룻기 연구
룻기서에 나타난 신학적 성찰과 사회적 적용(2)
연재되는 룻기에 나타난 신학적인 연구는 한 제목을 가지고 있는 논문이다. 본지에서는 두 차례로 나눠 연재하게 된다. 1부에서는 룻기의 신학적 성찰, 그리고 2부에서는 룻기의 신학적 성찰과 사회적 적용이 될 것이다_편집자 주
3. 신학적 성찰과 사회적 적용
3-1. 다문화 수용의 의식전환
룻기서는 여성을 주제로 한 구약성서로써 사사기 다음으로 이어지는 역사서 사무엘서와 연결되어 있다. 이 작은 책은 4장에서 다윗왕의 족보로 마무리되어 있다. 룻은 보아스와의 결혼을 통해 이방여인이 다윗왕의 족보에 들어오게 된다. 숨어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깨여진 삶을 경험한 룻을 다시 세워 다윗왕의 증조모가 되게 하시었고 그 줄기에서 다윗왕이 태어나게 된 것이다.
룻기가 보여주고 있는 기근과 죽음, 고독과 스스로 택한 객지 생활, 이민과 나그네의 삶의 역사, 곧 사회적 약자가 된 이 모든 역사과정 중에 하나님은 그의 사랑과 은혜를 가지고 룻과 함께 계셨다.
남편과 두 아들을 모두 잃고 빈털터리가 된 나오미는 과부가 된 며느리 룻에게 친정으로 돌아 가라라고 권했다. 룻은 “어머니가 유숙하는 곳에서 나도 유숙하겠나이다.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룻 1:16)라며 나오미와 함께 베들레헴으로 간다. 모압여인 룻과 유대인 보아스와의 결혼은 유대전통을 넘어 국제결혼의 신학적 성서적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그들의 결혼은 아름다운 사랑의 이야기며 성공적인 결혼이었고 다윗가문의 혈통을 형성하였다.
2016년 한국통계청에 의하면 한국인이 외국인과의 결혼은 총 20,591건으로 되어있다. 국적으로 보면 베트남, 중국, 필리핀, 태국, 캄보디아 등의 순서로 동남아 지역으로 되어있고, 북미, 유럽국가들도 포함되어 있다. 한국사회는 국제결혼, 그리고 직업을 찾아 한국에 입국하는 많은 근로자들을 통하여 다문화와 이중문화의 정체성을 경험하게 되었고, 다문화의 정책의 절실함을 알게 되었다.
이와같은 사회적 변화는 우리가 단일민족 관념에서 다문화 수용이라는 의식전환이 필요하게 되었다. 룻기에서 문화, 전통 타민족을 유대공동체에 수용하는 것은 유대민족의 의식전환의 시작이며 ‘다윗왕국의 새로운 싸인’(a sign of David’s Kingdom)이 된다. 이런 역사적 사실은 후에 신약서는 다윗왕국은 예수가 선포한 하늘나라의 모습을 예견하고 있다.
요한계시록에서 다문화는 하늘나라 싸인(sign)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계 7:9-10).
한국사회와 교회안에 동남아시아인들이 그리고 다문화의 가정들이 존재하는 것은 하늘나라의 모습을 앞당겨 보여주는 싱징 곧 싸인을 앞당겨 경험하는 것이다. 하늘나라는 곧 신앙의 공동체는 다양한문화와 전통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함께 더불어 사는 공동체이다.
3-2. 기득권자 보아스와 하나님의 사랑
지난 호에서 신학적 고찰을 살펴보았듯이 룻기는 철저하게 사회적 변두리 사람들의 이야기다. 기근에 의한 고향을 등지고 떠난 난민을 등장인물로 시작하여 그들이 모압에서 겪게 되는 비극적인 시련과 고난의 이야기다. 나오미가 말하고 있듯이 나를 이제 비극의 사람 “마라”라고 부르라 한다(룻 1:20).
당시 유대 사회적 배경에서 세 부류의 사람들이 있었다고 학자들은 말하고 있다. (1) 사회적으로 기근과 국난을 경험하면서 유대에 남아 어려움을 견디며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성공하여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과, (2) 타국으로 떠났다가 국내경기가 회복되면서 다시 모국으로 되돌아오는 사람들 그리고, (3) 타국에서 외국인과 결혼하여 가족을 이루고 살다가 귀국한 사람들이다. 유대에 남아 기득권을 가지고 있든 이들이 조국으로 역이민(逆移民)하여 되돌아 온 이들을 환영할 리가 없었다. 그 기득권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의 부류에 속했던 사람이 보아스였다. 기득권자의 하나님은 가부장적 하나님이셨다. 남성중심, 가부장적 기득권자의 하나님이셨다. 이스라엘 하나님은 기득권자들의 하나님이셨다.
한국사회에서 이민자, 망명자, 난민들, 조국을 떠난 이들은 모두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소외자들이다. 타작 뜰에서 보리 이삭을 주워 모아 삶을 영위하듯 본국인들이 하기 싫어하는 “더러운 직업(dirty industry)”에 종사하는 사람들 모두 이들은 룻과 나오미들이다. 사회적 변두리인들이 이들뿐이겠는가? 사회적인 고아들, 과부, 병든 이들, 부양받을 이 없는 노약자들 과 노숙자들, 그리고 가난한 이들이 모두 사회적 변두리 사람들이다.
하나님은 이들을 돌보시는 하나님이시다. 한국의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 그리고 종교적 기득권자들은 마음을 열고 이들을 돌볼 책임이 있다. 이들을 수용할 수 있는 사회적 정의와 인도주의적,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숨어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이러한 제도의 개선을 통하여 당신의 사랑을 드러내기를 원하고 계신다.
한국사회의 유교적 구조속에서 하나님은 가부장적 하나님이 되시었다. 여성은 교회에서 사회에서 소외대상이었다. 목사안수와 장로안수가 제외된 교단들이 아직도 많이 있다. 한국교회 구조가 가부장적 권위 중심적인 것은 유교적으로 여성을 소외시킨 가부장적 하나님의 이해 때문이다.
룻기에서는 가부장적인 하나님 이해를 달리하고 있다. 하나님은 상처난 여성들을 싸매주시고, 이들을 다윗왕국으로 인도하시는 여성의 하나님도 되신다. 룻이 고백하고 있듯이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될 것입니다”(룻 1:16).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 룻의 하나님이 될 것입니다. 룻의 고백은 가부장적 하나님이 아닌 소외된 여성들의 하나님으로 고백하고 있다. 모성적 사랑을 가지신 하나님은 경제적 가치를 가난한 여성들과 함께 나누시는 사랑의 보편성을 룻기를 통하여 보여주고 계시다.
3-3. 보아스의 역할로서 한국교회와 조국의 미래
모압은 하나님의 회중에 들어오지 못한다. 신명기적 선언이다(신 23:3-6). 모세는 가나안으로 가는 여정에서 모압인들을 통하여 아픔을 준 경험을 기억하면서 이스라엘에게 경고하였다. 그러나 룻기에서 근동 제국에 몰고 온 기근이 이런 법령에 숨통을 트고 화해의 가능성을 열고 있다. 기근이 나오미 가족으로 하여금 모압으로 옮겨가는 계기가 되었고, 다시 베들레헴의 풍년을 암시하는 “추수를 시작할 때”라는 소식이 나오미로 하여금 고향을 생각하게 하며 조국으로 되돌아오게 한다(룻 1:22).
기근의 역사는 창세기와도 맥락을 같이 한다. 야곱의 형제들이 요셉을 애굽 상인들에게 종으로 팔아넘기고 아버지 야곱을 속인지 10여년이 지난 후 애굽과 천하에 기근이 든 것이 계기가 되어 양식을 구입하러온 형들과 요셉이 화해하는 실마리를 주게 된다. 하나님은 기근을 야곱가문의 화해의 도구로 사용하신 것이다. 기근의 와중에 양식을 구입하러온 형제들에게 요셉은 양식을 원수갚음의 무기로 사용하지 아니하고 화해의 수단으로 사용하게 하신다.
룻기에서도 가뭄과 기근의 현장에서 양식을 구하러 모압으로 간 후 다시 그후 깨여진 생의 모습으로 양식을 찾아 다시 돌아온 나오미와 룻을 따뜻이 맞이한 보아스가 있었다. 그들에게 자기의 타작마당에서 이삭을 주워 양식을 마련하도록 돕는다. 모압에 대한 배타적 감정을 가지고 있던 당시 사회상황에서 모압여인이었던 룻을 돌보며 아내로 맞이하여 하나님의 회중에 들어오도록 문을 연 혁명적인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남북으로 양분된 한국 상황에서도 우리는 룻기에서 배울 것이 있다. 북한의 기근, 그리고 남한의 경제적 부흥, 최근에는 유엔의 경제적 제제(economic sanction)로 인한 북한의 극심한 어려움과는 다르게 남한은 세계 경제수준 11위, 국민소득 3만불이 넘는다. 탈북인들이 한국을 찾아 생사를 넘어 한국을 찾아온다. 나오미와 룻처럼 조국을 찾아온다. 한국사회는 북한에 대한 적대감을 버리고 그들을 우리의 공동체에 받아드려 따듯이 돌봐줘야 한다. 남북이 하나되는 전초적인 경험을 가지게 되는 기회가 될 것이다.
남북의 핵무기 경쟁이 세계 평화를 가져오지 못하듯 양식의 봉쇄가 결코 남북간의 평화를 가져오지 못한다. 북한의 핵이 남북통일도 주변국가의 공공유익(common good)을 가져오지 못하는 것처럼 경제를 재제하는 일이 핵무기를 무력화시킬 무기가 되지못하며, 주변국가의 공공유익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성서적인 관점에서 기근중에 양식을 찾는 기회는 원수 갚음의 기회가 아닌 화해와 용서의 기회가 될 수 있다.
남북통일은 남북간의 어떠한 체제로도 현재는 가능한 것은 아니다. 어느 한 체제의 승리가 주변국가의 공공유익(common good)을 가져온다고 중국이나 러시아가 그리고 미국이 각각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통일은 영원히 불가능한 것인가? 미래 통일이 모든 주변국가에 유익하고 또한 남북간에 만족할 만한 통일의 길은 없는가 하는 질문이다.
한국교회는 미래 통일 조국을 위하여 보아스의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굶주린 자들에게 먹을 것을 주는 일, 적대감을 넘어 사랑으로 품는 일, 그리스도 안에서 인내하며 하나님의 희년이 우리의 조국에 임하도록 기도하며 기다리는 일이다. 기근을 화해의 도구가 되도록 한국교회는 지혜와 믿음을 가지고 노력해야 한다. 양식이 결코 원수갚음의 무기가 될 수 없다. 보아스가 없는 베들레헴은 나오미와 룻에게는 공허했을 것이다. 룻없는 보아스도 다윗의 계통를 완성할 수 없을 것이다. 교회는 보아스의 역할을 하며 남북통일이 오기까지 끈질기게 하나님께 기도하며 꾸준히 노력하여 남북이 하나의 공동체가 되는 길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한국에 부흥하는 교회을 세우신 것이다.
4. 결론: 하나님의 사역에 참여한 용감한 사람들
룻기에서 보여주는 숨어 계신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며, 상처를 치료하여 새롭게 인간을 세우시는 창조주 하나님이시다. 보아스가 그러했고, 나오미가 그리했으며, 룻이 그러했듯이 이 세상에서의 우리 역할은 우리의 삶과 인격, 마음과 신앙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는 일이다. 인간의 상처를 치료하며, 사회의 상처를 치료하는 하나님 사랑의 사역에 참여하는 자들이다.
나오미, 룻 그리고 보아스는 사회에서 곧 “나”의 역할이다. 곧 “나(I)”로부터 “가정(family)”으로 하나님의 사랑이 흐르게 하는 것이다. 우리 역할은 문화와 사회, 전통과 인종, 그리고 젠더(남성 여성)를 넘어 인간 공동체에 하나님의 사랑이 투영되도록 하는 것이다. 다윗의 왕국은 예수님이 선포한 하나님의 나라에서 완성된다. 이를 위하여 나오미, 룻 그리고 보아스 같은 헌신자들이 있었다. 하나님의 교회는 나오미 처럼, 때로는 룻처럼, 때로는 보아스 처럼 조국의 미래를 위하여, 이웃을 위하여 헌신하도록 부름을 받았다. 룻기서는 숨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뜻에 참여하기 위해 이념, 전통, 문화, 민족을 넘어 위대한 신앙과 대담한 용기를 보여준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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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하 겸임교수(아이오나콜럼바대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