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환기 사관 칼럼
회복탄력성을 아시나요?
‘회복 탄력성’이란 크고 작은 다양한 역경과 시련에 대한 인식을 도약의 발판으로 삼아 더 높이 뛰어오를 수 있는 ‘마음의 근육’을 의미합니다. 7전 8기의 정신입니다. 넘어져도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오뚝이 정신입니다. 지난주 ‘하버드 회복 탄력성 수업’이란 책을 읽었습니다. 저자인 ‘에일가젤’은 “회복탄력성은 인생의 역경과 도전에 맞설 때 마음의 원천에서 필요한 자원을 끌어올 수 있는 내적인 능력”이라고 정의했습니다.
그는 ‘신경 가소성’ (Neuroplasticity)을 강조했습니다. ‘신경가소성’이란 우리의 뇌는 고정되어 있지 않고, 경험과 환경에 따라 지속적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뇌세포를 뉴론(Neuron)이라 하고, 뉴론과 뉴론이 연결되는 부분을 ‘시냅스’(Synapse)라고 합니다. ‘시냅스’는 뇌의 길입니다. 긍정적인 사람은 긍정의 길을 만들어 긍정적인 삶을 살고, 부정적인 사람은 부정의 길을 만들어 부정적인 삶을 삽니다. 인간은 스스로 자기의 길을 만들고 그 길을 따라 삽니다.
믿지 않는 자의 ‘회복탄력성’의 원천은 신념이고, 믿는 자의 회복탄력성의 원천은 신앙입니다. 신념은 자기를 믿는 것이고, 신앙은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신념은 자기 스스로 할 수 있다는 것이고, 신앙은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도는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하나님께 대한 신뢰와 믿음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며, 이러한 믿음은 사람들이 더 강해지고 영적으로 성숙할 수 있는 바탕이 됩니다. 오늘 본문 고린도후서 4:8-10절은 ‘회복탄력성’에 대해서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1. 고난을 이기는 믿음(8절)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우리의 삶에서 예기치 못한 고난과 역경이 찾아올 때, 우리는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한 것처럼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러한 상황에서도 ‘싸이지 아니하며’, ‘낙심하지 아니한다’고 고백합니다. 왜냐하면 사방이 막혔어도 하늘은 열려 있습니다. 믿음은 고난의 압박 속에서도 우리의 마음을 지키고, 흔들리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힘입니다. 믿음을 통해 우리는 상황에 매몰되지 않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이는 바로 우리의 믿음이 주는 회복 탄력성 때문입니다.
월요일 오전에 우리 교회를 건물을 담당하는 연합교회 자산관리 담당자에게 메일을 받았습니다. 2025년 1월 1일부터 연합교회가 건물을 쓰게 되었으니,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날 대장집회가 있어서 참석은 했지만, 머리에는 온통 ‘어디로 가야 하나’에 대한 생각뿐이었습니다. 기도 중에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는 구세군 건물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일 먼저 떠오른 곳은 쳇스우드 교회였습니다. 그곳은 교회도 크고 다양한 봉사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수요예배 때 교인들의 의견을 들어보니 모두 찬성을 했습니다. 목요일에 지역 담당관은 Robyn에게 메일을 쓰고, 금요일에 전화해서 우리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설명했습니다.
Robyn도 좋은 생각이라며, 지방장관과 상의하겠다고 했습니다. 어제 Robyn에게서 Chatswood 사관에게 연락을 했다는 메일을 받았습니다. 이제 기도하고 기대하며 기다리는 길 밖에 없습니다. 저는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감당치 못한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예비하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이번 일이 우리 교회가 새롭게 도약할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2. 하나님의 보호(9절)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바울은 박해와 거꾸러뜨림을 당하는 상황에서도 버려지지 않고, 망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결코 버리지 않으신다는 확신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회복 탄력성은 우리의 힘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보호와 돌보심 속에서 더욱 강화됩니다. 우리가 인생의 어려운 순간을 맞이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붙들고 계시며, 결코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신다는 믿음이 우리의 회복 탄력성을 더욱 굳건하게 합니다.
고린도후서 11장 24-27절은 사도 바울이 그가 복음을 전파하면서 겪은 여러 가지 고난과 역경을 나열하는 부분입니다. 바울은 이 구절들을 통해 자신의 헌신과 인내를 강조하며, 그의 사역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보여줍니다.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39대를 맞았는지 궁금했습니다. 신명기 25:3절에 이런 말씀이 있었습니다. “사십까지는 때리려니와 그것을 넘기지는 못할지니 만일 그것을 넘겨 매를 지나치게 때리면 네가 네 형제를 경히 여기는 것이 될까 하노라” 죄인을 때릴 수는 있지만, 죄인의 인격까지 경히 여겨서는 안된다는 숫자가 40입니다.
바울은 육체적, 정신적, 환경적 수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 역경보다 크신 하나님의 한량없는 사랑을 믿었습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롬 8:35)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바울은 외칩니다. “이 모든 일을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롬 8:35)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생각은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고, 우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입니다.
3. 십자가와 부활(10절)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지면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바울은 우리가 예수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으로, 예수님의 생명이 우리 안에 나타난다고 고백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죄를 대속하여 십자가에 못 박힐 때 우리의 육의 사람은 죽었고, 죄와 사망의 권세를 깨트리고 무덤에서 부활할 때 우리의 영의 사람이 살았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옛사람은 죽고 새사람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겉사람은 죽고 속사람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사람입니다.
바울은 사는 것이 그리스도라고 했습니다.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빌 1:21) 사는 것이 그리스도이다”라는 표현은 사도 바울이 자신의 삶의 중심이 그리스도임을 고백하는 말입니다. 바울의 삶은 그리스도를 섬기고,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데 전적으로 헌신되어 있습니다. 그의 모든 행동과 생각은 그리스도를 반영하고 있으며, 그는 그리스도를 통해 자신의 존재의 이유를 찾습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로마서 8:9절에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영인 성령을 요한은 보혜사라고 했습니다. 보혜사란 돕는자, 위로자, 상담자, 대언자란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내 안에 있는 성령에 민감하게 반응하시고 성령에 순종하십시오. 성령께서 여러분을 도우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성령을 의지하는 만큼 여러분의 회복 탄력성은 강해질 것입니다.
‘회복 탄력성’(Resilience)은 크고 작은 다양한 역경과 시련에 대한 인식을 도약의 발판으로 삼아 더 높이 뛰어오를 수 있는 ‘마음의 근육’을 의미합니다. 지난주 ‘하버드 회복 탄력성 수업’이란 책을 읽었습니다. 저자인 ‘에일가젤’은 “회복탄력성은 인생의 역경과 도전에 맞설 때 마음의 원천에서 필요한 자원을 끌어올 수 있는 내적인 능력”이라고 정의했습니다. 그는 ‘신경 가소성’ (Neuroplasticity)을 강조했습니다. ‘신경가소성’이란 우리의 뇌는 고정되어 있지 않고, 경험과 환경에 따라 지속적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회복탄력성이란 단지 어려움을 견디는 능력이 아니라, 그 어려움을 통해 더욱 깊은 신앙의 성숙을 이루는 과정입니다.
믿지 않는 자의 ‘회복탄력성’의 원천은 신념이고, 믿는 자의 회복탄력성의 원천은 신앙입니다. 신념은 자기를 믿는 믿음이고, 신앙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입니다. 성도는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하나님께 대한 신뢰와 믿음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며, 이러한 믿음은 사람들이 더 강해지고 영적으로 성숙할 수 있는 바탕이 됩니다.
오늘 본문은 ‘회복탄력성’에 대해서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1. 고난을 이기는 믿음(8절)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우리의 삶에서 예기치 못한 고난과 역경이 찾아올 때, 우리는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한 것처럼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러한 상황에서도 ‘싸이지 아니하며’, ‘낙심하지 아니한다’고 고백합니다. 이는 바로 우리의 믿음이 주는 회복탄력성 때문입니다. 믿음은 고난의 압박 속에서도 우리의 마음을 지키고, 흔들리지 않도록 붙잡아 주는 힘입니다. 믿음을 통해 우리는 상황에 매몰되지 않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2. 하나님의 보호(9절)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바울은 박해와 거꾸러뜨림을 당하는 상황에서도 버려지지 않고, 망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결코 버리지 않으신다는 확신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회복 탄력성은 우리의 힘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보호와 돌보심 속에서 더욱 강화됩니다. 우리가 인생의 어려운 순간을 맞이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붙들고 계시며, 결코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신다는 믿음이 우리의 회복 탄력성을 더욱 굳건하게 합니다.
3. 십자가와 부활(10절)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지면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바울은 우리가 예수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으로, 예수님의 생명이 우리 안에 나타난다고 고백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죄를 대속하여 십자가에 못 박힐 때 우리의 육의 사람은 죽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와 사망의 권세를 깨트리고 무덤에서 부활할 때 우리의 영의 사람이 살았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옛사람은 죽고 새사람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겉사람은 죽고 속사람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사는 것이 그리스도라고 했습니다.(빌 1:21)
웨슬리와 부스 그리고 산업혁명
존 웨슬리 (John Wesley, 1703-1791)
1. 배경과 초기 생애 존 웨슬리는 1703년 영국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성공회 사제였고, 어머니 수산나 웨슬리 또한 깊은 신앙을 가진 인물이었다. 웨슬리는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학문을 닦았고, 이후 성공회 사제로 임명되었다. 그는 옥스퍼드에서 학생들과 함께 “홀리 클럽(Holy Club)”이라는 모임을 만들었는데, 이 모임은 성경 읽기, 기도, 금식, 봉사활동에 매우 엄격한 규칙을 따르는 신앙 공동체였다. 이로 인해 ‘메소디스트(Methodist)’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으며, 이것이 후에 감리교(Methodism)의 시작이 되었다.
2. 신앙적 전환점 웨슬리의 신앙 여정에서 중요한 순간은 1738년 올더스게이트 거리에서의 체험이었다. 그때 그는 로마서 서문을 읽다가 마음이 “이상하게 따뜻해지는” 체험을 하였고, 이를 통해 그가 진정한 구원의 확신을 얻었다고 느꼈다. 이 체험은 그가 은혜를 통한 구원을 확신하게 된 계기가 되었고, 이는 그가 이후 설교와 신학에서 강조한 중요한 개념이 되었다.
3. 감리교 운동 웨슬리는 감리교 운동을 통해 기존 성공회에서 소외된 사람들, 특히 산업화로 인해 고통받는 노동자들과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사역을 펼쳤다. 그의 설교는 주로 야외에서 이루어졌으며, 광부, 농부, 노동자들 같은 일반 대중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구제활동, 교육, 의료 등의 사회적 사역을 함께 진행했다. 감리교는 개인적인 신앙적 회심뿐만 아니라 사회적 책임을 강조했으며, 웨슬리는 신앙이 개인의 영적 변화와 사회적 변화를 모두 이끌어야 한다고 믿었다.
4. 웨슬리의 신학적 강조점 웨슬리의 신학에서 중요한 개념은 “구원의 성화”와 “완전 성화”이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가 인간의 삶에서 역사하여 죄에서 벗어나게 하고,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성숙해지며 궁극적으로는 ‘완전한 사랑’에 이를 수 있다고 가르쳤다. 그는 이러한 과정이 단번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일생에 걸친 성화의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5. 웨슬리는 사망할 때까지 40년 넘게 사역을 이어갔으며, 그의 설교와 가르침은 영국 전역과 미국으로 퍼졌다. 그가 시작한 감리교 운동은 오늘날에도 전 세계적으로 큰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감리교는 존 웨슬리의 실천적 신앙과 사회적 책임 강조를 바탕으로 계속 성장하고 있으며, 특히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사역에 강한 중점을 두고 있다.
윌리엄 부스 (William Booth, 1829-1912)
1. 초기 생애 윌리엄 부스는 1829년 영국 노팅엄에서 태어났다. 부스의 어린 시절은 매우 가난했고, 그는 어린 나이에 일을 시작해야 했다. 이 시기에 그는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였고, 감리교 회중에서 복음 전도자로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부스는 기존 교회 구조 안에서 충분히 효과적으로 사역할 수 없다는 것을 느끼고, 더 실질적인 방식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돕고자 했다.
2. 구세군 설립 1865년, 부스는 동부런던에서 가난한 사람들과 소외된 사람들을 대상으로 복음을 전파하는 사역을 시작했다. 그는 이러한 사역을 통해 기존의 교회가 도달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다가가고자 했으며, 이것이 구세군(The Salvation Army)의 시작이었다. 구세군은 군대의 조직 체계를 본떠서 설립되었으며, 윌리엄 부스는 그 스스로를 “장군(General)”로 칭했다. 이 체계는 전 세계적인 복음 전파와 구제활동을 보다 효율적으로 조직하기 위한 것이었다.
3. 구세군의 활동 구세군은 물질적, 영적 도움을 함께 제공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부스는 “먼저 먹이고, 입히고, 쉬게 한 후에 복음을 전하라”는 원칙을 강조했다. 구세군은 가난한 자, 노숙자, 알코올 중독자, 매춘부 등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에게 필요한 물질적 지원을 제공하면서 동시에 복음을 전했다. 부스는 구세군을 통해 전도 활동을 넘어 사회적 개혁에도 힘썼으며, 당시 노동자들의 권리, 빈곤 퇴치, 중독 문제 등 여러 사회 문제에 관심을 기울였다.
4. 신학적 강조점 부스는 신앙이 사회적 책임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고 보았다. 그는 “하나님의 나라”가 단순히 개인의 구원에 머물지 않고, 사회 전체의 변화를 가져와야 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구세군의 사역은 단순한 구호 활동을 넘어서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데 주력했다. 또한, 구세군은 초교파적 성격을 띠며, 교단을 넘어서서 모든 사람을 위한 복음 전파와 사회적 실천을 중요하게 여겼다.
5. 윌리엄 부스의 구세군은 그의 생전에 영국을 넘어 전 세계로 확장되었다. 구세군은 오늘날에도 134여 개국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으며,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돕는 사역을 계속하고 있다. 부스의 사역은 복음 전파와 함께 실질적인 사회적 도움을 제공함으로써, 기독교 신앙이 사회적 변화를 이끌 수 있다는 중요한 모델을 제시했다.
산업혁명(Industrial Revolution)
산업혁명은 18세기 중반에서 19세기 초반까지 영국에서 시작된 기술 혁신과 제조 공정의 전환으로, 사회와 경제에 큰 변화를 가져온 시기이다. 주요 특징과 영향을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1. 배경
산업혁명은 영국에서 시작되었다. 영국은 풍부한 지하 자원(석탄, 철)과 자본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제2차 인클로저 운동으로 인해 풍부한 노동력을 확보하고 있었다. 또한, 영국의 정치적 안정과 자유로운 경제 환경도 산업혁명의 중요한 배경이 되었다.
2. 주요 발명과 기술 혁신
증기 기관: 제임스 와트가 개선한 증기 기관은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 중 하나였다. 이는 광산업과 제조업에서 동력으로 사용되었다.
방적기: 아크라이트의 수방적기, 하그리브스의 다축 방적기, 크롬턴의 뮬 정방기 등이 발명되어 섬유 산업의 생산성을 크게 향상시켰다.
제철 기술: 석탄을 사용한 철 제련 기술이 발전하면서 철강 산업이 크게 성장하였다.
3. 사회적 영향
산업혁명은 경제 구조뿐만 아니라 사회 구조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도시화: 많은 사람들이 농촌을 떠나 도시로 이동하면서 도시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였다.
노동 조건: 공장주들은 노동자들에게 장시간 노동을 강요하였고, 어린이 노동도 흔했다. 이는 노동자들의 건강 문제와 인권 유린을 초래하였다.
사회적 개혁: 이러한 문제들로 인해 노동 운동과 사회주의 운동이 일어나게 되었다.
4. 경제적 변화
대량 생산: 기계화된 생산 방식이 도입되면서 대량 생산이 가능해졌다.
자본주의 발전: 산업혁명은 자본주의 경제 체제를 강화하였으며, 신흥 부르주아 계급이 등장하였다.
5. 글로벌 영향
산업혁명은 영국을 넘어 전 세계로 확산되었으며, 각국의 경제와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는 후에 제2차 산업혁명으로 이어지며, 전 세계적인 산업화의 기초가 되었다.
산업혁명은 기술 혁신을 통해 생산성을 크게 향상시켰고, 이는 현대 사회의 기초를 마련하였다. 그러나 동시에 많은 사회적 문제를 야기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문제들은 이후의 사회적 개혁과 노동 운동을 통해 점차 해결되었다.
웨슬리와 윌리엄 부스
존 웨슬리와 윌리엄 부스는 산업혁명 시기에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들이다. 이들은 각각 감리교와 구세군을 통해 사회적 책임과 신앙을 결합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존 웨슬리는 18세기 산업혁명 초기의 영국에서 활동하였다. 산업혁명은 도시화와 공업화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농촌을 떠나 도시로 이동하게 만들었고, 이는 빈곤과 노동 착취 등의 사회 문제를 야기하였다. 웨슬리는 이러한 상황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야외 설교를 통해 복음을 전파하고, 구제활동과 교육을 통해 그들의 삶을 개선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는 신앙이 개인의 영적 변화뿐만 아니라 사회적 변화를 이끌어야 한다고 믿었다.
윌리엄 부스는 19세기 후반 산업혁명의 여파로 인해 도시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 구세군을 설립하였다. 부스는 동부 런던에서 가난한 사람들과 소외된 사람들을 대상으로 복음을 전파하고, 물질적 지원을 제공하는 사역을 시작하였다. 그는 “먼저 먹이고, 입히고, 쉬게 한 후에 복음을 전하라”는 원칙을 강조하며, 구세군을 통해 사회적 개혁에도 힘썼다. 부스는 신앙이 사회적 책임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고 보았으며, 구세군은 이러한 그의 신념을 바탕으로 활동하였다.
이 두 인물은 산업혁명 시기의 사회적 문제에 대응하며, 신앙을 통해 사회적 변화를 이끌어내고자 하였다. 웨슬리와 부스의 사역은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으며, 그들이 시작한 운동은 여전히 전 세계적으로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들의 활동은 단순히 종교적 사역에 그치지 않고, 사회적 책임과 실천을 강조함으로써 기독교 신앙이 사회적 변화를 이끌 수 있다는 중요한 모델을 제시하였다.
존 웨슬리와 윌리엄 부스는 모두 기독교 신앙을 사회적 책임과 연결시키며,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사역에 헌신한 인물들이다. 웨슬리는 감리교 운동을 통해 개인적 성화와 사회적 책임을 강조했으며, 부스는 구세군을 설립하여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실질적인 도움을 제공하며 복음을 전했다. 이 두 인물의 사역과 유산은 오늘날에도 전 세계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두려움과 믿음의 관계
오늘 본문은 공관복음에 모두 기록되어 있는 회당장 야이로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야이로는 바리새인으로 회당장입니다. 회당은 기원전 6세기 바빌론 포로기 동안 성전 없이도 신앙 생활을 유지하려는 유대인들의 필요에 의해 시작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비공식적인 모임 장소였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회당은 유대인 공동체의 중요한 예배와 학습의 중심지로 발전했습니다. 회당은 유대 공동체의 영적, 교육적, 사회적, 법률적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하며, 유대인의 신앙 생활과 공동체 유지를 위한 중요한 장소입니다. 이민자들의 교회와 같은 역할을 한 것입니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그리하면 딸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시고(눅 8:50)
두려움은 우리의 신앙 생활에 큰 장애물입니다. 두려움이 찾아오면 하나님을 신뢰하고 순종하는 것이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두려움은 믿음의 반대말로 여겨질 수 있습니다. 두려움이 클수록 믿음이 약해지고, 믿음이 클수록 두려움이 줄어듭니다. 믿음은 두려움을 이기는 힘을 줍니다. 믿음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고, 우리를 도우실 것이라는 확신을 통해 두려움을 극복하게 합니다.
성경에서는 “두려워하지 말라”는 명령이 자주 등장합니다. 1948년 루마니아의 공산정권하에서 투옥된 리차드 범브란트 목사님은 모진 고문이 두려워 기도하고 성경 읽는 일에 전념했는데 성경에 “두려워 말라”는 말씀이 365회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365일 날마다 “두려워 말라”는 말씀을 붙잡고 힘을 낸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두려움 대신 믿음을 가지라고 권면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입니다(딤후 1:7).
두려움이 사람을 지배하면, 심리적, 신체적, 사회적, 영적인 여러 가지 부정적인 현상들이 나타납니다. 이러한 현상들은 개인의 삶에 깊은 영향을 미치며, 일상적인 기능 수행을 방해하고, 삶의 질을 크게 저하시킬 수 있습니다. 두려움은 바이러스 같아서 보이지 않지만, 우리의 온몸을 마비시킬 수 있습니다. 생명체는 위협을 받을 때 본능적으로 ‘투쟁-도피-경직(fight-flight-freeze)’ 중에 하나를 선택합니다. 고양이와 쥐가 맞닥뜨릴 때, 쥐는 덤비거나 도망치거나 아니면 극도의 두려움 때문에 마비됩니다.
1. 두려움이 밀려올 때
살다 보면 우리는 수많은 두려움에 직면하게 됩니다. 건강, 재정, 관계, 미래에 대한 걱정 등 크고 작은 두려움들이 우리의 마음을 짓누릅니다. 야이로의 딸의 이야기는 마가복음 5장 21-43절, 마태복음 9장 18-26절, 그리고 누가복음 8장 40-56절에 나옵니다. 12살된 딸아이가 죽을 병에 걸려 회당장 야이로는 예수님을 찾아가 고쳐 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집으로 오는 도중에 12년 동안 혈루병에 걸린 여인을 치료하느라 조금 지체했습니다. 이때 종이 와서 딸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주자 야이로는 절망하며 두려움에 빠졌습니다. 인간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7가지 두려움이 있습니다. 1. 가난에 대한 두려움, 2. 비판에 대한 두려움, 3. 질병에 대한 두려움, 4. 실연에 대한 두려움, 5. 자유의 상실에 대한 두려움, 6. 노화에 대한 두려움, 7. 죽음에 대한 두려움. 여러분은 어떤 두려움을 가지고 있습니까? 우리의 두려움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더 악화시킵니다. 질병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질병에 걸릴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인간의 무의식은 의식의 생각을 실현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긍정의 생각을 갖은 사람에게는 긍정의 힘으로 나타나고, 부정의 생각을 가진 사람에게는 부정의 힘으로 나타납니다.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할게 없겠다는 말이 있습니다. 걱정이 걱정을 해결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역설적인 표현입니다. 걱정 자체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며 오히려 마음의 평안을 빼앗는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예수님도 마태복음 6장 34절에서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고 하셨습니다. 내일의 걱정을 오늘 가불해서 쓰지 마시기 바랍니다.
1929년 월스트리트 대폭락 사태 당시 대중의 반응을 보면 두려움이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낳는지 확실히 알 수 있다. 당시 대중의 반응은 경제적 위기를 악화시켰고, 결국 대공황을 불러왔습니다. 이때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은 취임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단 한 가지는 두려움 그 자체이다.” 두려움은 미래의 걱정을 오늘 가불해서는 쓰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러한 두려움이 우리의 삶에서 어떻게 작용하고, 믿음을 어떻게 방해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2. 믿음은 두려움을 이기는 열쇠
세상적으로 존경받고 잘나가던 회당장인 야이로는 딸이 병에 들지 않았다면 예수님을 찾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도 가운데도 고난과 실패가 예수를 믿게 되는 동기가 된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야이로는 예수님에게 엎드려 딸을 고쳐 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야이로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 속에는 강력한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은 두려움이 오히려 믿음을 가로막는 장애물임을 지적하시며, 믿음으로 두려움을 이기라고 명하십니다. 두려움이 우리를 휘어잡을 때, 우리는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믿기만 하라”는 것은 단순한 명령이 아니라, 두려움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마가복음 4장 40절에 풍랑 속에서 두려워하는 제자들에게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예수님은 제자들의 믿음의 부족함을 책망하십니다. 이는 두려움과 믿음이 상반된 감정임을 보여줍니다. 두려움과 믿음은 어둠과 빛과 같습니다. 빛이 오면 어둠은 자동적으로 물러납니다. 그렇게 캄캄한 어둠 속에서도 해가 뜨면 모든 어둠은 물러갑니다. 부정의 마음을 쫓아내기 위해서는 긍정의 마음을 가지면 됩니다. 악을 이기기 위해서는 악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선으로 악을 이기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에 검은 개와 흰 개가 있습니다. 둘 중에 어느 개가 이기겠습니까? 주인이 밥을 더 많이 주는 개가 이깁니다.
3. 믿음의 결과는 구원
야이로는 믿음으로 예수님을 따랐고, 예수님은 소녀의 손을 잡고 “달리다굼”을 외치자 다시 살아났습니다. 믿음은 단지 내면의 감정이나 결단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게 만드는 통로입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결단을 통해 역사하시고, 우리에게 구원과 회복을 가져다 주십니다. 우리는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을 믿고 나아갈 때, 기적적인 변화와 구원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야이로의 이야기를 통해 두려움과 믿음의 중요한 관계를 배웠습니다. 두려움이 찾아올 때마다 우리는 그것을 인정하면서도, 그 속에서 믿음을 선택해야 합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이 믿음으로 오늘도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기적과 구원의 역사를 경험하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하나님 마음에 맞는 사람
하나님 마음에 맞는 사람(A man after God’s own heart)
다윗은 “하나님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고 했다. 이 표현은 사무엘상 13장 14절 “여호와께서 이미 왕에게서 나라를 빼앗아 당신 마음에 맞는 사람에게 주셨나이다.” 사도행전 13장 22절 “하나님이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 하시더니”에 나온다. 삼상의 말씀은 사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자기가 스스로 제사를 드린 것에 대한 책망이다. 사도행전 13장 22절의 말씀은 사도바울이 1차 전도여행 중에 비시디아 안디옥에 가서 유대인에게 설교를 할 때이다. 바울은 23절에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이 사람의 후손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고 소개하였다. 다윗이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으로 불린 이유는 그의 삶에서 중요한 특성들 찾아볼 수 있다.
1. 신실한 신앙
다윗은 하나님을 깊이 신뢰하고 의지했다. 그의 신앙은 어린 시절부터 시작되었다. 이스라엘과 블레셋은 전쟁 중이었다. 블레셋 군대는 거인 전사 골리앗을 앞세워 이스라엘 군대를 도발했다. 다윗은 아버지 이새의 명령으로 전쟁터에 있는 형들에게 음식을 전하기 위해 갔다. 다윗은 골리앗이 이스라엘 군대를 조롱하는 것을 듣고 참을 수 없었다. 사울은 자기의 갑옷을 입으라고 했으나 다윗은 갑옷을 입지 않고, 대신 양치기 때 사용하던 물맷돌과 막대를 가지고 골리앗에게 나아갔다. 그는 골리앗에게 이렇게 말했다.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삼상 17:45). 다윗은 골리앗에게 맞설 때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아갔다. 이는 다윗이 자신의 힘이 아닌 하나님의 힘을 믿고 있음을 나타낸다. 자신과 골리앗을 비교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골리앗을 비교한 것이다.
민수기 13장에 가나안 정탐군 10사람은 “저들의 성읍은 견고하고 백성은 강하고 아낙 자손으로 저들에 비하면 우리는 메뚜기 같은 존재”라고 했고, 여호수아와 갈렙은 “저 땅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땅이고, 저들은 우리의 밥”이라고 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골리앗을 그의 손에 넘기실 것을 확신했다. 이는 다윗이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과 능력을 믿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다윗은 골리앗을 쓰러트리고 승전보를 울리며 돌아왔다. 18장에 백성들은 “사울이 죽인자는 천천이요, 다윗이 죽인자는 만만”이라고 외쳤다. 이 소리를 듣고 사울은 심히 노하며 다윗을 주목하였다고 했다. 이후 다윗은 15년 동안 사울에게 쫓기는 도망자가 되었다.
2. 믿음의 인내
다윗은 사무엘상 16장에 약 15 때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았다. 다윗은 오랜 기다림 끝에 헤브론에서 30살에 유다의 왕이 되었다. 이곳에서 7년 6개월을 통치했다. 다윗은 북왕국까지 모두 통합한 후 수도를 헤브론에서 예루살렘으로 옮겼다. 헤브론은 남쪽 유다 지파의 중심지였지만, 이스라엘 전체를 다스리기에는 지리적, 정치적 한계가 있었다. 다윗은 보다 중심적이고 영향력 있는 위치로 수도를 옮길 필요가 있었다. 예루살렘은 여부스족이 지배하고 있던 지역이다. 이스라엘이 한번도 그곳을 점령한적이 없었다. 통일왕국은 이룬 다윗은 여부스족을 물리치고 예루살렘을 수도로 삼았다. 예루살렘은 전략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 이 도시는 고지대에 위치해 있어 방어에 유리했고, 주요 교통로의 교차점에 있었기 때문에 경제적, 군사적 이점을 가졌다. 그 후 다윗은 아비나답의 집에 있었던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겼다. 예루살렘은 정치적으로, 군사적으로 종교적으로 중심도시가 되었다.
다윗이 기름 부음을 받고 22년 후에 이루어진 일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75세에 하란을 떠나면서 하늘의 별과 같이 바다의 모래와 같이 자손들을 번성시켜 주겠다고 약속을 했는데, 무려 25년 후인 100살에 이삭을 낳았다. 다윗 왕의 피신다니면서 인근 지역을 누구보다 잘알고 있었다. 다윗왕이 왕이 되고 가장 나라를 확장할 때 인근 지역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다윗왕은 우리나라의 광개토대왕과 같은 인물이다. 고난의 시간이 무의미한 시간이 아니다. 때가 되면 우리가 경험했던 모든 것이 반드시 사용될 날이 올 것이다.
우리는 믿음의 인내가 필요하다. 신앙생활은 단거리가 아니라 장거리이다. 우리는 인내와 끈기로 이 여정을 걸어가야 하며, 이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욱 깊어지고 성숙해진다. 신앙생활에서의 모든 경험과 도전은 우리의 믿음을 더욱 강하게 하고, 우리를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게 하는 중요한 과정이다. 우리는 빨리빨리 문화에 익숙해서 인내를 구하는 기도도 이렇게 한다.“하나님 저에게 인내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지금 당장 주시옵소서”
3. 회개와 용서
삼하 11장에 다윗은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취한다. 이를 감추기 위하여 전쟁 중인 우리아를 불러서 밧세바와 동침하게 하려고 했지만 우리아는 전쟁 중인데 어떻게 부인과 동침을 할 수 있냐며 거부한다. 다윗은 우리아의 손에 요압 장군에게 보내는 편지를 보낸다. 우리아는 아무것도 모르고 편지를 전달하였다. 편지의 전투 중에 우리아를 죽게 하라는 내용이다. 다윗은 간통의 죄를 감추기 위해서 살인까지 하게 되었다. 다윗은 아무도 모를 거로 생각했는데 나단 선지자가 이를 책망한다.
다윗은 그의 죄를 철저하게 회개한다. 회개의 고백은 시편 51편에 잘 나타나 있다.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따라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주의 많은 긍휼을 따라 내 죄악을 지워 주소서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으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무릇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시 51:1-3) 다윗은 하나님의 크신 긍휼과 자비를 구하며, 자신의 죄와 허물을 깨끗이 씻어 달라고 간청한다.
죄의 강도를 따지자면 다윗은 사울보다 훨씬 더 큰 죄를 저질렀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다윗을 자신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고 했다. 사울과 다윗의 차이가 무엇인가? 사울은 죄를 지을 때마다 핑계를 대며 책임을 회피했지만, 다윗은 자기의 죄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회개했다. 인간은 죄를 지어서 죄인이 아니라 회개하지 않아서 죄인이다. 요한일서 1장 9절은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믿부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라고 말씀했다. 회개는 하나님의 용서를 받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겸손으로 시작했다가 교만으로 끝내는 사람, 영으로 시작했다가 육으로 끝내는 사람, 은혜로 시작했다가 율법으로 끝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성숙한 사람은 문제의 원인을 자기에서 찾지만 미숙한 사람은 문제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는다. 환경이 좋았다면, 그 사람을 만나지 않았다면, 부모를 잘 만났다면…
인과응보와 절대주권 (2024년 8월 23일 응답기도원)
오늘 저는 기도원에 기도에 빚진 마음으로 올라왔다. 집사람을 위하여 기도하여 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기도가 부족하다 싶어서 조진호과 사모님은 직접 교회에 찾아 오셔서 안부를 물어 보았다. 너무 감사드리고. 더구나 오늘 오후에 전화가 와서 오늘 말씀을 전한다고 격려를 해 주셨다. 1년도 넘었는데 작년 3월 18일에 윤영화 목사님 딸인 제이미와 사위 제이슨의 결혼 주례 말씀에 많은 은혜를 받았다고 했다. 그날 참석한 다른 목사님에게도 들었다. 어느 부분에서 은혜를 받았느쟈고 묻자, 두분 다 짧아서 좋았다고 했다.
오늘 저는 짧게 2시간만 하려고 한다.
지난 2023년 11월 24일 민수기 1:1절의 말씀을 의지해서 ‘광야에서 미드바르의 축복을’ 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증거했습니다. ‘미드바르’는 광야, ‘다바르’는 말씀, ‘디비르’는 지성소이다. 광야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만나 하나님과 교재하는 곳이다. 또한 광야는 자신의 믿음을 스스로 시험할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한다.
오늘 말씀은 욥기 42장 10절의 말씀이다. 욥은 동방의 의인으로 살다가 갑자기 어려움이 만난다. 모든 재산을 잃어버리고, 이어서 10명이나 되는 자식도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이어서 몸에 악창이 나서 재위에서 기왓장으로 온몸을 끓게 되었다. 사탄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욥 1:9) 이 구절은 욥기의 중요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즉, 욥의 신앙이 진정한 것인지, 아니면 축복에 의한 것인지를 시험하는 것이다.
1.욥의 시험 (욥기 1-2장): 욥은 경건한 사람으로 많은 재산과 가족을 가지고 있었지만, 사탄의 도전에 의해 자녀들과 재산을 모두 잃고 심한 병에 걸리게 됩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하나님을 저주하지 않습니다. 부인 마저도 저주하며 죽으라고 했다.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온전함을 지키느냐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욥기 2장 9절) 잔소리는 틀린 소리가 아니다. 맞는 소리를 기분 나쁘게 하는 소리이다. 남편은 남의 편의 약자이다. 남편은 롯도이다. 도대체 맞지 않는다.
2. 욥의 항변 (욥기 3-31장): 세 명의 친구들 엘리바스, 빌닷, 소발이 욥을 위로하러 오지만, 그들은 욥의 고난이 그의 죄 때문이라고 주장하며 그를 책망한다. 욥은 친구들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며 하나님께 고통의 이유를 묻는다. 인과응보의 법칙, 자기는 무죄하다고 주장하지만 고난의 이유를 할 수 없어 하나님께 질문한다. 욥은 말한다. 너희가 참으로 잠잠하면 그것이 너희의 지혜일 것이니라(욥 13:5)
3. 엘리후의 연설 (욥기 32-37장): 젊은 엘리후가 등장하여 욥과 그의 친구들을 비판하며, 하나님의 공의와 주권를 변호한다. 엘리후는 욥의 태도를 교만하다고 지적합니다. 알지도 못하고 비난하는 친구들과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는 욥의 교만함이다.
4. 하나님의 응답 (욥기 38-41장): 하나님은 폭풍 가운데 나타나셔서 욥에게 그분의 창조와 주권에 대해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욥에게 일련의 질문을 던지며 인간의 한계를 깨닫게 합니다. 수 많은 질문을 던지지만 아무것도 대답할 수 없는 자신의 한계를 고백할 수 밖에 없었다. 인과응보의 법칙이 아닌 창조세계의 법칙으로 설명을 했다. 마태복음 20장의 포도원 품꾼의 비유. 네가 선하므로 너희가 악하게 보느냐? 뉴턴은 자기가 아는 지식은 망망대해에서 조가비로 뜬 물정도 뿐이 모른다고 했다.
5. 욥의 회복 (욥기 42장): 욥은 하나님 앞에 겸손히 회개하고, 하나님은 그의 친구들에게 욥을 위해 제사를 드리라고 명령하십니다. 하나님은 욥의 재산과 가족을 두 배로 회복시켜 주시며, 욥은 다시 번영을 누리게 된다.(5-6절, 10절)
욥은 많은 고난을 겪었지만, 하나님께 회개하고 친구들을 위해 기도함으로써 두배의 축복을 받게 되었다. 욥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준다. 첫째 고난 중에도 끝까지 하나님을 신뢰하고(욥 23:10), 둘째 겸손히 회개하며(욥 42:6), 셋째 자기를 비난하는 친구를 위해 기도(욥 42:10)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깨닫게 한다. 욥기는 고난 중에 축복받는 비결을 알려주는 책이다.
사람은 상처를 받을 때 3 종류의 응수를 한다. 하수는 ‘자학’으로 응수하고, 중수는 ‘복수’로 응수하고, 고수는 ‘용서’로 응수한다. 용서는 씨름의 뒤집기와 같고, 바둑의 회돌이와 같다. 용서는 부분을 희생하여 전체를 얻는 것이다. 용서는 선으로 악을 이기는 것이다.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롬 12:20-21)
사진 = 김환기 사관
김환기 사관 (구세군라이드한인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