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하람맘의 두서없는 이야기(72)
버스를 타고 가는 길
한국에서는 대중교통을 늘 이용해 출,퇴근을 했다. 본인의 차로 운전해서 가기는 운전 면허증도 물론 없었거니와 엄청나게 막히는 도로 상황으로 인해 차가 있는 사람도 대중교통을 많이 이용 할 수 밖에 없었다. 한국의 기름값은 또 얼마나 비싼지 픽업을 해달라고 누군가에게 쉽게 부탁하기도 어렵지 않았던가. 그런데 호주에 와서는 오히려 반대가 되어 대중 교통보다는 개인차를 많이 이용하게 되었다. 그렇다고해서 내가 직접 운전해서 다니는 것은 아니고 남편이 주로 픽업을 해주는 편이다. 차로 가면 금방 갈 거리인데 버스로는 한참 걸리니 그렇기도 하고, 운전면허를 따겠다고 남편과 함께 도로 주행을 하다가 Roundabout을 직진 하라는 말에 정말 위로 직진 했더니 그 다음부터는 기가 막혔는지 그냥 자기가 태워다 주는 차 타고 다니란다. 그래도 어쨌든 호주에서 운전면허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고는 있다. 그러다가 근래에 들어 서로의 스케쥴이 잘 맞지 않아 부득불 버스를 일주일에2~3번 이용하게 되었다. 우리 집 까지 가는 버스를 타려면 약 2정거장 정도를 걸어가야 하지만 아무 생각없이 혼자 부지런히 걸으면 금방 도착한다. 가쁜숨을 몰아쉬고 잠시 앉아 버스를 기다리는 일상이 그렇게 나에게도 시작되었다. 버스는 금방 오기도 하지만 부지런히 왜 걸어 왔을까 싶을 정도로 늦게 오기도 한다. 지루한 시간을 참기 위해 잠깐 핸드폰도 검색하고 지나가는 사람들도 쳐다본다. 그러다 보면 멀리서 오는 반가운 버스. 늘 사람이 많이 타고 있어 쉽게 자리가 나진 않지만 그래도 괜찮다. 버스타는 것은 그럭저럭 적응하는 편인데 사실 조금 참기 힘든 것은 버스를 타자 마자 스멀스멀 밀려오는 멀미이다. 유독 버스냄새에 약한 나는 그래서 버스에서는 절대 책도 핸드폰도 보지 않는다. 그러다간 몇 정거장 못가 내려야 할 상황이 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버스를 타고 가는 시간 내내 뭔가 할 일이 필요했고 그래서 요즘에는 성경말씀이나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그 시간을 버틴다. 그러면서도 내 눈은 바쁘게 버스 안의 사람들을 바라 보게 되는데, 여러나라 인종이 섞여 있지만 참으로 조화롭게 살아 가는 것에 경이로움을 느낀다. 하지만 대부분은 나는 누구고 여긴 어딘가 하는 지독한 외로움을 경험한다. 바로 누군가가 말한 군중속의 외로움 같은 것 이리라. 버스라는 같은 공간안에 있지만 이질감을 느끼는 나는 아직도 호주에서 나그네로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나 보다. 그렇게 사람들을 살짝 살짝 관찰 하면 여자인 내가 봐도 참 예쁜 사람들을 보게 된다. 동양인과는 다르게 작은 얼굴 긴 다리와 흰 피부. 만약 한국이라면 그 정도의 외모면 분명 길거리 캐스팅감이다. 또 이와 상반되게 엄청나게 큰 덩치를 자랑하는 이들도 있다. 온 몸에 문신을 하고 거의 벗다시피한 젊은이들, 막 일을 끝내고 왔는지 먼지 투성이 작업화를 신고 있는 사람들, 그 속에 왠 동그랗고 통통한 아줌마가 있다. 그게 바로 나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가 우연히 막 버스에 올라타는 엄마와 딸 같은 모녀를 보게 되었다. 얼굴 생김과 덩치가 비슷한게 모녀지간이 아니면 친척임은 확실 하다. 나와 비슷한 또래일 것 같은 딸과 빨간 머리에 푸근하고 다정해 보이는 소박한 차림의 엄마. 둘은 연신 내 앞에 앉아 서로를 바라보며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나긋나긋 얘기하고 웃는다. 또 딸이 핸드폰에서 무언가를 보여주면 엄마는 관심을 가지고 호응을 한다. 그렇게 바라만 봤는데도 왠지 마음이 정화되는 것 같은 풍경이다. 난 얼마나 오래전에 엄마와 버스를 탔던가.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하며 혼자 버스를 많이 타곤 했지만 엄마와 함께 버스에 탄 적은 굉장히 오래 전 인 것 같다. 호주에 살면서 누군가에게 나의 일들을 허심탄회하게 얘기한 적이 별로 없다. 엄마나 언니에게 하던 일상적인 수다들을 함께 나눌 사람이 없었고 늘 말에 실수가 없도록 조심해야 했다. 나의 말이 좀 허술하고 바보처럼 들리더라도 이런 점 까지도 흠으로 생각하지 않고 그냥 받아주는게 가족인데 갑자기 그것이 너무 고파졌다. 너무 오래 가족과 떨어져 지냈나 보다. 남들은 1년에 여러 번도 가고 이제는 한국이 너무 복잡해 가라고 해도 싫다 하지만 나는 살기 바빠 못 갔을 뿐 여전히 그립고 가고 싶다. 한국의 고향교회도 그렇고 친구들과 그 친구들이 결혼해서 낳은 아가들도 보고 싶고 무엇보다 늙어가는 부모님과 형제들 그리고 한 번도 안아주지 못한 조카들도 생각난다. 밤새 치킨하나 시켜놓고 잔뜩 나눌 이야기들. 버스안에는 참 많은 삶의 이야기들이 숨어 있다. 버스가 흔들려 창문에 머리를 기대고 잠시 눈을 감았다. 아지랑이 처럼 여러 생각들이 교차 되는 시간이다. 그렇게 눈을 감았다가 조금 후 눈을 떴을 때, 익숙한 한국의 우리집 앞에 도착하면 얼마나 좋을까. 아마도 집에 부지런히 걸어 들어가면 엄마가 쉬어터진 깍두기로 내가 그리도 좋아하는 된장찌개를 끓여 놓으셨을 것이다.
박은정 사모(시드니우리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