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 목사의 특별기고

사람에게는 너그럽게, 원칙에는 정직하게
우리는 살아가면서 “좋은 게 좋은 거야”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이 말에는 긍정적인 의미와 부정적인 의미가 함께 담겨 있다.
갈등을 줄이고 공동체의 화합을 이루기 위해 사용될 때 이 말은 긍정적인 의미를 가진다. 사소한 잘못은 너그럽게 넘어가고, 서로 조금씩 양보하며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자는 뜻이다.
예를 들어 매사에 잘못을 지적하고 완벽함을 요구하는 부모가 있다면, 아이들은 점점 위축되고 부모의 눈치를 보며 살아갈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오히려 “그만해. 좋은 게 좋은 거야”라는 말이 필요할 수도 있다. 모든 일을 옳고 그름의 잣대로만 판단하기보다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고 조금은 너그럽게 살아가자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말이 언제나 좋은 의미로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정당하게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의 목소리를 외면하거나, 마땅히 지켜야 할 질서와 원칙을 무시하는 구실로 사용되기도 한다.
나 역시 가능한 한 사람들과 평화롭게 살아가고 싶다. 사소한 일까지 따지며 불필요한 갈등을 만드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불의하다고 생각하는 일에 침묵하거나, 옳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일에 동참하는 것을 합리화하기 위해 “좋은 게 좋은 거야”라는 말을 사용하고 싶지는 않다.
결국 이 말에는 양면성이 있다. 관계를 부드럽게 하고 갈등을 줄이는 삶의 지혜가 될 수도 있지만, 불편한 문제를 피하기 위해 원칙을 포기하거나 부당한 일을 묵인하는 변명이 될 수도 있다.
최근 나 역시 이와 비슷한 고민을 한 적이 있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원칙과 맞지 않는 일을 인정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였다. 관계를 생각하면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 편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내가 믿고 지켜온 가치와 맞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좋은 게 좋은 거야’ 하며 넘어가야 할까, 아니면 관계가 조금 불편해지더라도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원칙을 지켜야 할까?
호주에서 살아가다 보면 이와 비슷한 모습을 종종 목격하게 된다. 어떤 상황에서는 “한국에서는 이 정도는 괜찮다”며 한국적인 융통성을 강조하다가, 다른 상황에서는 호주의 법과 원칙을 엄격하게 적용하려는 경우가 있다. 문제는 어느 문화가 더 옳으냐에 있는 것이 아니다. 자신에게 유리한 기준을 상황에 따라 선택적으로 적용하는 태도에 있다.
예를 들어 잘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추천서나 편지를 부탁받았을 때, 그 사람을 도와주고 싶은 마음에 별다른 고민 없이 작성해 주는 경우가 있다. “좋은 게 좋은 거지. 잘되면 좋은 것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추천서는 그 사람에 대해 알고 있는 사실과 신뢰를 바탕으로 작성해야 하는 문서다. 누군가를 돕고자 하는 선한 의도가 있다고 해서 그에 따르는 책임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관계가 나빠졌을 때에는 법과 제도를 이용해 상대방을 압박하려는 경우도 있다. 자신에게 유리할 때는 관계와 인정을 강조하고, 불리할 때는 원칙과 법을 내세운다면 결국 동일한 사안에도 서로 다른 기준을 적용하는 모순에 빠지게 된다.
성경은 우리에게 공평함과 정의를 요구한다. 신명기 21장에는 한 사람이 두 아내를 두었는데, 사랑받지 못하는 아내의 아들이 실제 장자라면 개인적인 감정 때문에 그 장자권을 사랑하는 아내의 아들에게 넘겨주어서는 안 된다는 말씀이 나온다. 이 말씀에는 중요한 원칙이 담겨 있다. 개인적인 호불호에 따라 사람을 차별하거나 서로 다른 기준을 적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중요한 자리에 세워질 수도 있고, 나와 불편한 관계에 있는 사람이 좋은 기회를 얻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정당한 절차와 원칙에 따른 결과이면 개인적인 감정 때문에 가로막아서는 안 된다.
특히 교민사회처럼 서로가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좁은 공동체에서는 인간관계의 영향력이 매우 크다. 소문도 빠르게 퍼지고, 한 사람의 말이나 평가가 다른 사람의 기회와 미래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그렇기에 더욱 신중해야 한다. 친하다는 이유로 원칙을 넘어서는 특혜를 주어서도 안 되고, 싫다는 이유로 누군가의 정당한 기회를 가로막아서도 안 된다. 그렇다고 나는 “좋은 게 좋은 거야”라는 말을 버려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말이 가진 본래의 긍정적인 의미를 회복했으면 한다.
상대의 작은 실수를 너그럽게 용서할 때, 내가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관계를 지키기 위해 양보할 때, 자존심을 내려놓고 먼저 화해의 손을 내밀 때 우리는 기꺼이 “좋은 게 좋은 거야”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원칙을 어겨야 할 때, 누군가에게 부당한 특혜를 주어야 할 때, 잘못된 일을 알면서도 침묵해야 할 때까지 이 말을 사용해서는 안 될 것이다.
사람에게는 너그러워도 원칙에는 정직해야 한다.
어쩌면 이것이 우리가 “좋은 게 좋은 거야”라는 말을 가장 건강하게 사용하는 방법인지도 모른다. 작은 허물은 품어주되 중요한 원칙은 지키는 것, 관계를 소중히 여기되 그 관계 때문에 공평함을 포기하지 않는 것 말이다. 그런 사람들이 많아질 때 우리의 가정도, 교회도, 교민사회도 조금씩 더 건강해질 수 있을 것이다.

김훈 박사 (호주카리스대학 학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