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환기 사관 칼럼

인생의 고민은 선택에 있습니다. (마 6:33)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고, 인생의 고민은 선택에 있습니다. 어제의 선택으로 오늘의 내가 되었고, 오늘의 선택이 내일의 내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여러분의 선택의 기준은 무엇입니까?
선택은 자유이지만 선택의 결과는 자유가 아닙니다. 순간의 선택은 시간이 지날수록 돌이킬 수 없는 차이가 발생합니다. 백두산 정상에 비가 내리면 간발의 차이지만 한 줄기는 흘러서 서해로 가고, 다른 줄기는 흘러서 동해로 갑니다.
혹시 여러분 가운데 선택의 기로에 서신 분이 있습니까? 여러분의 선택의 기준은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인 마태복음 6:33절에,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할 때, 우리의 모든 필요가 채워질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구해야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할지 살펴보겠습니다.

1.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을 통해 시작되었으며(already), 재림 때 완성이 될 것입니다(not yet). 하나님의 나라는 단순한 내세적 개념이 아니라, 현세 속에서 하나님의 주권이 구현되는 곳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임하면 그곳에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 있습니다(롬 14:17). 하나님의 나라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 17:21)있습니다. 또한 하나님 나라는 겨자씨 비유(마 13:31-32)와 누룩 비유(마 13:33)에서 나타나듯이 점진적으로 성장하며, 신자의 실천적 삶을 통해 확대됩니다. 신자가 하나님 나라를 구하는 삶을 산다는 것은, 단순한 소망이 아니라 실천적 행동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구하는 삶은 예수님께서 명하신 지상명령(막 16:15, 마 28:19-20)의 핵심적 내용입니다. 말세란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부터 재림까지의 기간을 말합니다. 우리는 지금 말세에 살고 있습니다. 사도행전의 마지막 장 마지막절은 이렇게 끝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행 28:31)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의 바통을 이어받아 사도행전 29장을 쓰는 사람들입니다.
2. 하나님의 의
‘그의 의’를 구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형성을 의미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의는 행위의 의가 아니라 관계의 의입니다. 이는 칭의(justification)와 성화(sanctification)의 개념을 포함합니다. 칭의는 신분의 변화이고 성화는 삶의 변화입니다. 칭의는 구원이고 성화는 구원 받은자답게 사는 것입니다. 신자는 단순히 의롭게 여겨지는 것을 넘어, 의로운 삶을 실천해야 하며(롬 3:22, 빌 3:9), 이는 윤리적 실천과 사회적 책임수행으로 이어집니다. 도덕과 윤리는 비슷한 것 같지만 조금 다릅니다. 도덕이 개인의 양심과 신념에 기반한 옳고 그름에 대한 기준이고, 윤리는 사회적 관계 속에서 정해진 규범과 원칙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사회적 약자와 소외된 자들을 돌보시며(눅 4:18-19), 이러한 정의 실현이 신앙의 핵심 요소임을 강조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시티에서 성시화 행진을 합니다. 성시화운동’이란 ‘전 교회가 전 복음을 전 시민’에게 전하는 운동으로 교회를 넘어 도시의 거룩을 지향하기 위해 시작되었습니다. 1972년 8월 춘천에서 ‘한국대학생선교회'(CCC) 총재였던 김준곤 목사의 주도로 ‘성시화운동 전국 대집회’가 개최되었습니다. 이후 성시화 운동은 한국뿐 아니라 세계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2007년 김준곤 목사님이 시드니에 오셔서 성시화 깃발을 높이 올렸습니다. 구세군은 영혼구원을 넘어 전인구원, 개인구원을 넘어 사회구원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3. 이 모든 것
이 모든 것’은 ‘ 원하는’ 모든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필요한’ 모든 것을 뜻합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할 때,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할 때, 우리의 삶에 필요한 모든 것들이 하나님께서 풍성하게 더해질 것을 약속하십니다. 이 약속은 단지 물질적인 축복뿐만 아니라, 영적 충만함과 평안, 그리고 삶의 목적과 의미를 포함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며 그의 뜻을 따를 때, 우리가 걱정했던 많은 것들이 그분의 섭리 안에서 이루어짐을 믿으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2025년 3월 3일부터 6일까지 울릉공에서 ‘구세군 지방친교회’가 열렸습니다. 친교회의 강사는 Chuck and Ingrid 부부였습니다. 그들은 초교파적으로 itinerant ministry(순회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부인인 Ingrid는 생명 코칭, 영적 지도, 정서적 치유 등의 분야에서 전문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Ingrid는 둘째 날 Soul에 대하여 강의를 했고, 셋째날과 넷째 날은 마태복음 6:33절의 말씀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강의를 했습니다. 제가 은혜받은 내용은 ‘In Christ와 with Christ’에 대한 말씀입니다. In Christ는 정체성에 대한 것이고, With Christ는 권위에 관한 것입니다.
정체성이란 무엇입니까?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답입니다. 여러분은 누구입니까?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은 반드시 그리스도 안에서 찾아야 합니다.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9)
With Christ는 ‘임마누엘’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권위는 반드시 그리스도로부터 나와야 합니다. 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까? 그 이름에 권위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7:14절과 마태복음 1:23절에 예수의 탄생을 예언하며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지으라고 했습니다. 예수의 다른 이름이 ‘임마누엘’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의미입니다. Chuck 목사는 교통경찰의 권위를 예를 들었습니다. 아무리 큰 트럭이라도 교통경찰이 서라고 하면 섭니다. 교통경찰이 찬 뱃지의 권한 때문입니다. 암행어사의 마패와 같습니다. 마패는 임금의 권위를 대신하는 것이기에 권세가 있는 것입니다.
어제 (3월 8일) 아이오나 트리니티 대학 (Iona Trinity College)의 설립 감사예배가 있었습니다. 이사장인 ‘Dean Drayton’ 교수께서 말씀을 전했습니다. 본문은 창세기 28:10-17절, 로마서 5:1-5절, 마태복음 6:25-34절이었습니다.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오늘 설교를 미리 작성한 상태에서 말씀을 듣게 되었는데, 그분의 말씀이 오늘 제 설교와 너무 유사했기 때문입니다. 설교를 마치고 그분을 만났습니다. “많은 도전과 은혜를 받았습니다. 당신 설교는 내일 내 설교를 대신 해준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Dean 교수는 “당신이 은혜 받은 것처럼 내일 당신 교인들도 은혜 받았으면 좋겠습니다”고 격려해 주었습니다.
그분의 설교 중 한부분이 창세기 28장의 ‘With God’입니다. 창세기 28장은 야곱이 형 에서를 피하여 하란으로 도망가다가 날이 저물어 돌베게를 베고 잠을 잘 때 사닥다리가 하늘에 닿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 내리락하는 꿈을 꾸었습니다. 하님은 야곱에게 너와 네 자손에게 복을 줄 것이라고 약속을 했습니다. 15절에 하나님은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임마누엘의 약속입니다. 언제까지 함께 하시겠다고 했습니까? 하나님이 그에게 맡긴 사명을 다 이룰 때까지 떠나니 않겠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사망에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여러분의 선택의 기준은 무엇입니까?
먼저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십시오. 먼저 하나님의 의를 구하십시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후이 되어 흔들어 넘치도록 채워 주실 줄 믿습니다.

정직한 중보기도 (딤전 2:1-2)
사람은 누구나 인생에서 크고 작은 어려움과 문제를 만납니다.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을 마주할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타인의 도움을 구하고, 또한 누군가는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기를 바라곤 합니다. 오늘은 ‘정직한 중보기도’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중보기도란 자신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 타인을 위한 기도입니다. ‘정직한 중보기도’란 말로만 하는 기도가 아니라, 중심으로 하는 기도입니다.
1. 첫 번째 사역은 기도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딤전 2:1-2) 디모데전서 2장에서 사도 바울은 모든 사람을 위해 기도할 것을 ‘첫째로’ 권면합니다. 이는 기도가 우리의 사역의 가장 근본이 되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간구는 개인적 필요의 기도, 기도는 일반적인 하나님과 교제, 도고는 타인을 위한 중보기도입니다. 바울은 특별히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이는 지도자의 결정과 정책이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2. 모세의 중보기도의 모범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더니 아론과 훌이 한 사람은 이쪽에서, 한 사람은 저쪽에서 모세의 손을 붙들어 올렸더니”(출 17:11-13) 출애굽기 17장에서 모세는 아말렉과의 전쟁을 지켜보며 산 위에서 손을 들고 기도했습니다. 모세 혼자서는 계속 손을 들고 있기 힘들었지만, 아론과 훌이 좌우에서 그의 손을 붙들어 주었습니다. 이 장면은 서로가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돕는 중보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줍니다. 중보기도는 혼자 힘이 부족할 때 다른 이들이 함께 기도해 줌으로써 하나님의 역사가 확장되는 통로가 됩니다.
3. 중보기도의 능력과 결실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그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그를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서로 죄를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약 5:14-15) 야고보서 5장은 병든 자를 위해 교회의 장로들이 기름을 바르고 기도해 줄 것을 권면합니다. 여기서 믿음의 기도는 단순한 형식이나 의식이 아니라, 실제로 병든 사람의 영육 간에 치유를 가져오는 능력입니다. 하나님은 중보기도를 통해 육체적 질병뿐 아니라 마음의 상처까지도 치유하십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
솔로몬은 3권의 책을 썼다. 아가서는 청년의 ‘열정’, 잠언은 중년의 ‘지혜’, 전도서는 노년의 ‘통찰’에 대한 글이다. 잠언과 전도서는 지혜서이다. 잠언이 ‘해 아래의 지혜’라면, 전도서는 ‘해 위의 지혜’이다. 잠언이 ‘카르페 디엠’이라면, 전도서는 ‘메멘토 모리’이다. 하나는 삶을, 다른 하나는 죽음을 말하지만 둘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인생은 ‘삶의 이유’와 ‘죽음의 이유’가 같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죽음의 앞에 섰을 때 살았던 삶에 대하여 후회할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사람들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도 또한 알았도다”(전 3:12-13)
1. 기뻐하며 선을 행하고,
선을 행하는 행위는 본질적으로 기쁨과 연결되어 있다. 진정한 행복은 자기중심적인 만족이 아니라 타인을 위해 봉사하는 삶을 통해 찾을 수 있다. 행복은 목적이 아니라, 선을 행할 때 얻어지는 결과이다. ‘테레사 효과(Teresa Effect)’라는 말을 들어 보았는가? 미국 하버드 의대의 연구진은 타인에 이타적인 봉사를 통해 깊은 기쁨과 성취감을 경험하고, 남의 선행을 보기만 해도 인체의 면역기능이 크게 향상되는 것을 발견하고 이를 ‘테레사 효과’라고 했다.
2.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며,
수고란 일상의 일이다. 히브리어 ‘아보다’(avodah)란 단어는 세속적 일과 영적 예배를 모두 의미한다. 일상의 평범한 것부터 중요한 것까지 삶의 모든 일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통로이다. 교회에서 하는 것은 영적인 일이고, 세상에서 하는 것은 세속적인 일이 아니다. 우리는 일을 통해 하나님을 섬기고, 일이 예배가 되는 온전한 의미의 ‘아보다’를 실천하며 살아야 한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주의 영광을 위해서 해야 한다. 예배당에서 모여 드리는 예배는 반드시 삶의 예배로 이어져야 한다.
3.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선물이다.
우리가 누리는 모든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이다. 우리의 삶, 음식과 음료, 우리의 관계와 성취 모두가 그분의 은혜이다. 선물들은 우리가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인해 주어진 것들이다. 선물들을 소중히 여기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우리의 삶은 더욱 풍성해질 것이다. 인생을 ‘상’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행위 중심으로 살지만, ‘선물’로 생각하는 사람은 은혜 중심으로 산다. 한 주의 시작은 주일이다. 이번 주도 기뻐하며 선을 행하고,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며,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 알고 감사하며 살자.









사진 = 김환기 사관
김환기 사관 (구세군라이드한인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