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준 교수의 호주선교사 열전(64)
도로시 패어리 레거트(Dorothy Fairlie Leggatt, 1902. 6. 25-1984. 5. 6)
한국명: 이혜수(李惠受) 선생, 통영 1928-30; 마산 1930-31; 부산진 1931-41, 47-50
도로시 레거트는 말레쿨라 올루아(Aulua, Malekula)의 선교사였던 와트 레거트 목사의 딸로 뉴헤브리데스 암브림(Ambrym)에서 태어났다.
도로시는 멜번의 장로교여학교(PLC)에서 공부했고, 교사훈련을 받은 후 3년간 모교에서 가르쳤다. 그리고 그녀는 유치원 교사로 훈련을 받은 후 2년 동안 사우스 리치몬드(South Richmond)에서 가르쳤다. 그 후 장로교회의 디커니스로 훈련을 받고, 한국선교사로 임명을 받아 1928년 9월 12일에 부산에 도착했다. 그녀는 통영에 배치를 받았다.
1930년에 그녀는 한국어 훈련과 순회전도의 임무를 받고 마산으로 이전했다. 그녀는 한국에 대해 탁월한 지식을 발전시켜 나갔다.
1931년 그녀는 부산진으로 이전해서, 순회와 여성사역 감독, 전도부인과 성경학교 교사들의 감독, 위더스의 휴가 동안에 유치원 운영, 성경학원 사역 등의 임무를 수행했다.
조지 앤더슨은 「호주장로교선교회와 한국선교, 1889~1941」안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여선교사들이 신뢰하는 전도부인들과 함께한 순회활동은 여러 방면에서 남자들의 순회활동 보다 더 구체적이었다. 그들은 당연히 한 가정의 여성들의 안방까지 들어갈 수 있었고 실질적으로 가족의 심장까지 들어갈 수 있었다. 그들은 때때로 한 장소에서 며칠을 거주하면서 심방하고 상담하고 공부하고, 남자가 접근할 수 없는 문제들을 해결했다. 그들의 사역은 매우 힘이 들고 강도 높은 헌신을 요구하는 것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성경과 그 의미에 대한 지식은 물론 갓 태어난 열정적이고 성장하는 교회에서 매우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제자를 삼으라는 그리스도의 명령은 매우 진지하게 취급되었다.”
한국에서 마지막 2년 동안 레거트는 여자성경학원의 원장이었다. 그녀는 모든 선교사들의 철수명령이 내려진 1941년에 호주로 돌아왔다.
그녀는 1947년에 던과 위더스와 함께 한국에 돌아가서 9월 7일에 부산에 도착하였다. 거기서 그녀는 교회들을 방문하고, 통영과 부산 지역의 교회여성들을 격려하고, 성경학교와 나환자요양소에서 가르치는 일을 다시 시작하였다.
그녀는 고아원들, 나환자요양소, 양로원에 그녀가 할 수 있는 한 도움을 주었다. 그녀는 건강이 악화되어 1950년에 호주로 돌아왔고, 한국에 다시 가지 못하였다. 이것은 그녀와 동료들에게 큰 실망을 주었다. 그녀의 개인적 재능과 헌신성은 유창한 한국어 솜씨에 덧붙여져서 사람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선교와 한국인에 대한 그녀의 헌신성은 결코 시들지 않았다. 그녀는 멜번에서 한국에 있는 교회와 한국인 방문자 혹은 학생들에게 지속적으로 도움을 주었다. 위대한 선교사 가문의 일원이었던 그녀는 그 전통을 끝까지 유지했다.
정병준 교수
(서울장신대학교 교회사 교수 / 멜번신학대학원 졸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