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소크라테스의 변명
플라톤 / 문예출판사 / 1999.2.10

‘소크라테스의 변명’은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철학자인 소크라테스의 영혼의 책이다. 제자 플라톤이 스승의 위대한 사상과 진실된 인간성을 널리 알리고 영원히 기리기 위해 심혈을 기울여 쓴 ‘소크라테스의 변명’ 외에 ‘크리톤’, ‘파이돈’, ‘향연’을 함께 엮었다.
이 책은 소크라테스는 어떠한 사람이었고 그의 생애는 어떠하였는가, 그리고 왜 그를 가리켜 성인이라고 하며 가장 참된 철인이라고 부르는가 하는 물음에 답을 들려준다. 또한 이 책의 전편에 흐르는 소크라테스의 사상을 통해서 우리는 이성적이고 주체적이며 무한한 책임을 지는 참다운 용기를 배우고, 인간의 양심과 자유를 지킨 그의 인간성을 통해서 깊은 감동을 느낄 수 있다.
○ 목차
변명
크리톤
파이돈
향연
작품 해설
○ 저자소개 : 플라톤(Platon)
플라톤은 그 유명한 펠로폰네소스전쟁이 시작된 지 4년째 되는 해, 그리스 아테나이에서 태어났다. 전쟁은 기원전 404년 아테나이의 패배로 끝났으므로 전쟁 속에서 태어나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성장했다. 플라톤 집안은 비교적 상류계급이었고 그러한 배경의 귀족 출신 젊은이답게 정계 진출을 꿈꾸었지만, 믿고 따르던 스승 소크라테스의 죽음에 정치적인 배경이 있음을 알고 철학을 통해 사회의 병폐를 극복하기로 결심한다.

자주 외국 여행길에 올라 이집트·남이탈리아·시칠리아 등지로 떠났던 플라톤은 기원전 4세기 초 아테나이로 돌아와 서양 대학교의 원조라 할 아카데메이아 학원을 열고 철학의 공동 연구, 교육, 강의를 시작했다. 그곳을 통해 뛰어난 수학자와 높은 교양을 갖춘 정치적 인재들,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철학자들을 배출하며 집필활동에 전념한다. 주로 스승 소크라테스가 등장해 대화를 주도하는 철학적 대화편을 집필하는데, 그러한 대화편이 무려 25편에 달한다. 『소크라테스의 변론』 『크리톤』 『이온』 『프로타고라스』 『메논』 『파이돈』 『파이드로스』 『국가』 『향연』 『필레보스』 『소피스트』 『정치가』 『티마이오스』 『법률』 등을 남겼다.
○ 책 속으로
아테네인 여러분! 나는 여러분이 나를 고발한 사람들의 말을 듣고 얼마나 많은 영향을 받았는지 말할 수 없습니다. — 첫문장
˝그 사람도 나도 아름다움이나 선을 사실상 모르고 있지만 나는 그보다는 현명하다고,
왜냐하면 그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면서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알지도 못하고 또 안다고 생각하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나는 알지 못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점에서 나는 그보다 약간 우월한 것 같았습니다˝ 변명, — p18
˝오, 인간들이여, 소크라테스처럼 그의 지혜가 사실은 아무 가치도 없음을 알고 있는 자가 가장현명하다˝ 변명, — p20
여론은 무시한다 하더라도 재판관에게 설명하고 그를 설득하는 대신 재판관에게 은혜를 베풀어달라고 애원하여 무죄 석방이 되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재판관의 의무는 정의를 선사하는 것이 아니라 판결을 내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재판관은 자신의 기분에 따라 재판하지 않고, 국법에 따라 재판할 것을 서약하였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여러분이 서약을 깨뜨리는 습관을 갖도록 해서는 안 되며, 여러분도 이러한 습관을 키워서는 안 됩니다. 이러한 습관에는 경건함은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나에게 불명예스럽고 불경스러우며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도록 요구하지 마십시오. 특히 멜레토스의 고발에 따라 신을 믿지 않는다는 죄로 재판을 받는 지금은 – 왜냐하면 오, 아테네 인 여러분, 만일 내가 설득과 애원으로 여러분의 맹세를 깨뜨리게 한다면 나는 여러분에게 신들이 없다고 믿으라고 가르친 것이 되고, 따라서 변명을 하면서 신들을 믿지 않는다는 고소를 단지 확인하는 데 지나지 않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일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나는 나를 고발한 사람들이 신들을 믿는다고 하는 것보다 더 높은 차원에서 신들을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는 여러분이나 나를 위해서 최선의 것이 되도록 재판해 줄 것을 여러분과 신에게 맡깁니다. — p.44-45
˝쾌락과 고통은 동시에 같은 사람에게 주어지는 일은 없으면서도 그 중 하나를 추구해서 얻은 사람은 대체로 다른 하나도 어쩔 수 없이 얻게 마련이기 때문이야.˝ 파이돈, — p88
˝여기에 한결같이 탐구하고, 들은 것을 대뜸 믿으려고 하지 않는 사람이 있군.˝ 파이돈, —- p93
˝다시 말하면 두려워하는 것이 있기 때문에 용감한 거야.˝ … ˝그들에게는 잃어버리기 싫은 쾌락이 있고, 이 쾌락을 지키기 위해서 그들은 몇 가지 쾌락을 삼가는데 이는 다른 쾌락에 압도당했기 때문이야. 그리고 쾌락에 정복당하는 것을 사람들은 방종이라고 부르지만, 그들에게는 쾌락의 정복은 쾌락에 의해 정복당함으로써 가능한거야. 이러한 의미에서 나는 그들은 방종하기 때문에 절제하게 된다는 말을 한 거야.˝ 파이돈, — p103-104
˝모든 사물의 이와 같이 보편적인 반대 관계에는 또한 항상 진행되고 있는 두 가지 생성 과정, 곧 갑에서 을로, 그리고 을에서 갑으로 되돌아가는 과정이 있지 않을까?˝ 파이돈, — p106
˝그러나 자기 사진으로 돌아와서 반성할 때, 영혼은 다른 세계, 곧 순수하고 영원하며, 불멸하고 불변하는 영역으로 들어가게 되네. … 이러한 영혼의 상태를 지혜라고 부르는 것이 아닌가?˝ 파이돈, — p125
˝철학은 바로 죽음의 연습이 아니던가?˝ 파이돈, — p127
˝곧 그는 청중이 그의 말을 옳게 여기도록 애를 쓰는 데 반해 나는 오히려 나 자신을 확신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네. 나에게 있어서는 청중을 설득한다는 것은 이차적인 문제에 지나지 않아˝ 파이돈, — p145
˝영혼이 정말로 죽지 않는다면 생애라고 부르는 시기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영원을 위해서 영혼을 알뜰하게 돌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파이돈, — p176
˝마치 해저에 사는 생물이 자기는 물의 표면에 살고 있고 바다는 그것을 통해 해와 기타의 별들을 보는 하늘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으며,˝ 파이돈, — p179
○ 출판사 서평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철학자인 소크라테스의 영혼의 책으로서 제자 플라톤이 스승의 위대한 사상과 진실된 인간성을 널리 알리고 영원히 기리기 위해 심혈을 기울여 쓴 ‘소크라테스의 변명’ 외에 ‘크리톤’ ‘파이돈’ ‘향연’을 함께 엮었다. 소크라테스는 어떠한 사람이었고 그의 생애는 어떠하였는가, 그리고 왜 그를 가리켜 성인이라고 하며 가장 참된 철인이라고 부르는가 하는 물음에 답을 들려준다. 또한 이 책의 전편에 흐르는 소크라테스의 사상을 통해서 우리는 이성적이고 주체적이며 무한한 책임을 지는 참다운 용기를 배우고, 인간의 양심과 자유를 지킨 그의 인간성을 통해서 깊은 감동과 함께 인간성 회복을 위한 새로운 결의를 다지게 될 것이다.
– “언제든 인간의 병은 고쳐져야 하는 것, 언젠가 인류가 모두 착하고 참된 마음으로 돌아가는 날, 나를 대신해서 감사의 뜻으로 닭 한 마리를 바쳐다오.”
– 용기란 무엇이며, 소크라테스가 마신 독배(毒杯)와
빚진 닭 한 마리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소크라테스의 변명’은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철학자인 소크라테스의 영혼의 책으이다. 제자 플라톤이 스승의 위대한 사상과 진실된 인간성을 널리 알리고 영원히 기리기 위해 심혈을 기울여 쓴 ‘소크라테스의 변명’ 외에 ‘크리톤’, ‘파이돈’, ‘향연’을 함께 엮었다.
이 책은 소크라테스는 어떠한 사람이었고 그의 생애는 어떠하였는가, 그리고 왜 그를 가리켜 성인이라고 하며 가장 참된 철인이라고 부르는가 하는 물음에 답을 들려준다. 또한 이 책의 전편에 흐르는 소크라테스의 사상을 통해서 우리는 이성적이고 주체적이며 무한한 책임을 지는 참다운 용기를 배우고, 인간의 양심과 자유를 지킨 그의 인간성을 통해서 깊은 감동을 느낄 수 있다.
– 소크라테스의 마지막 유언 속 ‘빚진 닭 한 마리’가 알려주는 지성인의 의무
“크리톤, 나는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닭 한 마리를 빚졌네. 기억해두었다가 빚을 갚아주겠나?”
소크라테스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에 나오는 닭 한 마리에는 세 가지 설이 있다. 첫째는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닭 한 마리를 헌납하라고 했다는 설, 둘째는 아스클레피오스라는 실제 인물이 있었다는 설, 셋째는 소크라테스의 마지막 말은 순전한 농담이었다는 설이다.
이 중 가장 유의미한 해석은 첫째 해석이다. 아테네에는 병에서 회복된 사람은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닭 한 마리를 바치는 관습이 있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임종의 자리에 있었던 만큼 쾌유에 대한 감사로 닭을 바칠 처지는 아니었다. 따라서 그가 굳이 마지막 순간에 의신에게 닭 한 마리를 바칠 것을 유언으로 남긴 사실에는 “나는 인간의 마음속에 깃든 병을 고치려다가 독배를 마시게 되었다. 그러나 언제든 인간의 병은 고쳐져야 하는 것, 언젠가 인류가 모두 착하고 참된 마음으로 돌아가는 날,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나를 대신해서 감사의 뜻으로 닭 한 마리를 바쳐다오” 하는 절실한 의미가 깃들어 있던 것은 아닐까?
소크라테스의 닭 한 마리의 뜻을 이렇게 풀이하면 ‘닭 한 마리의 의미’에서 우리는 지성인의 기본자세 또는 역할에 대한 그의 사상을 엿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말한다면 지성인이 해야 할 일은 ‘의신 아스클레피오스에게 감사의 뜻으로 닭 한 마리를 바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인간의 정신적 쾌유를 위해 이바지하는 것이 지성인의 기본적인 역할이다.
‘인간 양심의 등에’가 되는 것이 지성인의 참된 자세임을 보여준 것이 소크라테스를 성인의 반열에 오르게 한 으뜸가는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소크라테스가 자신을 소피스트와 구별하고 필로소포스, 즉 애지자(愛知者)라고 부른 것도 이러한 관점에서 이해해야 하리라. 그는 지식을 호구의 방편으로 삼는 지식상(知識商)이 아니라 참된 슬기를 깨우치고 깨우쳐주며 밝은 인류의 양심을 바탕으로 인류를 행복으로 이끄는 실천적 지혜를 추구했다.
– 용기가 모든 위기를 극복하게 만들지는 못한다,
하지만 용기 없이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 뜻깊은 일을 위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안중근 의사와 같은 위인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겁과 만용의 중용(中庸)이 용기라고 했다. 그러므로 크든 작든 위기를 맞이하면 절실히 요구되는 것이 용기이며 용기 없이 위기의 극복은 불가능하다. 물론 용기가 모든 위기를 해결하지는 못하지만, 용기 없이는 위기에 끝까지 대항하지 못한다.
위대한 용기를 실증한 사람으로서 소크라테스를 드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는 신이 아테네로 보낸 아테네의 등에이며 ‘걸어 다니는 아테네의 양심’이었다. 그가 ‘변명’에서 말한 것처럼, 아테네는 거대하고 기품 있는 군마(軍馬) 같으나 거대하기 때문에 운동이 둔해서 이를 각성시키는 등에가 필요하고, 그 등에가 바로 자기라는 것이다.
그의 선택은 타락과 몰락의 길을 걷고 있는 아테네를 ‘세계의 중심’으로 재건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소크라테스는 당시 아테네의 지배적인 풍조에 비판적이었다. 아테네를 구제해야 한다는 그의 사명감은 허위에 대한 비판과 부정에서 출발한 것이었고 진리를 위해 투쟁하는 참된 용기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었다.
그런데 왜 소크라테스는 그가 그토록 부정한 아테네의 현실을 받아들이고, 죽음이라는 부당한 판결에 복종하였을까. 아테네의 권력자들 앞에서 그들의 세태를 부정할 수 있는 용기가 있음에도 왜 소크라테스는 부당한 권력의 힘을 인정하고 스스로의 삶을 포기한 것일까.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바로 소크라테스가 스스로 죽음을 택한했다는 사실이다. 용기 있고 철저한 부정 정신의 소유자이던 소크라테스가 태연히 독배를 마심으로써 그런 현실을 인정했다는 사실은 용기의 또 한 측면, 즉 부당한 현실조차 인정하며 자신이 최후에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을 선택한 소크라테스의 용기를 보여준다. 이 같은 용기는 안중근 의사와 같은 위인의 죽음이 의미하는 바와 같다.
– 소크라테스에게 배워야 할 것은 결단하는 용기와
미래를 설계하는 모험하는 정신
용기는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것이며, 결단은 용기의 구체적 내용과 같다. 수 세기 동안 소크라테스의 용기에서 많은 감동을 받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결단은 통해서 우리는 미래를 선취한다. 우리의 선택은 현재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항상 미래지향적이다.
즉 결단은 모험이다. 여기에는 얼마나 정확하고 합리적인 현실 분석이 수행되었는가, 현실이 갖고 있는 가능성은 무엇인가(미래는 공상에 의해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토대로 해서만 가능하다), 그 가능성을 실현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등 난점이 따른다.
우리는 우리의 선택에 따라 행동하고, 그 결과에 대한 전적인 책임을 영원히 떠맡을 수밖에 없다. 한 국가의 지도자가 선택한 것이 그 국가에 남기는 결과가 얼마나 큰지 생각하면 결단의 무서움을 상상할 수 있다.
이러한 결단은 진정한 용기를 전제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비겁한 자는 결단을 회피할 것이며 만용밖에 모르는 자는 결단하기 전에 행동부터 시작할 것이다. 인간으로서의 모든 성실을 다 기울였다는 자신, 자신의 선택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죽음도 불사한다는 신념, 그것이 인류를 위해 가장 가치 있는 것이라는 확신. 용기 없는 자라면 이러한 결단에 도달하기 어렵고, 결단을 요구하는 현실을 외면하고 현실도피라는 안이한 처세술을 택할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소크라테스에게 현실을 긍정하고, 현실을 분석하며 미래를 만드는 진정한 용기의 구현을 볼 수 있다.
○ 박민철의 고전읽기 – 소크라테스의 변명
언제부터인가 인문학 열풍으로 인해 융합적 사고방식을 키워주고 창의형 인재를 길러준다는 관련 서적들이 주요 서점들의 가판대를 독차지하고 있는 듯하다. 이러한 일련의 흐름 속에 인문학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동ㆍ서양 고전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도 증대되고 있다. 나 또한 자기계발류의 책들을 주로 읽는 편이었으나 최근 들어 철학 서적들을 가까이 접하게 되면서 깨달은 사실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흔히 말하는 동•서양 클래식 서적들이 우리의 삶을 치열하게 고민하고 미래를 개척하는 데 있어서 피와 살을 제공하는 명품 지식이라는 것이다. 예로부터, 고전은 소위 가진 자들의 소유물이자 선택받은 자들에겐 보물창고 같은 존재였다. 일반 민중들은 고전에 대한 접근이 원천적으로 봉쇄되었다. 자유와 평등이 보장되는 지금 이 시대는 어느 시대보다 고전에 대한 정서적, 물리적 거리가 가장 가까워졌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기꺼이 명품 지식을 습득하는 데 인색하다. 앞으로 ‘박민철의 고전읽기’를 통해, 나보다 먼저 살았던 인생 대선배들의 당시 고민의 흔적과 삶의 노고를 공유하고자 한다. 인문학 전도사인 이지성에 따르면 고전은 현실에 대한 치열한 고민과 현실에 맞선 가열함 몸부림을 통해 탄생하였고 그 때의 동력으로 지금까지 우리 곁에 명품 지식으로 길이 보전되어 오고 있는 것이 바로 고전이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소크라테스의 변명(크리톤•파이돈•향연)’을 통해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철학자인 소크라테스의 시대정신을 공유해보고자 한다. 소크라테스는 살아생전 자신의 사상이나 철학을 담은 책을 한 권도 쓰지 않았기 때문에 그와 관련된 행적들은 그의 제자인 플라톤이 기록해놓은 ‘대화편’을 통해 소크라테스의 기록들을 유일하게 엿볼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선 ‘너 자신을 알라’로 유명한 소크라테스는 산파술의 대가였다. 산파는 산모가 아기를 안전하게 낳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다. 철학적 산파였던 소크라테스는 제자들이 질문을 하면 그 질문에 답을 하지 않고 계속해서 질문을 던짐으로써 스스로 무지함을 깨닫게 해주었다. 소크라테스는 알지 못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점에서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현명하다고 생각했다. 그보다 더 현명하다고 알려져 있는 사람을 알게 되면 그 사람을 찾아가 산파술로 그의 무지를 파헤치고는 했었다. 그렇게 하다 보니 소크라테스는 주변의 많은 사람을 적으로 만들었다. 평소 소크라테스를 눈엣가시처럼 생각한 아테네의 권력층 인사들은 그가 청년을 타락시키고 국가가 신앙하는 신들을 믿지 않고 다른 새로운 신을 믿음으로써 죄를 범했다는 이유로 그를 법정에 세운다.
‘소크라테스의 변명’은 소크라테스가 법정에서 자신을 고발한 멜레토스 및 재판관들을 대상으로 행한 최초 변론, 유죄 선고 후 변론, 사형 선고 후 변론의 세 부분으로 크게 구성되어 있으며 그가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책은 죽음 앞에서도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당당했던 위대한 철학자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억울하게 고발을 당한 소크라테스는 오히려 법정에서 당당히 “재판관 여러분보다는 신에게 복종할 것”이며 평소처럼 아테네 시민들에게 지혜와 진리와 영혼을 돌볼 수 있도록 조언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변론한다. 사형이 선고된 뒤에도 이에 굴하지 않고 오히려 “죽음을 흔쾌히 여기고 착한 사람에게는 생전에도 사후에도 나쁜 일은 생길 수 없다는 것을 확신”하라고 주장하면서 “나에게 사형 선고를 집행한 재판관들은 살고 소크라테스는 죽을 운명이지만 어느 쪽이 더 좋은가 하는 것은 오직 신만이 알 뿐”이라고 당당히 변론을 끝마친다.
‘크리톤’은 소크라테스의 절친인 크리톤이 사형 선고를 받고 옥중 생활을 하고 있는 소크라테스를 찾아가 탈옥을 권유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때 당시 아테네에서는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면 다른 도시로 추방되거나 간수에게 탈옥을 공조해주는 대가로 뇌물을 공여하고 자신의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아테네를 탈출하자는 크리톤의 제안을 거절하면서 오히려 “싸움터나 법정이나 어느 곳에서든지 도시와 국가가 그에게 명령하는 바를 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친구의 그릇된 생각을 꾸짖었다. 소크라테스는 법을 어기는 자야말로 젊은이와 아테네 시민들을 타락시키는 자라고 생각을 하면서 탈옥을 하면 지금의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지금껏 주창해오던 정의와 덕에 대한 가르침을 스스로 무너뜨리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 법이 정당하지 않더라도 국가의 명령을 어길 수는 없기 때문에 자신이 죽음을 택한 이유를 설명한다.
‘파이돈’은 소크라테스가 죽기 전에 그의 제자들에게 영혼, 육체, 내세(명부)를 함의하는 죽음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여러 가지 논증을 통해서 설명하고 그가 어떻게 그리고 왜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지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소크라테스에게 죽음이란 영혼과 육체의 분리, 즉 영혼이 독립해 있어서 육체로부터 해방되고 육체가 영혼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이다. 그는 “진정한 철학자만이 항상 영혼을 해방시키려고 노력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또한 그는 육체로부터 자유로워진 영혼은 사후 세계에서도 불멸하다고 믿고 있으며 “나도 역시 아폴론 신에게 바쳐진 종”이기에 “즐거운 마음으로 세상을 떠나려”한다고 말한다. 소크라테스는 마지막에 제자들에게 자신의 죽음을 함께 슬퍼하기 보다는 기뻐해 주기를 당부하면서 독약을 들이마시면서, 죽어가기 직전에 “아스클레피오스(의학의 신)에게 닭 한 마리를 빚졌네. 기억해 두었다가 빚을 갚아주겠나?”라고 말한다. 그 이유는 아마도 억울한 죽음에도 불구하고 죽음이라는 것이 영원한 이별이 아니라, 영혼이 육체로부터 진정으로 해방되는 순간이며 이를 통해 영혼의 자유를 얻게 되었기 때문에 이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표시한 것이 아닌가 싶다.
고전을 좀 더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대적 상황을 살펴봐야 한다. 소크라테스는 지혜와 용기, 절제를 두루 갖춘 정의의 화신이었다고 할 수 있다. 국가 지도자가 정치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 올바른 길로 갈 수 있도록 어떤 상황에서도 직언을 서슴지 않는 양심선언자였다. 그는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할 정도로 아테네 젊은이들과 인류사상에 대해서 토론하는 것을 즐겼으며 끊임없는 자신의 성찰을 통해서 인간의 양심, 이성과 자유의 회복을 위해서 일생을 바쳤다. 소크라테스가 고소를 당해 법정에 출두를 당할 당시에는 아테네가 스파르타와의 펠레폰네소스 전쟁에서 참패하여 정치적으로는 부패가 만연하고 사회적으로 도덕적 타락이 심해지던 시기였다. 아테네 민주주의는 중우정치가 판을 쳤고 아테네 법정의 재판관은 법률적 지식을 가진 사람들보다는 돈을 벌기 위한 사람들로 채워졌다. 아테네의 미래를 걱정하는 정치가나 지식인보다는 화려한 말솜씨로 대중을 속이는 사람들이 득세하던 시기였다. 이런 상황을 소크라테스는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었을 것이다. 오히려 국가를 위한 올바른 소리와 비판을 아끼지 않았던 소크라테스야말로 부패한 지도층에게는 제거해야 할 암적 존재였던 것이다. 그는 비겁하게 연명하기 위해 목숨을 구걸하지 않고 자유가 억압되는 상황에 직면할 바에는 차라리 독배를 마시고 죽는 것이 오히려 영광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나 보다 국가를 먼저 생각하는 소크라테스의 삶의 철학, 지혜, 용기야말로 그로 하여금 소명의식을 가지고 떳떳한 하루를 살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었을 것이다. 이는 진정한 철학자로서 죽음을 대하는 그의 태도와 맞물려서, 즐거운 마음으로 기꺼이 독배를 마시는 소크라테스의 최후의 장면은 우리로 하여금 2천4백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가장 감동적인 모습으로 다가오는 게 아닐까 싶다. 타락한 육체보다는 순수한 영혼을 중요시했던 소크라테스에게 부정과 사기가 판을 치고 돈 몇 푼 때문에 사람을 죽이는 현재 우리들의 모습은 어떻게 비춰지고 있을까? 그 또한 인간 존엄의 회복을 위해서 비판의 칼날을 세우지 않을까? 나는 소크라테스가 편안한 마음으로 축복의 독배를 들었을지 모르겠지만, 그의 순수한 불멸의 영혼은 아직도 편안히 잠들지 못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