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국치일 단상
1910년 8월 29일 경술국치(庚戌國恥).
107년 전 오늘은 우리 민족이 절대 잊을 수 없고, 잊어서도 안 되는 참으로 뼈아프고 통절한 국치(國恥)의 날입니다. 1910년 8월 22일, 대한제국의 내각총리 매국노 이완용과 조선통감 데라우치 마사타케가 우리 황제의 반대를 무시하고 형식적인 회의를 거쳐 조약을 통과시켜 8월 29일 한일병탄조약을 발표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경술국치입니다.
일제강점기 당시, 국내는 물론 중국, 연해주, 미국 등 한국인이 사는 곳이면 어디서든지 이 날을 상기하였습니다. 정든 고향을 등지고 연해주를 유랑하던 고려인들은 이날을 ‘대욕일(大辱日)로 상기하였으며,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8·29 국치일을 개천절, 3·1독립운동 기념일과 함께 3대 기념일로 기리는 행사를 하였습니다.
당시의 표현대로 하면, “우리의 뼈 속에 깊이 새긴 가장 비참하고 가장 절통한, 민족이 오래도록 되새겨야 할” 이 날이 오면 어김없이 행사를 거행하고 성명서를 발표했으며, 만주 동포들은 ‘국치추념가’를 지어 부르며 이날을 곱씹었다고 합니다. 국내에서는 비록 합법적으로 행사를 치를 수는 없었으나, 일경(日警)이 매년 8월 29일을 전후한 시기만 되면 특별히 경계를 강화할 만큼 비밀리에 치러졌으며, 특히 3·1독립운동이 발발했던 1919년에는 국치일 행사를 거족적으로 치렀습니다.
우리 민족은 대일항쟁기 내내 매년 8·29 국치일만 되면 ‘국치일을 잊지 말자’는 격문 살포나 낙서 사건을 일상적으로 일으켰으며, 감옥에 투옥된 독립운동가들은 국치일 단식동맹을 조직하거나 노동자들이 국치일을 상기하는 총파업을 계획하기도 했습니다. 국치일로부터 정확히 34년 11개월 보름 만인 1945년 8월 15일, 우리민족은 끊임없는 독립투쟁을 통해 조국광복을 되찾았습니다.
조국광복 이듬해인 1946년에도 국치일 행사가 치러졌으나 좌우익 투쟁이 치열했던 만큼, 국치 행사도 각각 별도로 진행되었습니다. 1948년 정부수립 이후에는 공식적인 행사가 개최되지 않았으나, 달력에는 여전히 국치일이 온존해 오다가 이후 국치를 상기하는 대신, 순국선열을 추도하는 행사로 바뀌어 열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우리 국민들의 의식 속에 국치일에 대한 행사의 효력이 상실되면서 달력에서마저 사라져갔던 것입니다. 이후 1996년부터 사단법인 한국독립유공자유족회에서 국치일에 행사를 해오고 있으나 국치일 상기 행사의 보다 근본적인 취지를 살린 광복회는 지난 2011년부터 본회와 전국 15개 시도지부 및 일부 해외특별지회 회원들이 같은 시간에 검은 넥타이와 리본을 패용하고 추념식을 거행하고, 찬 음식을 먹으며 경술국치일을 상기하고 있습니다.
또한 국치일 당일 관공서 조기게양을 내용으로 하는 조례제정을 지방자치 의회에 촉구한 결과, 2017년 8월 29일 현재, 세종특별지치시를 제외한 전국 16개 광역시의회 및 시도지자체 의회에서 조례제정을 완료하였으며, 이 조례제정 운동은 미 개정 지자체로 확산시켜 나가야 하겠습니다.
과거사에 대한 사죄와 반성은커녕, 올해로 13년째 자국의 방위백서에 독도 영유권 망언을 기술하는 등 줄기찬 역사왜곡도 모자라 평화헌법 개정 시도로 군사대국화마저 꾀하고 있는 일본정부의 우경화가 계속되고 있는 요즘, 우리 모두에게 잊지 못할 치욕의 역사로 기억되고 있는 국치일 추념식은 민족적 각오 속에서 지속적으로 치러져야 합니다.
경술국치의 역사는 위정자와 국민 모두가 올바른 역사의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뼈아픈 교훈을 여실하게 보여주는 대사건입니다. 역사를 바로 잡는 것은 우리의 정신을 바로 잡는 것이며, 정신을 바로 잡으면 나라가 비로소 바로 서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근본을 바로 세우겠다는 본립도생(本立道生)의 정신으로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고, 우리의 아픈 역사를 제대로 기억하고 배워나가야 하겠습니다.
2017. 8. 29
광복회 호주지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