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호 목사의 컬쳐 스테이지(Culture Stage)
한국에 돌아간 한국인 호주대사
– 제임스 최 호주대사 이야기
호주의 SBS의 한국 라디오에 흥미로운 뉴스를 보았었습니다. 호주에 이민을 왔던 아이가 호주대사가 되어서 다시 한국으로 돌아갔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호주에서의 한국인은 단지 영향력 없는 소수민족이라는 생각만 했는데 호주를 대표해서 한국의 대사로 갔다는 뉴스는 왠지 어깨를 으슥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얼마전 한국의 한 언론에서 특별한 인터뷰 가사가 올라왔습니다. 제목은 ‘호주에서 돌아온 하회탈 대사’라는 제목이었습니다. 지난 번에 관심이 있게 본 뉴스의 주인공인 ‘제임스 최’ 대사의 인터뷰 기사였습니다.
그는 대사이기 때문에 관례상 공식 인터뷰는 영어로 하지만, 사실 한국어로 전부 대답할 수 있는 능력자였으며 한국 신문과 뉴스를 매일 보는 토종 한국인이었으며 한국 소설도 좋아해서 한국에 부임하기 전에는 맨부커상을 받은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를 정말 흥미롭게 읽었다고 했습니다. 한국 추상미술을 대표하는 김환기의 작품도 좋아하고 서태지와 아이들의 ‘시대유감’을 즐겨들었을 정도였으며, 요즘은 그룹 빅뱅의 ‘판타스틱 베이비’를 좋아한다고도 했습니다. 그냥 한국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었지만 제임스 최는 외교적 능력을 인정받아서 호주인으로 한국에 온 호주 대사였습니다.
최 대사는 호주 정부 최초의 한국계 외교관이자 대사입니다. 그는 호주의 엘리트 관료이며 1994년 120대 1 경쟁률을 뚫고 호주 외교관 시험에 합격해 외교통상부에 들어갔습니다. 16년 만인 2010년 마흔살에 주덴마크 호주 대사가 됐으며, 2013년부터 3년간 호주 정부 실세 중 한 명인 줄리 비숍 외교장관 수석자문위원으로 일하다 작년 12월 주한 대사에 임명돼 부임한 것입니다. 교포 출신 주한 외국 대사는 성 김(57) 전 주한 미국대사에 이어 최 대사가 두 번째입니다.
자신이 대사가 될 줄 정말 몰랐다는 최 대사는 덴마크 대사도 상상 못했던 일이었다고 합니다. 외교부 들어가고 나서부터는 그저 실수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게 최우선이었는데 외교·국제관계는 워낙 불확실성이 크고 빠르게 변하기 때문에 외교 현안을 분석하고 예측하는 것만으로도 하루하루가 벅찼다고 합니다.
시드니대에서 경제학과 법학을 전공했고 처음부터 외교관이 될 생각은 없었지만 고등학교 때는 경제학과 법학에 관심이 있었고 그런 방면의 학자나 법조인이 되고 싶었으며 대학 다닐 때 교역과 국제법에 대해 배우면서 왜 어떤 나라는 부강하고 어떤 나라는 그렇지 않은지 관심을 두게 되었다고 합니다.
최 대사가 좋아하는 한국어 단어는 ‘흥망성쇠’인데 인생의 우여곡절을 설명하기에도 좋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의 가족사도 우여곡절의 연속이었는데 부친(78)은 대한민국 육군 헬기 조종사였고 베트남전에도 참전했었습니다. 대위로 예편한 뒤 1974년 아내와 딸, 아들을 이끌고 호주 민간 항공사에 헬기 조종사로 스카우트되어 이민을 왔습니다. 그 때를 회상하며 “네 살 때였지만 그때 기억이 생생해요. 처음으로 비행기를 탔으니까요. 광활한 땅, 청명한 하늘, 강한 햇빛이 인상적이었어요. 그때는 호주가 우리 가족의 새 집이 될 줄 몰랐죠.”라고 합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민 가던 해인 1974년 세계 오일 파동이 일어났고, 호주 경기도 안 좋아지면서 아버지를 채용하려던 회사가 부도가 난 것입니다. 부모님께선 호주 교민 1세대셨고, 당시 교민 사회가 활성화되지 않아서 도움받을 곳이 마땅치 않아 정착하는데 많이 힘이 들었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식품 공장, 어머니는 에어컨 공장에서 일하기도 하며 여러 직업을 전전하면서 최 대사와 누나를 정말 열심히 뒷바라지 하셨답니다.
이런 최 대사는 스포츠를 정말 좋아한다고 합니다. 스포츠는 출신 배경, 사상, 종교 등 모든 걸 내려놓고 함께할 수 있기 때문이며 평등하게 자신의 우수성을 증명할 수 있는 기회가 주었기 때문입니다. 처음 학교에 갔을 때 한국에서 온 학생은 본인뿐이었지만 저처럼 외국에서 이민 온 친구들이 많았기 때문에 학교에서 지도 펼쳐놓고 서로 어디서 왔는지 찾아보기도 했다고 합니다. 핀란드, 칠레, 크로아티아, 캐나다, 레바논, 프랑스…. 모두 살아온 배경이 다르지만 운동장에서 함께 뒹굴면서 친해질 수 있었으며 특히, 호주의 국민 스포츠라고 할 수 있는 크리켓에 푹 빠졌는데 크리켓은 협동심이 중요한 스포츠였기 때문에 호주에서 최고로 중요한 자리는 총리가 아니라 크리켓 국가대표팀 주장이라는 말이 나온 이유를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한국에 대한 관심이 많아서 집에서 일상적인 대화들은 한국어로 했으며 호주에 이민 가기 전 한국에 대한 기억은 세발자전거를 탔던게 거의 전부였는데, 그런게 아쉽다고 합니다. 1995년부터 97년까지 주한 호주대사관에서 3등 서기관으로 일하면서 한국 사회와 한국 사람에 대해 진짜 이해하게 되었는데 세발자전거를 탔던 광주 옛날집도 가 보고, 신라 시대 수도였던 경주에 가서 불국사, 석굴암도 구경했으며 조선시대 백자를 보려고 국립중앙박물관도 자주 찾았고 연공서열 같은 직장문화, 효도의 전통에 대해서도 배웠다고 합니다. 한국 역사에 관심이 많았으며 특히, 조선왕조 시대의 일본, 중국과의 관계에 대해 공부했는데, 현재 동북아 정세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합니다. 또한, 20년 전과 비교했을 때 한국 모습이 많이 바뀌었는데 세계 최고의 휴대전화와 자동차를 생산하는 나라가 될지 상상도 못했다고 합니다.
제임스 최 대사는 작년 부임 직전 호주 교포 조앤 리(46)씨와 결혼했습니다. 두 사람은 1995년 주한 호주대사관에서 일할 때 처음 만났는데 21년 만에 부부가 된 것입니다. 아내는 당시 대사관에서 공보 일을 담당했고 최 대사는 1997년 한국을 떠난 뒤 유엔 호주대표부 참사관, 주덴마크 대사 등 주로 해외에서 일했는데 아내는 한국과 호주에서 일해서 서로 길이 달랐다고 합니다. 하지만 20년 넘게 계속 연락하며 친구로 지내다가 결국 결혼을 하게 된 것입니다. 20년 전 첫 만남을 시작했던 이곳에 부부가 되어 돌아온 것이 마치 하나의 큰 원을 완성한 것 같은 느낌이었으며 아내는 저보다 한국 사회에 대한 이해가 높아서 앞으로 한국과 호주 관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태어난 나라인 한국에서 호주를 대표해 일하는 느낌이 어떤가? 라는 질문에는 “저는 한국과 호주에 모두 빚을 진 셈입니다. 한국 부모에게서 태어났고, 이민자에게 동등한 기회를 제공하는 호주에서 교육 받고 대사까지 됐으니까요. 근면·성실 같은 한국인 기질에, 배경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에게 같은 기회를 보장해야 한다는 호주의 ‘페어 고(Fair Go)’ 문화가 저를 있게 한 셈이죠.” 라고 말하며 기본적으로 저는 호주 정부를 대표하는 대사라는 점을 이해해 주기를 바란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양국 관계를 격상시킨 대사로 기억되기를 바라며 국제 환경을 볼 때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으며 보호주의, 고립주의가 부상하고 있는데 특히, 미국이 아시아 역내에서 어떤 역할을 할지, 미·중 긴장 관계가 어떻게 해결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호주는 한국의 최적의 동반자가 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한국과 호주는 각각 11대, 12대 경제 대국이며 미국을 제외하고 한국이 2+2(국방·외교) 회담을 하는 유일한 나라가 호주이며 호주를 한국에 더 잘 알리는 역할을 하고 싶다고 합니다.
어릴적 떠났던 땅을 다시 밟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입양으로 어릴적 땅을 원치 않게 떠났다가 자신의 뿌리를 찾으러 다시 돌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시절 도망치듯 떠났다가 이제는 먹고 살만해서 다시 돌아가는 분들도 계십니다. 다른 나라의 대표로 본향에 돌아간 최 대사의 마음은 어떨까요? 한국인의 기질과 호주의 기회가 지금의 자신의 자리를 만들었다는 제임스 최 대사의 이야기를 보며 문화적인 이질감과 언어적인 불편함만을 말하며 불평을 하는 것보다는 주어진 환경과 기회를 잘 사용하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를 다시금 생각하며 사진 속의 웃는 모습속에서 하회탈이라는 별명이 너무나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창세기 28: 15)
임기호 목사는 다음세대와 문화사역을 위하여 ‘메시지 커뮤니티 교회’와 ‘메시지 스쿨’을 섬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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