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선지서 해석(33)
금식일을 정하고 성회를 소집하라: 요엘서<3>
지진 때문에 바다 속의 지각이 뒤틀리어 쓰나미가 발생한다. 쓰나미에 집들과 사람들이 쓸려가고 원자력 발전소도 해를 입는다. 방사능이 유출되어 바다가 오염되어 물고기를 수출할 수 없게 된다. 산에는 산사태가 일어난다. 어디선가 메뚜기 떼가 몰려온다. 폭우가 쏟아진다. 폭설이 퍼붓는다. 폭설이 쏟아져 도시가 물에 잠겨 사람들이 도시 한 가운데를 배를 타고 다닌다. 폭설이 퍼부어 사람들이 도시에 갇혀 맹추위에 얼어죽는다. 갑자기 폭풍이 불어 집들과 자동차들을 하늘 꼭대기로 감아 올렸다가 멀리 던져 버린다. 갑자기 바이러스가 퍼져 사람들이 괴질에 걸린다. 병원에는 환자들이 넘쳐난다. 테러집단들이 결성되어 전 세계 방방곡곡 사람들이 많이 모인 장소에 폭탄을 터뜨린다. 멀쩡해 보이던 주가가 폭락하여 많은 파산자들이 생긴다. 나라가 빚에 허덕인다.
묻고 싶은 것은 이러한 일들은 왜 일어나는가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일들은 아무런 이유 없이 그저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것인가. 물론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경우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현상들에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많은 경우 인간의 죄 때문일 것이다. 많은 경우, 우리가 하나님 앞에 높아졌기 때문에 이러한 재해들이 나타날 것이다. 어떤 이들은 비웃을 것이다. ‘일반적인 재해들을 과도히 종교적으로 해석하는 것 아닙니까’. ‘이런 과학의 시대에 그런 말을 하는 것은 우습네요’ 라고. 그러나 신명기의 재앙들 (28장)을 보라. 그곳에 기록된 재앙들은 위에 열거한 것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 그 재해들은 가나안에 들어간 이스라엘이 죄를 범하자 그대로 일어났다. 호세아가 말한 재앙들은 어떤가. 잡신들로 더불어 음행한 북 이스라엘의 죄 때문에 일어난 것이 아닌가. 이사야와 예레미야가 예언한 재앙들은 어떤가. 남 유다가 예루살렘을 피로 더럽혔을 때 그대로 일어나지 않았는가. 죄 때문에 칼 (전쟁)이 떠나지 않았다. 죄 때문에 기근 (농사가 안되어 굶주림)이 온 땅에 들었다. 죄 때문에 온역 (바이러스로 인한 전염병)이 창궐하였다.
일본을 덮친 쓰나미는 왜 일어났는가. 그들의 과거의 살육 죄와 현재의 귀신 섬기는 죄, 음란죄와 무관한가. 그 죄들 때문에 쓰나미가 일어났다고 하면 전혀 얼토당토않은 말을 하는 것인가. 북한을 유린한 홍수와 기근이 김일성 숭배 때문이라고 하는 것은 전근대를 살아가는 사람의 말인가. 한국에 어려움이 닥치는 것은 성도라 하는 사람들이 늘 거짓말을 해대기 때문이라고 한다면 헛소리인가.
재앙들은 죄 때문이라 하는 선지자들
천재지변이나 자주 일어나는 여러 어려움들이 아무 이유 없이 그냥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죄 때문이다 라고 하는 말이 아주 틀렸다고 본다면, 구약의 선지자들이 심판의 원인을 늘 죄 때문이라고 외치는 것도, 그러니 회개하라는 것도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 왜 메뚜기떼가 온통 하늘을 뒤덮었는가, 왜 포도나무에는 맺히다만 작은 포도알들이 까맣게 말라 쪼그라들었는가, 왜 올리브 나무는 지천에 널려 있건만 가지와 잎사귀는 불에 그을 듯 타들어가고 올리브 열매는 한 소쿠리도 따지 못하는 것일까, 왜 강한 이족이 뾰족한 송곳니를 드러내고 이 땅을 유린하러 몰려오는가-모세는 말한다. 죄 때문에 이런 것들이 나타난다고. 모세는 예언한다. 불순종 때문에 이것들이 올 것이라고.
그러나 흥미롭게도 요엘은
그러나 흥미롭게도 요엘은 죄론을 건너 뛴다! 죄에 대한 고발을 건너 뛴 채 백성이 당할 심판부터 말한다. 이것이 요엘의 특이한 점이다. 그러면 요엘이 말하는 재앙, 예를 들어, 메뚜기 재앙은 우리가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이스라엘의 죄와 관계 없이 그저 자연 발생적인 현상이라고 보아야 하는가. 이러므로 우리가 성경을 해석할 때 ‘종합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요엘서만 볼 것이 아니라, 우선은 선지서들, 곧 이사야나 호세아나 다른 선지서들을 보아야 하고, 선지서의 처음에 해당한다고 말할 수 있는 신명기를 참조해야 하는 것이다. 이사야는 남쪽 유다 백성이 여호와 신앙에 다른 더러운 것들을 섞었기 때문에, 예배를 드리러 오는 사람들 손에는 피가 묻어 있기 때문에, 잡신과 우상을 섬기기 때문에,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기 때문에, 호화와 사치와 알콜에 취하기 때문에 유다가 유린된다고 선포한다. 호세아는 북쪽 이스라엘 백성이 바알을 섬기고 동네방네 다니며 음란을 행하기 때문에 앗수르에 침략을 당해 망한다고 말한다.
모든 선지서들이 죄와 심판을 이렇게 이어서 다루므로 요엘서에 심판이 먼저, 그리고 강조되어 나타나고 죄에 대한 언급이 없더라도 의당 우리는 백성의 죄 때문에 메뚜기 재앙과 가뭄 재앙과 이족의 침입이 나타나는구나 해석해야 하는 것이다. 즉, 요엘은 죄 때문이라고 말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죄 때문인데 다만 그 언급을 생략할 뿐이라는 것이다.
요엘은 심판을 강조한다. 이때 그는 심판의 확실성을 십분 드러내려고 ‘선지적 과거’ 형태를 사용하여 (예. 1:4-6) 앞으로의 심판을 이미 당한 기정 사실로 말한다. 모든 선지서들과 달리 죄를 말하는 것을 생략한 채 서둘러 심판을 전면에 내세워 시작하는 것이 요엘의 특징이다.
재해가 있을 때 우리는
우리는 모든 자연 재해와 인생에 당하는 어떤 재앙들이 죄 때문이라고 섣불리 말할 수는 없다. 미처 우리가 모르는 어떤 다른 이유들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는 이유가 있으시겠지만 우리 눈에는 그저 자연적으로 보일 것이다. 또 어떤 재해들의 경우, 특별히 죄와 관계 없이 우리의 단련을 위해 나타나기도 할 것이다. 다만 우리가 이 모든 것들 속에서 생각해야 할 것이 있다. 우주는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고 그것은 하나님의 법을 따라 운행되는 것이 마땅한데 그것이 궤를 이탈함으로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이유가 무엇일까 곰곰히 반성해 보는 태도다. 인간의 삶이 왜 틀어지는 것일까. 우리는 생각해 보아야 한다. 우리의 행위와 언어를 살펴 무슨 허물이 있는가 하나님 앞에 무슨 범과가 있는가 돌아 보아야 한다.
왜 이것이 필요한가. 하나님은 우주, 자연, 인생사의 여러 험한 일들을 통해 교훈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만드신, 그래서 하나님의 손안에 있는 자연과 그분이 통치하시는 범사를 통해 하나님이 우리의 잘못을 일러주실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쓰나미가 일어날 때, 원전이 터질 때, 풍재와 한재와 황충이 창궐할 때, 바이러스가 횡행할 때, 눈을 돌려 우리 자신을 점검해 보아야 한다. 재해와 어려움 속에서 그저 어쩌다 일어나는 일이겠지 안일하게 지나쳐 버리지 않고, 살피고 삼가는 사람이 주님 안에 지혜로운 사람이다.
최영헌 교수(알파크루시스 신학대학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