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사치와 자본주의
베르너 좀바르트 / 문예출판 / 2017.1.25
오늘날 전 세계를 지배하는 경제 원리인 자본주의는 어떻게 탄생하였는가? 애덤 스미스, 마르크스, 베버 등 자본주의가 태동하여 성숙하던 시기를 살아간 학자들은 그에 관해 다양한 해석을 내놓았다. 그 대답들은 서로 매우 상이하고 이질적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바로 ‘생산/생산자’를 중심에 두고 자본주의의 기원을 설명하고자 했다는 점이다. 베르너 좀바르트는 이에 이의를 제기하고, 정반대편에서 독창적이고 이단적인 답을 제시한다. 바로 ‘소비’를 중심에 두고, 특히 ‘사치’를 통해서 자본주의의 태동을 설명하는 것이다.
- 목차
머리말
제1장 새로운 사회
I. 궁정
II. 시민의 부
III. 새로운 귀족
자료와 문헌
제2장 대도시
I. 16, 17, 18세기의 대도시
II. 대도시의 발생과 내부 구성
III. 18세기의 도시이론
자료와 문헌
제3장 사랑의 세속화
I. 연애에서 위법원칙의 승리
II. 고급창녀
자료와 문헌
제4장 사치의 전개
I. 사치의 개념과 그 본질
II. 궁정
III. 기사와 졸부의 모방
IV. 귀여운 여성의 승리
- 사치의 일반적인 발전 경향 / 2. 가정에서의 사치 / 3. 도시에서의 사치
자료와 문헌
제5장 사치에서의 자본주의의 탄생
I. 올바른 문제 제기와 틀린 문제 제기
II. 사치와 상업
- 도매업 / 2. 소매업
III. 사치와 농업 - 유럽 / 2. 식민지
IV. 사치와 산업 - 사치산업의 의의 / 2. 순수한 사치산업 / 3. 혼합산업 / 4. 사치소비의 혁명적인 힘
주
옮긴이의 말
- 저자소개 : 베르너 좀바르트 (Werner Sombart, 1863 ~ 1941)
독일의 경제학자이며 사회학자.
베를린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했으며, 구스타프 슈몰러, 빌헬름 딜타이, 칼 마르크스 등의 영향을 받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이탈리아의 피사대학에 유학한 뒤 농업경제에 관심을 가졌으며, 브레멘상공회의소 고문을 거쳐 1890년 브레슬라우 대학 교수로 취임한다. 1906년 베를린 상과대학 교수를 거쳐 1917년에는 베를린대학 교수를 역임했고 1931년 베를린 상과대학 명예교수가 되었다. 1904년부터 막스 베스와 함께 ‘사회과학 및 사회정책 잡지’를 편집했다.
주요 저서로 ‘사회주의와 사회운동’, ‘근대 자본주의’, ‘세 종류의 경제학’, ‘인간에 대하여’ 등이 있다.
– 베르너 좀바르트 (Werner Sombart, 1863 ~ 1941) 개관
베르너 좀바르트 (Werner Sombart, 1863년 1월 19일 ~ 1941년 5월 18일)는 독일의 경제학자 및 사회학자이다. 1904년부터 베버와 함께 ‘사회 과학 및 사회 정책’을 편집하였다. 그는 경제 이론과 역사의 종합을 꾀하여 마르크스의 영향 아래 ‘경제 체제’의 개념을 확립하였다.
.삶
베를린대학에서 공부한 뒤 1885년부터 3년간 이탈리아의 피사에서 유학했다.
초기 저서인 ‘사회주의와 사회운동’에서는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공감을 나타내나, 나중에는 비판적이 되어 같은 책의 개정판인 ‘프롤레타리아 사회주의’에서는 민족에 기초를 둔 사회주의를 주장하였다.
.저서
사회주의 및 자본주의
1928년 – 근대 자본주의
1930년 – 3가지 경제학
1924년 – 프롤레타리아 사회주의
1927년 – 고도자본주의
1913년 – 사랑과 사치의 자본주의
1902년 – 근세자본주의
1896년 – 사회주의와 사회운동
- 책 속으로
“사치와 자본주의”라는 제목을 갖고 있는 이 책은 원래 “사랑, 사치와 자본주의”라고 제목을 붙였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 책의 근본사상은 유럽 사회가 십자군전쟁 이후 겪은 변화에 의해서 남녀 간의 관계가 바뀌었고, 이러한 변화로 말미암아 지배계급의 생활양식 전체도 새롭게 형성되었으며, 이러한 새로운 형성이 근대적인 경제체제의 형성에 본질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 p.5
초기 자본주의 시대의 대도시들도 (아니, 바로 그 대도시들은) 기본적인 의미에서는 소비도시였다. 대大소비자는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바와 같이 군주, 성직자, 고관이었는데, 이제는 새로운 중요한 집단이 추가되었다. 즉 대자본가가 그들이었다(그들을 당연히 ‘소비자’로 간주한다고 해서, 국민경제에서의 그들의 ‘생산적인’ 기능을 얕보는 것은 결코 아니다). 대도시는 바로 가장 많은 (그리고 대부분의) 소비자들의 거주지이기 때문에 그처럼 커진 것이다. 따라서 도시의 확대는 본질적으로는 나라의 중심이 되는 도시에 소비가 집중되는 것에 기인한다. — p.50~51
우리의 감각을 자극시키는 수단들을 세련되게 하고 또 그 수를 늘리고 싶어 하는 모든 욕망은 결국 우리의 성생활에 근거를 두고 있다. 왜냐하면 감각의 즐거움과 성애는 결국 동일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어떤 사치의 전개에의 첫 번째 충동은 대부분의 경우에는 확실히 의식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작용하는 성애의 감각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부가 축적되고 성생활이 자연스럽게 또 자유롭게(또는 대담하게) 표현되는 곳이면 어디에서나 사치도 유행한다. 반면에 성생활이 그 어떤 이유에서건 위축되는 곳에서는 부는 재화를 쓰는 데 이용되지 않고 오히려 재화를 거두어들이는 데 이용된다. 즉 재화를 축적하는 데, 그리고 심지어 가급적이면 가장 추상적인 형태(즉 미정련의 귀금속과 화폐)로 축적하는 데 이용된다. — p.115~116
어떠한 시대라도 사치가 일단 존재하면, 사치를 더욱 증대시키는 그 밖의 수많은 동기들도 역시 활기를 띤다. 즉 명예욕, 화려함을 좋아하는 것, 뽐내기, 권력욕, 한마디로 말해서 남보다 뛰어나려고 하는 충동이 중요한 동기로서 등장한다. ……
그 충동이 바로 사치 전개의 방향으로 표출되기 위해서는 언제나 특별한 사정이 동시에 일어나야 한다. 이것은 분명히 사치스러운 생활이 이미 존재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남보다 뛰어나고 싶은 충동을 충족시키는 수단은 남과 똑같거나 아니면 남보다 더한 사치를 행하는 데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 p.116~117
부 이외에는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으며 자신의 막대한 재산으로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는 능력 이외에는 자신을 눈에 띄게 할 만한 다른 특성을 갖고 있지 않은 벼락부자들, 즉 이러한 졸부들이 자신의 물질주의적이고 배금주의적인 세계관을 오래되고 고귀한 가문들에게 전하였으며, 또 그로 인해서 그들이 사치생활의 소용돌이 속으로 끌려들어갔다는 사실이다. ……
덧붙여야 할 내용은 오래된 가문들이 가난해지고 그 대신에 신흥부자들이 등장한 가장 흔한 이유 중의 하나가, 오래된 가문 출신의 사람들이 사치지출에 있어서 저 시민계급 출신의 졸부들과 경쟁하고 싶어 하는 충동이었다는 것이다.— p.151
사치의 발전에 있어서 대도시가 중요하게 된 것은 무엇보다도 다음과 같은 이유에 의해서이다. 즉 대도시가 즐겁고 호화로운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완전히 새로운 가능성과 함께 새로운 형태의 사치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종래에는 왕후의 궁전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만이 즐겼던 축제를 대도시는 폭넓은 주민층도 함께 누릴 수 있게 해주었다. 그 결과 대중은 자신들도 규칙적으로 즐길 수 있는 장소를 만들어냈다.— p.187~188
기술이 충분히 발전하기 이전에, 공업을 자본주의 속으로 몰아넣은 것은 무엇인가? ……
지배적인 견해의 대표자들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고 있다. 판로의 지리적인 확대 덕분에 자본주의는 산업 활동을 지배하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이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반론을 제기한다. 강력한 사치소비의 형성이 산업생산의 조직에 대해서 미친 영향이 훨씬 더 중요하다. 매우 많은 경우(모든 경우는 아니지만!) 자본주의에 문을 열어준 것은 강력한 사치소비의 형성이었으며, 그 결과 자본주의는 수공업으로 철저히 둘러싸여 있던 도시에 진입하였다. — p.284
- 출판사 서평
사치, 자본주의를 탄생시키다! 사회학, 경제학, 역사학의 경계를 넘나들며 자본주의의 기원을 탐구하는 고전 – 좀바르트의 ‘사치와 자본주의’ 개정판 출간
오늘날 전 세계를 지배하는 경제 원리인 자본주의는 어떻게 탄생하였는가? 애덤 스미스, 마르크스, 베버 등 자본주의가 태동하여 성숙하던 시기를 살아간 학자들은 그에 관해 다양한 해석을 내놓았다. 그 대답들은 서로 매우 상이하고 이질적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바로 ‘생산/생산자’를 중심에 두고 자본주의의 기원을 설명하고자 했다는 점이다. 베르너 좀바르트는 이에 이의를 제기하고, 정반대편에서 독창적이고 이단적인 답을 제시한다. 바로 ‘소비’를 중심에 두고, 특히 ‘사치’를 통해서 자본주의의 태동을 설명하는 것이다.
좀바르트의 ‘사치와 자본주의(Luxus und Kapitalismus)'(1913)는 이러한 ‘소비론’을 본격적으로 전개한 고전이다. 그는 유럽 사회의 변화에 대한 세밀한 역사적 추적을 통해서, 십자군전쟁 이후 남녀 관계에서 근본적인 변화가 이루어졌고, 그로 인해 해방된 감각적 향락과 에로티시즘적 욕구가 지배계층의 생활양식을 뒤바꿔버렸다고 말한다. 이러한 해방에 의해 궁정을 중심으로 ‘사치’라는 전염병이 창궐했으며, 이는 거대한 소비도시인 대도시의 탄생으로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이렇게 형성된 거대한 사치 수요는 이전과 다른 교역과 생산을 필요로 했고, 결국 자본주의적 경제 체제를 낳았다. “비합법적인 사랑의 합법적인 자식인 사치가 자본주의를 낳은 것이다”(288쪽).
.금욕이 아닌 사치가 자본주의를 낳았다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은 흔히 마르크스에 대한 비판적 작업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당시 베버에 맞선 가장 강력한 비판자이자 라이벌은 좀바르트였다. 두 사람은 거의 20년에 걸쳐 자본주의 정신을 둘러싼 논쟁과 비판을 이어가며 서로의 논의를 풍부하게 했다. 그중 가장 핵심적인 논점 하나는 ‘금욕이냐 사치냐’였다. 베버는 프로테스탄티즘 윤리의 금욕적인 정신이 자본주의 정신을 잉태했다고 주장했던 반면에, 좀바르트는 인간의 욕망이 낳은 사치가 자본주의 탄생의 원동력이었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좀바르트는 십자군전쟁 이후 유럽 사회에서 어떻게 사치가 뿌리내리게 되는지를 다양한 수치와 문헌의 조사를 통해 추적한다. 초기에는 궁정을 중심으로 행해졌던 사치를 귀족이나 졸부들이 모방하게 되는 과정을 묘사하는 것이다. 또한 중세에 공공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었던 사치가 사적인 성격을 갖게 되었음을 밝힌다. 이 과정에서 주거, 옷, 음식 같은 개인적 사치부터 화려한 극장, 레스토랑, 선술집 같은 도시적인 사치 공간의 모습까지를 파노라마처럼 생생하게 그려낸다. 이러한 사치 수요가 자본주의적인 생산과 교역을 필요로 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자본주의를 태동시켰다는 것이다.
특히 그는 대도시의 탄생 역시 소비도시로부터 비롯되었다는 흥미로운 주장을 한다. 대도시는 기존의 사치 집단인 군주, 성직자, 고관을 비롯해 새롭게 등장한 대자본가가 모여서 이룬 “가장 많은 소비자들의 거주지”이며, “도시의 확대는 본질적으로는 나라의 중심이 되는 도시에 소비가 집중”(51쪽)되면서 일어나게 된다는 것이다. 반면 상업도시나 생산도시들은 중소도시 이상으로 발전할 수 없었다. 이는 소비도시의 대도시화에 따른 거대한 수요가 자본주의의 탄생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음을 방증한다.
.사랑과 사치, 그 은밀한 욕망의 관계
그렇다면 이렇게 사회에 사치가 만연하는 과정 이면에서 이루어진, 혹은 그 과정을 이끈 관계의 변화는 무엇이었는가? 좀바르트가 그 핵심으로 제시하는 것은 놀랍게도 ‘사랑’이다. 심지어 그는 “중세부터 로코코 시대[18세기]에 걸쳐 행해진 남녀 관계의 변화보다 더 중요했던 사건”(77쪽)을 알지 못한다고까지 말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유럽 상류사회 내부에서 장기간에 걸쳐서 벌어진 세속화 과정을 쫓아볼 것을 제안한다.
중세 남녀 간의 사랑은 세속을 넘어선 신에 대한 봉사에 예속되거나, 결혼 같은 제도로 구속당했다. 그렇지만 11세기에 생활양식의 세속화가 시작되면서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좀바르트는 독일연가의 유행부터 르네상스를 거쳐 바로크·로코코 시대에 이르면서 사랑과 쾌락, 육체가 해방되는 과정을 그려낸다. 이는 사회적·종교적 제도인 결혼과 분리된 ‘자유연애’적인 사랑의 관념을 만들어냈으며, 그 결과로 결혼 제도 바깥에서 위법적인 사랑의 전문가라고 할 만한 고급창녀Kurtisane, 애인Maitresse, 매음녀Cortegiana 등으로 불리는 새로운 계층의 여성들이 출현한다. 이러한 ‘돈으로 살 수 있는’ 연인들과의 비합법적인 연애 관계는 거대한 규모의 사치를 불러왔다. 상류계층의 남성들은 연인의 환심을 사기 위해 온갖 형태의 과시적 사치를 벌였다. 이른바 ‘애첩경제’의 탄생이다. 즉, 자본주의를 낳은 사치의 근간에는 사회적 차원에서의 남녀 관계의 변화가 있었던 것이다.
주목할 점은 좀바르트가 이러한 지점에서 더 나아가서, 그러한 욕망을 불러오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인문학적인 탐구까지 펼치고 있다는 점이다. 그에 따르면 “모든 개인적인 사치는 우선 쾌락을 순수하게 감각적으로 즐기는 것에서 기인”하는데(115쪽), 그러한 감각을 보다 강하고 세련되게 자극하고자 하는 욕망의 밑바탕에는 성생활이 깔려 있다. “감각의 즐거움과 성애는 결국 동일한 것이기 때문이다”(116쪽). 따라서 인간의 본성상 부의 축적과 자유로운 성생활은 자연스럽게 사치를 불러오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 자체에는 이론이 있을 수 있지만, 그의 분석은 소스타인 베블런과 함께 오늘날의 ‘소비사회’ 분석을 선취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특히나 그는 성생활과 욕망, 그리고 소비의 관계라는 인간의 좀 더 내밀한 영역의 문제까지 들여다보고자 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특히나 이 지점에서 오늘날의 자본주의 사회 분석과 공명하는 부분이 드러난다. 베버의 금욕적 자본주의 정신은 적어도 현대 자본주의의 재생산 문제에 있어서는 더 이상 분석적 실효성이 없겠지만, 좀바르트의 욕망과 소비욕에 대한 분석은 끊임없이 새로운 상품에 대한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오늘날의 소비사회를 바라보는 데 여전히 유효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보드리야르를 비롯한 소비사회학적 분석의 원류이자 고전으로서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이다.
.사회학, 경제학, 역사학, 인문학을 포괄하는 학제적 연구의 진수
‘사치와 자본주의’는 또한 좀바르트의 연구방법론이 빼어나게 드러나는 연구서이기도 하다. 좀바르트는 사회학, 경제학, 역사학을 엮어내는 학제적 연구의 필요성을 선구적으로 주장했던 학자이다. 그는 경제학을 세 가지로 분류하면서 가치판단의 문제를 담고 있는 ‘규범경제학’, 오늘날 주류 경제학이 된 수치적 분석을 중심으로 하는 ‘실증경제학’, 그리고 인문과학적 방법론을 담는 ‘이해경제학’의 세 부류로 나누고, 이해경제학의 우월성을 강조했다. 그는 이 이해경제학을 통해 사회, 경제, 역사를 아우르고, 또한 그 속에 인문학적 성찰까지도 담아내고자 했던 것이다. 이 책은 그러한 이해경제학의 진수를 담고 있는 책이다. 수백 년에 걸친 역사적 추적으로 통해 사회적?경제적 양상의 변화를 드러내고, 그 이면에 깔린 인간 욕망에 대한 인문학적 통찰까지를 통합해내고 있는 것이다.
.전면적인 개정과 다채로운 화보를 담은 개정판
이 책은 1997년 발간된 초판을 전면적인 수정을 거쳐 새롭게 펴낸 개정판이다. 꼼꼼한 재검토를 통해 오역과 오류를 수정했으며, 표현을 보다 자연스럽게 고쳤다. 또한 유럽 사회의 역사라는 다소 낯설 수 있는 주제를 담고 있기 때문에, 19장의 화보와 그에 대한 설명을 달아 이해를 돕고자 했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