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 목사의 특별기고
요즘 시대에 어른 공경?
언젠가 자녀를 4명 두고 있는 목사님께서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자신은 아이들에게 십분의 일은 하나님께로 십분의 일은 부모님께로 바쳐야 한다고 교육을 한다는 것이다. 다 자녀를 두고 있는 필자는 그 분의 말을 심각하게 듣고 우리 아이들에게도 교육을 해야 겠다고 생각을 하며 하나님과 함께 부모도 섬기는 것의 중요성을 아이들에게 조금씩 이야기를 하곤 했다. 그런데, 세월이 많이 흘러서 그 분을 만나 보았을 때 자신이 한 말을 잊어버리고 계신 것을 보면서 당황한 기억이 있다.
한국 문화에서는 어른을 공경하고 섬기는 것이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고 집안에서도 어른들에게 인사를 하거나 명절에 방문을 하는 것 또는 어른들에게 용돈을 주는 것과 같은 섬김은 흔히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에서 어른들에게 성인이 된 자녀가 용돈을 주는 것은 그 만큼 부모가 자녀들에게 먼저 베풀어 주고 희생하며 사랑을 베풀어준 것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다른 말로하면 부모가 베풀어 주었던 은혜에 대해 자녀들이 되 갚아 주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래서 그런지, 노인이 된 필자의 부모님들은 돈을 벌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가끔 방문할 때 모아놓은 용돈으로 자녀들에게 용돈을 주셨고 자녀들은 그것에 감사하며 반대로 부모님께 용돈은 주는 일을 했다. 어찌보면 준 것을 도로 받는 것 같은 똑 같은 행위 같지만 그런 주고 받음을 통해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을 확인하게 되기도 하고 또 이런 전통은 결혼이나 장례와 같은 크고 작은 일들이 가정에 있을 때 서로의 필요를 채워주는 역할을 해왔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고 많은 문화의 변화가 일어나면서 주고받는 것, 서로가 서로를 돌봐주는 것, 공동체를 생각하는 것 등이 옛날 보다 많이 희석이 되었다. 특히, 호주에서 자란 한인 가정의 아이들은 ‘효’라고 하는 개념과 서로가 서로를 돌본다는 개념을 배워나가는 것이 쉽지가 않다. 한국은 여전히 ‘효’라고 하는 것을 중요시 여기고 어른을 돌보는 것을 미덕으로 생각하지만 호주에서는 개인주의가 팽배해져 있어서 부모님께 많은 의존을 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그 부모님을 잘 돌봐 주지도 않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한국 문화와 호주 문화가 섞여 있는 한인 가정을 살펴보면 여전히 부모는 자녀에게 극진한 사랑과 무조건 적인 돌봄을 베풀어주는 경우가 많은데 자녀들은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면서 잘 자랐음에도 불구하고 직업을 얻은 성인이 되어서는 되갚아 주는 과정이 없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아이들은 두 문화 중에서 자신에게 유리한 부분만 어쩌면 배워서 그것을 활용하는 것처럼 보여질 때가 있다. 한국을 방문했을 때 많은 친척들이 용돈을 주고 돌봐주는 것은 한국에 있는 배워야 할 좋은 문화중 하나인데 그것의 목적을 잘 알지 못하고 받기만 한 아이들이 성인이 되었기에 이제는 반대로 자신들이 가족들을 돌보고 챙겨주어야 하는데 자신은 그렇게 할 줄 모르는 젊은이들이 더 많은 것 같다. 그래서 자신이 성인이 되어서 직장인이 되었어도 가족과 나누거나 타인과 나누는 것에는 쓰지 않고 자신만을 위해서 쓰는 자녀들의 세대를 보면 조금은 우려가 되는 부분이 사실이다.
몇 주전 태국에서 만난 한 선교사님 사모님은 여러 사모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번에 태국 여행을 하는데 결혼을 하지 않은 성인 자녀들이 용돈을 어떻게 주었는 지를 이야기 해주셨다. 거기 계신 사모님들 중 유일하게 그 분만 결혼하지 않은 자녀로 부터 정기적으로 자녀에게 용돈을 받고 계셨고 여행을 할때 자녀들이 기쁨으로 부모님을 지원하고 있었다. 그 분의 경우 선교지에서 선교사로 힘들게 살아가는 동안 가족들이 사랑으로 늘 섬겨주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 선교사님은 자녀들에게 친척들이 베풀어준 사랑을 잊지 말고 보답해야 한다고 늘 아이들에게 말했다고 한다. 그리고 자녀들이 부모님을 섬겨주면 ‘너도 힘들 텐데 이런 것, 구지 안해도 돼 !’ 라고 말하지 않고 ‘고맙다’. ’참 잘하네’ 라고 그것을 기쁨으로 잘 받아들이고 그것을 권장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 선교사님의 자녀들은 작은 것이라도 친척들까지 챙기는 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 요즘 그런 젊은이들이 없다 보니 사모님은 자녀교육을 잘했다고 친척들 사이에 칭찬을 많이 받는다고 한다. 그 사모님은 자녀에게 주는 것과 받는 것을 아주 잘 하고 계신 분이셨다.
부모가 무조건 적인 사랑을 자녀에게 베풀어 주어야 하지만 삶에서 가족을 어떻게 돌보며 또 사람들과 어떻게 나누며 살아야 하는지, 재정은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 지를 그 사모님처럼 가르쳐 주는 것은 중요한 삶의 부분이라 생각된다.
얼마 전, 호주에서 한 엄마가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들만 있는 엄마다 보니 자신의 생일을 챙겨주는 것에 대해서 대수롭게 생각을 하지 않았었다고 한다. 그럴 수 있지 라고 생각하고 지내왔는데, 그런데 어느날 가족이 생일을 챙겨주지 않아서 너무 너무 섭섭했고 그것을 가족들에게 심각하게 표현을 했다고 한다. 돈이 문제이거나 생일이 중요해서가 아니라 엄마에 대해서 자녀들이 기억하고 생각하며, 사랑을 표현하는 것이 엄마에게는 중요함을 알려 주었다고 한다. 다행히 엄마의 진심을 이해한 자녀들은 그 다음부터 엄마의 생일을 기억하고 각자 나름대로 정성을 담아 챙겨주기 시작했다고 한다.
부부 관계, 부모와 자녀 관계, 가족들과의 관계 모두 일방적인 관계는 없다. 한 쪽이 너무 희생적이고 일방적이다 보면 지치고 돌아오지 않는 보상으로 인해 피해의식마저 생겨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가끔 일방적으로 배우자나 남자 친구가 너무 잘 해 준다고 할 때 그것이 그래서 좋은 것 만은 아닐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므로 부모가 자녀에게 많은 것을 주지만 자녀에게도 부모를 공경하며 부모와 가족을 돌보는 일에 대해서 알려주고 교육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국의 좋은 전통인 어른을 공경하고 돌보는 정신은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교육할 필요가 있다.
필자의 가정은 위의 선교사님처럼은 아니나 어릴 때부터 가족의 기념일을 특별하게 축하해 주는 것을 중요하게 여겨서 지금도 생일이 되면 당연히 생일자가 원하는 선물을 사주고, 생일자가 원하는 식사를 준비해서 카드를 손수직접 만들고 사랑이 담긴 편지를 쓰고 그것을 충분히 느끼게 해주는 일을 하고 있다. 언젠가 할아버지, 할머니와 고모님이 각각 다른 시기에 우리 집에 와서 가사일을 도와준 일이 있었는데 그 분들이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아이들은 자발적으로 감사한 마음의 플랭 카드를 만들고 파티를 열고 카드를 만들고 그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였다.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가정의 전통을 어른들에게 적용한 것이다. 그 분들에게 그 기억이 각인이 되어 두고 두고 식구들 사이에 회자되었던 기억이 있다.
그러므로, 가정에서 부모가 어떻게 어른을 섬기고 돌봐 주는 지에 대해서 모범을 보이며 그런 삶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며 살아가되 동시에 말로도 교육하고 알려 주며 훈련하여서 주고 받는 한국의 좋은 전통, 무엇보다 어른을 잘 섬기는 전통이 가정에서 이어지도록 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과도한 걱정과 두려움으로 사는 사람들
“미래와 과거를 반추하는 것은 인간에게 있어서 자연스러운 것이나 인생을 성공적으로 잘 살아가기 위해서는 과거와 미래를 차단하고 현재의 삶을 잘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한 기독교인 사역자가 사랑하는 여인과 결혼을 했는데 결혼 후 아내에게 계속해서 불친절하게 대하고 짜증과 화를 많이 낸다고 합니다. 자신이 사역자인데 아내에게 그렇게 불친절하게 대하는 자신이 너무 싫고 괴로워서 상담사를 찾았는데 알고 보니 그 분에게는 비밀이 있었습니다. 그 비밀은 자신이 결혼 전 약혼녀가 있던 상태에서 해외에 여행을 가게 되었는데 거기서 몇 번의 매춘 경험을 했던 것입니다. 이 사람에게 그 경험은 너무나 큰 죄책감으로 남아 자신을 용서할 수가 없었고 아내에게도 그 사실을 이야기할 수가 없어서 마음으로 “나는 행복하게 살 만한 가치가 없는 사람이야” 라고 생각하며 결혼생활을 했던 것입니다. 마치 자신에게 벌을 주는 듯이 자신의 결혼 생활을 괴롭히고 그것이 죄없는 아내를 힘들게 하는 것으로 이어졌던 것입니다. 전혀 논리적으로는 이해가 안가는 방법으로 자책하는 방식으로 표현이 된 것입니다. 착하고 선한 아내를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죄로 인해서 현재의 결혼 생활을 망칠 수밖에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세계 대전 이후에 그리고 베트남 전쟁 이후에 수많은 외상 후 스트레스 환자들이 생겨났습니다. 그들은 전쟁에서 경험한 혹독한 트라우마에서 차단이 필요한 사람이었고 차단을 하려고, 몸부림을 쳤지만 전쟁의 경험들과 기억들이 끊임없이 재생이 되어서 현재의 삶을 잘 살아가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현재의 일상의 삶은 전쟁의 생사를 오가는 상황에 비하면 너무도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여겨져 오히려 현재를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원했던 전쟁이 종결되어 사랑하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지만 현재에 집중하지 못하고 하루에도 몇 번씩 전쟁의 총성과 두려움에 떠는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어떤 분은 살아오면서 직업적 특성으로 인해 사람이 죽고 다치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불안 증세가 생겼습니다. 아이들이 바깥에 나갈 때마다 위험한 일이 생길 것 같아서 아이들에게 자꾸 당부를 하게 되고 아이들이 연락이 안되면 무슨 일이 일어나면 어떻하지? 라고 하며 걱정을 하면서 초조해하기 시작합니다. 그 불안감이 모든 영역에 있어서 TV 뉴스에 살인, 사건을 보면, 나에게도 그런 일이 일어날 까봐 두려워하게 되고 매사에 안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다는 재앙적 사고를 자꾸하게 되어서 점점 밖에도 나가지 못하게 됩니다. 가능한 사람들과의 약속도 최소화 하고 하루 하루를 걱정으로 보내게 됩니다.
위의 예들은, 과거의 트라우마로 인해서 또 미래에 대한 염려, 걱정으로 인해 현재의 삶을 잘 살아가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론적으로는 이런 사람은 과거와 미래를 차단하고 현재를 살아야 잘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인데 실제 경험에서는 이런 부분들이 쉽게 되어질 수 있는 부분은 아닙니다. 트라우마의 정도의 깊이와 아픔에 따라 현재를 살아가는 것이 쉬울 수도 있고 아주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과거의 문제를 차단할 수 있을 까요?
여기에서 과거의 문제를 차단한다는 것은 여러가지 의미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건강한 사람은 과거의 상처와 관련된 생각이 나려고 하면 “내게 큰 상처 있었지, 그래서 또 이런 생각이 나는 구나, 그럴 수 있어! 그치만 나에게는 별로 도움이 되질 않아. 그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겠어. 대신 좋았던 생각을 하자” 라고 생각을 전환시키는 것으로 생각을 차단할 수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에게는 과거의 문제를 차단하는 것이 과거의 문제를 용서를 통해 해결하는 것이 차단하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자주 생각이 나는데 그 사람을 생각할 때마다 분노가 올라오거나 큰 적대감이 느껴져서 힘들다고 한다면 그런 경우 부정적 생각을 그냥 무시하는 것이 과거의 문제를 차단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경우에는 상처를 직시하고 인정한 후에 그 상처를 표현하고 상처를 준 사람을 용서하는 것이 진정한 과거 문제의 차단으로 가게 합니다. 앞에서 언급한 첫 번째 이야기에 나오는 주인공 사역자는 죄를 지은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고 있었고 그것이 현재를 살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런 사람이 과거의 문제를 차단하려면 자신에 대한 용서를 하나님으로 부터 경험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어떤 사람은 과거를 차단하는 것이 과거의 상처와 아픔을 인정하는 것과 관련된 것일 수 있습니다. 과거의 상처와 아픔이 많았는데 그것을 ‘자기 방어’ 라고 하는 방어 막으로 씌워 놓을 경우 자신은 과거의 아픔이 없었다고 억압하거나 또는 문제를 축소해서 그 때는 누구나 다 그랬어 라고 말하며 자신의 상처는 아주 작게 만들어 버립니다. 그렇게 하면 현재를 잘 살 수 있을 것 같아도 해결되어지지 않은 상처가 무의식에 남아 있어 일상에서 툭툭 튀어나와 현재의 관계를 괴롭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부모님께 상처를 받았던 사람이 비슷한 어른들을 만나면 나도 모르게 쉽게 화가 나고 함부로 말을 하게 되는 경우가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과거를 차단한다는 것이 ‘내가 차단해야 지!’ 라고 해서 쉽게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나의 상처와 아픔을 인정하고 그것을 치료하는 과정을 통해 일어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크리스천의 경우, 기도를 통해서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신앙의 힘으로 과거의 상처를 준 사람을 용서하고 내 자신도 용서받고 과거를 차단한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렇지만, 오래된 상처와 아픔의 경우에는 재발되는 경우도 많기에 신앙의 힘과 더불어 전문 상담가의 도움을 통해 다양한 측면에서의 회복을 시도하는 것이 과거를 차단하고 오늘을 행복하게 살아가는 데 필요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더불어 과거를 차단하는 것처럼 쓸 떼 없이 두려움을 주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도 차단이 필요할 것입니다. 아직도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해서 걱정하느라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사람은 불안감으로 인해 오히려 미래에 대해서 잘 준비를 할 수가 없습니다. 걱정과 두려움이 많은 사람들은 미래에 대해 걱정하느라 시간을 보내고 있는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인식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지금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해 걱정하고 있구나. 파국적 생각을 하고 있구나” 라고 인식하며 그 생각이 어떤 생각까지 이어지는 지를 확인해 보고 자신의 생각을 코믹하게 바라 보며 웃어 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나서는 그런 나를 지켜 보며 “내가 조절할 수 있는 것은 미래가 아닌 오늘 뿐이다.” “ 걱정하는 일 중 99%는 일어나지 않는 것이야” 라고 생각을 전환하며 나아가야합니다. 그리고 미래에 대한 걱정 대신에 오늘에 포커싱해서 살아가는 법을 하나씩 배워야 할 것 입니다. 오늘 하루라는 시간만 잘 살아내면 된다는 생각으로 내가 추구하면서 살아가고 싶은 삶이 어떠한 지를 생각하며 그것을 위한 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 오늘은 내일이면 아름다운 과거가 될 것이고 그런 오늘을 보낸 사람은 내일이 오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자신에게 질문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어디에 살고 있지? 과거? 미래? 아니면 오늘? 상처로 인해 과거에만 묶여 살지 마시고 미래의 행복을 위해서 오늘을 너무 많이 희생하지 마시고 오늘에 집중한 삶을 삶으로 하루의 행복이 과거와 미래가 되는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김훈 박사 (호주기독교대학 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