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투데이
2018년 이민의 날을 맞으며…
미국의 이민은 영국의 청교도 102명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1620년에 신대륙에 도착한 것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영국 식민지였던 미국대륙이 독립전쟁의 승리로 1776년 7월 4일에 잃게 되자 새로운 대륙을 개척하기 위해 호주를 선택했다. 영국 죠지 3세(28년 재위)는 1770년에 제임스 쿡(James Cook) 선장과 뱅커 경(Sir Banker)의 호주 방문조사 결과로 호주 개척을 결심했다.
내용은 비가 많고 땅이 비옥하며 생물들이 살기가 좋은 곳으로 보고 되었다(실제로 정반대임). 호주대륙을 새롭게 개척하려고 1787년 5월 13일 죄인 759명(60% 이상이 약간의 먹을 것을 훔치거나 옷을 훔친 경범죄인)과 군인 및 그 가족 등 모두 1,350명이 아서 필립(Arthur Philip) 총독 지휘하에 11척에 배로 브라질 리오데자네이로를 거쳐 장장 252일, 즉 8개월에 항해 끝에 1788년 1월 26일 지금의 시드니 바다에 도착했다. 항해도중 부족한 음료수와 좁고 비위생적인 환경때문에 48명이 사망해서 바다에 던져졌다. 이날을 ‘이민의 날’(Immigration Day), 지금은 ‘호주의 날’(Australia Day)로 큰 행사가 치뤄지고 있다.
배가 떠나기 전에 죠지 3세는 선장이며 후에 총독이 되는 아서 필립(Arthur Philip)에게 다음과 같이 3가지를 부탁한다. 첫째는 영국성공회와 논쟁중인 가톨릭 신도의 입항을 금지하라. 둘째로 그 지역에 여자와 혼혈해서라도 인구를 늘려라. 셋째는 그곳은 비옥한 곳이니 농산물을 생산해서 본국에 보내도록 하라는 것이다. 그 당시 양털은 영국내에 많이 생산되었기 때문이다. 신대륙에 온 미국이민자들은 기도와 찬송으로 도착을 감사히 생각했지만 호주 죄인들에게는 채찍과 강제 노동이 주어졌을 뿐이다.
호송된 죄인들 중에 10대 초반의 어린이는 34명이었는데 그중에 13세가 된 John Hudson을 소개해 본다. 그는 아홉 살 때 10실링 하는 셔츠 하나와 양말 5개와 권총을 훔친 죄로 재판을 받는다. “재판장이 무엇을 하는 아이냐? 물었다. 아이는 나는 검고 먼지투성이인 굴뚝을 청소해 주면서 살아간다고 했다. 재판장은 부모는 무얼하는 사람인가? 묻는다. 모두 사망했다. 재판은 언제인가? 그는 알 수 없다고 답한다. 그는 7년간 보타니베이로 유배형이 내려졌다. 그는 가로 3미터, 세로 5m 되는 감방에서 24명이 같이 생활을 했다.” 그는 재판 후 유치장에 와서 선배 죄인에게 “보타니베이가 어디냐?”고 물었다. 고참 죄인은 “세상 남쪽 끝이다.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죽음의 땅이라고 말해 준다. 그는 시드니에 도착 후 Norfolk 아일랜드로 이송돼 50대의 채찍을 벌로 받고 석방했으나 그후 추적이 되지 않았다. 아마도 석방후 굶어 죽었을 것이라고 역사가들은 말하고 있다.
1788년 1월 20일에 11척의 선단이 Botany Bay에 도착했으나 식수가 없어 필립 총독은 여러 곳을 찾아 다녔는데 그때 원주민이 물있는 곳을 가르쳐 주었다. 아서 필립총독은 원주민이 남자처럼 씩씩히 생겼다 해서 그 지역을 Manly라고 지었고 시드니 서큐러키 앞바다 “포트 잭슨 배이”에 1월 26일 정착했다. 그러나 불란서 함대가 미리 와있어 경계를 하였는데 불란서 함대는 떠났다. 그 자리가 불란서 함대장 이름을 따라 La Parouse라고 지금도 불리고 있다. 그후 1868년까지 죄인이 호주에 수송된 숫자는 16만4천명이였다. 이중에 여인은 1,868명에 불과했다. 영국 당국은 영국에 양털이 많으니 호주는 양을 기르지 말고 농산물만 생산토록 했으나 호주의 땅이 오래된 것이라 비옥하지 않고 비가 적어 농산물 생산이 어려웠다. 그후 죄인중에 James Ruse라는 사람을 고용해서 파라마타를 중심으로 시드니 서북부 지역 농토를 개간하는데 성공했으나 큰 성과는 없었다. 그후에 군인출신인 맥아더라는 사람이 현재 켐벌타운지역에 양을 길러 큰 성공을 거두어 목축업이 크게 성했다.
이렇게 1868년도까지 도착한 호주 땅의 죄인수는 16만4천명이 된다. 여자는 1,868명으로 여성이 몹시 귀했다. 이들의 피땀으로 우리는 호주에 편안히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여간 그들의 노력에 이민자의 한 사람으로 감사드린다.
호주 연방정부는 1월 26일을 공식 Australia Day로 정하고 공휴일로 정한 것은 1994년부터이다. 이날은 이민자로 구성된 호주국민 전부가 모두 즐기는 날로 여러 행사가 이뤄진다. 특히 이민자들이 호주 시민이 되어 하나가 되는 시민권 수여식이 있다. 일단 호주 시민이 되면 말이나 문화가 다르든 호주 법 앞에서 모두 평등하다. 이외에도 지역사회 공로있는 사람에게 상도 주며 바비큐도 먹고 모두 즐겁게 보내는 날이다. 그러나 호주 원주민은 즐거운 날이 아니라 “백인 침략의 날”이니 다른 날로 “Australia Day”를 하자고 한다.
근래는 녹색당이나 보수당 정치인중에도 죄인들이 상륙한 날을 이민의 날로 정하는 것이 부적당하다고 반대한다. 그렇지만 마땅한 답이 없이 해마다 이날이 오면 늘 논쟁으로 끝난다. 여러가지 이유로 조국을 버리고 이곳에 와 새로운 호주 시민, 또는 영주자로 살고 있는 우리는 날짜야 어떻든 이날을 즐기면서 새로운 호주에 충성을 다짐하는 좋은 날이 되기를 바란다.
초창기 영국에서는 호주에 올 이민자들을 구하였지만 미국에 지원자는 많아도 호주 지원자는 거의 없었다. 영국인들의 인식은 “오스트랄리아”라면 죄인과 죽음을 연상했다. 지금은 아름다운 시드니나 타스마니아 해안을 100여년 동안 Fatal Shore(죽음의 해안)으로 인식해 왔다. 그래서 호주 정부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호주에 가면 하루 3번 고기를 먹을 수 있다”라고 이민 구호를 만들고 뱃값을 대주는 방향으로 이민을 추진했다.
그러나 이들이 시드니에 도착하자 죄인들의 후손들은 “New Chum”(새로온 놈)이라고 구박이 심해 이들이 할 수 없이 남부 호주를 개척하게 된다. 특히 멜본은 예전 이름이 Port Philip이였는데 죄인이 아닌 순수 이민자들로 구성된 도시였기에 호주의 자부심이 강한 도시로 수도로 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시드니사람들의 반발로 시드니와 멜본 중간지점인 캔버라(Canberra)로 옮기게 되었다. 그후 호주는 아세아 지역에 경제성장과 더불어 26년간 경제불황이 없는 국가로 부에 서열이 12위로 잘사는 나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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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 요구로 철도파업 위협하는 전철 운전사들
시드니에 살고 있는 사람중에 전철을 이용하는 인구는 하루 130만명이라고 한다. 전철을 이용하면 출퇴근시간이 정확하고 많은 사람들을 동시에 운송하기 때문에 복잡한 도시에서 중요한 교통수단이다.
바쁜 출퇴근 시간에 8개의 객차를 끌고 다니는 한 전철은 한번에 2,000명을 운송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출퇴근 시간이 지나면 그 숫자는 크게 줄어든다. 시드니에 전철 운전사는 1,200명 정도 된다. 대부분 52주의 힘든 교육과 실천을 통해 전철 운전사가 된다. 전철 운전자는 하루 5번 이상 운전을 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NSW 보수당 정부는 앞으로 전철을 무인 자동전철로 운영할 계획으로 근래 전철 운전사 양성을 거의 포기하고 있는 실정이다. 전철이 자동화되면 한 시간에 4만명을 운송할 수 있다고 한다.
이런 실정에 시드니 인구에 증가로 작년 11월 26일부터 초과근무가 가중되어 부족한 전철 운전사들은 더욱 바빠져서 안전을 위해 14일중에 12일 이상 근무를 못하게 하는 법을 무시하고 Overtime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실정에 이르게 되었다.
선거가 14개월 남은 주정부는 교통 완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거기다가 성탄절 신년이 되어 평균 하루 40명 정도의 병가 결석자가 76명으로 급증하게 되어 많은 지장을 초래하게 되었다.
Andrew Constance NSW 교통장관은 정부는 체스우드-에핑 라인이 전철 자동화를 이루기 위해 적어도 9개월간을 운행정지를 하게 되어 전철운전자들의 부족을 막을 수 있으며 퇴직한 전철 운전사들을 재고용하는 방법으로 해결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정차시간이 30초였던 것을 20초로 줄이는 방법도 모색중이라고 한다.
현재 전철 운전자들의 한 사람당 연금은 11만3천불이 된다. 그러나 무인 전철이 계속 증가된다면 그들의 직업에 큰 위협을 받게 된다. 이를 고려해서 전철, 버스, 전차 운전자 Alex Claasen 노동조합장은 연에 6% 임금인상과 4년 연속 20% 이상 인상안을 정부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1월 29일 시드니 전역에 9,100명이 일하는 정부 교통기관이 파업하겠다고 위협하였다.
급한 주정부는 32만명의 공무원들이 연 2.5% 임금인상을 허용하고 있지만 운전 노조원에게는 2.75%을 인상 시켜주고 일년에 1,000불의 보너스를 지불하며, 정부 교통기관을 자유롭게 탑승하도록 OPal 카드를 제공하겠다고 제안했으나 이들은 노조 요구를 계속 주장했다.
지난 주 18일(목)은 이들이 Overtime을 모두 취소한 결과 출퇴근시간에 중요 역에 8분씩 오던 전철이 15분에 한 대로 줄어들었다. 1,300편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토요일에도 2,900편이 1,600으로 줄어들어 많은 불편을 주기도 했다. 이날 NSW 노동당 Foley 당수는 역에서 2시간 이상 기달릴 때도 있었다고 정부를 꼬집었다.
그런데 노동조합에서 6,100명에게 “파업을 원하는가?” 전화 메세이지로 물어 본 결과 겨우 362명인 6%정도만이 동의했으며 특히 근로자의 임금문제와 파업문제를 조사하고 최종 판단을 해주는 정부기관인 Fair Work Commission에서는 교통파업은 지역사회에 큰 혼란을 야기할 수 있는 만큼 6주간 동안 파업을 중단하라는 지시가 있어 파업은 일단 면했다.
그러나 파업결정일인 월요일에도 많은 혼선이 야기될 것을 고려하고 있다. 특히 이날 개학하는 학교도 많아 학생들에게도 지장을 줄 수 있다. 이 외에도 전철 사고가 지난주 리치몬드에서 정지선이 파괴되어 벽을 들이받아 16명의 부상자를 냈다. 작년 한해동안 전철에 불이 난 것만 200건에 이른다고 한다. 대부분 작은 불이라 문제되지 않았지만 타운홀부터 시티 서클은 모두가 지하로 되어있다.
타운홀 정거장이 완성된 것은 1932년으로 하버브릿지 완성과 같은 해였다. 무려 90여년이 지난 오랜 역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곳에 불이 날 경우 CCTV도 충분치 않아 큰 사고로 이어질 것으로 예측했다. 주정부는 20억을 소모해서 다른 지하전철을 건설중이다.
하명호(SBS 방송인, 수필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