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길복 목사의 설교 : 시드니우리교회 (2025.12.21)

본문 : 요한 1서 4장 7절 – 11절
제목 : <사랑, 사랑, 사랑입니다>
사랑, 사랑, 사랑입니다 (요한1서 4:7~11)
사랑과 평화의 주님께서, 이 사랑과 평화가 부재한 지구촌에서, 그래도 사랑과 평화의 주님을 사모하며 기다리는 여러분 모두에게 한량없는 사랑과 평화의 기쁨으로 채워 주시길 기원합니다.
저를 포함하여 인간이란 참 알기가 어려운 존재요, 수수꺽기 같은 존재입니다. 우리 안에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모순과 갈등이 있고 우리 속에는 선과 악, 진실과 거짓, 아름다움과 추함이 교차되는 이중성과 위선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 조나단 삭스가 쓴 책 <차이의 존중>을 읽다가 고대 유대나라 랍비 시몬의 문서에 나오는 신화적 스토리 하나를 보았습니다.
태초에 하느님은 천지만물를 창조하신 다음에 제일 마지막으로 사람을 만들려고 하셨는데 진짜로 사람을 만들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이 생겨서 망설이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하느님은 그의 수호천사들에게 물었답니다. <애들아, 내가 이 세상에다 인간이란 것을 만들려고 하는데 너희들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만드는 것이 좋겠느냐? 아니면 만들지 않는 것이 더 좋겠느냐?> 그러자 천사들이 두 그룹으로 나누어져서 논쟁을 벌리게 되었습니다. 먼저 반대 그룹이 말했습니다. <하느님, 실수하지 마십시오. 인간이란 절대로 만들면 않됩니다. 인간이란 탐욕적이고 거짓되고 악한 존재입니다. 입으로는 사랑과 평화를 떠들어대지만 실재로는 미움이 가득한 존재입니다. 하느님이 만드신 이 세상을 엉망진창으로 만들겁니다. 인간은 절대로 만드시면 않됩니다> 그러자 또 다른 천사들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느님, 그래도 하느님은 인간을 만드셔야 합니다. 하느님 혼자서 이 우주만물을 다 이끌고 갈 수는 없지 않습니까? 인간들에게 하느님의 형상를 조금 넣어서 만드시면 그래도 서로 사랑하고 돕고 싸우지 않고 옳바로 살아갈 것이니 믿고 인간을 창조하시옵소서> 두 그룹의 천사들이 하는 말을 들으면서 하느님은 아주 난처해졌고 갈등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다가 하느님은 그만 인간을 만들려고 손에 들고 있던 진흙덩어리를 자기도 모르게 땅에 떨어뜨리고 말았습니다. 순간 당황해진 하느님은 소리를 질렀습니다. <애라, 모르겠다. 될대로 되라!> 그렇게 되어서 만들어진 인간이 바로 <될대로 되어버린 인간존재>입니다. 이타적이면서도 이기적이고, 협력적이면서도 경쟁적이고, 이성적이면서도 비이성적이고, 선한 것처럼 보여도 악한 요소를 지닌 존재요, 사랑하면서도 미워하고, 입술로는 찬송도 잘 하고 기도도 잘 하는데 생활에서는 반대로 가는 존재, 그야말로 <될대로 되고 만 존재>가 바로 우리네 인간이 아닌가 싶습니다. 훗날 실존주의자들이 이름한 <던져진 존재로써의 인간>이란 이렇게 시작된 것이라고 봅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나라고 하는 인간은 과연 어떤 존재인가?> 숙제 중 숙제입니다.
18세기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자나 깨나 늘 <인간이란 과연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하는 생각에 골몰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공원에 가서 산책을 하면서도 계속하여 그 생각에만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아, 인간이란 존재는 과연 어디서 왔으면 어디로 가는가? 나라고 하는 존재는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가?>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다가 벤치에 앉아 있는데 어느덧 해질 무렵이 되었습니다. 마침 공원지기가 문을 잠그려고 둘러보다가 벤치에 앉아있는 한 노인을 보고 가까이 가서 물었습니다. <선생님, 공원 문 닫을 시간이 되었습니다. 선생님은 어디서 오셨고 어디로 가실 겁니까?> 그러자 쇼펜하우어는 그 공원지기의 손을 덥썩 잡으면서 말했습니다. <아이구 선생님, 그래 말입니다. 저도 지금 그 생각을 하던 중이었습니다. 나는 과연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 존재입니까? 공원지기께서 그걸 알면 저에게 좀 가르쳐 주십시요>
그런데 사실 우리에겐 인간이란 무엇인지, 인간의 정체성을 아는 것만 어려운 문제는 아닙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 역시도 참 어려운 숙제입니다.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하면서 우리는 하나님의속성, 하나님의 본질에 대해서 많은 것을 배워서 잘 알고 믿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어떤 분인지 한두 가지로 하나님의 모습을 그려내기란 그리 쉽질 않습니다. <하나님은 유일하시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다. 하나님은 무소부재하시다. 하나님은 거룩하시다. 하나님은 진리이시고 참되시다. 하나님은 아름답고 선하시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명이요, 소망이시다. 하나님은 사랑이요, 자비로운 분이시다> 다 맞는 말이요, 옳은 신앙고백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에게는 여러가지 속성과 본질이 종합되어 있습니다. 그냥 한두 가지로만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습니다. 유일하시지만 때로는여러가지 모습으로 나타나시기도 합니다. 전능하시지만 어떤 때는 무능하게도 보이십니다. 최고로 아름답게도 보이시지만 어떤 경우에는 아주 추하게도 현현하십니다. 물론 많은 경우 사랑과 자비가 넘치는 모습으로 보이시지만 어떤 경우엔 아주 잔인하고 무서운 분으로 등장하실 때도 있습니다. 하나님에게는 여러가지 모습이 겹쳐 있습니다. 그래서 우린 혼선을 가져오게도 되고 하나님의 어느 한두 가지 모습에만 지나치게 집착되어 하나님의 참된 모습을 놓치게도 됩니다. 시대와 지역, 삶의 환경에 따라 하나님의 본질과 속성은 여러가지 다른 모습과 형태로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곧 크리스마스가 다가옵니다만 사실 오늘날 크리스마스란 이 자본주의 시장경제 구조 속에서 온갖 종류의 세일과 마케팅으로 얼룩진 지가 퍽 오래 되었습니다. 요즘 MZ세대에게는 크리스마스가 예수님이 탄생하신 날인지도 모르는 사람들도 참 많습니다. 그냥 서양에서의 설날이요, 롱 할러데이가 시작되는 시즌이요, 1년 중 최대의 세일시즌이요, 휴가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크리스마스가 되면 우리는 앞에서 본 그 많은 하나님의 속성과 본질 중에서 특별히 강조하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는 점입니다. 사실 인간이란 모순을 지닌 존재요, 갈등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요, 될대로 되어 함부로 살아가는 존재들이란,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성탄절이 되면 우리는 이런 모순, 부조리, 갈등, 죄성을 지닌 인간을 그래도 창조해 주시고, 이 세상에서 살아가게 해 주시고, 긍휼과 자비와 사랑을 베풀어 죄와 죽음에서 구원해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에게 영광과 존귀를 드리게 됩니다. 그래서 크리스마스에 나타난 <하나님은 사랑, 사랑, 사랑의 하나님입니다> 부활절에 보여지는 하나님은 생명의 하나님이고, 새해에 나타나시는 하나님은 소망의 하나님이시고, 감사절에 강조되는 하나님은 고마우신 하나님이고, 전쟁터에서는 평화의 하나님, 악이 횡행하는 땅에서는 심판하시는 하나님이 강조되지만 크리스마스가 가까이 오면 우린 거듭하여 사랑의 하나님을 찬양하게 됩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으로 올린 <사랑, 사랑, 사랑입니다>라는 메시지는 부족한 저에게는 스토리가 있습니다.
저는 한 50여년 전 서울 신촌에 있는 대현교회에서 부목사로 담임목사님의 지도하에 목회를 배우며 보조목회를 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여러가지 사역들이 있었지만 특히 저는 중고등부와 청년부를 맡아서 여러해 동안 말씀을 가르치며 설교를 했습니다. 그런데 한 2년전 아주 갑작스럽게 옛날 대현교회시절 중고등부와 청년부에서 저와 함께 신앙생활을 했던 사람들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한번 대현교회로 오라는 것이 었습니다. 그래서 약속된 날 서울에 갔던 길에 그 옛날의 대현교회를 찾아갔습니다. 50년전 그때는 10대 20대의 청년들이 지금은 거이 70대가 되었는데 한 4-50명 정도가 함께 모였습니다. 지금 우리교회를 섬기고 계신 김난애 장로님을 비롯하여 목사, 장로, 권사를 비롯하여 귀하고 아름답게 인생과 신앙의 길을 걸어온 옛친구들이 함께하여 늦은 저녁이 되도록 긴 시간 예배, 친교, 식사, 카톡방 만들기, 흘러간 옛 이야기 등으로 참 아름다운 Home Coming Day 행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날 바로 그 자리에서 오래전에 미국 동부 Delaware로 이민가서 살고 있는 제 후배 김영근선생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목사님, 저는 목사님에게서 수 많은 설교 말씀을 들었지만 이젠 거의 다 잊어버렸고 잘 생각이 않납니다만 지금도 결코 잊혀지지 않는 설교 제목이 하나 있습니다. “사랑, 사랑, 사랑입니다” 목사님이 크리스마스때 하셨던 설교말씀의 제목 “사랑 사랑 사랑입니다”는 제 인생에서 지울 수 없는 가이드였습니다> 그날, 그 말을 듣는 순간, 저는 두려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슴에 꽂힌 설교란 이런 것이로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사랑, 사랑,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입니다.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도 사랑입니다. 성령의 역사도 사랑입니다. 교회란 하나님의 사랑을 구현해 내는 공동체요, 교인들이란 하나님의 사랑으로 부르심을 받고 그 사랑 때문에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하는 사람의 다른 이름입니다.
크리스마스를 앞에 두고 가장 오래된 <하나님의 사랑 이야기>하나를 나누겠습니다. 톨스토이의 단편 <사랑이 있는 곳에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스토리입니다. 남의 헤어진 구두를 수선해 주면서 겨우 밥먹고 살아가던 가난한 할아버지가 있었습니다. 이름은 마르틴이었습니다. 수년전 아내가병으로 죽은 후 어린 두 아들도 영양실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연달아 상처를 입은 마르틴은 크게 상심이 되어 잘 다니던 교회도 나가지 않고 매일 같이 보드카를 마시며 버티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가까운 친구가 와서 이런저런 넉두리를 하던 중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보게, 마르틴, 교회는 않나와도 그래도 집에서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것은 잃어버리지 말게. 하나님은 꼭 교회에만 계신 것은 아니잖나? 하나님은 집에도 계셔!> 친구의 그 말이 어떻게 가슴에 닿았는지 그후 마르틴은 저녁마다 잠들기 전에 성경을 한두장 읽고 기도하다가 잠이 들곤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저녁은 누가복음을 읽던 중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부은 여인>의 이야기를 읽던 중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약 예수님이 날 찾아오신다면 난 뭘로 대접을 하까?” –그런데 이게 꿈인지 생신지 모르겠는데 자기도 모르게 주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야, 마르틴아, 내가 내일 너를 한번 찾아가마!> 이튿날, 아침부터 마르틴은 수선을 떨었습니다. 허름한 구둣방을 청소도 하고 가게앞에 나가 눈도 치우고 유리창도 닦았습니다. 일은 손에 잘 잡히지 않았고 “주님은 진짜로 오시는 걸까? 내가 잘못 들은 건 아닐까?” 그러면서 시간은 흘러갔습니다. 그때 마침 잘 아는 늙은 청소부 스테파니츠가 힘들게 거리를 쓸고 있는 게 보였습니다. 마르틴은 문을 열고 나가서 그를 불렀습니다.<이보게 스테파니츠, 이렇게 추운데 그러다가 얼어 죽겠어! 잠간 들어와 몸 좀 녹이고 차 한잔 들고 좀 쉬다가 일하게> 마르틴은 그에게 따뜻한 차 한잔과 과자부스러기를 내밀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점심 때쯤 되었는데 이 추운 겨울에 외투는 물론 겨울 옷한벌 없이 얇은 여름 옷을 입고 어린애기를 등에 엎고 구걸하는 한 여인이 가게 앞을 지나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마르틴은 얼른 나가서 그 여인을 불렀습니다. <약소하지만 이거라도 들고 가세요> 마르틴은 자기가 먹으려고 싸온 빵조각을 그 여인에게 주었습니다. 정신 없이 허겁지겁 빵을 먹는 동안 마르틴은 그 여인의 어린애기를 꼭 보듬어 주었습니다. 마르틴은 자기가 구두방에서 무릎 덮게로 쓰는 작고 지저분한 모포를 여인의 손에 안겨 주면서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가호가 함께 하시길 빕니다> 오후가 되었습니다. 구두방 가게 밖에서는 어수선한 소리가 들렸습니다. 한 소년이 길거리에서 사과를 파는 할머니와 다투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그 소년이 할머니 몰래 사과를 훔치다가 들킨 모양입니다. 마르틴은 사과장수 할머니에게 사과값을 대신 주면서 소년에게도 동전 몇 개를 쥐어 주면서 타일렀습니다. <애야, 아무리 배가 고파도 도독질을 하면 않된다. 하나님이 다 보고 계셔!> 해가 기울어지고 저녁이 되어 마르틴은 가게문을 닫으면서 중얼거렸습니다. <참 이상하다. 예수님은 오늘 오시겠다더니 오시질 않고…> 집에 돌아온 마르틴은 식사 후 잠들기 전에 평소와 같이 기도를 드리고 성경을 펼쳤습니다. 그 때 어딘선가 주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야, 마르틴아! 오늘 참 고마웠다. 내가 오늘 늙은 청소부와 구걸하는 여인과 가난한 소년의 모습으로 변장을 하고 너를 찾아갔는데 너는 어찌도 그렇게 나를 잘 알아보고 그렇게도 나를 잘 대접해 주었니? 참 고맙다. 대접 잘 받았다> 정신이 번쩍 든 마르틴은 밥상 위에 펼쳐진 성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너는 내가 굶주릴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너희가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자 하나에게 행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마태 25장 35-40>
말씀을 마치면서 보잘 것 없는 인간 홍길복의 설명을 덧부치지 않고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크리스마스의 의미와 그 메시지를 확실하게 밝혀드립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자 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한 3장 16절>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이로써 사람들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요한 13장 34, 35절> <시몬의 아들 요한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시몬의 아들 요한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시몬의 아들 요한아 네가 나를사랑하느냐? 주께서 세 번이나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물으시니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여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이미 아시나이다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럼 내 양을 먹이라 하시니라. 요한 21장 15-17절>
끝으로 오늘 우리들에게 주신 본문속에서 다시 한번 더 새롭게 주님의 음성을 들으시길 바랍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하심이라 사랑은 여기 있으이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요한 1서 4장 7-11절 …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도 그 사람 안에 거하시느니라. 16절>
<사랑, 사랑, 사랑입니다. Love, love, God is love – This is the everlasting Christmas Message.> 아멘

홍길복 목사
(호주연합교회와 해외한인장로교회 은퇴목사)
홍길복 목사는 황해도 황주 출생 (1944)으로 연세대학교와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한 목회자다. 1980년 호주로 건너와 40여년 간 이민목회를 하는 동안 시드니제일교회와 시드니우리교회를 섬겼고, 호주연합교단과 해외한인장로교회의 여러 기관에서 일했다.
2010년 6월 은퇴 후에는 후학들과 대화를 나누며 길벗들과 여행하는 자유를 만끽하는 중이다. 자신이 경험한 이민, 특히 이민한 기독교인들의 삶을 보편적인 이야기로 풀어내는 글쓰기를 바탕으로 ‘동양인 예수’, ‘내 백성을 위로하라’, ‘성경에 나타난 이민자 이야기’, ‘이민자 예수’ 등의 책을 펴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