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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엄 그린의 ‘권력과 영광’
그레이엄 그린 (Graham Greene, 1904–1991)은 20세기 영국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인간의 내면과 도덕적 갈등, 신앙과 정치의 충돌을 깊이 있게 탐구한 작품들을 남겼다.
그는 옥스퍼드에서 역사학을 공부한 후, 언론인으로 활동하다가 소설가로 전업했다.
1926년 가톨릭으로 개종한 이후, 그의 작품 세계는 신앙과 죄, 구원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그린은 자신을 “가톨릭 작가”라기보다 “가톨릭적 세계관을 가진 작가”로 인식했다.
그의 문학은 교리적 정통성보다는 신앙의 실존적 고뇌와 은총의 역설에 초점을 맞춘다.
『권력과 영광』은 이러한 그의 세계관이 가장 극적으로 드러나는 작품이다.

2. 줄거리의 확장적 서술
1930년대 멕시코, 반가톨릭 혁명 정부는 성직자들을 체포하고 종교 활동을 금지한다. 이 배경 속에서 한 무명의 사제 (Whisky Priest)가 도망자 신세로 살아간다. 그는 알코올 중독자이며, 사생아를 둔 과거를 가진 인물로, 외적으로는 성직자의 품위를 잃은 듯 보인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자신을 사제로 인식하며, 박해 속에서도 미사를 집전하고 고해성사를 베풀며, 신앙의 불씨를 지키려는 내적 투쟁을 이어간다.
그의 여정은 굶주림과 배신, 고통 속에서 이어진다. 그는 자신이 타락한 존재임을 인식하면서도, 자신을 필요로 하는 신자들을 외면할 수 없었다. 어느 마을에서는 아이의 고해성사를 요청받고, 위험을 무릅쓰고 이를 받아준다. 또 다른 마을에서는 미사를 집전하다가 밀고자의 눈에 띄어 도망친다.
그를 추적하는 경찰관은 무신론자이며, 질서와 정의를 신봉한다. 그는 사제를 ‘위선자’로 규정하며, 종교가 민중을 억압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이 인물 역시 자신의 신념에 대한 확신과 회의 사이에서 흔들린다. 그는 사제를 잡기 위해 아이를 인질로 삼고, 마을 사람들을 협박하지만, 그 과정에서 사제의 고통과 헌신을 목격하며 복잡한 감정을 느낀다.
사제는 결국 한 밀고자의 유혹에 넘어가, 병든 남자를 위해 고해성사를 하러 가다가 체포된다. 그는 자신이 함정에 빠졌음을 알면서도, 사제의 의무를 저버릴 수 없기에 그 길을 택한다. 체포 후 그는 감옥에서 다른 죄수들과 함께 수감되며, 그들과의 대화를 통해 자신의 사명과 인간성에 대해 더욱 깊은 성찰을 하게 된다.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두려움과 회개 사이에서 흔들린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죽음을 신앙의 증언으로 받아들이며, 처형당한다. 그의 죽음은 외적으로는 실패처럼 보이지만, 내적으로는 신앙의 승리이며, 은총의 완성이다.
소설의 마지막 장면에서, 또 다른 사제가 마을에 도착한다. 이는 신앙은 죽지 않았으며, 은총은 계속해서 역사한다는 암시이다. 위스키 사제 (Whisky Priest)의 죽음은 끝이 아니라, 신앙의 씨앗이 뿌려진 순간이다.
3. [권력과 영광] 본문서평
그레이엄 그린의 [권력과 영광]은 단순한 역사적 배경 소설을 넘어, 인간 존재의 불완전함과 신앙, 권력과 도덕, 죄와 은총, 사랑과 구원이라는 복합적 주제를 심층적으로 탐구하는 걸작이다. 소설 속 사제, 흔히 ‘술 취한 사제 (Whisky Priest)’로 불리는 주인공은 알코올 중독과 도덕적 결함, 과거의 죄책감 속에서도 신자들에게 세례와 위로를 베풀며 자신의 사제직을 충실히 수행한다. 이 모순적 존재는 인간의 불완전함과 동시에 선택과 책임을 통해 의미 있는 삶을 실현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덕의 실천’, 사르트르가 말한 ‘자유와 책임’ (liberté et responsabilité), 칸트적 의무론의 ‘윤리적 행위’ (moral act)를 동시에 구현하며, 인간적 결점 속에서도 선과 사랑을 선택함으로써 존재의 의미를 스스로 완성한다.
사제의 내적 갈등은 프로이트적 ‘무의식’ (freudian unconscious)과 융적 ‘그림자’ (unconscious) 무의식의 차원에서도 흥미롭게 분석할 수 있다. 그는 자신의 죄와 결점을 직면하면서도, 그 어두운 그림자를 도피하지 않고 선을 선택한다. 술과 죄책감, 인간적 결함이라는 내적 억압 속에서 선을 실천하는 과정은 융적 ‘자기실현’ (self-actualization)과 연결되며, 동시에 아우구스티누스적 ‘죄와 은총’ (peccatum et gratia)의 신학적 구조를 통해, 인간의 불완전함이 오히려 은혜와 구원의 실현을 가능하게 하는 통로가 됨을 보여준다. 이러한 인간적 결점과 선행의 공존은 잠언 24:16 “의인은 여러 번 넘어지지만 여호와께서 그를 일으키신다”. 사도 바울도“나의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고후 12:9)는 성서적 메시지와도 깊이 맞닿아 있으며, 약점과 죄 속에서도 신앙과 사랑이 드러날 수 있음을 증명한다.
소설의 중심 긴장 중 하나는 사제와 경찰 간의 추격과 대립이다. 경찰은 세속적 권력의 상징으로, 홉스적 사회계약 (social contract)과 권력의 논리 (logic of power), 니체적 ‘힘의 논리’ (logik der macht)를 체현하며, 사제를 억압하고 통제하려 한다. 그러나 그린은 경찰과 사제의 관계를 단순한 대립으로 그리지 않는다. 경찰 역시 내적 윤리적 갈등을 지닌 인간으로 등장하며, 역할 갈등 (role conflict)을 경험한다. 그는 권력자의 지위를 유지해야 하지만, 인간적 연민과 윤리적 감정을 억누를 수 없으며, 이는 사회적 역할과 내적 윤리 간의 긴장을 보여준다. 사제는 세속적 권력과 폭력의 위협 속에서도 선과 사랑, 은총과 신앙적 의무를 선택함으로써, 플라톤적 참된 ‘선’ (ἀγαθόν, agathon)과 권력의 한계를 대비적으로 드러낸다. 마태복음 10:28 “권세 있는 자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처럼, 사제의 내적 충실함은 세속적 권력과 육체적 위협을 넘어서는 영적 힘으로 작동한다.
사제의 삶은 끊임없는 도피와 내적 갈등 속에서 전개된다. 그는 경찰의 추적을 피해 여러 마을로 이동하며 생존을 도모하지만, 단순히 생존만을 추구하지 않는다. 키르케고르적 ‘실존적 불안’ (Angest, anxiety) 속에서도 그는 신앙적 책임과 인간적 연민을 선택하며, 매슬로우적 ‘욕구 단계’ (Needs Hierarchy Theory)’에서 생존 욕구와 상위 욕구인 사랑과 존중 욕구가 충돌하는 상황 속에서도 사랑과 선행을 ‘자기실현’ (Self-actualization)을 통해 두려움과 죄책감을 넘어 내적 성숙과 통합으로 이어진다. 이사야 41:10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는 성서적 메시지는 사제의 두려움 속에서도 신앙과 선행을 지속하는 결단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사제의 인간적 결점과 모순적 성격은 소설의 마지막 순간, 체포와 처형 속에서 극적으로 드러난다. 그는 죽음 직전까지도 신자들에게 축복과 사랑을 베풀며, 세속적 권력의 승리보다 영적 충실함과 인간적 연민이 더 큰 의미를 지닌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플라톤적 관점에서, ‘참된 선’은 현실적 권력과 무관하게 존재하며, 아리스토텔레스적 관점에서 ‘덕’ (ἀρετή)은 행동 속에서 실현되고, 융적 관점에서 ‘자기실현’은 인간 존재의 최종 목표임을 보여준다. 사르트르적 ‘자유와 책임’ (freedom and responsibility)은 최후의 순간까지도 사제의 선택과 행동 속에 살아 있으며, 빌립보서 4:19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능히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는 구절처럼, 사제의 죽음은 세속적 실패가 아닌 신앙적 완성으로 해석된다.

4. 나오는 말
[권력과 영광 (The Power and the Glory)]은 인간 존재의 불완전함과 죄, 권력과 폭력, 선택과 책임, 사랑과 은총이 얽힌 삶의 복합성을 섬세하고도 심층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으로, 사제의 삶과 죽음을 통해 독자는 인간적 결함 속에서도 선과 사랑을 실천하는 선택의 중요성과, 세속적 권력이나 죽음을 넘어선 구원의 가능성을 동시에 성찰하게 된다. 인간과 신, 현실과 이상, 죄와 은총이 교차하는 삶의 본질을 문학적 서사, 심리학적 분석, 철학적 사유, 십자가 신학의 통찰로 예수그리스도의 삶을 형상화한 작품으로, 단순한 소설을 넘어 인간 존재와 구원, 선과 사랑의 의미를 통합적으로 성찰하게 하는 진정한 걸작으로 자리매김한다.
5. 에필로그
필자는 신학교 4학년 봄학기 때 [문학과 신학/변선환 교수]이라는 과목을 수강한 적이 있었다. 기독교 세계관으로 발표된 10개 소설 작품들을 철학적 신학적 사유로 읽고 발제하는 수업이었다. 그중에 필자가 발제한 [권력과 영광]은 21세기 우리들에게도 동일하게 질문한다.
1 타락한 자도 구원을 받을 수 있는가?
2 신앙은 실패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가?
3 도덕적 실패와 영적 사명은 양립 가능한가?
4 신의 은총은 성공이 아닌 고난 속에서도 오는가?
이 작품은 우리에게 완전함을 요구하지 않는다. 대신, 회개와 고통 속에서도 은총을 향해 나아가는 용기를 요구한다. 그리고 그 여정 속에서, 우리는 묻게 된다
“나는 누구에게 은총을 나누고 있는가?”
“나는 어떤 실패 속에서 신의 침묵을 듣고 있는가?”

발제 = 전현구 목사 (독서토론모임 시드니시나브로 회원)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