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미진 박사의 특별기고

자신을 안다는 것
“벤틀리는 자신이 작은 개라는 사실을 모르는 것 같습니다.”
얼마 전, 다쳐서 병원에 다녀온 우리 집 푸들 벤틀리를 보며 제가 한 말입니다.
벤틀리는 어릴 때부터 탈출의 귀재였습니다. 몸 하나 겨우 빠져나갈 틈만 있으면 어떻게든 집 밖으로 나가곤 했습니다. 얼마 전에도 가족들이 모르는 사이 밖으로 나갔다가 목줄에 묶여 있던 큰 개를 만났습니다.
보통 작은 개라면 자신보다 몇 배나 큰 개를 보고 피할 것 같은데 벤틀리는 달랐습니다. 오히려 큰 개를 향해 힘껏 짖었습니다. 작은 몸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상대였지만 전혀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결국 큰 개는 벤틀리의 목을 물었고, 가족들은 놀라 급히 병원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다행히 치료를 받고 회복했지만 조금만 늦었어도 위험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신기한 것은 그다음이었습니다. 며칠 동안 기운 없이 지내던 벤틀리는 상처가 아물자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 다시 집안을 뛰어다니고 산책을 즐겼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웃음이 나왔습니다. “아무래도 벤틀리는 자기가 작은 개라는 사실을 모르는 것 같아.”
벤틀리가 이렇게 용감한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지금은 작은 반려견이지만 푸들은 원래 물새 사냥을 돕던 견종입니다. 체구는 작아졌어도 용감하고 활동적인 기질은 어느 정도 남아 있는 모양입니다. 벤틀리를 바라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도 자신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고생을 하는구나. 우리는 자신을 실제보다 크게 생각해서 어려움을 겪기도 하고, 반대로 자신을 너무 작게 생각해서 평생 움츠러들기도 합니다. 어린 시절의 저도 그랬습니다. 또래보다 체격이 조금 큰 편이었는데도 레이스가 많이 달린 화려한 옷을 좋아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제 체형에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옷이었습니다. 나에게 무엇이 어울리는지를 알았다면 훨씬 자연스럽고 편안했을 텐데, 그때는 그것을 몰랐습니다.
외모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자신의 성격과 기질, 강점과 약점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한지, 어떤 사람과 함께 있을 때 편안한지, 어떤 상황에서 쉽게 상처받는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조차 잘 모를 때가 있습니다.
특히 어린 시절부터 다른 사람의 기대를 먼저 살피며 살아온 사람들은 상담실에서 종종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늘 다른 사람의 표정과 감정에는 민감했지만 정작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볼 기회가 없었던 것입니다. 부모가 원하는 것, 배우자가 원하는 것, 자녀가 원하는 것은 잘 알지만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라는 질문에는 쉽게 대답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자신을 안다는 것은 거창한 일이 아닙니다. 오늘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작은 습관에서 시작됩니다. 오늘 무엇이 기뻤는지, 무엇이 서운했는지, 무엇 때문에 화가 났는지, 무엇이 두려웠는지를 천천히 돌아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나는 왜 그 일에 그렇게 반응했을까?”라고 자신에게 물어보는 것입니다. 이런 시간이 쌓이면 관계 속에서 반복되는 자신의 모습도 조금씩 보이기 시작합니다.
어떤 사람은 서운하면 먼저 연락을 끊습니다. 어떤 사람은 버림받을까 두려워 상대를 지나치게 붙잡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갈등이 생길까 봐 끝까지 자신의 마음을 숨깁니다.대부분 의식적인 선택이라기보다 오랜 시간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익숙해진 방식입니다. 어린 시절에는 그것이 자신을 지키는 방법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과거에 나를 보호했던 방법이 지금의 관계에서는 오히려 상처를 만들기도 합니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만든 벽이 사랑하는 사람과 나 사이를 가로막기도 하고, 버림받지 않으려고 상대를 붙잡는 행동이 오히려 상대를 멀어지게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자기이해는 단순히 “나는 이런 성격이야”라고 아는 것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나는 왜 이런 상황에서 이렇게 반응하는가’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심리학에는 ‘조하리의 창(Johari Window)’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나도 알고 다른 사람도 아는 모습이 있는가 하면, 다른 사람은 알고 있지만 나는 모르는 모습도 있습니다. 나만 알고 다른 사람에게는 보여 주지 않는 모습도 있고, 아직 나도 다른 사람도 발견하지 못한 영역도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알아가는 데는 다른 사람도 필요합니다.
신뢰하는 사람이 해 주는 건강한 피드백을 통해 내가 보지 못했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당신은 생각보다 사람들의 평가에 민감한 것 같아요”라는 한마디가 자신을 새롭게 바라보게 할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나누면서 자신도 몰랐던 감정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한 가지 조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자기이해가 자기비난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약점을 발견하고 “나는 왜 이것밖에 안 되는 사람일까”라고 자신을 공격하는 것은 건강한 자기이해가 아닙니다. 자신을 안다는 것은 부족함을 발견하고 실망하는 일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나는 이런 부분에는 강하지만 이런 부분에는 약하구나.” “나는 이런 상황에서 쉽게 상처받는 사람이구나.” “나는 이것은 잘하지만 모든 것을 잘할 수는 없구나.” 이렇게 자신의 강점과 한계를 함께 인정할 수 있을 때 사람은 오히려 자유로워집니다. 자신을 과장할 필요도 없고, 그렇다고 스스로를 함부로 깎아내릴 필요도 없습니다.
문득 다시 벤틀리가 떠오릅니다. 벤틀리는 자신이 얼마나 작은지 몰라 위험에 처했습니다. 사람은 때로 그 반대입니다. 자신을 너무 작게 여기며 평생 움츠러들기도 하고, 자신을 실제보다 크게 여기며 감당하기 어려운 선택을 하기도 합니다. 건강한 삶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아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신앙 안에서 자신을 안다는 것은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자신의 한계를 아는 동시에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가능성을 아는 것입니다. 나에게 약점이 있다고 해서 내 존재의 가치가 작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상처가 있지만 그 상처가 나의 전부는 아니며, 실패한 경험이 있다고 해서 실패가 나의 이름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끊임없이 자신을 새롭게 발견합니다. 어쩌면 성장이란 더 대단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조금씩 더 정확하게 이해해 가는 과정인지도 모릅니다. 내가 얼마나 큰 사람인지 과장할 필요도 없고, 내가 얼마나 작은 사람인지 절망할 필요도 없습니다. 나의 강점도 알고 한계도 알며, 상처도 인정하고 가능성도 발견하는 것. 그리고 그 모든 모습을 품고 오늘보다 조금 더 성숙하게 살아가는 것. 그것이 자신을 알아간다는 의미가 아닐까요.
그리고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할수록 우리는 자신에게 조금 더 너그러워집니다. 자신에게 너그러워진 사람은 다른 사람의 부족함에도 조금 더 너그러워질 수 있습니다.

서미진 박사
(호주카리스대학 부학장, 호주한인 생명의 전화 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