어 힘든 일은 못하여도, 낮이면 이엉을 엮고 밤이면 새끼 꼬아, 때맞추어 지붕을 이니 큰 근심을 덜었도다.” 오줌주기가 보리밭에만 있었겠나?
오줌, 똥, 거름
화학비료 나오기 전에는 오줌, 똥이 소중한 거름이었다. 똥, 오줌 퍼날르던 “똥지게”는 농가마다 필수적인 농기구였지 않은가? 농촌에 살았던 사람이면 똥거름과 관련된 에피소드를 모두가 갖고 있을 것이다. 자식들이 남에 집의 뒷간[toilet]에서 똥을 눟고 온 것을 알면 불호령을 하던 구두쇠 어르신도 있었고 부지런을 떨며 길가에 떨어진 쇠똥이며 개똥을 알뜰하게 줏었다가 거름하며 풍성한 수확을 흡족해 하기도 하였었다. 시드니의 교민들은 가든[garden]이 있는 단독주택에서 텃밭농사를 하는 분들이 많다. 필자의 집도 넓지는 않지만 뒷뜰이 있어서 별야별 종류의 채소를 소꼽장난 처럼 가꾸고 있다. 젊은이들은 질색을 할지 모를 일이지만 농절기에 오줌을 가장 효과 있는 거름으로 생각하며 프라스틱통에 모았다가, 웃거름으로 주곤 한다. 50여년전 까지도 한국의 농촌에서는 어느 작물을 막론하고, 똥거름을 하였지만 특히 호박에는 밑거름으로 똥거름이 최고라고 생각하였다. 농작물에는 심기 전에 주는 밑거름이 있고 자랄 때 주는 웃거름이 있다. 웃거름으로는 작물이 흡수할 수 있는 액체비료, 곧 액비를 준다. 보통은 화학비료인 요소비료를 웃거름으로 사용하지만 요소 대용으로 오줌을 쓰기도 하였다. 오줌은 요소비료보다 결정적으로 좋은 점이 있다. 오줌에는 유산균이라는 유익한 미생물이 있기 때문이다. 유산균은 식중독균과 같은 병원성 세균을 죽이는 살균 능력이 뛰어나다. 이런 유산균이 토양 속에 들어가면 토양을 아주 건강하게 만든다. 또 오줌에는 작물의 뿌리 발육을 촉진하는 물질도 함유하고 있다. 농사군이 오줌, 똥 못지않게 또 아끼는 비료가 아궁이에 타다 남은 재[灰]다.
재 없이 보리농사 지을 생각마라
경기지방에는 “재 없이 보리농사 지을 생각마라”라는 농사속담이 있다. 비료 3요소중에 가리[K-칼륨]와 인산 [P]의 생리작용은 초기 생육과 관계가 깊고 내한성을 높여주는 기능 때문에, 그 효과가 남부지방보다 북부지방에서 크다고 할 수 있다. 가리는 세포의 팽압을 유지시키고 당 함량을 높여 내동성을 높여주는 기능 때문이며, 인산과 마찬가지로 북부지방에서의 효과가 남부지방보다 약 2배정도로 크다고 보고 있다. 가을 보리를 재배할 때에는 겨울을 나야하기 때문에 월동 중 동해에 유의하여야 한다. 일반적으로 보리는 겨울 동안의 기온이 -17℃가 지속되면 동사한다. 경기북부지방의 최저 기온이 -30℃까지 내려가서 소주가 어는 등 극심한 동해[ 凍害]를 겪은 일이 있었다. 그래서 월동 중 저온에서의 피해가 적도록 보리 생육을 조절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보리가 저온에 강하도록, 겨울을 잘 지내려면 주간엽수, 즉 원 줄기에서의 잎이 5∼6개가 나오도록 지역에 따라 씨 뿌리는 시기를 조절하여야 한다. 왜냐하면 이 때가 내동성이 가장 강하고 뿌리가 잘 뻗어서 서릿발이나 동해에도 견디며, 엽면적이 커서 동화량도 많고 가지를 치는 시기라, 이듬해 봄 생육을 왕성하게 시작하기 때문이다. 마치 우리가 월동 준비를 하는 것과 같다.
장[醬] 담그는 날
24절기는 달의 운행을 기준으로 한 음력이 아니라 태양을 중심으로 지구가 공전하는 황도[黃道]를 기준으로 정한 것이다. 계절의 변화가 지구의 공전과정에서 생기는 것이기에 거의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어서 농사꾼들에게 없어서는 안될 농사 calendar였다. 수년간 농사를 지으며 절기를 꼽다보면 몸에 배서 calendar를 보지 않고도 뭔 일을 해야 할지를 알게 되어 있다. 시드니교민들 중에도 절기에 습관이 밴분들은 씨앗 파종, 김장할 때며, 장 담그는 시기를 절기에 맞게 시행하고 있다. 알려진 이야기로 장 담그는 시기를 음력 대보름 전후로 악귀가 holiday가서 손이 없는 날인 9, 0이 되는 날을 가르킨다. 손 없는 날은, 음력으로 9일 10일, 19일 20일, 29일 30일을 말한다. 손이란 손님의 줄임말인데, 반가운 손님도 있는데 부담스러운 손님을 오지 말라고 할 수도 없고 내쫓을 수도 없는 반갑지 않은 손님이라는 뜻에서 유래된 것이다. 절기와 관계되는 이와 같은 금기[禁忌]며 풍속들이 농경사회에서나 통할 수 있는 것들이지 장사하는 사람들이 이런 것 저런 것 쫒다보면 어떻게 벌어먹고 살 수 있겠는가? 맛깔스러운 장을 담그는 것도 만만치 않아서 많은 금기가 있었다. 장 담그는 날이 손이 없는 것만으로도 되지 않아서 정월 말날[午日]이나 손 없는 날을 좋은 날이라고 해서 한학[漢學]을 하신 어르신에게 장[醬] 담그는 날을 받아 달라고 하기도 하였다. ‘말(馬)’은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동물이기도 하다. 고대 중국 주나라의 목왕이 영원불멸의 세계로 갈 때 타고 갔다는 팔준마에서 비롯된 것으로 말은 장수와 건강 등을 축원하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어디까지나 하나의 풍습이고 또 요즘은 시중에서 판매되는 장을 많이 사 먹기 때문에 장 담그는 날이 대단히 중요하지는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맛있는 장을 담그기 위한 우리 선조들의 노력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겨울철의 계절의 변화를 보리가 가장 먼저 알아차리는 것 같다. 들녘 색깔이 차츰 달라진다. 쥐꼬리만큼 남은 겨울이 땅을 얼었다 녹였다 한다. 추운겨울, 아침에 보리밭에 나가 보면 서릿발이 서서 껍질 흙이 얼어 수북하게 부풀어 올라 있다.
경칩[驚蟄-3월 5일경]
양력으로 정이월이 가고 3월이 시작되면서 절기로 경칩[驚蟄-3월 5일경]날이 오게 된다. 경칩의 유래는 땅 속에 들어가 겨울잠에 빠졌던 개구리가 잠에서 깨어나서 꿈틀거리며 땅 밖으로 나오는 날이라는 뜻에서 붙여지게 되었다고 한다. 이 무렵, 한량전선의 급격한 변화로 천둥이 치는 소리를 들은 벌레들이 놀라서 땅에서 나온다고 하여 놀랄 경[驚]자와 겨울잠 칩[蟄]자를 쓴 것이다. 개구리만 잠에서 깨는 것이 아니라 식물들도 휴면기를 마감하고 서서히 워밍업[warming up]을 시작한다. 들판의 보리밭 색갈이 하루가 다르게 짙어 지며 나무들은 물을 퍼 올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해빙이 되면서 굉장한 효과가 있다고 소문난 고로쇠나무 수액마니아 들이 있다. 껍질에 상처를 내서 수액[樹液]받아 먹는데 보통의 나무들은 절기상 2월의 21일경인 춘분[春分]이 되어야 물이 오르지만 고로쇠나무를 비롯한 남부지방의 나무들은 다소 일찍 물이 오르므로 첫 수액을 통해 한해의 새 기운을 받는 다며 서둘러 수액을 채취하느라고 법석을 떤다. 날이 맑아야만 약효가 있다며 일진[日辰]까지 보고 날을 택해 고로쇠수액을 찾아 나서는 마니아들이 있는 것이다. 경칩에는 보리 싹의 성장을 보아 그 해 농사를 예측하기도 했다. 긴긴 엄동설한을 견뎌낸 보리싹은 성장의 골격을 갖추었기에 보리농사의 풍흉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경칩을 지나고 3월 중하순서부터 각종 채소며 작물의 파종과 김매기 등으로 농촌은 눈코 뜰새 없이 바빠진다.
“보리피리”의 시인[詩人], 한하운
보리밭은 음력으로 4월, 양력으로 5월이 되면 보리성장이 절정에 달해서 보리밭의 푸르른 물결은 장관을 이루게 된다. 이때쯤 “보리피리”의 시인[詩人], 한하운은 끝이 안보이는 보리밭길을 정처없이 걸었나 보다. 보리피리 불며, 봄 언덕, 고향 그리워, 피-ㄹ 닐리리. 보리피리 불며, 꽃 청산, 어릴때 그리워, 피-ㄹ 닐리리. 보리피리 불며, 인환의 거리, 인간사 그리워, 피-ㄹ 닐리리. 보리피리 불며, 방랑의 기산하, 눈물의 언덕을, 피-ㄹ 늴리리. 고향의 정답고 그리운 사람들을 등지고 문둥병으로 만신창이, 일그러졌을 얼굴을 가린채 보리밭길을 걸으며 보리피리를 불었을 생각을 하면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보리의 싹이 나오기 전의 보릿대를 꺾어 불면 피-ㄹ- 소리가 났다. 보릿대를 적당한 길이로 잘라 손톱으로 작은 구멍을 내 요령껏 불면 피-ㄹ 닐니리 소리가 나기도 했다. 청보리밭의 소리이자 고향의 소리 피-ㄹ 닐니리. 피-ㄹ 닐니리는 향수의 소리다. 버들피리, 갈대피리, 보리피리 아득한 향수의 소리를 들을 날이 있을까. 시[詩]의 문외한[門外漢]인 필자는 난해한 현대시를 까딲도 못하지만 문둥병이라는 “천형(天刑)”을 짊어지고 방랑을 하며 보리피리를 불었을 생각을 하면, 동시[童詩]같은 한하운의 시가, 구구절절 파고들며 그의 한과 서러움에 눈물이 핑도는 것이다.
보리농사는 절기로 망종[芒種]에 끝이 난다.
양력 5월은 보리가 여무는 절기다. 절기로 5월 5일경에 입하[立夏]가 있다. 입하[立夏]는 여름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절기로, ‘보리가 익을 무렵의 서늘한 날씨’라는 뜻의 맥량[麥凉]이라고도 하고, 보리의 가을[秋]이라는 의미로, 맥추[麥秋]라고도 한다. 입하가 되면 봄은 완전히 퇴색하고 산과 들에는 신록이 일기 시작하며 개구리 우는 소리가 들린다. 마당에는 지렁이들이 꿈틀거리고, 밭에는 참외꽃이 피기 시작한다. 묘판에는 볍씨의 싹이 터 모가 한창 자라고, 밭의 보리이삭들이 패기 시작한다. 집안에서는 부인들이 누에치기에 한창이고, 논밭에는 해충도 많아지고 잡초가 자라서 김매기[풀뽑기]에 부산해지던 시절이다. 이런 정경이 떠오르는 어르신들이 몇분이나 될까? 한국의 가을 단풍이 아름답지만, 입하[立夏]전후의 수채화 같은, 연두색으로 채색된 고향의 산하가 눈물나게 그리워진다. 보리농사는 절기로 망종[芒種]에 끝이 난다. 검색해보니 금년[2016년]의 망종[芒種]은 6월 5일이었다. 기후온난화 등의 영향으로 6월이면 한여름되고 망종(芒種), 하지[夏至] 절기다.”농가월령가”에 “망종, 하지” 절기를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남쪽 바람 때 맞추어 보리 추수 재촉하니 보리밭 누른 빛이 밤 사이 나겠구나. 문 앞에 터를 닦고, 보리 타작 하오리라. 드는 낫 베어다가 한 단 두 단 헤쳐 놓고, 도리깨 마주 서서 흥을 내어 두드리니 불고 쓴 듯하던 집안 갑자기 벅적인다. 보릿짚 말리우고 솔가지 많이 쌓아 땔나무 준비하여 장마 걱정 없이 하소……>. 망종(芒種)의 망(芒)은 벼처럼 까끄라기가 있는 곡물을, 종(種)은 씨앗을 말한다. 까끄라기 곡식을 뿌리기 적당한 계절이란 뜻이다. 예로부터 “보리는 익어서 먹게 되고, 볏모는 자라서 심게 되니 망종이다”, “망종에는 햇보리를 먹을 수 있다”는 말이 있을 만큼 보리베기, 모내기로 몹시 바쁜 시절이었다.
박광하(전 여주대신고 교감, 전 수원계명고 교장)
필자 박광하 선생은 고려대학교 생물학과를 마친 후에 평생을 생물과학 강의와 교육에 헌신하여 왔다. 20여년 전 호주로 이주하여 시드니에 거주하며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