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길드 사회주의
G. D. H. 콜 / 책세상 / 2022.2.11
- 자본주의를 넘어 국가사회주의의 대안으로서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를 지향한 길드 사회주의
이 책은 20세기 초 영국에서 산업별 노동조합이 대규모 파업을 전개하고 자본주의를 지양하는 노동계급의 급진적 운동이 진행되던 시기에 소련 등 국가사회주의 체제 대신 아래로부터의 상향식 사회주의 이념과 운동을 주창하고 실천하려고 했던 길드 사회주의의 주요 이념과 구상을 이 운동의 절정기에 영국의 사회주의 사상가 G. D. H. 콜이 정리한 것이다.
길드 사회주의란 중세 길드의 전통을 이어받아 산업별 자치를 중심에 놓는 비마르크스주의 계열의 사회주의 사상이다. 자본가의 지배가 사라진 사회에서 작업장에 뿌리내리고 산업 전체로 확대되는 노동자들의 자발적 결사체 ‘길드’가 생산 활동을 책임진다는 것이 길드 사회주의의 기본 구상이다. 또한 길드가 생산자의 이해만이 아니라 소비자까지 포괄하는 공동체 전체의 이해를 대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그래서 자본주의 체제에서처럼 국가기구가 따로 존재할 필요가 없고, 길드의 연합체인 ‘전국 길드’가 기존 국가의 역할을 대체할 것으로 생각했다.
따라서 이러한 사회주의 사회에서는 위로부터가 아닌, 아래로부터의 의사결정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보건 등 모든 분야에서 이루어질 것으로 보았다. 그리고 극히 소수의 인원이 대다수 국민의 이해를 대변한다고 하는 거짓된 대의민주주의에 반해 산업별 자발적 조직인 다양한 길드 평의회를 통해 스스로 자신이 속한 산업과 생활의 모든 부문을 자유롭게 통제하고 주인이 됨으로써 진정한 민주주의를 이루고자 했다.
길드 사회주의는 역사 발전 법칙과 계급투쟁을 논거로 삼는 독일과 러시아의 정통 마르크스주의자들과는 달리 ‘경제 민주주의’를 지향했는데, 이는 민주주의가 좁은 의미의 정치 영역을 넘어 생산과 소비 영역에서도 대중자치를 실현하자는 것이었다.
자본주의를 넘어서면서도 국가사회주의의 폐단을 지양하는 체제, 즉 진정한 사회주의 또는 진정한 민주주의란 무엇인지를 풀어가려는 노력으로서 선구적이고 구체적으로 사회 중심 사회주의의 길을 열어간 것이 20세기 초의 이 길드 사회주의 운동이었다.
이 책은 현대 자본주의 산업사회가 자본주의 계급사회나 현실사회주의 관료 사회가 아닌 새로운 미래 사회로 발전해 나아갈 수 있는지의 물음에 대한 성실하고 깊은 고찰의 결과물이자 우리 시대 사회변혁에 대한 희망의 단서를 담은 고전 중의 고전이라 할 수 있다.
○ 목차
들어가는 말 | 장석준
길드 사회주의-서문
제1장 자유의 요구
제2장 민주주의의 기초
제3장 우리 시대의 길드
제4장 산업의 길드 시스템
제5장 소비자
제6장 공익 서비스
제7장 코뮌의 구조
제8장 코뮌의 작동
제9장 농업 분야의 길드 사회주의
제10장 진화와 혁명
제11장 이행 정책
제12장 국제적 조망
기타 관련 도서 소개
해제 – 길드 사회주의를 다시 말한다 | 장석준
- 지금 왜 길드 사회주의인가?
- G. D. H. 콜의 생애
- 콜의 길드 사회주의 재평가
- 오늘날 길드 사회주의를 재음미해야 할 이유
주
더 읽어야 할 자료들
옮긴이에 대하여
○ 저자소개 : G. D. H. 콜 (George Douglas Howard Cole)
경제학자이며 영국 노동운동에 한 획을 그은 사회주의 사상가이자 운동가다. 대학 시절 독립노동당의 사회주의 활동을 시작으로 사회주의를 추구하는 모임인 페이비언협회에서 청년 사상가로 성장한다.
1915년 페이비언협회를 탈퇴한 뒤 노동연구소에서 노동조합 정책 수립에 참여하며 ‘길드 사회주의 운동’에 동참한다. 영국 좌파를 길드 사회주의 중심으로 재편하려 했으며 《산업 영역의 자치》, 《길드 사회주의》 등의 저작을 통해 길드 사회주의의 발전된 체계를 제시한다.
1925년 옥스퍼드대학교 경제학과 교수가 된 후 학자로서의 삶과 운동가로서의 삶을 병행한다. 《영국 노동운동의 역사》, 《로버트 오언》, 《향후 10년간의 영국 사회·경제 정책》 등이 이 시기의 저작이다.
이후 《경제계획의 원리》, 《영국 노동계급 정치 1832 ~ 1914》, 《협동조합의 한 세기》, 《1914년 이후의 노동당사》, 《일반노조의 시도 1829 ~ 1834: 영국 노동조합사 연구》, 《사회주의 사상사》 등 다수의 저서를 출간한다.
- 역자: 장석준
사회학을 공부했고 진보정당운동의 정책 및 교육 활동에 참여해왔다. 현재는 전환사회연구소 기획위원, 정의당 부설 정의정책연구소 부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주된 관심사는 자본주의를 넘어선 사회의 방향과 얼개다.
저서로 《세계 진보정당 운동사》, 《레프트 사이드 스토리》, 《장석준의 적록서재》, 《21세기를 살았던 20세기 사상가들》(공저) 등이 있고, 역서로는 《G. D. H. 콜의 산업민주주의》, 《유럽민중사》, 《도서관과 작업장》 등이 있다.
○ 책 속으로
오늘날 세상을 움직이는 사회 세력들을 어떻게 평가하든, 조직된 노동자들이 ‘산업에 대한 통제’를 더욱 폭넓고 깊이 있게 요구한다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이해해야 할 가장 핵심적인 사실이다. 이 요구는 특정 국가만이 아니라 산업 시스템이 강력하게 구축된 거의 모든 나라에서 제기되며, 특정 형태에 제한되지 않고 각국의 기질과 전통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이 요구는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이는 1830년대 영국의 ‘오언주의’ 노동조합운동, 유럽 대륙의 아나키스트와 공산주의자, 미국의 초기 혁명가와 개혁가 등을 통해 노동운동 역사 내내 간헐적으로나마 등장했다. 그러나 현재 제기되는 요구는 더욱 보편적이면서 뿌리가 깊을 뿐만 아니라 이제는 노동계급 조직의 긍정적 성취에 굳건한 기반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과거의 선례들과는 성격이 다르다. 또한 이는 더 이상 단순히 유토피아적이지만은 않은 건설적이며 실천적인 요구이기도 하다. – 제1장 자유의 요구 p.19
민주적 대의제의 핵심은 첫째, 대의되는 자들이 대의하는 자를 자유로이 선택하며 일상적으로 접촉하고 상당한 통제권을 지녀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유권자들이 시민권의 모든 측면에서 한 인간 혹은 시민을 대의하게 하려고 누군가를 선출하는 게 아니라 일부 특정한 목표 혹은 일군의 목표들, 달리 말하면 일부 특정한 기능과 관련한 자신의 관점을 대의하게 하려고 누군가를 선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진정한 민주적 대의제는 기능적 대의제다.
어떤 민주국가의 구조든 이러한 핵심 원리와 조화를 이뤄야만 한다. 대의제를 채택할 경우 이는 항상 일정 범위의 기능과 연동되어야 한다. 말하자면 사회 안에서 수행되어야 할 서로 다른 핵심 기능군이 존재하는 만큼 각기 따로 선출된 여러 대의기구가 존재해야 한다. – 제2장 민주주의의 기초 p.43~44
실질적인 민주주의라면 길드의 모든 개별 조합원의 가슴에 와닿아야 하며, 이들이 직접 행사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길드 조합원은 작업을 하면서 자신이 실질적인 자치와 자유를 누리고 있다고 느껴야만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조합원은 열심히 일하지 않을 것이며 공동체 정신이 생동하지도 않을 것이다. 게다가 연합된 봉사로서 길드의 핵심 토대인 연합 정신은 그것이 가장 잘 표현될 수 있는 영역에서 자유롭게 작동해야 한다. 그 영역은 다름 아니라 협동의 습성과 전통이 살아 있는 곳인 공장이다. 공장은 산업민주주의의 자연스럽고도 근본적인 단위다. – 제3장 우리 시대의 길드 p.61
산업 영역에서 길드 조합원의 위상은 오늘날 임금노동자의 그것과 어떤 점이 다를까? 한 가지 명백한 차이는 실업 혹은 지금 나타나는 것처럼 차라리 일자리 상실이라고 해야 할 일이 사라지리라는 것이다. 길드인이 직무 태만을 이유로 해고되어 소득을 잃거나 같은 이유로 노동시간이 줄어들어 소득이 급격히 줄어드는 일 따위는 없을 것이다. 모든 길드인은 ‘시장 상태’가 어떠하든 길드로부터 소득을 온전히 보장받을 것이며, 현재의 경기 변동에 커다란 영향을 끼칠 다른 요인들을 제쳐둔다면 이 사실은 상품과 서비스의 수요를 안정되게 유지하는 강력한 요인이 될 것이다. 모든 길드인은 건강할 때든 병들 때든 자기가 속한 길드에 ‘의지할 수 있을’ 것이며, (중략) 둘째로, 길드인은 상당한 수준에서 자기가 속한 산업의 입법자가 될 것이다. – 제4장 산업의 길드 시스템 p.87~88
사회주의를 둘러싼 이 모순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사회주의는 정말 국가주의의 다른 표현일 뿐인가? 세상에는 자본주의와 국가주의라는 두 가지 선택지밖에는 남아 있지 않으며, 따라서 중국식 체제를 감수하지 않으려면 자본주의에 만족하는 수밖에 없는가? 그러나 사실 ‘사회주의’라는 말 자체가 이러한 양자택일을 거부한다는 단호한 입장을 함축한다. 애당초 자본주의에 맞서면서 ‘국가주의’라고 하지 않고 ‘사회주의’라고 한 것부터가 자본뿐만 아니라 국가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전제한 것이었다. 사회주의란 자본 독재도 아니고 국가 독재도 아닌, 사회의 자기 통치를 뜻했다. – 해제: 1. 지금 왜 길드 사회주의인가? p.244~245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길드 사회주의는 영국 노동운동 곳곳에서 상당한 호응을 얻었다. 이제는 직장위원들뿐만 아니라 주요 노동조합에서도 관심을 표했다. 이 무렵 러시아에서는 노동자-농민-병사 소비에트 (평의회)가 권력을 장악하는 사회주의 혁명 (1917년 10월 혁명)이 일어났고, 독일이나 오스트리아에도 노동자-병사 평의회가 등장해 기존 권력을 위협했다. 1920년에 이탈리아의 토리노에서는 피아트 사 노동자들이 점거 파업 중에 공장평의회를 건설하여 자본가의 지휘 없이 스스로 자동차를 생산했다. 토리노에서 《새 질서 L’Ordine Nuovo》라는 신문을 내던 안토니오 그람시 등의 젊은 사회당 활동가들이 이 실험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길드 사회주의 운동은 이러한 유럽 대륙 노동자평의회 운동의 영국판이었다. – 해제: 2. G. D. H. 콜의 생애 p.254
기능대의제는 생산자 길드나 소비자 평의회 같은 다양한 연합들이 공동체 전체의 필수 활동들을 민주적으로 관리하는 기반이 된다. 대표적인 예로는 콜이 제안하는 산업길드의회를 들 수 있다. 현재는 의회가 만사에 책임을 지지만, 실은 아무것도 제대로 책임지지 않는다. 반면에 길드 사회주의 사회에서는 산업 운영을 전담하는 대의기구가 따로 있다. 바로 산업길드의회다. 이 기구는 생산과 소비 활동에 관여하는 연합들의 대표들로 구성된다. 이들 대표는 각 조직 내에서 민주적으로 선출된다. 콜이 추천하는 방식은 풀뿌리 단위가 대의원들을 뽑으면 다시 이들 대의원들 가운데에서 상급 단위에 참여할 대의원들을 뽑는 상향식 간선제다. 소비에트연방에서는 결국 경제계획의 수립과 집행이 관료기구의 몫이 되었지만, 길드 사회주의 사회에서는 연합들의 대표들로 구성된 산업길드의회가 이를 맡는다. – 해제: 3. 콜의 길드 사회주의 재평가 p.272~273
우리는 오늘날 지구자본주의 상황에 맞춰 이행 과정과 대안 사회에서 생활 세계의 다양한 연합들, 민주화된 국가기구, 초국적 정치 체계가 각각 맡을 역할과 위상, 그들 사이의 역동적 균형과 상호 관계를 새롭게 설정해야 하며, 그중에서도 특히 생활 세계의 다양한 연합들에 더욱 커다란 권한과 책임을 부여해야 한다. 이러한 작업에 가장 도움과 격려가 되는 선구적 사상이 콜의 길드 사회주의다. – 해제: 4. 오늘날 길드 사회주의를 재음미해야 할 이유 p.282
○ 출판사 서평
- 노동이 소외되는 자본주의 질서를 해체하고
노동자가 스스로 산업을 경영하는 사회로!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중반까지 영국을 중심으로 유럽 여러 나라에서 일어난 산업혁명은 자본주의 경제를 확립시켰다. 이에 따라 임금을 받는 노동자계급이 하나의 주요한 사회계급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이후 자본주의가 더욱 발달해가면서 자본과 노동 간의 갈등과 모순이 첨예하게 되었고, 이를 해결하고자 하는 다양한 사상과 운동이 나타났다. 이들 중 정통 마르크스주의에 기반한 사회주의 외에, 위로부터의 국가 중심이 아닌 아래로부터의 노동자 연합체 중심으로 민주주의와 사회주의를 통합적으로 바라본 사회주의-민주주의 이념이 길드 사회주의였다.
초기 길드 사회주의는 중세에 길드가 생산과 유통을 통제했던 것처럼 노동자가 스스로 산업을 경영하는 사회가 자본주의 질서를 대체해야 한다는 믿음을 가졌다. 노동의 소외를 극복하려면 생산자가 자기 노동을 다시 장악해야 한다는 것으로, 중세 전통 중 ‘길드’에 주목하여 노동자들이 이를 복원해서 생산을 통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이 말하는 ‘사회주의’는 자본 독재도 아니고 국가 독재도 아닌 진정한 풀뿌리 민주주의와 경제 민주주의를 의미했다.
- 민주주의는 정치를 넘어 경제로까지 확대돼야
저자는 앞선 길드 사회주의 운동가들의 사상을 발전시키면서 자신이 생각하는 중요한 차별점을 강조했다.
먼저 대의민주주의는 정치뿐만 아니라 생산과 소비가 이뤄지는 영역으로도 확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경제 영역이야말로 노동과 소비를 통해 대중의 삶이 대부분 결정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영역에서 자본가들은 끊임없이 더 많은 권력을 축적한다. 결국 ‘사회적 특수 계급’이 된 그들은 정치 영역에 갇힌 제한된 민주주의마저 매수하거나 위축시킨다. 민주주의가 이렇게 새로운 봉건제로 퇴행하거나 왜곡되지 않게 막기 위해서도 민주주의는 반드시 경제 영역으로 확장되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따라서 민주주의의 ‘1인 1표’ 원칙이 궁극적으로 자본주의의 ‘1주 1표’ 혹은 ‘1원 1표’ 원칙을 대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저자에게 ‘사회주의’란 민주주의 원칙이 이렇게 정치와 경제 사이의 경계를 넘어 확장됨으로써 자본주의 질서를 해체하는 것을 뜻했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관계를 중심으로 사회주의를 정식화하는 길드 사회주의의 이러한 논리는 다른 사회주의 조류들과 뚜렷이 구별되는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길드 사회주의는 민주주의를 사회주의 실현의 주된 경로로 본다는 점에서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민주주의와 사회주의를 통합하여 바라본다는 점에서 ‘민주적’ 사회주의였다.
- 경제 민주주의는 다양한 연합을 통해 이뤄진다
저자는 민주주의를 삶의 전 영역으로 확대할 주역으로 개별 시민이나 국가만이 아니라 다양한 연합들 혹은 자발적 결사체들을 지목했다. 선거를 비롯한 대의제만으로는 민주주의가 일상에서 실질적으로 작동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흩어져 있는 무력한 원자적 개인들은 다양한 자발적 결사체들로 스스로를 조직해야만 한다. 그리고 이러한 결사체들이 발전하고 이들이 활발하게 연계하고 조정하며 협력해야 한다. 이럴 때에만 시민들은 잠재했던 사회적, 정치적, 개인적 역량을 충분히 펼칠 수 있게 된다. 즉 자발적 결사체야말로 민주주의에서 대중의 가장 중요한 공동 자원이 된다고 한다.
길드 사회주의자들이 처음에 가장 중요시한 연합 형태도 생산자 자치조직이었다. 그러나 길드 사회주의자들은 자본주의 사회의 산업별 노동조합이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에서 곧바로 생산을 관리하는 임무를 맡을 수는 없다고 봤다.
노동조합의 주된 기능은 자본의 공세에 맞서 조합원의 권리를 방어하는 것이지만, 생산자 자치조직은 이런 역할에 머물지 않고, 노동계급 분파나 노동자 ‘계급’ 자체도 뛰어넘어 사회 전체의 이익을 위해 생산과 서비스 활동을 관리해야 한다. 길드 사회주의자들이 이 새 조직에 붙인 이름이 바로 ‘길드’다. 이는 곧 생산자 연합이고 노동자 평의회다.
저자는 산업별 노동조합이나 산업 길드가 산업 자치를 맡으면 소비 활동도 자동으로 해결될 것으로는 생각하지 않았다. 생산자 자치조직이 필요한 것처럼 소비자 자치조직도 필요하다고 봤다. 재화와 서비스의 성격에 따라 현존 소비협동조합이 진화한 형태의 자치조직이 필요한 경우도 있을 테고, 공공적 성격이 강한 경우에는 이와는 또 다른 소비자 자치조직이 필요할 것이라고 한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보건이나 문화 영역에서도 이에 특화된 길드와 이용자 평의회의 상호 관계가 구축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의 길드 사회주의에서는 산업 길드만 강조되는 게 아니라 수많은 다양한 대중 연합이 주인공이다. 더 크고 생명력 넘치는 다양한 연합이 ‘사회’를 실체화하는 것이다. 저자의 이러한 사회주의는 국가사회주의와는 정반대로, 자본주의에서 허용되는 것보다 훨씬 더 다원적이고 역동적인 사회를 지향한다고 할 수 있다.
- 경제 민주화를 위해선 대의민주주의가 기능민주주의로 발전해야
다양한 연합이 삶의 전 영역에서 자치를 실현하려면, 기존 대의민주제의 일대 혁신이 필요하다. 저자는 이 혁신의 핵심이 기능민주주의의 도입이라고 말한다. 현대 산업사회에서 각 시민의 일상이 지속되려면 다양하고 복잡한 필수 기능들이 작동해야 하고, 따라서 유권자는 이러한 각 기능에 관해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그렇기에 사회에 반드시 필요한 기능들에 맞춰 대의 체계가 복수로 존재해야 한다고 말한다. 단일한 대의제가 아니라 기능적ㆍ기능별 대의제가 구축되어야 하고, 기능대의제는 생산자 길드나 소비자 평의회 같은 다양한 연합이 공동체 전체의 필수 활동들을 민주적으로 관리하는 기반이 된다.
또한 기능민주주의와 함께 저자가 중요하게 말하는 것은 풀뿌리 대중이 주도하는 철저한 상향식 민주주의다. 저자는 각 연합 내부에서 구성원들이 정보를 투명하게 공유하면서 아래로부터 의사를 결정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 책 《길드 사회주의》는 100년 전 저작이지만 오늘날까지 우리에게 풍부한 영감과 교훈을 주며, 우리 문명을 어떤 방향으로 재편해야 하는지에 대해 명쾌한 시사점을 제시한다.
축적 위기, 불평등 위기, 지구 생태계 위기가 중첩되어 펼쳐지는 지구자본주의의 대위기를 극복하려면, 현대 민주주의의 치명적 공백을 메꾸고, 노동조합, 협동조합 같은 대중의 자발적 결사체들을 혁신하고 발전시키는 방향이 바람직할 것이다. 또한 향후 우리 사회가 기후 재앙에 맞서는 생태 전환 과정은 저자의 핵심 메시지인 경제의 민주화, 다양한 연합들의 발전, 기능민주주의 등을 구현할 중대한 기회가 될 것 같다. 그런데 이 거대한 전환은 국가기구만의 노력으로는 이룩될 수 없고, 저자가 앞서 말했듯이 길드-연합체들을 통해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관심과 열정, 일상적 활력 또한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