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소개
귀스타브 모로(Gustave Moreau)의 ‘오이디푸스와 스핑크스’ (Oedipus and the Sphinx)
귀스타브 모로 / 유화 / 206.4×104.8㎝ / 1864년 / 메트로폴리탄미술관(뉴욕)

○ 귀스타브 모로(Gustave Moreau, 1826.4.6~1898.4.18)
귀스타브 모로는 프랑스의 상징주의 화가이다. 성서의 이야기나 신화를 많이 그려 이름을 날렸다. 매우 화려한 기교로 시적·환상적 표현을 하였다.
귀스타브 모로는 1826년 파리에서 건축가의 아들로 태어났다. 미술 대학을 졸업하고 22세 때부터 그림을 그렸다.
1848년 이후 테오도르 샤세리오와 들라크루아의 화풍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이 시기에 모로는 그림의 주제를 역사와 신화에서 찾기 시작하며 이는 후에 모로의 화풍을 대변하게 된다. 1857년에서 1859년까지 이탈리아를 여행하면서 신화적 주제를 모음과 동시에 그림기술을 향상시켰다. 파리로 돌아와 당시의 미술계에 유행하던 살롱 초대전에 약 20년간에 걸쳐 수시로 작품을 출품한다. 1864년 외디푸스와 스핑크스를 그려 화가로서의 명성을 얻게 된다. 이후에 그려지는 대다수의 작품은 고대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인물과 일화들을 주제로 하고 있다. 모로는 의식적으로 신화를 주제로 한 그림에서 인간의 번민과 고통, 이상적인 영웅상 등을 상징적으로 표현함으로써 상징주의를 대표하는 화가로 손꼽힐 뿐만 아니라 후에 나타나는 표현주의에 결정적인 동기를 주게 된다.
1892년 파리의 예술학교의 미술과 교수로 초빙되어 마티스, 루오, 마르케 등의 화가들을 길러낸다. 특히 모로는 자상함과 형식에 구애되지 않는 교수 방법 때문에 학생들 사이에서 존경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1898년 파리에서 암으로 사망했다. 사망후 유언에 따라 모로가 살던 파리의 9구 로슈푸코 거리 (프랑스어: rue de la Rochefoucauld) 14번지의 집은 현재 모로 박물관(프랑스어: Musée Moreau)으로 되어 있다.
대표 작품으로 살로메(1871), 에루로페와 황소(1869), 레다(모로 박물관), 오르페우스(1865) 등이 있다.
○ 오이디푸스와 스핑크스 (Oedipus and the Sphinx)

‘오이디푸스와 스핑크스'(Oedipus and the Sphinx) 이 작품은 그리스 로마 신화 중 오이디푸스 이야기의 한 장면이다. 그리스 도시국가, 테베의 왕 라이오스는 아들에게 살해당한다는 신탁을 받는다. 신탁의 실현을 두려워한 라이오스 왕은 갓난 아들의 발을 굵은 못으로 찔러 걷지 못하게 만들고는 산에 버린다. 그런데 한 양치기가 이 아기를 발견하고는 마침 자식이 없었던 코린토스의 왕에게 보내게 된다. 아기는 발이 부은 아이라는 뜻의 ‘오이디푸스’라는 이름으로 코린토스의 왕자로 자란다. 그러던 어느 날, 오이디푸스 역시 자신이 친부를 죽이고 어머니를 아내로 맞는다는 신탁을 받는다. 코린토스의 왕과 왕비를 친부모로 믿은 오이디푸스는 인간으로서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죄를 피하기 위해 정든 코린토스를 떠나고, 그렇게 비극으로 향하는 운명의 길에 접어든다.
코린토스를 떠난 오이디푸스가 방향을 잡은 곳은 하필 테베로 향하는 길이었다. 한참 길을 가던 도중 좁은 길에서 시종들을 대동하고 마차를 탄 노인을 만났는데 길이 워낙 좁다 보니 서로 비키라는 시비가 붙었고, 시비 끝에 오이디푸스는 노인을 지팡으로 때려죽여 버린다. 이 노인이 바로 테베의 왕이요 그의 친부인 라이오스였다. 하지만 오이디푸스는 아무것도 모른 채 여정을 계속했다. 그렇게 테베에 도착해보니, 테베의 왕은 정체 모를 사나이에게 살해당한데다 스핑크스까지 나타나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었다. 스핑크스는 사자의 몸에 여자의 얼굴, 독수리의 날개를 단 괴물로, 이 괴물은 사람들이 지나는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지나는 사람에게 수수께끼를 내서 풀지 못하면 잡아먹어버렸다. 스핑크스로 인해 나라가 피폐해지자 라이오스 왕 사후 테베를 다스리던 섭정은 “스핑크스를 처리하는 자에게 왕위와 왕비 이오카스테를 주겠다”는 약속을 하게 이른다.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는 “아침에는 네 발, 낮에는 두 발, 저녁에는 세 발로 걷는 것은 무엇인가?”였다. 많은 사람들이 도전했고, 그리고 실패했다. 오이디푸스가 비로소 정답 “인간”을 맞췄고 스핑크스는 골짜기에 몸을 던져 죽어 버렸다. 오이디푸스는 스핑크스를 처치한 상으로 테베의 왕위와 왕비인 이오카스테를 차지했고 그렇게 그에게 내려진 신탁이 모두 실현되었다. 어머니와 아들이었던 두 사람은 부부가 되어 두 명의 아들과 두 명의 딸을 두고 살아간다. 하지만 모든 진실이 밝혀지게 되면서 이오카스테는 스스로 목숨을 끊고 오이디푸스는 진실을 보지 못했던 자신의 두 눈을 찔러 실명케 한 후 테베를 떠난다.
이 작품은 바로 오이디푸스가 스핑크스의 수수께끼에 도전하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죽느냐 사느냐의 순간인 셈이다. 하지만 이 작품 속의 스핑크스와 오이디푸스가 주고받는 눈빛에는 살의라기보다는 교태가 서려있다. 최신 파리 스타일로 땋아 올린 머리에 예쁘장한 얼굴을 한 스핑크스는 유혹하는 듯한 눈빛으로 오이디푸스를 올려다보고 있고, 가늘고 고운 선의 중성적인 매력이 넘치는 오이디푸스는 한편으로는 그 눈빛을 받아주는 듯도 하고 한편으로는 흔들리지 않는 것처럼 응수하고 있다. 하지만 스핑크스의 유혹은 아마 속임수일 것이다. 스핑크스의 날카로운 앞발은 잔뜩 힘이 들어간 채 오이디푸스의 심장 근처를 노리고 있으며, 오이디푸스의 발치에는 먼저 도전해서 스핑크스의 유혹에 넘어가 먹이가 되어버린 희생자들의 신체 잔해들이 널려 있다.
또 하나, 귀스타브 모로의 그림 속 여자 주인공들은 모두 남자들을 파멸로 이끄는 팜므 파탈이었음을 상기해보면 이 작품의 스핑크스 역시 어떤 얼굴과 표정을 하고 있건 그 뒤에 오이디푸스를 파멸로 이끌고자 하는 의도가 숨겨져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모로의 작품 속에서 여성은 대체로 영적인 세계에 사로잡힌 신비로운 존재, 악을 사랑하는 존재, 그리고 남자를 유혹하고 파멸로 이끄는 존재로 그려졌다. 반면 남성은 시인을 그리건 전사를 그리건 이 작품의 오이디푸스처럼 섬세하고 고운 선의 중성적인 미소년으로 그려졌다.
모로의 작품에 앞서 완성된 앵그르의 ‘오이디푸스와 스핑크스’와 비교하면 앵그르의 작품 속 오이디푸스와 스핑크스의 관계와 상황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다. 실제로 모로의 ‘오이디푸스와 스핑크스’에 많은 영감을 준 것으로 알려진 앵그르의 작품에는 중앙에 오이디푸스가 배치되어 있고 스핑크스는 왼쪽 구석진 곳에 치우쳐져 있으며 심지어 그늘에 가려져 있다. 이는 스핑크스가 수세에 몰린 상황으로 오이디푸스가 수수께끼에 답을 하고 난 다음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반면 모로의 작품에서는 스핑크스가 더 시선을 끄는 중앙에 자리 잡고 있고 보다 위협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모로의 작품에서는 스핑크스가 이제 막 수수께끼를 냈고 오이디푸스는 아직 답을 하기 전 상황이기 때문이다. 선과 악의 팽팽한 대결의 순간이다. 더불어 분명 여성과 남성 사이의 긴장 가득한 응시가 오고가는 순간이기도 하다.
모로는 수없이 많은 예비 드로잉을 그리면서 이 작품을 준비했다. 완벽주의자였던 모로는 작품의 구성을 위해 때로는 수십 년 씩 그리고 다시 그리면서 수정하고, 세부사항을 덧붙이곤 했다. 작품의 세부 구성을 위해 신화나 신학뿐만 아니라 문학, 철학, 고고학 등 다방면을 두루 섭렵하는 것은 기본이었다. 하지만 이는 작품의 현실성을 높이거나 고증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자료들을 재해석하여 그만의 신비로운 환상 세계로 묘사해 냈다. 동시대의 화가들이 사실주의, 인상주의 등 눈으로 보이는 현실에 대한 객관적인 묘사에 열광하고 있을 때, 그는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세계에 몰두했다. 그의 그림은 이후 ‘화가 내면의 주관적 묘사’를 중시하는 표현주의와 무의식에 탐닉했던 초현실주의에 많은 영감을 주었다.
○ 상징주의 화가들을 매료시킨 치명적인 소재
앵그르(19세기 프랑스 신고전주의 화가로 잘 알려진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Jean Auguste Dominique Ingres]가 그린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푸는 오이디푸스]는 1827년 살롱전에 출품된 작품) 이후 오이디푸스 신화에 매력을 느낀 이들은 단연코 상징주의자들이었다. 상징주의의 효시로 불리는 귀스타브 모로(Gustave Moreau)는 그 대표적인 화가로 꼽힌다. 그는 <오이디푸스와 스핑크스>를 주제로 다수의 스케치와 드로잉을 남겼으며, 1864년 살롱전에 첫 출품한 같은 주제의 유화는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고 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 작품에 묘사된 스핑크스와 오이디푸스가 자아내고 있는 미묘한 분위기이다. 화면 속 스핑크스는 오이디푸스를 해하고자 덤벼들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유혹하듯 매달려 있는 것일까? 앵그르의 작품에서도 어느 정도 감지된바 있는 이러한 갈등은 모로의 작품에서 더욱 증폭된다. 떠올려보면 오이디푸스 신화에 나오는 스핑크스와 수수께끼는 둘 다 상대로 하여금 매혹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19세기 후반의 상징주의자들은 치명적인 유혹의 속성을 지닌, 반은 여인이고 나머지 반은 맹수의 모습을 한 스핑크스에 매료되었던 듯하다.
○ 구스타브 모로 ‘오이디푸스와 스핑크스’ : 스핑크스의 수수께끼와 유혹
– 사자 몸에 여성상체 형상 괴물 도발적인 유혹과 질문, 답하는 순간 비극을 부르나니
구스타브 모로(1826∼1898)가 그린 ‘오이디푸스와 스핑크스'(1864년 작)의 부분도. 여성의 얼굴과 가슴을 가진 스핑크스가 날개를 펴고 도발적으로 오이디푸스의 몸에 올라타 있다.
– 묘사 중심→표현 중심 전환 시기 그리스 신화 속 이야기를 그림으로
– 여성적인 혼돈의 수수께끼를 남성적 질서의 정답으로 바꿔 결국 스스로 파멸한 오이디푸스
– 오늘날 서구 문명의 위기도 지성의 과신이 부른 불행 신화에서 경고했던 건 아닐까
아침에는 네 발로 걷고 점심에는 두 발로 걷다가 저녁에는 세 발로 걷는 짐승을 아는가? 그러나 당신은 너무 섣불리 답을 말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목구멍으로 막 올라오는 답을 잠시 도로 삼켜야 한다. 자신의 지성을 너무 과신하지 말 것. 위험은 항상 그곳에 있다.
보라, 스핑크스의 등은 피에 대한 갈증으로 잔뜩 웅크렸다. 네 발은 상대를 찢어놓고 싶은 욕망으로 팽팽하게 긴장해 있고 발톱은 이미 세워져 있다. 어깨 부근에는 살기(殺氣)의 떨림 같은 미세한 바람이 깃털을 세우고 있다. 그런데 스핑크스의 눈빛에는 왠지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이 교차하는 듯하다.
구스타브 모로(1826∼1898)는 묘사 중심의 회화(사실주의, 인상주의)에서 표현 중심의 회화(상징주의, 표현주의, 초현실주의)로 이행하는 미술사의 중요한 다리다. 그는 파리에서 꽤나 잘나가는 건축가 루이 모로와 음악을 사랑하는 다감한 여성 폴린 사이에서 태어났다. 섬약하고 따뜻하고 몽상적인 이 아이는 잠깐 기숙학교 생활을 빼고는 어머니 품과 집 서재를 가득 채운 장서 속에서 자란다. 그리고 화가를 꿈꾼다. 스무 살에 당시 화가로 성공하는 지름길이던 에꼴 데 보자르에 입학하지만, 곧 그만두고 자신만의 길을 찾아 나선다. 들라크루아와 앵그르 영향권 내의 그저 그런 화가 정도로 알려졌던 그가 일약 화단의 시선을 끌게 된 것은 바로 1864년 살롱 출품작 ‘오이디푸스와 스핑크스’ 때문이었다.
– 오이디푸스는 남성·이성을 상징
고대 그리스인을 전율시키고 매혹시킨 오이디푸스의 비극은 서구인의 의식을 지배하는 무의식의 기본 틀(어머니에 대한 성적 애착과 아버지의 거세 위협)이었음을 프로이트는 밝혔다. 그런데 프로이트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개념을 정립하기 전에 모로는 오이디푸스를 그렸다. 그가 그린 것은 오이디푸스 신화 가운데서도 스핑크스와 만나는 장면이었다. 왜 하필 그 장면일까? 이 섬뜩한 만남은 해독되지 않은 고대 상형문자처럼, 스핑크스 자신이 낸 수수께끼처럼 신비롭다.
고향 테베로 가는 길, 깊은 골짜기를 품은 벼랑길에서 오이디푸스는 스핑크스와 만났다. 스핑크스는 날개를 펴고 도발적으로 오이디푸스의 몸에 올라타 있다. 오른쪽에는 모로 특유의 장식성을 보여주는 향로가 있어 이곳이 스핑크스를 위한 제단임을 짐작하게 한다. 그런데 향로의 받침대를 타고 뱀 한 마리가 머리를 내밀고 있다. 뱀은 지혜를 상징하기도 하지만 또한 유혹이면서 죽음이다. 어둔 골짜기, 자궁 같은 향로와 더불어 뱀의 상징성은 이곳이 위험한 여성성, 이브의 영토임을 말한다.
오이디푸스는 스핑크스의 수수께끼에 맞서고 있다. 스핑크스의 도발에 반사적으로 뒤로 젖혔지만, 그렇기에 반발력의 긴장과 탄력을 지닌 상체, 스핑크스의 시선을 놓치지 않는 눈빛, 지면을 버티는 긴장으로 살짝 굽은 발가락들에서 결코 물러서지 않겠다는 단호함이 보인다. 창과 같이 뾰족한 끝을 가진 지팡이는 스핑크스의 발톱에 맞서면서 남자의 권위를 드러내고자 하는 기호다. 다스리고 지배한다는 의미를 가진 한자 ‘尹(윤)’이나 ‘君(군)’의 갑골문 역시 모두 남자가 지팡이를 든 상형이어서 흥미롭다.
아마 스핑크스는 막 저 유명한 수수께끼를 던졌으리라 “아침에는 네 발로 걷고 점심에는 두 발로 걷다가 저녁에는 세 발로 걷는 짐승은 무엇인가? 말해보라.” 스핑크스는 이중적이다. 그녀의 입은 답을 요구하고 있지만, 눈빛은 수수께끼 속으로 남자를 유혹하고 있다. 모로는 스핑크스의 감성적 얼굴보다 오이디푸스의 이성적 얼굴을 상위에 그렸다. 오이디푸스는 스핑크스를 오만하게 내려다보면서 탐색과 추론을 행하고 있는 것이리라. 그러나 그는 좀 더 신중했어야 했다. 그가 “사람”이라고 답을 말하는 순간, 그는 문제는 풀었지만 유혹에는 졌다. 그의 지성은 결국 자신의 눈을 찌르고 스스로 빛을 거두어 갈 것이다.
– 수수께끼가 풀렸을 때
모로가 그린 ‘스핑크스와 오이디푸스'(1888년 작).오이디푸스가 수수께끼를 풀자 스핑크스는 골짜기(혹은 바다)에 떨어져 죽는다. 그리고 스핑크스는 서구의 주류 담론에서 사라진다. 스핑크스는 서구의 시선이 지나쳐버린 곳에 있다. 그러나 칼 융은 좀 달랐다. 그는 스핑크스에 숨어 있는 얼굴을 발견했다. 그것은 우리의 심혼 속에 살아 있는 무서운 어머니의 원형적 이미지다. 고대 이집트에서 스핑크스는 “모든 것이 시작되는 곳”이라 여겨졌으며, 그리스어로 스핑크스는 ‘괄약근(sphincter)’에서 파생되었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해 보라. 무엇이겠는가? 스핑크스 자체가 숨겨진 수수께끼임을 오이디푸스는 몰랐다.
스핑크스는 모든 것이 시작하는 어머니의 생식기다. 오이디푸스도 프로이트도 몰랐지만, 모로의 예술적 직감은 무의식적으로 그것을 포착한 듯하다. 모로는 몇 점의 그림에서 오이디푸스 이성의 승리를 기획하지만, 그때마다 자신의 기획을 뒤흔드는 스핑크스의 불가사의한 유혹을 느꼈던 것 같다. 그의 성장과정이 오랫동안 어머니의 품이었다는 것, 어머니에 대한 애착은 25년간 사귀었던 여인을 두고 끝내 그를 독신으로 살게 했다는 것을 환기해 두자. 1888년 그린 ‘스핑크스와 오이디푸스’에서는 스핑크스의 위험한 매혹이 화면 전체를 압도하며, 오이디푸스는 그 힘에 경의를 표하는 것처럼 보인다.
칼 융은 오이디푸스의 해법을 지성을 과신하는 남성적 방식이라고 규정했다. 여성적인 혼돈의 수수께끼를 오이디푸스가 남성적 질서의 정답으로 바꾸는 순간 스핑크스는 배경으로 사라진다. 그러나 그녀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녀의 수수께끼는 오이디푸스 신화 전체에 스며들면서 오이디푸스가 건설하는 질서를 역으로 해체한다. 신화적인 근친상간으로 표현되곤 하는 어머니 생식기는 실상 모든 생명과 생성이 소용돌이치는 곳이다. 그곳에서 시간이 시작된다.
– 서구 문명이 잉태한 위기 예견
그녀 뒷머리가 소라 고동처럼 소용돌이치며 말려 있는 것이 보이는가. 그녀의 혼종의 몸은 온통 시간 메타포로 가득하다. 날개는 전갈자리의 성좌인 독수리자리와 추분을, 사자의 꼬리는 태양이 사자자리에 도달하는 하지를 가리킨다. 스핑크스의 뒷다리는 본래 황소 발굽이었다고 한다. 바빌로니아 달력은 한 해가 춘분에서 시작하는데 이때 태양은 황소자리로 들어선다.
소용돌이치며 생성하는 시간은 오이디푸스적 이성이 놓쳐버린 구멍이다. 서구 문명의 주류는 끊임없이 이 구멍을 은폐하고 무시간의, 불변하는, 기하학적 진리를 추구하였다. 그것이 초래할 비극을 신화는 경고하고 있지만, 그들은 오이디푸스의 길을 선택했다. 전 지구적인 환경과 생명파괴라는 서구 문명의 위기는 기하학적 이성을 과신한 오이디푸스의 비극(어머니 대지의 파괴와 자신의 파괴)에서 예견되었던 것이 아닐까?
자세히 보면 향로 위로 연기 대신 보라색 나비 한 마리가 날고 있다. 누구의 영혼일까? 아래 구덩이의 주검에서 빠져나온 것인가, 아니면 오이디푸스의 기구한 운명에 대한 연민일까? 어쩌면 이제 곧 저 까마득한 절벽으로 사라질, 그리하여 문명사에 구멍으로 남을 스핑크스를 위한 나비일지 모른다. — 미학자 이성희 ‘이미지의 모험’
○ 오이디푸스와 스핑크스 (Oedipus and the Sphinx)
테바이의 왕 라이오스는 신탁에 의하여 새로 탄생한 그의 아들이 그대로 성장하면 왕위와 생명의 위협을 줄 것이라는 경고를 받았다. 왕은 아들을 양치기에게 맡기고 죽이도록 명령했다. 그러나 양치기는 아이가 가여워 죽일 수 없었고 어린애의 발을 묶어 나뭇가지에 매달아 두었다. 그것은 한 농부에게 발견되어 그 농부의 주인부부에 의해 어린아이를 받아들였다. 주인부부는 아이를 오이디푸스(Oedipus)라고 명명하였는데, 그것은 ‘부푼 발’이라는 뜻이다.
세월이 흘러 라이오스는 시종 한명만을 데리고 여행하던 중 한 청년의 말을 죽이게 된다. 화가 난 청년은 라이오스와 그의 시종을 죽였다. 저도 모르는 사이에 오이디푸스는 친아버지를 죽인 것이다.
테바이시의 사람들은 스핑크스라는 괴물 때문에 괴로움을 당하고 있었다. 스핑크스는 사자의 몸뚱이에 상반신은 여자의 모습을 한 괴물로 바위 위에 웅크리고 앉아 길가는 사람을 제지하고 그들에게 수수께끼를 내주고 그것을 푸는 자는 무사히 통과시켰으나 풀지 못하는 자는 생명을 잃을 것이라고 위협했다.
아직까지 그 수수께끼를 푼 자는 한명도 없었고 모든 통행인이 목숨을 잃었지만 오이디푸스는 이 이야기를 듣고 조금도 겁내지 않고 스핑크스에게 갔다.
“아침에는 네 발로 걷고 낮에는 두 발로 걷고 저녁에는 세 발로 걷는 동물은 무엇인가?”
오이디푸스는 대답했다.
“그것은 인간이다. 인간은 어릴때는 두 손과 두 무릎으로 기어다니고 커서는 두 발로 서고 늙으면 지팡이를 짚고 다니기 때문이다.”
스핑크스는 자신의 문제를 풀어버린데 대해서 굴욕을 느끼고 바위밑으로 몸을 던져 죽어버렸다. 테바이사람들은 오이디푸스에 의해서 구출된 것을 감사히 여겨 그를 왕으로 추대하고 여왕과 결혼하게 하였다.
오이디푸스는 이미 자기의 부친인지도 모르고 살해했고 이번에는 여왕과 결혼함으로써 자기 어머니의 남편이 된 것이다. 이런 무서운 일이 발견되지 않은채 세월이 흘렀으나 테바이에는 기근과 역병의 재난이 일어나게 되자 신탁에 문의한 결과 오이디푸스의 이중 범행이 드러나게 되었다.
여왕은 자살하고 오이디푸스는 미쳐 자기의 눈을 후벼 빼고 테바이를 뒤로하여 방랑의 길을 떠났다.
모든 사람의 공포의 대상이 되고 버림을 받았으나 그의 딸들만은 그를 충실히 보살폈다.
마침내 비참한 방랑생활을 지리하게 계속한 후에 그의 불행한 생애는 종말을 고하였다.
오이디푸스가 방랑생활을 할 때 끝까지 시중을 들어준 여인은 기가 막히게도 어머니와의 사이에서 낳은 딸이었다.
‘오디이푸스 콤플렉스'(Oedipus complex)는 ‘아들이 엄마에 대해서 무의식적으로 갖는 성적인 연모’를 말한다.
인간은 운명의 꼭두각시인가? 아니면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는 자인가. 인간에게 운명이 있다면 그 운명은 신, 자연, 혹은 공동체와 같은 환경에 의해 결정되는 것인가? 아니면 자신이 알게 모르게 만든 습관인가. 기원전 6세기 소아시아에서 활동한 철학자 헤라클리토스는 “습관은 인간에게 운명이다”는 말을 남겼다. 모든 것을 환경 탓하는 인간에게 자신의 몸에 알게 모르게 쌓인 습관이 운명을 결정한다. 생각이 습관을 만들고, 습관이 말과 행동으로 표현되며, 행동의 반복이 나의 환경이며, 환경이 굳어지면 운명이 되기 때문이다. ‘오이디푸스 왕’은 인간들이 흔히 말하는 ‘운명’의 근원이 무엇인가를 추적하는 작품이다.
○ 오이디푸스 (Oedipus)
오이디푸스(고대 그리스어: Οἰδίπους)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도시 테바이의 왕이다. 어머니는 이오카스테이고, 아버지는 라이오스이다. 오이디푸스란 이름의 뜻은 ‘부은 발’이다. 라이오스와 이오카스테가 오이디푸스를 버릴 때, 어린 오이디푸스의 발목을 묶어서 버렸고 따라서 오이디푸스란 이름을 얻게 되었다.
– 오이디푸스 신화
오이디푸스가 태어나기 전에 아버지인 라이오스와 어머니인 이오카스테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에 의해서 아버지가 장차 죽임을 당할 것이라는 신탁이 내려졌다. 오이디푸스가 태어나자, 라이오스와 이오카스테는 신탁이 현실로 이루어질 것을 두려워하여 어린 오이디푸스의 발목을 묶어 부하를 시켜 인적 없는 산에 버리게 하였다. 그러나 그 일을 맡은 부하는 차마 어린 오이디푸스를 버리고 오지 못하고, 이웃 나라 코린토스의 목동에게 아이를 넘겨 주게 된다.
어린 오이디푸스를 받은 목동은 그 아이를 코린토스의 왕인 폴뤼보스와 그의 아내 메로페에게 바친다. 오이디푸스는 폴뤼보스와 메로페를 친부와 친모로 여기고 자라던 중, 장차 자신이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할 것이라는 신탁을 듣고는 그 무시무시한 운명을 피하기 위하여 코린토스를 떠난다. 오이디푸스는 테바이로 여행하던 중에 자신의 친아버지 라이오스와 길거리에서 통행에 분쟁이 붙어 라이오스를 죽여 버리고 만다.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사실을 까맣게 모르는 오이디푸스는 테바이의 오랜 골치거리였던 스핑크스를 죽이고 테바이로 돌아와 왕이 되었고, 자신의 어머니인 이오카스테와 결혼하여 두 아들인 에테오클레스와 폴리네이케스, 그리고 두 딸인 안티고네와 이스메네를 얻는다. 오이디푸스는 테바이를 선정으로 잘 통치하였으나, 갑자기 테바이에 역병이 돌게 된다.
오이디푸스는 이 역병의 이유를 알기 위해 이오카스테의 남동생인 크레온을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으로 보내어 역병의 원인을 알아 오게 한다. 신탁은 “선왕인 라이오스왕을 죽인 자를 찾아서 복수를 하면 역병이 물러간다.”고 하였고, 일전에 자신이 길거리에서 죽인 사람이 바로 자신의 아버지 라이오스라는 사실을 전혀 모르는 오이디푸스는 라이오스의 살해자를 찾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일 것을 맹세한다. 라이오스의 살해자를 찾기 위해 크레온이 데려온 그리스 최고의 예언가 테이레시아스는 오이디푸스가 찾고 있는 살해자가 바로 그 자신임을 말해 주게 된다. 오이디푸스는 크레온이 자신의 왕위를 노리고 테이레시아스를 조종하여 근거 없는 말을 하도록 했다고 생각하지만 라이오스가 아들에게 살해될 것이라는 신탁이 내려졌음을 이오카스테로부터 듣게 되고, 또 마침 코린토스의 왕인 폴뤼보스의 죽음을 알리러 온 사자가 곧 어린 자신을 폴뤼보스 왕에게 바친 당사자임을 알게 되고 라이오스와 이오카스테의 명령에 따라 오이디푸스를 버리는 일을 맡았던 목자를 불러 대질해본 결과 바로 자신이 친아버지인 라이오스를 살해하였고, 지금껏 아내라고 알고 있었던 이오카스테는 사실 자신의 어머니임을 깨닫게 된다. 이오카스테는 이 무서운 진실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하여 자살하고 오이디푸스는 이오카스테의 브로치를 빼어 자신의 눈을 찔러 스스로 소경이 되고 만다. 절망한 오이디푸스는 테바이를 크레온에게 맡기고 딸인 안티고네에 의지하여 각지를 떠돌아 다니다가 죽는다.
–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오스트리아의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이 신화를 ‘아들이 아버지를 적대시하고, 어머니를 좋아하는 본능의 표현’으로 봤다. 그래서 남자 아이의 그의 어머니에 대한 무의식적인 배타적 사랑의 노이로제를 가리키는 말로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란 말을 처음으로 사용하였다.
아들에게 아버지는 사회적 구속의 화신이다. 반면에 어머니는 그가 보호해야 할 대상이다. 아들은 아버지에게 경쟁 심리를 느끼며, 아버지 대신에 어머니를 독점하려 든다. 어머니의 사랑을 독점하려고 하는 마음은 동시에 아버지를 사랑의 경쟁 상대로 바라보게 되고, 이 원한의 감정으로부터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발생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네 살에서 다섯 살 사이에 끝나고 만다. 이러한 불합리한 욕구를 계속 갖게 되면 그 벌로 아버지에게서 제거될지도 모른다는 공포심을 갖기 때문이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