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소개
자크루이 다비드 (Jacques-Louis David)의 ‘적선을 받는 벨리사리우스’
자크루이 다비드 / 1781년 / 릴 미술관
벨리사리우스 (Flavius Belisarius, 505년 – 565년)는 비잔틴 황제 유스티니아누스 때 충성을 다하며 용맹을 떨친 장군이었다. 그는 반달족, 고트족, 그리고 불가리아인의 침략을 막아냈지만 정치적 책략에 연루되어 황제의 버림을 받고 거지가 되었다. 전하는 이야기로는 그의 두 눈이 뽑혔다고도 한다. 1767년 장 프랑수아 마르몽텔이 쓴 소설로 그의 이야기는 더욱 알려졌다.

다비드 (Jacques-Louis David, 1748년 8월 30일 ~ 1825년 12월 29일)는 1779년 로마에서 페이롱으로부터 마르몽텔의 소설을 받아서 읽고 이 작품을 그리게 되었다. 다비드는 반 다이크가 그린 벨리사리우스 장군의 작품을 보고 영감을 얻었다고 했는데, 17세기 제노바 화가 루치아노 보르조네의 작품을 그가 반 다이크의 작품으로 착각했던 것이다.
다비드가 1779년 펜으로 드로잉한 것과 2년 후 유채로 그린 것이 구성에 있어 동일해 처음부터 건물은 수직으로, 인물들은 수평으로 구성하려고 했음을 알 수 있다. 과거 벨리사리우스를 섬긴 군인을 삽입한 것은 보르조네의 작품을 인용한 것이지만 여인의 적선을 청하는 장면은 다비드의 창작이다. 벨리사리우스를 주제로 그리는 것은 당시의 유행이었으며 당대 다비드와 대적할 만한 페이롱과 프랑수아 앙드레 빈센트 또한 그를 주제로 그렸다.
다비드는 이 작품을 다른 작품과 함께 1781년 8월 24일 아카데미에 출품했다. 심사위원들은 만장일치로 그를 준회원으로 받아들였고 그의 작품은 살롱전에 전시할 수 있게 되었다. 8월 25일부터 한 달 동안 개최된 살롱전에서 ‘적선을 받는 벨리사리우스’는 인기 있는 작품이었다. 디드로는 적었다.
○ 작품의 교훈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겪지 않을 고통에 대하여 초연하다. 우리는 그러한 약자가 우리도 될 수 있다고 생각할 때에서야 비로소 약자에게 관심을 갖게 된다. 공감 능력이 없어지는 것은 우리가 젊거나, 부자이거나, 사회적으로 높은 위치에 있을 때에 발현되기 쉽다. 혹시 어려움을 갖지 않고 자란 사람이 있다면 이 작품은 좋은 교훈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림에 구걸을 하는 노인인 벨리사리우스는 6세기경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밑에서 로마제국의 영토를 회복했던 전설적인 장군이었다. 젊었을 때에 그토록 부귀와 영화를 누리던 그였지만, 권력 싸움에서 패배하고 정치의 희생양이 되어 구걸을 하게 된 것이다. 왼 쪽에 있는 병사는 그의 수하였던 병사이다.
젊음과 노년, 부귀와 가난이 그림 속에 겹쳐있다. 왼 쪽의 병사는 어쩌면 벨리사리우스의 어릴 적 모습일지도 모른다. 그토록 원하던 영웅이 되고 나서는 어떠한 걱정거리도 없을 줄 알았는데. 시간이 이토록 빨라 노년이 될 줄 몰랐는데. 내가 이러 이렇게만 했다면… 우리는 항상 죽음을 눈 앞에 두고 산다. 보지 못할 뿐이지.
내가 아닌 남의 입장이 되어보는 것. 이것에 이 작품의 위대성이 있다.

○ ‘벨리사리우스’에 대하여
플라비우스 벨리사리우스 (Flavius Belisarius, 505년 – 565년)는 비잔티움 제국의 유명한 장군으로 유스티니아누스 1세 치세의 장군 (벨리사리우스, Βελισάριος)
비잔티움 제국군이 이탈리아를 재정복한 것을 기념해 지어진 라벤나의 산비탈레 성당에 있는 모자이크에서 유스티니아누스 1세 왼편에 위치한 벨리사리우스로 여겨지는 인물이다.
.생사: 505년 경(게르마네, 오늘날 불가리아 사파레바 바냐)~565년 3월 경(50/60세, 칼케돈 루피니아나이)
.별명: 폴란드의 바야르
.배우자: 안토니나
.복무: 비잔티움 제국
.최종 계급: 장군
.근무: 비잔티움 제국 육군
– 초기 생애
일리리아(현재 유고슬라비아)에서 태어나 젊어서부터 군에 입대했다. 530년 다라의 전투에서 사산 제국의 군대와 싸워 승리했으나 531년 유프라테스 강가의 칼리니쿰의 전투에서 완패, 페르시아와 강화를 맺었다. 532년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장교가 되었다.
– 군사적 업적
유스티니아누스 1세 황제가 즉위하던 시점의 영토와(붉은색) 그의 재위 기간 중에 확장된 비잔티움 제국의 영토(오렌지색). 벨리사리우스가 많은 기여를 했다.
.반달족과의 전쟁
533년 아프리카로 항해해 레프키스 마그나 근처에 상륙, 당시 반달족이 수도로 하고 있던 카르타고로 향했다. 반달왕국의 왕 겔리메르를 맞은 벨리사리우스의 비잔틴군은 카르타고에서 10마일 떨어진 곳에서 아드 데키미움의 전투를 벌여 완패했다. 그러나 겔리메르의 조카가 전투에서 죽어 전쟁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는 사이 전열을 가다듬은 벨리사리우스는 티카메론의 전투에서 반달군을 격파, 534년 항복하게 만들었다.
.동고트족과의 전쟁
535년,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는 나르세스를 동고트 왕국전선에서 해임하고 벨리사리우스를 투입했다. 벨리사리우스는 빠르게 시칠리아를 점령하고 이탈리아 본토로 진격했다. 536년 나폴리와 로마를 수복하고 540년 동고트 수도인 라벤나를 점령했다. 동고트족을 비잔틴 황제는 믿지 않았지만 벨리사리우스는 괜찮다고 여겨 그에게 왕국 절반을 주었고, 벨리사리우스는 이에 왕관을 받았는데 이것이 황제의 분노를 샀다.
수도로 돌아온 벨리사리우스는 바로 사산조 페르시아 전선에 재투입되었으며, 빼앗긴 시리아를 놓고 페르시아와 한동안 교전을 벌이다가 545년 금 5천 파운드를 전쟁 보상금으로 페르시아에 넘겨주는 대신 페르시아군이 로마령을 5년간 침공하지 않는 것으로 강화협정을 맺었다.
541년 벨리사리우스가 이탈리아로 돌아오자 상황은 달라져 있었다. 그가 옹립한 동고트 왕 일디바드는 암살되었고 토틸라가 왕이 되어 있었으며, 토틸라의 동고트군은 비잔틴군을 무섭게 몰아내고 있었다. 벨리사리우스는 토틸라에 대해 공세로 들어갔으나, 머지않아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에 의해 나르세스로 교체되었다.
– 말년
559년 벨리사리우스는 도나우 강을 건넌 불가르족전선에 투입되어 그의 장수로서 경력의 마지막 승리를 거두었다.
562년 벨리사리우스는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횡령 혐의로 고소되어 징역이 선고되었으나, 현대 연구자들에 따르면 프로코피우스가 꾸며낸 모함이었다. 황제는 곧 벨리사리우스를 풀어주었다.
565년 벨리사리우스와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모두 세상을 떠났다.

○ 화가 ‘자크루이 다비드’ (Jacques-Louis David)
자크 루이 다비드는 신고전주의 양식에 속하는 유력한 프랑스 화가로, 이 시대의 탁월한 화가로 평가 받는중이다.
.생사: 1748년 8월 30일 (프랑스 파리)~1825년 12월 29일 (벨기에 브뤼셀)
.시대: 신고전주의
.자녀: Laure-Emilie-Felicite David, La Baronne Meunier, 폴린 잔느 데이빗, 유진 데이빗
.정당: 자코뱅
파리에서 출생하였고, 일찍부터 그림에 뛰어난 재질을 발휘하여 1774년에는 로마 상을 받았다. 이듬해 로마로 유학하여 고대 미술에 큰 감명을 받았다. 역사화를 그려 고전주의의 지도자가 되는 한편, 근대 회화의 시조가 되었다. 다비드는 이후 막시밀리앙 로베스피에르의 친구이자 프랑스 혁명의 전폭적인 지지자가 되었고, 프랑스 공화국하에서 사실상 예술의 독재자 역할을 하였다. 로베스피에르가 실각하자 투옥되었으나, 석방된 이후 나폴레옹 1세의 정치 체제에 협력했다. 프랑스 혁명 때에는 문화재보호에 앞장섰다. 나폴레옹이 황제가 된 후 궁정 화가가 되어 ‘나폴레옹 1세의 대관식’을 그렸으나 뒤에 국외로 추방되었다.
– 특징
1780년대 역사화에서 그의 지적인 특징은 로코코의 경박함에서 고전적인 엄숙함과 엄정함으로 취향의 변화를 이끌어 내었다. 이 변화는 앙시앵 레짐의 마지막 시기의 도덕적 풍조와 조화를 이룬다.
이 시기에 그는 베네치아적인 색채 사용으로 유명한 앙피르 양식(Empire style)을 발전시켰다. 다비드는 많은 학생들을 거느리고 있었고, 이는 19세기 프랑스 예술에서 (특히 아카데미적인 파리 살롱 회화에서) 그를 굉장히 영향력 있는 인물로 만들었다.
– 작품
.적선을 받는 벨리사우스 (1781), 릴 미술관
.헥토르의 죽음을 슬퍼하는 안드로마케 (1783), 루브르 박물관, 파리
.소크라테스의 죽음 (1787),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뉴욕 시
.라부아지에 부부의 초상화 (1788),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뉴욕 시
.파리스와 헬레네의 사랑 (1788), 루브르 박물관, 파리
.브루투스의 아들들의 시신을 운반하는 릭토르들 (1789), 루브르 박물관, 파리
.마라의 죽음 (1793), 벨기에 왕립 미술관, 브뤼셀
.레카미에 부인의 초상 (1800), 루브르 박물관, 파리
.교황 비오 7세 (1805), 루브르 박물관, 파리
.나폴레옹 1세의 대관식 (1806), 루브르 박물관, 파리
.서재에서의 나폴레옹 (1812), 워싱턴 국립 미술관, 워싱턴 D.C.
.테르모필라이의 레오니다스 (1814), 루브르 박물관, 파리
.에티엔 모리스 제라르 (1816),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뉴욕 시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